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창조론과 진화론의 의미

1. 창조론과 진화론의 의미

Q1 창조와 진화의 논쟁이 정말 중요합니까?

Q2 창조와 진화 이외의 다른 대안은 없습니까?

2. 창조론과 과학

 Q1 진화는 과학이고 창조는 신앙이 아닙니까?

 Q2  과학을 연구하는 과정은 완전히 객관적입니까?

 Q3 과학주의(scientism)란 무엇입니까?

3. 창조론과 기독교 

Q1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이야기를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아니면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Q2 창세기 1장 2절에 나오는 땅과 수면은 창조 이전인데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요?

Q3 일반인들은 어떻게 창조과학에 대해 생각하며, 삶 가운데 적용할 수 있습니까?

4. 창조론과 과학교육 

Q1 입학시험에서 진화론과 창조론 중 옳은 것을 골라야 하는 문제가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요?

Q2 창조론은 창세기의 창조기사에 근거해 있는데, 왜 그것이 과학교육에 포함되어야 하는가요?

Q3 창조론과 진화론을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같이 다루려는 노력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5. 진화론의 영향은 어디까지?

Q1 다윈의 종의 기원이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론에 영향을 주었다고 들었는데 어떤 면에서 그렇다는 것입니까?

Q2 현대 교육의 개척자라고 불리는 듀이는 인간이 정신적으로도 진화해 왔다고 주장했는데 그 설명이 맞습니까? 

2 노아 홍수는 역사적 사실인가? 

1. 노아 방주

Q1 노아 방주가 실제로 존재하였음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Q2 노아 방주의 성경적 의미는 무엇입니까?   

Q3 노아 방주는 보통의 배와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Q4 노아 방주의 크기는 얼마입니까?

Q5 성경에 기록된 방주의 크기는 과연 배의 역할을 잘 할 수 있는 크기인가? 

Q6 방주는 땅에 호흡하는 모든 동물 한 쌍씩을 실을 수 있을 정도로 컸습니까?  

Q7 노아의 방주에는 수많은 크고 작은 동물들이 탔을 텐데, 배설물을 수거하고 음식물을 먹이는 일을 방주 안의 8명의 사람이 하기에는 너무 벅찬 일이 아닌가? 

Q8 노아는 어떻게 오늘날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는 육상동물들을 방주에 모을 수 있었습니까?

Q9 노아의 방주는 정말 대홍수를 견딜 만큼 견고합니까? 

Q10 목재로 된 거대한 방주가 1년여의 거친 항해를 견디어낼 수 있었습니까?

Q11 방주 내로 그 많은 동물들을 7 일만에 다 태울 수 있습니까? 

Q12 방주 내로 태워지는 각 동물의 숫자는 암수 일곱씩입니까, 둘씩입니까?

Q13 공룡도 방주에 실었습니까? 실었다면 그 큰 공룡을 어떻게 방주에 실을 수 있었습니까?

Q14 노아는 암 수가 같은 모양의 동물들은 어떻게 구별하였습니까?

Q15 방주 내에서 수많은 동물들이 1년여 동안 먹을 먹이와 물은 엄청난 양일텐데 그 양은 도대체 어느 정도이며, 어떻게 저장할 수 있었습니까?

Q16 육식동물들은 방주 내에서 다른 동물들을 잡아먹고 살았습니까? 

Q17 뱀, 팬더, 코알라, 세발가락 나무늘보, 벌레를 먹는 동물, 과일을 먹는 동물 등과 같이 특수한 먹이만을 먹는 동물들은 어떻게 먹이를 조달할 수 있었습니까? 

Q18 모든 동물이 창조시에 초식을 하였다면 육식에 필요한 송곳니는 왜 만들어졌습니까? 

Q19 방주 내에 동물들의 배설물은 어떻게 처리되었습니까?

Q20 방주 내에서 배설물로 인한 냄새와 악취, 유독한 가스 등에 대한 환기는 적절했습니까? Q21 방주 내 동물들은 너무 밀집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까? 

