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골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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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와 그들의 하나님 1
: 과학자이면서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 가능한가?
(Scientists and Their Gods; Science and Christianity : Conflict or Coherence?)
Dr. Henry F. Schaefer, II

   “헨리 셰퍼 박사는 그래함 퍼듀 대학의 화학과 교수이며, 조지아 대학의 컴퓨터 양자화학 센터의 소장이다. 그는 노벨상 후보로 5차례나 추천 된 적이 있으며, 최근 그의 연구 논문들이 인용되는 회수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화학자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나 자신에게,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바로 이렇게 하신 거란 말이지’ 라고 말할 때에 과학을 하는 진정한 의미와 기쁨이 찾아 온다. 나의 목표는 하나님의 계획의 작은 한 구석을 이해하는 것이다.” - U.S. News & World Report, 1991년 1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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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강연이 만들어진 내력 (The Genesis of This Lecture)

나는 1983년에 대학 일학년생들에게 화학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550 명 정도 들어가는 대형 강의실에서 강의했다. 강의 첫날 아침에 680 명이 앉아 있었다. 강당은 꽉 차 있었다. 규모가 큰 대학에서 일학년 화학 강의를 해 본 사람이라면 그 강좌에 대해서 만감이 교차하게 된다는 것을 알 것이다.

나는 680 명이나 되는 사람 앞에서 얘기를 해 본적이 없었고, 좀 걱정이 되었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위해 환상적인 시범을 준비했었다. 버클리의 강의실은 앞의 강단이 세 부분으로 되어 있고 돌아가는 무대같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강의가 시작 되기 몇 시간동안 이라도 작업을 해서 강의할 때 쓰게 될 부분에 모든 것을 준비해 놓을 수 있었다. 나를 도와주던 로니 마틴은 버클리의 모든 화학 시범을 맡은 사람이었고, 벤젠, 철, 수은, 에틸 알콜 등 여러 가지 물질을 10몰씩 준비하고 있었다. 강의의 적절한 순간에, 멋진 최고의 정점에서 내가 스위치를 누르면 무대가 돌아가서 로니가 10몰씩 되는 여러 가지 물질과 함께 나타날 계획이었다. 학생들은 이 모든 물질들에서 공통점은 바로 각각의 물질들이 같은 분자수만큼 있다는 점을 알게 되면서 굉장한 직관을 가지게 될 터이었다.

그 시범은 매우 멋질 것으로 기대 되었다. 마침내 강의 중 내가 “로니, 보여주세요” 라고 말하는 순간이 왔고 무대를 회전시키기 위해 내가 스위치를 눌렀다. 그런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로니가 아직 준비가 덜 되어서 무대가 회전되지 않도록 해 놓았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무척 난처한 상황이 되었다. 680 명의 학생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전혀 준비되지 않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가 기다리는 동안 어제 아침 교회에서 일어난 일을 들려 드리겠습니다.”

나는 필사적이었다. 학생들은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신입생들은 대학 화학 시간에 많은 기대들을 하고 출석했겠지만, 교회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은 전혀 예상못했을 것이었다.

나는 계속했다. “어제 주일학교에서 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학생들의 호기심이 더욱 커졌다. 나는 교회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680 명이나 되는 이 대형 강의를 맡는 것에 대한 사기를 북돋아 주거나, 영적으로 격려해 준다거나 하는 어떤 무엇인가 지지가 있기를 바랬었다. 그러나 전혀 받지 못했다. 사실 주일 학교 선생님은 반학생들에게 내 체면을 세워 주면서 질문하였었다. “길 가운데 누워 있는 죽은 개와 길 가운데 누워 있는 죽은 화학 교수와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학생들은 모두 흥분해서 내 이야기의 중요한 부분까지 기다리지도 않았다. 학생들이 웃는 소리로 강의실이 떠나갈 것 같았다. 길 가운데 누워 있는 죽은 화학 교수라는 생각 자체가 그들에게는 너무나 엉뚱했다. 나는 그들 중 몇 명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으리라고 확신한다. “만일 이 교수가 학기말 시험 바로 전에 죽어서 누워 있는 그 교수가 된다면, 우리는 학기말 시험도 보지 않고 낙제 없이 이 강좌를 패스할거야. 그렇게 되면 정말 신나겠는데”

