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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 우주, 그리고 하나님
(Einstein, the universe, and God)
Russell Grigg

  타임(Time) 지가 '세기의 인물(Person of the Century)'[1]로 선정한바 있는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2] 여러 가지 면에서 유명하다 (그의 텁수룩한 모습 이외에). 그의 특수상대성 이론 및 일반상대성 이론과 질량 에너지 등가 공식인 E = mc2 는 시간과 공간, 빛과 중력, 질량과 에너지에 관한 우리의 견해를 영원히 바꾸었다. 그가 ”하나님은 우주를 우연에 맡겨두지 않으셨다” 라고 언급한 것은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이 언급한 하나님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가 말한 하나님은 성경의 하나님과 어느 정도라도 유사한가?


어린 시절의 영향

독일계 유대인 부모에게서 1879년에 태어났지만, 알버트는 유대교 신앙으로 길러지지는 않았다. 그는 뮌헨의 가톨릭 초등학교에 다녔고, 그 후에는 근처의 일반 고등학교에 다녔다. 약간 느리고 꿈 많은 학생이었던 알버트는 비과학적인 주제에는 흥미가 없었고[3], 19세기의 엄격한 군대식 독일 교육시스템에서 거의 배운 것이 없었다. 그는 규율을 혐오하며 성장했고, 일생동안 모든 권위들을 의심했다. 11세 때 그는 강한 종교적 교육과정을 거치며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작곡하여 학교 가는 길에 부르곤 하였다.[4]

12살 때부터 알버트는 유명한 과학책들을 읽었고, 자습으로 대수, 기하, 미적분을 공부하고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의 반신앙적 책인 ‘순수이성 비판(Critique of Pure Reason)’을 공부했다. 이 시절에 관하여 그는 나중에 술회하기를,

”유명한 과학책을 읽으면서 나는 곧 성경 이야기의 많은 것들이 사실일 리가 없다는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 이 결과로 나는 국가가 어린이들은 의도적으로 거짓말로 속이고 있다는 생각과 함께, 적극적으로 자유분방함에 빠지게 되었다. 이것은 참으로 충격적이었다.... 이렇게 소망과 희망과 소박한 느낌이 지배하던 어린 시절의 종교적 천국은 잃어버리게 되었고, 나는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질 수 있었다” 라고 했다.[4]

알버트는 반권위주의 생각과 아마도 17세에 징집을 피하고 싶은 욕망으로 그는 독일 시민권을 포기하게 되었다. 1896년 1월 28일에 그는 16살의 무국적자가 되었다. 그는 1900년 2월 21일에 스위스 시민권을 얻었다.


고등교육, 아버지가 되고 결혼하다

1895년부터 1900년까지 알버트는 그 당시 유럽에서 가장 좋은 기술학교인 스위스에 있는 츄리히 공대(Zurich Polytechnic)에 다녔다.[5] 그는 거의 강의실에 출석하지 않았고,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서 훌륭한 물리실험실에서 그 자신의 실험을 수행하거나, 당시의 과학계 선구자인 헤르츠(Hertz), 헬름홀츠(Helmholtz) 등과 다른 과학자들이 쓴 물리학의 첨단 연구결과들을 읽으며 보냈다. 그는 그의 친구 프리드리히 아들러(Friedrich Adler, 1918년에 오스트리아의 총리를 암살하여 유명해졌음)에게서 혁명적 사회주의(revolutionary socialism)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는 교실에서 헝가리 출신의 홍일점 학생이었던 밀레바 마릭(Mileva Maric)에게 반하였다. 그녀는 평범했지만 다리를 절었고, 경박하지 않았으며, 알버트와 지적인 대화를 할 정도로 물리학을 알고 있었다. 1901년에 그는 그녀와의 사이에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그는 1903년에 베른에 있은 스위스 특허청(Swiss Patent Office)에서 특허심사관의 자리를 얻은 후 밀레바와 결혼했다.[6]