Q21 방주 내 동물들은 너무 밀집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까?

Q22 굴을 필요로 하는 동물, 발굽이 자라는 동물, 뿔이 있는 동물들은 어떻게 지냈으며, 방주 내 동물들은 운동 없이도 1년여의 기간을 지낼 수 있었습니까? 

Q23 노아는 역청(pitch)을 어디서 구했습니까?

Q24 노아의 방주가 아라랏산에 도착하였다면 실제로 목격한 사람들이 있습니까?  

2. 대홍수

Q1 노아 대홍수의 이유와 목적은 무엇입니까? 

Q2 노아 대홍수의 기간은 얼마입니까? 

Q3 노아의 대홍수는 전 세계적으로 일어났음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Q4 세계적으로 육지 깊숙한 곳이나 높은 산 위에 염호(鹽湖)가 존재하는데 이는 노아 홍수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Q5 노아 홍수 시 식물들은 어떻게 바닷물 속에서 살아남았습니까? 

Q6 노아 홍수시 민물고기는 어떻게 바닷물 속에서 살아남았습니까? 

Q7 홍수 후 바닷물의 침습에 의한 육지토양의 염분농도는 식물이 살 수 없을 정도였습니까? 

Q8 화분을 필요로 하는 식물의 경우 화분 시킬 곤충이 없는데 어떻게 번성하였습니까? 

Q9 홍수 후 황량한 세계에서 동물들은 먹이를 어디서 구했습니까? 

 Q10 홍수 후 첫 번째 먹이사슬(food chain)이 어떻게 형성될 수 있었습니까? 

Q11 동물들은 대홍수 이후 어떻게 전 세계 방방곡곡으로 이동 분산하게 되었습니까? 

Q12 한 쌍의 동물이 많은 수로 불어나는 것이 가능합니까? 

Q13 떼로 모여 사는 동물인 경우 번식하기에 한 쌍으로는 부족한 것이 아닙니까?  

Q14 병원균과 같은 미생물들은 어떻게 살아 남았습니까? 노아의 식구들이 각종 병원균에 감염되지 않았다면 이들은 홍수 시에 모두 사라졌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Q15 고대문명들은 다같이 홍수 설화를 가지고 있다는데, 이는 노아 홍수를 의미한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Q16 노아의 홍수로 엄청난 퇴적물이 쌓였다면 당시 바닷물은 흙탕물이어서 물고기들이 살 수 없었던 것은 아닙니까?

3. 궁창 위의 물과 큰 깊음의 샘

 Q1 궁창 위의 물은 지구에 어떤 영향을 주었습니까? 

Q2 궁창 위의 물은 어떤 형태였습니까?

Q3 궁창 위의 물이 존재하였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Q4 '궁창 위의 물'은 지구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Q5 '하늘의 창' 이란 무엇입니까? 

Q6 어떻게 하늘의 창들이 열렸습니까? 

Q7 큰 깊음의 샘이란 무엇이며, 대홍수 당시의 물은 어디로부터 왔습니까? 

Q8 노아 홍수가 끝나고 난 후 창일했던 물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4. 노아 홍수의 영향

Q1 빙하기는 노아 홍수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Q2 어떻게 거대한 파충류(공룡)들이 멸종하였습니까? 

Q3 노아의 대홍수에 의해 급격히 화석이 형성되었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Q4 석탄과 석유는 어떻게 생성되었습니까? 

Q5 노아 대홍수가 일어났다면 해수면의 수위가 높아졌을 텐데 이에 대한 증거가 있습니까?

Q6 시베리아나 알래스카에서 어떤 매머드가 어떤 상태에서 발견되었습니까? 

Q7 노아의 대홍수와 시베리아에서 발굴되는 매머드와는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Q8 알래스카와 시베리아 일대 수백m 깊이에서 발견되는 고대의 열대숲은 노아의 홍수와 관계가 있습니까? 

Q9 노아의 홍수로는 설명될 수 있지만 기존 학설인 동일과정설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지구 지층과 지형의 특성들이 있습니까?