나는 학생들에게 “길 가운데 누워 있는 죽은 개와 길 가운데 누워 있는 죽은 화학 교수와의 차이는 바로 개 앞에 자동차 바퀴자국이 나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아주 좋아했다. 분위기가 다시 정리되면서 나는 무대 스위치를 눌렀고, 로니가 같은 몰의 화학물질들과 함께 나타났다. 대학 일학년 화학 강의 경력으로는 멋진 시작이었다.

약 50 명의 학생이 수업 후에 질문하러 다가왔다. 절반 정도는 “수강 신청 카드의 어디에 표시해야 하나요?”와 같은 일반적인 질문이었다. 그러나 나머지 절반 정도는 같은 내용을 묻고 있었다.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어제 교회에서 뭘 하고 있었어요?”라고 물었다. 특히 한 학생은 말했다. “제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작년에 고등학교에서 저에게 화학을 가르친 선생님이예요. 그 선생님은 화학자로서 생활하면서 어떤 형태로든 종교적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어요.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리는 그때 그다지 오래 이야기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학생들은 앞으로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계속 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이것이 이 강연의 시작이 되었다.

나는 이 강연을 버클리와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많이 되풀이 했다. 몇 년 전 조지아 대학으로 옮긴 후, 이 강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더욱 커졌다. 교수진 중에서는 대학 본부에 불평을 하기도 했다. 그것은 내 인생에서 흥미롭던 기간이었다. 미국 남동부 지역에서 가장 큰 신문인 아틀란타 저널(The Atlanta Journal and Constitution)이 내가 이 강연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지지하는 편집자의 글을 게재하면서, “광신자들이 그들의 생각을 널리 알리는 것에 대해서는 엄격한 통제가 필요로 한다”라고 썼다.


2. 과학과 기독교의 관계에 대한 전망

과학과 기독교 사이의 관계에 관한 이 질문을 가능한 한 광범위하고 합리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자. 과학과 다른 지적 추구 사이의 관계는 항상 쉬웠던 것만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과학과 기독교 사이에 극심한 다툼이 있어왔다고 느끼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전체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수잔 갈라거(Susan Gallagher)와 로저 루딘(Roger Lundeen)는 최근의 문학 교과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최근의 역사에서 문학은 과학을 반대하는 입장에 서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문학에 대한 현대적인 관점을 이해하려면 문학에서 과학이 지배하는 정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몇 세기 동안 과학자들은 서양 문화에서 진리에 대한 기준을 세워 왔다. 그리고 사실들을 조직화하고, 분석하고, 다루는 과학자들의 능력은 부정할 수 없어서, 현대 사회에서 전례를 볼 수 없는 중요성이 과학자들에게 부여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모든 사람이 좋아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위대한 낭만파 시인인 존 키이츠(John Keats)는 아이작 뉴턴의 사실(reality)에 대한 관점을 좋아하지 않았다. 키이츠는 신화와 시적 환상이 사라진 세계는 황무지와 같고 배타적인(누구라도 방문하고 싶지 않은) 장소가 될 것이라고 염려하였다. “라미아(Lamia)”라는 시에서, 그는 이러한 파괴적인 힘을 논의하고 있다. 그 시에서 그는 “과학(science)”을 “철학(philosophy)”으로 부르고 있다. 그러므로 아래의 시에서 시인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하게 하기 위해 나는 철학이라는 단어를 과학으로 바꾸었다.

“모든 매력은 날아가 버리지 않는가
과학이 잠시 손댈 때마다

하늘에는 한 때 경이로운 무지개가 있었다.
우리는 무지개가 내는 소리와 그 구조를 알게 되었다.
이제 무지개는 일상 속에서 흔한 물건들의 빛 바랜 목록이 되었다.