1905년에 저명한 베를린 저널 Annalen der Physik 는 알버트가 쓴 4편의 논문을 실었는데, 이것들은 그해 3월 17일에서 6월 30일 사이에 그가 여가시간에 쓴 것이었다![7] 첫 번째 논문은 어떻게 빛이 파동(wave)의 성질과 입자(particles)의 성질을 모두 가지는지를 설명했는데, 그는 이 논문으로 16년 후에 노벨상을 받았다. 두 번째 논문은 원자의 크기(the size of atoms)에 관한 것으로, 그는 이 논문으로 취리히 대학교(Zurich University)에서 박사 학위를 받게 되었다.[8] 세 번째는 브라운 운동(Brownian motion)에 관한 것이었으며, 현대 통계역학(statistical mechanics)의 기초가 되었고, 네 번째는 그의 특수상대성이론(Special Theory of Relativity)의 기반이 되었다. 이 네 번째는 빛의 속도로 달리는 우주선 안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고, 무엇을 볼 수 없을지에 대하여 ‘생각만의 실험(thought experiments)’을 한 결과이다.

1916년에 알버트는 '일반상대성 이론의 기초(The Foundation of the General Theory of Relativity)'를 발표했다. 이것은 중력(gravity)과 가속(acceleration)이 동일한 효과를 나타내며, 중력이 공간과 시간을 휘게(뒤틀리게) 한다는 또 하나의 ‘생각만의 실험’에 의한 것이었다. 과학자들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당황했다. 이 이론은 그 후 1919년 5월 29일에 서인도 제도에서 일식을 관측하는 동안 확인되었다.[9] 세계의 언론은 알버트를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천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알버트와 엘사

알버트와 밀레바의 결혼생활은 점차 금이 가기 시작했고, 1914년에 그들은 별거하였다. 한 때 알버트가 병들었을 때 간호를 해주었던 이혼녀인 그의 사촌 엘사 루웬탈(Elsa Löwenthal)과 간통을 했다는 이유로 1918년에는 이혼절차를 밟기 시작했다.[10] 취리히 법정은 1919년 2월 14일에 이혼을 허락하면서, 특히 알버트가 노벨상을 받게 되는 경우에는[11] 밀레바에게 위자료를 지불하도록 판결했다.[12]

알버트는 1919년 6월 2일에 엘사와 결혼했으나, 또 다시 결혼생활에 충실하지 않았다.[13] 훗날에 그는 사망한 어느 친구가 긴 세월을 한 여자와 평화롭고도 조화로운 일생을 산 것을 칭찬하면서, 자기는 부끄럽게도 두 번이나 그 일에 실패했다고 썼다.[14]  


노벨상

1922년에 알버트는 그의 이론물리학에 관한 연구결과와 광전법칙(photoelectric law)으로 1921년도 노벨상을 받게 되었다는 공식 뉴스를 접했다. 그 당시 아직도 매우 논쟁의 여지가 많았던 상대성이론은 이 상에서 특별히 제외되었다.[15]

전 세계의 사람들이 그에게 서신을 보내기 시작했는데, 회신의 어떤 부분들은 그의 심술궂은 유머 감각을 보이고 있다. 베를린에 있을 때 그는 뉴욕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는데, 그 내용은 '어떤 사람이 사랑에 빠질 때에 그 사람은 물구나무를 서고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가요, 아니면 다른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요?”라는 것이었다. 알버트는 회신하기를 ”사랑에 빠지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바보 같은 짓이 결코 아니고, 중력 때문에 그러는 것도 아닙니다” 라고 하였다.[16]

또 한 번은, 누군가가 그에게 성공의 공식을 물어왔다. 그는 대답하기를 ”A를 성공이라고 치면 그 공식은 A = X + Y + Z 가 될 터인데, 여기서 X는 일이고, Y는 노는 것이며, 그럼 Z는 뭐지? 그것은 입을 닥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17]

1933년에 히틀러(Adolf Hitler)가 권력을 잡고 나서, 나치당은 유대인들이 과학을 연구하는 것에 반대하는 운동에 착수했고, 알버트의 암살에 20,000 마르크의 상금을 내걸었다.[18] 그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뉴저지 주의 프린스턴(Princeton)에 정착했고, 1940년 10월 1일에 이 대과학자는 미국 시민권을 얻게 되었다.