Q10 장엄한 협곡들은 진화론적인 견해와 달리 짧은 시간 내에 형성될 수 있습니까? 

5. 인구 민족의 형성과 이동

Q1 노아의 세 아들로부터 현재 60억의 세계인구가 가능합니까? 

Q2 노아의 가족으로부터 어떻게 오늘날 이렇게 많은 민족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Q3 대홍수 이전 시대의 족장들의 나이는 대부분 900살 이상인데 이 이유는 무엇입니까?  

Q4 어떤 이는 대홍수 전에 근동(近東)의 메소포타미아 유역에만 인류가 분포하였다고 하는데 이것이 사실입니까? 

Q5 성경은 아르밧삭의 나이를 잘못 기록하고 있습니까?  

3 인류 문명의 기원

 1. 인류의 기원

Q1 교과서에서 나오는 유인원 화석들은 진화를 증거 합니까?

Q2 가인은 어디에서 아내를 얻었습니까? 

Q3 히틀러가 주창한 '아리안족의 우수형질'이 성경에서 보면 타당한 이론입니까? 

Q4 석기시대 인류는 정말로 원시인이라는 증거가 있습니까?

2. 고대 인물과 성경 

 Q1 아시아의 생성시기는 창세기 연대 중 어디에 해당합니까?  

 Q2 단군은 성경 상으로 어느 시대 사람입니까?

3. 민족의 기원 

 Q1 노아홍수 이후로부터 인구가 증가해 왔다면  지금의 인구가 될 수 있을까? 

4. 언어 및 문자

Q1 중국 문자인 한자에 창세기의 비밀이 들어있다는데 어떠합니까? 

Q2 모세는 문자가 없던 시대에 어떻게 창세기를 기록할 수 있었습니까? 

5. 노아의 홍수 

Q1 대홍수 이전의 사람들은  대부분 900살 이상인데, 어떻게 이렇게 오래 살 수 있었습니까?

Q2 노아의 8식구로부터 오늘날 인류가 모두 나왔습니까?  

4 생명의 기원

 1. 생명의 기원

Q1 생명이란 무엇입니까? 

Q2 생명이 자연적으로 발생했다는 <오파린의 가설>은 과학적인 가설입니까? 밀러(Miller)의  생명생성 시험관 실험은 이를 뒷받침합니까? 

2. 진화론자들이 진화의 증거라고 주장하는 것

Q1 노아의 아들로부터 백, 흑, 황인종이 생길 수 있나요? 

Q2 교과서에서 배우는 시조새는 정말 진화의 증거입니까? 

Q3 상동기관을 진화의 증거로 이야기하는데 사실입니까?

 3. 진화론 대 창조론 

 Q1 생물학적 진화란 무엇입니까? 

Q2 최신의 진화이론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Q3 진화론의 역사는 어떻게 되나요? 

Q4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다면 자연에 나타난 그 흔적으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5 지질, 화석, 공룡

 1. 지질(지층) 분야 

 Q1 동일과정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Q2 대격변설 이란 무엇인가요? 

Q3 퇴적지층들이 노아의 대홍수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되는 이유가 있습니까?

Q4 광범위한 지역의 사암층과 역암층은 거대한 홍수가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Q5 엄청난 화산들이 과거에 폭발했던 흔적들은 동일과정설과는 맞지 않는 현상이지 않습니까? 

 Q6 지금의 대륙은 정말 수억 수천만년 동안 침식이 진행되어온 것입니까?

Q7 창조론에서는 빙하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Q8 히말라야, 알프스, 아라랏산 등과 같은 높은 산들도 노아 홍수때 물에 완전히 잠겼습니까? 

Q9 남극이나 북극에 쌓여 있는 얼음층의 아이스코어를 채취 측정한 결과 수만년 이상에 걸쳐서 쌓였다고 하는데 그러면 성경의 연대가 잘못된 것 아닙니까?  

Q10 석회암은 정말 오랜 세월에 걸쳐 쌓여진 것입니까?