과학은 천사의 날개를 잘라버리고
법칙과 선들로 모든 신비를 정복해 버렸다.
유령이 떠도는 대기와 난쟁이의 마음을 비워버렸고
무지개의 올을 풀어버렸다.“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과학과 다른 모든 지적 활동 사이에는 논쟁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학과 기독교 사이에 약간의 논쟁(갈등)이 있다고 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


3. 과학은 신의 부재를 증명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이 신의 부재를 증명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점이다. 루이스(C. S. Lewis)는 ‘기쁨으로 놀라며(Surprised by Joy)’ 라는 자서전적 글에서 이 선언을 믿었었다고 말한다. 그는 어린 시절 무신론자였다고 말하며, 그렇게 된 것은 과학 때문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그가 쓴 글을 인용해 보자.

“나의 무신론(atheism)은 과학과 과학이 발견한 것들을 믿음으로 근거해서 형성되었다는 것을 당신은 이해해야한다. 과학자가 되지는 않았지만, 나는 사실 과학적 권위들에 대해서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하면 누군가가 신의 부재를 과학이 증명했다고 그에게 말했으며, 그는 과학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믿었다는 것이다.

좀 더 균형잡힌 견해는 과학에서 나의 우상인 사람들 중 한 사람인 어윈 슈뢰딩거(Erwin Schrodinger)에게서 볼 수 있다. 그는 파동역학(wave mechanics)의 창시자이며,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식인 슈뢰딩거 방정식(Schrodinger's equation)을 만든 사람이다. 그는 말한다.

“나는 현실 세계에 대한 과학적 그림이 결점 투성이라는 사실에 무척 놀라게 되었다. 과학은 사실적인 정보들과 우리의 경험을 놀랄만큼 일관성 있는 질서 안으로 이끌어준다. 그러나 모든 것들에 대해서 혐오스러울만큼 침묵을 지키고 있으며, 진실로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것과 중요한 것들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는 것이 없다. 과학은 빨갛거나 파란 것, 쓰거나 단 것, 신체적 고통이나 즐거움 등에 대해서 말해주지 않으며, 아름답거나 추한 것, 선과 악, 하나님과 영원 등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과학은 가끔 이런 영역에 대해서 답을 가지고 있는 척 하기도 하지만, 그 답들은 너무도 어리석어서 우리는 그 답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좋은 이야기들을 만들어 낸다. 또한 과학자들은 종교에 대해서 흥미있는 이야기들을 하기도 한다. 아래의 글은 ‘화학(Chemistry)’이라는 잡지에서 인용하였는데, 이 잡지는 영국의 화학계통 전문인들에게 ‘타임(Time)’ 지와 같은 위치를 차지하는 잡지이다. 과학 정책에 대한 새로운 책을 이야기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였다.

'하나님께서 정부에 하늘과 땅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 과제를 신청한다면, 다음과 같은 이유로 거절당할 것이다

.그의 기획은 너무 야심차다.
.그의 이전 연구에 대한 기록이 없다.
.지금까지 그의 실적은 책 한 권뿐이며, 심사과정이 있는 학술지에 논문이 실린 적이 없다.
.그는 가장 강한 경쟁자와 공동연구하는 것을 거절한다.
.하늘과 땅에 대한 그의 기획은 전혀 구체적이지 못하다.“


4. 우주의 지존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대신한 대안들

레프 란다우 (Lev Landau)

나는 두 명의 무신론자를 소개하고 싶다. 금세기에 소련에서 가장 명석한 레프 란다우가 첫 번째 사람이다. 그는 동료인 리프쉐츠(Lifchets)와 함께 유명한 책을 많이 썼다. 나는 사실 내가 MIT에서 학생으로 공부할 때, 이 중에 몇 권을 공부했다. 이것은 그의 친한 친구이자 전기 작가인 콜로트니코프(Kolotnikov)에게서 들은 란다우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것은 란다우의 최후에 관한 이야기로 ‘오늘날의 물리학(Physics Today)’에서 나타나있다. 콜로트니코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란다우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가 수술 받은 직후인 1968년이었다. 그의 건강은 많이 상한 상태였다. 나와 리프쉐츠는 병원으로 불려갔다. 우리는 실질적으로 그가 회생할 가망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란다우는 그의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누워있었다. 그가 나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머리를 돌리더니 말했다. “콜라트, 나를 구해주게” 그 말이 내가 란다우에게서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그는 그날 밤 죽었다.“