아인슈타인과 원자폭탄

대부분의 생애를 통하여 그는 유순한 평화주의자였다. 그러나 독일 과학자들이 우라늄 원자를 쪼개는 연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난 1939년 8월 2일에 그는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어 말하기를, 이 새로운 현상을 이용하여 폭탄을 만들 수 있으므로 미국이 빨리 원자탄 연구를 시작할 것을 촉구했다.[19] 

세계 최초의 원자폭탄을 만든 맨해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가 2 년 후에 시작되었으나, 알버트는 안보상의 위험인물로 간주되어 이 연구에서 제외되었다.[20] 원자탄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폭발하고 난 후에, 그는 그 편지를 자기의 가장 큰 실수 중의 하나였다고 생각했다.

1952년 11월에 알버트는 이스라엘의 벤구리온(David Ben-Gurion) 수상으로부터 이스라엘의 대통령이 되기를 요청받았으나 거절했다.[12] 

그는 일생의 마지막 30년 동안의 대부분을 전자기력(예를 들어 빛)과 중력간의 관계를 수학적으로 확립하려고 노력했지만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의 목표는 하나의 공식으로 전자부터 항성까지 우주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소위 통일장 이론(Unified Field Theory)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그는 1955년 4월 18일에 잠자던 중 복부 동맥파열로 숨을 거두었다.


아인슈타인과 '하나님'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크리스천이 아니었다. 그는 성경의 하나님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서 믿는 것에 대하여 아무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종교와 하나님에 관한 그의 시각은 진화론과 범신론이었다

그가 쓴 글에 의하면

”나는 자기가 지은 피조물을 상주기도 하고, 벌하기도 하는 신을, 또는 의도적으로 우리가 현세에서 당하는 이러한 경험을 하게 하는 신을 상상할 수가 없다. 나는 육체적 죽음 후에도 살아남는 개인을 상상하기도 싫고 원하지도 않는다. 두려움이나 어리석은 이기심으로 가득한, 그리고 연약한 사람들이나 그런 생각을 하라.”[22]

”보호받고 사랑과 도움을 받기 원하는 사람들은 사회적인 또는 도덕적인 신의 개념을 만들어내었다… 보편적인 원인과 결과의 법칙을 확실히 아는 사람이라면, 세상사를 간섭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한 순간도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 상주기도 하고 벌하기도 하는 신은 상상할 수가 없다....”[23] 

”인류의 정신적 계발의 초기단계에서 인간의 공상이 인간과 닮은 신들을 생각해 내었다.... 설파되는 종교에서의 하나님은 그 오래된 개념의 신들을 승화한 것이다. 윤리적인 선을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종교 지도자들은 개인적인 신의 교리 대신 내세울만한 상징이 있어야만 했다.”[24]

아인슈타인은 과학적인 진리에 대하여 그에게 문의한 어느 일본 학자에게 회신하기를,

”모든 고도의 과학적 업적의 바탕에는 이성적 세계관이건 지적 세계관이건 종교적 측면의 확신이 깔려 있음이 틀림없다. 세상의 경험에서 스스로를 드러내는 초월자의 존재에 대하여 마음 속 깊이 느끼는 이 확신이 내가 이해하는 신이다. 흔한 표현으로 이것은 범신주의(pantheistic) 라고도(Spinoza)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썼다.[25]

따라서 아인슈타인의 ‘하나님’ 즉, ”하나님은 우주를 우연에 맡겨두지 않는다” 와 ”하나님은 이해할 수 없지만 악의적이진 않다”[26] 고 했을 때의 하나님은 우주의 합리성을 지칭하는 뜻이었다. 그는 또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우주에 나타나 있는 초월적 존재에 대한 감성적인 확신이 내가 이해하는 하나님이다”[27] 라고 말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그는 결단코 성경에서 말하는 창조주, 통치자, 심판자, 구세주인 하나님을 의미하고 있지 않다

1939년 5월 19일에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연설하면서 아인슈타인은 말했다.