Q11 그랜드캐년은 수천만년동안 콜로라도강의 침식에 의해 만들어졌다는데, 이것은 성경의 연대와 틀리는 것 아닙니까?

2. 화석 분야

 Q1 창조론과 진화론에서 화석은 왜 중요합니까? 

Q2 화석은 어떻게 형성됩니까? 

Q3 창조론과 진화론은 화석과 지층 형성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Q4 그동안 얼마나 많은 화석들이 발견됐으며, 발견된 화석들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Q5 진화도중의 전이(중간)형태의 생물화석이 발견된 적이 있습니까? 

 Q6 화석의 형성은 대홍수와 같은 대격변에 의해 짧은 기간에 만들어졌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Q7 화석은 창조론과 진화론 중 어느 쪽을 더 지지합니까? 

Q8 시조새는 과연 진화를 증거합니까? 

Q9 분해되기 쉬운 단백질이나 DNA가 수억년된 화석에 남아 있을 수 있습니까?

Q10 화석의 광물화는 수십 수백만년의 오랜 기간이 지나야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요? 

Q11 거의 대부분의 지층과 화석이 노아의 대홍수 기간에 만들어졌다면 지층 깊숙한 곳에서도 사람의 화석이 발견되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Q12 지층과 화석의 연대측정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Q13 전세계에 매장된 석탄이 한번의 홍수로 만들어지기 것은 불가능합니까?  

Q14 미국 엘로스톤 국립공원에서 발견되는 화석숲(petrified forests)은 수십 수만년에 걸쳐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이것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3. 공룡 분야

Q1 공룡이란 무엇입니까? 

Q2 공룡은 처음부터 초식성과 육식성으로 창조되었습니까?

Q3 공룡은 어떻게 멸종했습니까? 

Q4 영화 "쥬라기공원"에서처럼  DNA복제를 통해서 공룡을 다시 만들 수 있습니까? 

4. 연대측정 분야 

 Q1 지층과 화석의 연대측정 방법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6 우주의 기원

 1. 대폭발설(Big Bang)

Q1 빅뱅(Big Bang,대폭발)이론을 뒷받침하고 있는 과학적 증거는 무엇입니까?

Q2 빅뱅이론이 설명하지 못하는 점은 무엇입니까? 

2. 태양계의 기원 

Q1 지구와 달의 기원에 대한 진화론과 창조론의 차이점은? 

Q2 진화론에서는 무생물(광물)의 연대를 측정하는 방법으로 어떤 것을 사용합니까?  

3. 지구의 유일성

Q1 "지구"만이 생명체가 살고 있는 행성입니까? 

Q2 외계인(UFO)의 존재는 ? 

4. 성경과 우주

Q1 성경에 현대과학으로 보아도 천체에 관한 훌륭한 기록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Q2 성경에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돌고있는 것처럼 쓰여진 사실에 대해 어떻게 대하면 좋을까요?

Q3 하나님께서는 왜 천지를 창조하셨을까요?

1. 창조론과 진화론의 의미

Q1 창조와 진화의 논쟁이 정말 중요합니까?

앞으로의 논의를 위하여 먼저 ‘창조’와 ‘진화’의 정의를 내리는 것이 필요하다. 창조와 진화의 정의는 관점에 따라 다양하므로 어느 하나로 한정짓기는 매우 힘들지만, 여기서는 편의상 다음과 같이 광의로서의 창조와 진화를 정의하고자 한다. 즉, 창조란 이 우주 만물과 모든 생물들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활동에 의하여 탄생되었음을, 그리고 진화란 이 우주 만물과 모든 생물들이 자연적인 과정으로 탄생되었음을 말하는 것으로 정의하자.