찬드라세카르 (Chandrasekar)

찬드라세카르는 유명한 천체물리학자이다. 그는 1983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는 오랫동안 시카고 대학의 교수였다. 그의 전기 뒷부분에는 그가 인터뷰한 내용이 나와있다. 찬드라세카르는 말했다.

“사실 나는 나 자신을 무신론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는 실망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희망했던 만족스럽고 평화로운 삶은 목표만을 추구한 결과로 아직도 대부분이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전기 작가는 깜짝 놀라서 물었다.

“뭐라고요?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과학연구의 한 길에 몰두해서 위대한 성공과 함께 자연과 자연의 조화로움을 보다 깊이 이해하게 된 후에도 불만족스럽다고 느끼신다는 뜻입니까?”

찬드라세카르는 진지하게 계속 말했다.

“나는 정말로 만족스러운 느낌이 없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이룬 것은 사소한 일로만 보입니다.”

전기 작가는 누구나 그런 느낌을 어느 정도는 가지지 않겠느냐고 얘기하면서 대화의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했다. 그러나 찬드라세카르는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런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다른 사람이 경험한 사실이 한 사람이 경험하고 있는 사실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그것 때문에 덜 개인적인 것이 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찬드라세카르의 마지막 말은 다음과 같다.

“나 개인의 경우에 진실은 내가 어릴 때 희망했던 조화로운 느낌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지난 50년간 열심히 과학자로서의 길을 걸어 왔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에 바친 시간은 너무도 적었습니다.”


5. 과학자이면서 동시에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 가능한가?

그래서 내가 검토해 보고 싶은 질문은 버클리에서 내가 가르치는 일학년 화학수업 후에 한 청년이 내게 했던 질문이었다. “과학자이면서 동시에 기독교인일 수 있나요?” 분명히 그 학생과 그의 고등학교 선생님은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스노우 (C. P. Snow)

특별히 종교적인 성향이 없는 두 사람을 인용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스노우(C. P. Snow)는 ‘두 문화(Two cultures)’라는 책으로 유명해진 사람이다. 그는 옥스퍼드에서 물리화학을 연구했다. 그는 과학자로서 길을 가는 중에 글쓰는 재능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 소설들은 영국의 대학 생활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특별히 “거장들(Masters)'이라는 제목의 글을 추천하고 싶다. 스노우는 글을 쓰면서 상당히 부유해졌고, 문학과 과학의 중간 자리에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출판 당시에 매우 유명했던 두 문화에 대한 책을 썼는데, 여기서 두 문화란 ‘과학(sciences)과 인간성(humanity)'이다. 그의 책에 의하면, 종교를 가진 사람이 상당히 많고 젊은 사람 중에서 더 증가하고 있지만, 과학자들과 다른 분야의 지식인들을 통계적으로 비교해 볼 때, 종교적인 용어로 불신자의 비율은 과학자 중에서 약간 더 높았다는 것이다. 그러면 과학자이면서 동시에 기독교인인 것이 가능한가? 기독교인이 확실히 아닌 스노우는 그렇다고 답하고 있다.


리차드 파인만 (Richard Feynman)

리챠드 파인만은 1965년에 노벨상을 받은 물리학자이며, 매우 특별한 사람이다. 그는 노벨상을 타기 9년 전 쯤에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많은 과학자들은 과학과 하나님-계시의 하나님-을 동시에 믿고 있으며 전혀 모순이 없이 그렇게 한다.”