”종교계에서 성경 기록이 절대적인 진실임을 주장하면 분쟁이 일어난다.”[25, 28]

기독교 호교주의자인 휴 로스(Hugh Ross, 점진론적 창조론자) 박사는 주장하기를, 비록 성경의 하나님을 믿지는 않았지만, ”아인슈타인은 동료 과학자들과의 입장과는 달리 창조주의 존재에 대하여는 확고한 믿음을 가졌다.”[29]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용어들의 일반적인 의미를 살펴볼 때, 아인슈타인은 그러한 믿음을 갖지 않았다. (별빛과 시간에 관한 아래의 글 참조). 따라서,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설교나 글에서 부적절하게 아인슈타인을 인용하게 된다면, 그들이 의도하고자 하는 바를 크게 훼손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노트 : 아인슈타인은 그의 과학논문과 대부분의 그의 서신을 독일어로 썼으므로, 위에 사용한 인용들은 번역자에 따라 약간 다를 수 있다.


References and notes

1. Time, pp. 42-67, December 31, 1999.
2. Albert was born in Ulm, Germany, on March 14, 1879. The family moved to Munich in 1880.
3. His interest in science stems from age five. His father gave him a compass. 'Why does the needle always point one way?', Albert wanted to know. 'Magnetism.' 'How does an invisible force pass through space?' Albert lay awake that night pondering the mystery. His life-long interest in asking and solving scientific questions had been awakened.
4. Pais, A., Einstein Lived Here, Oxford Uni. Press, New York, NY, USA, pp. 114-15, 1994.
5. Eidgenossische Technische Hochschule or ETH (the Federal Institute of Technology).
6. This lasted from June 1902 to July 1909.
7. Translated titles: 1. On a Heuristic Viewpoint Concerning the Production and Transformation of Light. 2. A New Determination of the Size of Molecules. 3. On the Motion of Small Particles Suspended in a Stationary Liquid According to the Molecular Theory of Heat. 4. On the Electrodynamics of Moving Bodies.
8. He received the first of his many honorary doctorates in 1909.
9. According to Einstein's theory, light from distant stars should be deflected when it passed through the strong gravitational field of the sun. During the eclipse, the light from stars previously not visible because of the sun's brilliance appeared to be bent, i.e. the stars appeared to be in a different position from when their light did not pass close to the sun. The amount that the starlight was bent by the sun's gravity agreed with Einstein's predictions.
10. Ref. 4, p. 19 states that Albert 'admitted adultery' in a letter dated August 31, 1918.
11. Albert was nominated for the Nobel Prize for Physics every year from 1910 to 1921, except 1911 and 1915.
12. This he did in 1923. It was then worth about US$32,000. Mileva bought a house in Zurich and lived there for most of the rest of her life. She died in 1948.
13. Ref. 4, p. 20 states that one 'extramarital affair came to an end in 1924. Several others appear to have occurred in later years.' See also p. 38.
14. Ref. 4, p. 25.
15. Ref. 4, p. 63.
16. Ref. 4, p. 88.
17. Ref. 4, p. 152.
18. Ironically, this anti-Semitism may have kept the Nazis from developing an atomic bomb.
19. He signed another letter about the atomic bomb, intended for Roosevelt, on March 7, 1940.
20. Ref. 4, pp. 218-19.
21. Fölsing, A., Albert Einstein, Viking, New York, NY, USA, p. 734, 1997.
22. Ref. 4, p. 118.
23. Ideas and Opinions by Albert Einstein, Crown Publishers, New York, NY, USA, pp. 36-39, 1954.
24. Ref. 23, pp. 46, 48.
25. Ref. 23, pp. 261-62.
26. He was objecting to the random unpredictable element in quantum mechanics, where one cannot calculate what will happen, only what will probably happen.
27. Barnett, L., The Universe and Dr. Einstein, Victor Gallancz Ltd, London, UK, p. 95, 1953.
28. Albert overlooked Psalm 14:1.
29. The Creator and the Cosmos, Navpress, CO, USA, p. 49,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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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나타난 신성’에 관한 아인슈타인의 믿음