어떤 사람은, 만물이 자연적인 과정만으로 저절로 진화했건 하나님에 의해 초자연적으로 창조되었건 아득한 옛날에 일어난 일이 뭐 그리 중요한 문제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문제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기원에 관한 개인의 신앙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본질적인 의미와 궁극적 운명에 관한 견해를 크게 좌우하기 때문이다. 즉, 기원에 대한 인간의 입장은 그의 세계관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오늘날 인간의 직면한 문제들-사회적, 정치적, 인종적, 생태학적-은 인간 행동의 직접적인 결과인데, 이러한 인간 행동은 세계관의 표현, 즉 세계관의 역동적 표출 과정이다. 만약 어떤 사람의 세계관이 공해산업도 괜찮다면 자연이 오염될 것이며, 인종주의가 옳다고 하면 그는 인종을 차별하는 자가 될 것이다. 이렇듯 문제들과 행위는 세계관의 표출이고, 세계관은 바로 기원관과 밀접히 관계한다. 그러므로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은 올바른 세계관을 갖는 변화를 필요로 하고, 올바른 세계관은 기원에 대한 바른 입장을 요구한다.

한 개인은 근본적으로 기원에 대한 두 가지 입장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다. 하나는 창조주가 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창조주가 없다는 것이다. 즉, 유신론 대 무신론(혹은 유물론, 자연주의:보이는 물질만이 실체의 모든 것이다), 그리고 계획 대 우연의 양자 택일이다.[1] 그렇다면 이러한 양자택일에서 ‘진화론’은 과연 어디에 속하는 것인가? 엄밀히 말하자면, 생물학의 진화론은 ‘기원론’도 아니고 ‘무신론’도 아니다. 왜냐하면, 자연선택의 기작(機作)이 적용되려면 최소한 번식 가능한 생명체가 이미 존재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물학적 진화론의 함축적 의미는 너무나 깊이 여러 학문에 침투해 있고, 그 범위도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어서 생물 종의 기원뿐만 아니라 최초 생명체의 기원, 그리고 우주의 기원까지도 우연적이고 자연적인 과정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연주의적 믿음을 제공해 주고 있다. 즉, 진화론은 싫든 좋든 간에 이미 자연주의적 세계관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해주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창조와 진화’ 논쟁이야말로 모든 세계관 논쟁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Q2 창조와 진화 이외의 다른 대안은 없습니까?

생명체가 외계에서 유입되었다는 학설이 있지만, 이러한 학설은 본질적으로 생명의 기원에 관한 창조-진화의 논의를 지구 밖으로 옮긴 것에 불과하다. 즉, 우주에서 생명체가 유입되었다 하더라도 그 근원에서는 결국 창조냐 진화냐의 문제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명체의 기원에 대해서도 창조냐 진화냐 문제 이외의 다른 대안은 없다.[2] 혹자는 유신론적 진화론을 대안 또는 타협안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이는 우주는 처음에 신에 의해서 창조되었고 그 이후는 진화에 의해 오늘날의 우주와 생명체가 탄생되었다는 입장으로 진화를 단지 메커니즘만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신론적 진화론이 기독교적 관점에서의 진정한 대안이 되려면 과학적 판단기준뿐만 아니라 신학적 판단기준에 의해서도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Q3 참조).

2. 창조론과 과학

 Q1 진화는 과학이고 창조는 신앙이 아닙니까?