잘 알려진 “기원(Origins)”이라는 책을 쓴 알란 라이트만(Allen Lichtman)은 이 면에 대해서 잘 요약하고 있다. 그는 MIT 교수이며 하버드 대학 출판부를 통해서 그의 책을 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과학적 문헌에서 하나님에 대한 언급은 1800년대 중반 또는 후반까지 계속되었다. 이후에 종교에 관해 언급이 없는 것은 과학자들이 내부에 가지고 있는 생각의 변화라기보다는 과학자 사회의 사회적이고 전문분야의 관례의 변화인 것으로 보인다. 대중적인 신화들과는 대조되게, 과학자들은 일반 대중과 비슷한 정도의 종교적인 태도를 보인다.”

위의 이야기를 단순한 개인적인 느낌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미국인들은 통계를 좋아한다. 시그마 자이(Sigma Zi)라는 전문 여론 조사기관이 조사한 결과를 보자. 3300명이 응답을 했으므로 통계적 불확실성은 적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과학자들도 일반인들의 생각과 같다”가 글의 제목이었다. 이 조사의 결과에 의하면 조사에 참여한 사람 중 절반이 정규적으로 종교적 활동을 한다고 대답했다. 박사 학위를 가진 과학자들 중 43 %가 일요일에 교회에 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일반 대중 중 44%가 교회에 간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종교적인 경향이 있는지의 여부는 그 사람이 과학 분야에서 높은 학위를 가지고 있는 것과 상관이 없어 보인다.


마이클 폴라니 (Machael Polanyi)

맨체스터 대학의 화학 교수였다가 철학 교수가 된 마이클 폴라니가 한 이야기와 함께 좀 더 깊이 들어가보자. 그의 아들인 존 폴라니(John Polyani)는 1986년에 노벨상을 탔다. 나는 아들 존 폴라니의 위대한 업적이 잊혀진 후에도 아버지의 업적이 기억되리라고 확신한다.

마이클 폴라니는 물리화학 교수였다. 그의 경력 중간에 그는 철학으로 진로를 바꾸었다. 그는 철학에서도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그의 책은 읽기가 쉽지 않다. 그의 책 중 가장 영향력을 많이 미친 것은 “개인적 지식(Personal Knowledge)”이다. 그는 유대인의 혈통이었으며, 헝가리에서 태어났다. 화학에서 철학으로 바꿀 무렵, 그는 로마 카톨릭에 입교하였다. 다음은 그가 말한 내용이다.

“나는 과학의 신념 아래에 숨어 있는 가정들을 다시 살펴 볼 작정인데,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그 범위가 넓다는 것을 보여 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것들은 사람의 영적인 기초 전체과 더불어 확장되는 것으로 보이며, 그 사람의 사회적 존재 자체의 뿌리까지 뻗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하여 나는 과학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더 큰 범위의 신념의 한 조각으로 인정되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 책을 읽는다면 여러분도 내가 내린 결론과 동일한 결론을 내리게 될 것이다. 폴라니는 관찰자가 언제나 실험실의 일부분이며 언제나 결정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한다. 실험자는 결코 중립이 아니다. 모든 과학자들은 자긴 또는 자신의 연구에 전제(presuppositions) 조건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과학자는 과학적인 방법이 믿을만하다는 것에 대해서 절대 의문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러한 믿음은 역사적으로 볼 때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질서있는 우주를 창조하셨다는 기독교적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나는 이 면에서 몇가지 증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6. 과학은 기독교 사회에서 발전하였다.

나는 언제나 반응을 불러 일으키는 격렬한 선언으로 시작하기를 좋아한다. 이것은 영국 과학자 로버트 클락(Robert Clark)의 말이다. 이 말은 여러분을 생각하게 만들 것이다. 그는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과학적 발전이 기독교 문화에서만 발생하였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옛 사람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우수한 두뇌를 가지고 있었다. 바빌론, 이집트, 그리이스, 인도, 로마 페르시아 중국 같은 모든 문명에서 과학은 어느 정도까지 발전했으나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정지해 버렸다. 기독교가 없이도 그러한 문명이 발전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는 쉽다. 그러나 사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전혀 이상한 사실이 아니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과학은 근본적으로 뭔가 잘못된 것이 있다. 그리스에서 이러한 믿음은 신에게서 불을 훔쳐서 인간에게 준 대가로 신을 노하게 해서 벌을 받는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에서 볼 수 있다.”