범신론자들은 모든 것들이 신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신은 모든 것을 달리 표현하는 것일 뿐이며, 아무런 실질적 의미가 없어 모든 것이 징크스라고 말하는 것처럼 무의미하다. 허치슨 백과사전(The Hutchinson Softback Encyclopedia) 1996년판에 소개된 것처럼, 아인슈타인은 명백히 스피노자(Spinoza)의 범신주의에 공감하고 있었다. 스피노자는 마음과 물질은 우리가 신, 또는 자연(Nature)이라고 부를 수 있는 무한한 것의 두 가지 형태이며, 선과 악은 상대적인 것이다 라고 말했다. 뉴에이지(New Age)와 동양 사상처럼, 이것은 일원론적(monistic) 믿음이며,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창조주, 즉 모든 피조물 이전에 존재하였고, 피조물과 독립적이며, 피조물 외부에 존재하는, 그런 창조주를 부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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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성과 도덕성

어떤 사람들은 오늘날의 도덕적 쇠퇴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때문이라고 잘못 알고 비난한다. 사실, 아인슈타인은 자연을 보는 관점에서 절대적인 공간과 시간을 절대적인 빛의 속도로 대체하였다. 그는 그의 이론을 불변이론이라고 부르기를 좋아했지만, ‘상대성(relativity)’ 이라는 용어가 고착되었다. 

도덕성의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인 진리로 여기는 것이다. 이것은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한 하나님의 규칙을 포함하고 있다. 이것이 허물어지고 있는 것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때문이 아니고, 진화론적 가르침 때문이다. 진화론은 하나님이라는 절대적 진리와 인간은 그 분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거부하게 하고, 자신의 삶을 자기 자신이 결정하도록 가르친다.

과학은 단지 우리에게 현상만을 설명할 뿐, 무엇이 옳은지를 말해주지 못한다. 예를 들면, 과학은 어떤 사람의 심장을 쏘면 그 사람이 죽는다는 것과, 어떤 성적 행동은 AIDS의 전파를 촉진한다는 것을 설명하지, 그러한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는 말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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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성과 먼 곳에서 오는 별빛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General Theory of Relativity, GR)은 중력 이론에 관하여 가장 실험적으로 잘 인정된 이론이다. 그것은 뉴턴의 법칙을 틀린 것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고, 더 큰 규모(우주적 규모)의 일부로 포함되게 하여, 어떤 상태에서는 더 정확하게 중력을 설명하고 있다.

일반상대성 이론에는 직관과 어긋나는 개념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데, 예를 들면 빛조차도 빠져나가지 못할 정도의 엄청난 질량이 집중된 영역인 블랙홀(black holes)이 그것이다. 또 다른 개념은 중력이 시간을 변화시키므로, 시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리학자인 러셀 험프리(Russell Humphreys) 박사가 제안한 대표적인 창조론적 모델은 일반상대성 원리를 사용하여, 젊은 우주에서 먼 곳의 별빛이 어떻게 지구에 도착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일반인들을 위한 험프리 박사의 책, ‘별빛과 시간(Starlight and Time)’에 (기술적 부록도 포함)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많은 점진론적 창조론자들이 험프리 박사의 논리를 강하게 공격해 왔지만, 그는 지금까지는 무리 없는 설명을 해 왔다. 이 책의 내용을 잘 아는 독자들은 논쟁의 내용이 실려 있는  Technical Journal 이나 질의응답 란의 'Countering the Critics' 을 참조하기 바란다.

 

*참조 : 아인슈타인 '무신론' 자필편지 경매 나왔다
: 독일어로 '성경은 원시전설들 집대성'
http://news.hankooki.com/lpage/people/201210/h2012100821013191560.htm
(2012. 10. 8. 한국일보)

 

출처 : Creation 23(1):50–53, December 2000
URL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23/i1/einstein.asp
번역자 : IT 사역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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