우주의 기원에 관해서는 진화 모델과 창조 모델이라는 단 두 가지의 기본적인 모델밖에는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모든 것들은 계속되는 자연주의적인 과정에서 발전되었든지, 혹은 그렇지 않든지 둘 중의 하나이지 제삼의 선택의 여지는 없다. 그 각 모델은 본질적으로 완전한 세계관, 곧 삶과 의미, 그리고 기원과 운명에 대한 철학이다. 그 각각은 과학적 방법에 의하여 확증되거나 거짓으로 판명되거나 할 수 없다. 이는 그것들이 경험적으로 시험되거나 관찰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것을 택하든지 그것은 개인적인 신념이나 믿음을 근거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각각은 또한 과학적인 성격을 띤다. 왜냐하면 그 각각은 그 자체의 틀 속에서 과학과 역사의 모든 자료들을 설명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창조론은 적어도 진화론보다는 비종교적이며 또한 창조 모델이 진화 모델보다 참된 과학의 사실들에 잘 부합된다고 창조론자들은 역설한다. 창조론이 유신론적 모델인 것은 사실이지만, 진화론이 무신론적이거나 최소한 이신론적 모델인 것 또한 사실이다(왜냐하면 진화론은 모든 것을 창조주 없이 설명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만약 유신론이 종교적 신앙이라면 무신론도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이 둘은 얼마든지 정반대의 위치에서 서로 대비될 수 있는 체계이기 때문이다. 진화론이나 창조론이 과학적 실험으로 증명될 수는 없지만 기존의 과학적 법칙과 사실로 미루어 어느 이론이 과학적으로 더 타당한지 판단할 수는 있다. 이런 과학적인 고찰 방법으로는 수학확률론적, 생물학적, 열역학적, 지질화석학적 방법 등이 있는데 이런 방법을 통해 볼 때 진화론이 얼마나 비과학적인가와 진화에 대한 직접적이고 실제적인 과학적 증거가 거의 없음을 알게 된다. 즉, 진화론은 검증되지 않은 가정에 근거한 믿음 체계이며 또한 하나님을 애써 거부하고자 하는 인간의 타락한 본성에 기인한 철학체계이다.[4,5]

  Q2  과학을 연구하는 과정은 완전히 객관적입니까?

최근까지만 해도, 과학자는 객관적이라는 대중적인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이 견해에 의하면 대상과 분리되어 감정을 배제한 연구자가 냉정한 논리와 관찰을 통하여 방법론적으로 과학적 문제들을 해결하며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인간의 모든 지식의 습득은, 지식을 습득할 때 그를 자극하고 인도하는, 증명되지 않는 결단의 틀(세계관) 안에서 이루어진다. 한 인간의 세계관은 궁극적인 가정들(우주는 질서정연하다)로부터 일상적인 확신(내일도 태양이 뜰 것이다)에 이르는 광범위한 신념들을 포함한다. 과학을 포함한 모든 분야의 연구에서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믿음은 지식습득의 동기를 부여하며 그것을 통일시키는 요소이다. 앎의 과정은 단순히 이지적인 것뿐만 아니라 감정적, 의지적, 영적, 신체적 차원의 일부를 구성한다. 우리의 지식은 물리적인 실체에 대한 관찰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건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까지도 포함한다. 이런 면에서 과학적 지식은 지극히 인격적이다. 연구는 결코 대상과 격리되어서 감정이 배제된 것이 아니다.[7]

  Q3 과학주의(scientism)란 무엇입니까?

과학적 방법론의 도입으로 인한 폭발적 지식의 증가와 이로 인한 문명의 급속한 발전은 사람들로 하여금 과학 그 자체에 대한 어떤 신성이라고 할 만한 것을 부여하기에 이르렀으니 이것이 곧 과학주의(scientism)이다. 과학주의의 주장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든 신념들은 경험이나 실험, 즉 과학적 방법에 의해 검증되어야 하며 과학적 방법만이 진리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 둘째, 계량화된 것만 과학에 의해 알려질 수 있으므로 오직 측정 가능한 물리적 실재들만이 알려질 수 있다. 셋째, 과학은 전제가 없으며 객관적이다. 즉, 과학은 주관의 여지가 전혀 없는 순수 객관적인 학문이므로 무전제에서 출발한다. 넷째, 모든 우주는 기계적이며 인과율의 사슬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다섯째, 과학은 자기의 고유한 방법론을 통해 궁극적으로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다. 여섯째, 과학적 방법만이 진리에 이르는 참된 방법이므로 다른 모든 학문도 과학적 방법으로 하여야 한다.