나는 그가 “과학 발전을 지연시켰다”라고 말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부분에서 그는 좀 지나쳤다. 그러나 이 글이 사람들을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은 확실하다.


프란시스 베이컨 (Francis Bacon)

클락과 폴라니가 말한 것을 좀더 생각해 보자. 즉 과학은 기독교적 환경에서 발전했다는 선언을 좀 더 탐구해 보자. 나는 프란시스 베이컨이 과학적인 방법을 발견했다고 배웠다. 높은 수준의 비판가들은 이제 베이컨이 그 방법을 누구에게선가 훔쳤으며 단순히 널리 알렸을 뿐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 쟁점은 과학사 연구가에게 맡기기로 하겠다.

프란시스 베이컨이 한 말 중 한 가지는 '두 개의 책 선언'이라고 불린다. 그것은 매우 유명하다. 그는 말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책이나, 하나님의 작품인 자연을 너무 많이 공부했거나 너무 깊게 조사했다고 생각하거나 주장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

그는 성경책과 자연세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두 책에 대해서 가능한 한 많이 배울 것을 격려하고 있다. 과학적 방법의 시작과 이러한 선언은 정말 서로 딱 들어 맞는다.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

요하네스 케플러는 행성의 궤도가 타원형이라고 제안한 사람이다. 그는 행성의 운동에 관한 법칙을 발견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신실한 루터교회 신자였다. 왜 사람이 과학을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의 과학적 연구를 통해서 성스러운 창조자가 그의 일(작품)에서 느꼈던 기쁨를 조금이라도 맛보고 싶다고 했다. 다른 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케플러는 그의 첫 문장만 본다면 Diest(하나님이 창조하시기는 했으나 더 이상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나는 예수님을 섬기는 것만을 믿는다. 그 안에서 모든 피난처와 위안을 얻는다”


블레이즈 파스칼 (Blaise Pascal)

파스칼은 위대한 과학자이다. 그는 수학에서 확률과 경우의 수를 분석하는 이론의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다. 그는 유체와 단단한 물체 사이의 핵심적인 연결점을 제공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과학자로서 유일하게 기독교적인 생각에 크게 공헌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의 생각들 중 많은 부분이 팡세(The Pensees)에 실려 있다. (내가 MIT를 다닐 때에 우리같은 멍청이들을 문화인으로 만들기 위해서 몇 개의 인문계 과목을 듣는 것이 필수였는데, 몇 년 뒤에 별 효과가 없다고 인정되어서 인문계 필수과목이 사라졌다.)

파스칼의 신학은 구원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람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는 말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내적인 사악함과 하나님의 끝없는 자비하심을 알도록 하셨다. 이 사악함을 성경은 죄라고 부른다. 그들의 가장 내부의 영혼에 매여있는 자신을 풀어버리고 겸손과 기쁨으로 채우라. 영혼을 하나님 그분 외에 어떤 것도 그 끝에 두지 말라.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것의 끝이시고, 또 모든 것이 향하는 중심이다.”

파스칼은 또한 이런 말도 했다.

“사람의 중심에는 하나님 형상의 빈 공간이 있는데, 오로지 예수님만 그 공간을 채울 수 있다.” 


로버트 보일 (Robert Boyle)

로버트 보일은 아마도 첫 화학자일 것이다. 그는 원자의 개념을 발전시켰다. 대학 일학년 화학 수업을 듣는 학생들 중 많은 수가 보일의 법칙을 알고 있다. 과거에 내 수업을 들은 학생을 만났을 때 무엇을 기억하는지 물어볼 때가 있다. 그럴 때 보일의 법칙: PV = nRT 를 이야기하는 학생도 이따금 있다. 그러면 나는 내 수업이 성공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공식은 이상기체 방정식으로 보일의 법칙이 포함되어 있다.

보일은 바쁜 사람이었다. 그는 많은 책을 썼다. 그 중 하나는 “그의 작품 속에 드러나는 하나님의 지혜(The Wisdom of God Manifested in the Works of Creation)”라는 책이다. 그는 무관심 주의와 무신론에 대항하여 기독교를 방어하기 위해 매년 강연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보일은 리차드 벅스터(Richard Baxter)와 친한 친구 사이였는데, 그는 가장 위대한 청교도 신학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뉴 잉글랜드에서 예수님의 복음 전파를 위한 회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아이작 뉴턴 (Isaac Newton)

나는 그 결과에 동의하지 않지만 최근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아이작 뉴턴 경이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로서 뽑혔다. 뉴턴은 수학자이고 물리학자이며, 라이프니츠(Liebnitz)와 함께 미적분을 발견한 사람이고, 또한 고전 역학을 성립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세 명의 위대한 이론 물리학자 중 첫째 사람이다. 그는 다양한 여러 가지 것에 대해서 글을 남겼다. 그는 화학에도 손을 댔지만 유명해지기 전이었다. 그가 신학에 대해서 쓴 책이 과학에 대해서 쓴 책보다 많다. 그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도 책을 한 권 썼는데, 책의 제목은 “다니엘의 예언에 대한 관찰과 요한계시록”이다. 이 책에서 그는 말한다.

“태양과 행성과 혜성들의 가장 아름다운 이 운행체계는 지적이고 능력이 있는 존재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뉴턴이 Deitst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하나님의 계시(현 세상에 대한 관심과 개입)는 인정하지 않는 자연 종교 체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구절은 그러한 짐작이 틀린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불경스러운 역사보다는 성경에서 더 많은 진실함을 찾을 수 있다.”

뉴턴은 성서문학자였다고 결론을 내리게 된다. 성경을 근거로 믿음의 글 한편을 쓰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그는 말했다.

“사도들에 의해 전해진 그런 분명한 말로 표현되어야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유혹에 의해 쉽게 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나간 모든 잘못된 길에는 유혹이 있었다. 진실한 믿음은 성경의 본문 속에 있다.”

믿지 않는 역사가인 조지 트레벨리안(George Trevellian)은 위의 인물들이 기여한 바를 이렇게 요약하였다.

“보일과 뉴턴 그리고 왕립학회의 초기 회원들은 종교적인 사람들이었으며, 토마스 홉스의 의심쩍은 선언들에 반대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 당시의 일반 사람들에게 우주에 질서가 있으며, 과학적인 탐구의 방법을 사용하여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익숙해지는데 기여하였다. 이러한 방법들이 성경의 역사나 기적적인 종교와 일치하지 않는 어떤 결론으로도 이끌어 가지 않으리라고 믿었다. 뉴턴은 이 믿음 속에서 살았고 또 죽었다.”


마이클 페러데이(Michael Faraday)

마이클 페러데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학자이며, 또한 아마도 역사상 가장 훌륭한 실험과학자였을 것이다. 마이클 페러데이 탄생 200주년 기념행사가 영국 왕립 연구소에서 열렸다. 내 친구인 존 토마스 경(Sir John Thomas)이 쓴 흥미 있는 글이 발표되었다. 이 글에 의하면 마이클 페러데이가 노벨상 수상이 있는 시대에 살았더라면, 적어도 8개의 노벨상을 탔을 것이라고 한다. 패러데이는 벤젠과 전자기파 복사현상을 발견했고, 발전기를 발명했으며, 고전적인 장 이론(classical field theory)의 틀을 짜 놓았다.

그의 생의 마지막을 란다우의 그것과 비교해 보자. 패러데이가 죽음이 가까웠다. 친구이면서 복을 빌어 주는 사람이 와서 물었다. “마이클 경, 이제 당신은 무슨 추론을 가지고 있습니까?” 이 친구는 약간 분위기를 띄우려는 참이었다. 패러데이는 평생동안 뭔가 추론하고, 실험실로 달려가 실험으로 확인하는 일을 해왔다.

패러데이는 진지하게 받아들인 후 대답했다.

“추론이요? 나는 전혀 그런 것 없습니다. 나는 확신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죽어가면서 추론에 의지하고 있지않다는 것에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왜냐햐면 나는 내가 믿고 있는 분이 누구이신지, 그리고 그로부터 받은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지켜주셨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임스 클럭 맥스웰 (James Clerk Maxwell)

세 명의 위대한 이론물리학자 중 두 번째가 맥스웰이다. 맥스웰의 경력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기도 한다.

“맥스웰은 이론에서 혁명적인 진보에 필요한 은사를 모두 가지고 있었다. 물질 세계의 실제 모습에 대해 확실히 이해하고 있었고, 수학적 능력이 뛰어났으며, 선입견에서 완전히 자유로웠고, 고도의 질서에 대한 창조적인 상상력이 있었다. 그는 또한 이러한 능력에 맞는 과제를 발견하는데도 뛰어났다. 패러데이의 장에 대한 수학 공식이 그 예이다. 맥스웰의 성공적인 과제의 완성은(맥스웰 방정식) 인간 지성의 위대한 성취의 한 가지로서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나는 위 글 중 한 문장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 만일 맥스웰이 선입견에서 진정 완전히 자유로왔다면, 그는 과학적인 업적을 전혀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문장은 과학자가 아닌 사람에 의해서 쓰여졌다. 그러나 이 문장은 기본적으로 좋다. 맥스웰이 말했다.

“그의 의로심 앞에 무릎 꿇고 기쁘게 그의 선물(예수님 안에서 영생)을 받는 이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시기로 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지어졌고, 그들이 예수님의 형상과 닮았다는 것을 보게 된다면, 더 이상의 저주가 없을 것입니다.”

맥스웰과 찰스 다윈은 현대적인 사람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맥스웰이 다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지 궁금해 한다. 사실 그는 2월의 어느 모임에서 과학과 성경 사이의 새로운 관계의 형성에 대해서 토의하기 위해서 이탈리아의 리비에라에 갈 예정이었다. 만일 여러분이 영국 케임브리지에 살아본 적이 있다면, 겨울에 매우 암울한 날씨라는 것을 알 것이다. 내가 그곳의 교수였다면 이탈리아의 리비에라에 갈 기회를 활용했을 것이다. 맥스웰은 그 초청을 거절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과학적 가정들의 변화는 성경의 해석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된다. 그러므로 만일 어떤 해석이 이러한 가정을 근거로 하고 있다면, 그 가정이 땅에 묻히거나 잊혀져야하는 시기 훨씬 뒤에도 그 해석은 남아 있게 될지도 모른다.”

이것은 진리이다. 이러한 예는 정상상태 이론(steady–state theory)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이 이론은 프레드 호일(Fred Hoyle)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것은 기원에 대한 두 이론 중 하나이다. 정상상태 이론의 가정은 기본적으로 오늘날 우리들이 보는 것이 그전에도 항상 그랬다는 것이다. 아놀드 팬시아(Arnold Pansias)와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이 초단파의 존재를 관찰한 1965년 이후 정상 상태 이론을 믿는 사람의 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1960년대만 해도 창세기가 정상 상태 이론과 어떻게 일치될 수 있는지를 설명해보려고 노력했던 주석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창세기가 무에서부터 시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정상상태 이론과 창세기가 서로 들어 맞게 하려면 매우 특이한 해석을 필요하게 된다.

정상상태 이론은 20년 정도면 사라지고 잊혀질 것이다. 그러한 주석들은 아직도 도서관에서 찾아볼 수는 있겠지만, 아무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다음에 계속 됩니다)


URL : http://www.irr.org/schaefer1.html
번역자 : 김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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