위의 과학주의의 주장들은 외적으로 보면 탈가치화, 객관화, 계량화 등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가치와 주관이 전혀 섞이지 않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첫째 주장은 실험주의이며, 둘째 주장은 유물주의이며, 넷째 주장은 결정주의이며, 다섯째 주장은 진보주의이며, 여섯 번째 주장은 방법론적 환원주의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근본적으로 과학주의는 존재론이나 인식론에서는 자연주의를, 내용에 있어서는 합리주의를, 정신에 있어서는 휴머니즘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상을 요약해 보면, 과학주의란 인간이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삭감하고 인간 자신의 자율성을 바탕으로 이론을 구축하는 데서 나온 자연스런 주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기독교인 과학자는 팽배한 과학주의에 대해 특히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과학주의는 과학의 결과가 아닌 과학에 대한 신앙이며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가치에 대한 하나의 견해이기 때문이다. 다분히 종교적인 색채, 그것도 기독교 신앙에 반대되는 종교적인 색채를 갖고 있다. 과학주의가 성경과 상치되는 종교적 주장이라면 기독교인 과학자는 과학에서 과학주의 대신 성경적 입장을 취해야 합당할 것이다.[8]

3. 창조론과 기독교 

Q1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이야기를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아니면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기초가 튼튼하고 안전할수록 그 건물도 그러하다. 그러나 이 기초가 무너진다면 그 건물 모두가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독교의 모든 교훈은 성경적 창조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성경의 모든 교훈은 창세기 1장에 그 토대를 두고 있다. 성경은 성령의 인도하심 하에 쓰여진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정확무오한 하나님 말씀의 첫 번째 장이 창세기 1장이다. 즉, 창세기 1장의 창조이야기를 설화나 상징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인다면 성경 자체뿐만 아니라 기독교 신앙 전반에 걸친 불신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 지극히 중요한 창세기 1장에 계시해 놓은 것들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과 그것들을 온 마음으로 믿는 것은 지극히 중요한 일이다.[9]

  Q2 창세기 1장 2절에 나오는 땅과 수면은 창조 이전인데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요?

창 1: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에서 이미 하나님의 창조가 선포되고 있다. 이 첫 번째 구절이 단지 창조의 큰 제목이고 2절은 창조 이전의 상태를 나타내며 3절부터 하나님의 실제 창조가 시작되었다는 견해가 있으며, 1절에서 창조하셨지만 사탄이 타락하여 2절의 혼돈 상태가 발생했고 3절부터 '재창조'가 있었다는 견해가 있는데 모두 신학적으로 문제점이 있다. 그러므로, 창 1:1절에서 이미 하나님의 창조가 시작되었고 2절은 창조된 우주와 지구가 아직 질서 있게 배치되지 않은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창조주간에 일어난 창조사역의 순서나 방법 등에 대해서는 이 외에도 많은 의문이 제시되고 있다.【그림1-2 참조】 예를 들면 태양은 넷째 날 창조되었는데 그 이전인 셋째 날에 식물이 창조된 것이나 일월성신이 없었던 첫째 날 창조된 빛의 본질, 태양과 달이 없었던 처음 사흘간의 아침과 저녁의 구별과 수만, 수십만 광년 떨어진 별에서 출발한 별 빛이 지구에 도달하는 시간 등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창조의 세세한 부분들에 대해 정확하게 모른다. 그러나 현대과학이나 우리의 이성적 논리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그러한 난제들을 거부하거나 비성경적 입장에서 재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이러한 문제를 제대로 다루려면 먼저 성경에서 모든 설명을 얻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집착을 버려야 한다. 성경은 전문적이고도 과학적인 용어로 쓰여진 책이 아니라 모든 세대 모든 사람들에게 이해될 수 있는 상식적이고도 일상적인 용어로 쓰여진 책이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너무 전문적인 창조의 과정을 도출해내고자 시도한다면 이는 창세기 1장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구속사'적 의도를 간과하게 되는 것이다. 칼빈은 "성령께서는 천문학을 가르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 다시 말해서 가장 단순하고,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일반인들에게 교훈을 내리기 위하여 성령께서는 일상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선지자들을 사용하심으로써 아무도 그 말씀이 모호하다는 핑계를 대지 못하게 하셨다." 라고 말했다.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 신자의 올바른 태도일 뿐 아니라 지성인의 현명한 자세이다. 억지로 풀려다가 멸망으로 이르게 된다.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벧후 3:16)[10]

 Q3 일반인들은 어떻게 창조과학에 대해 생각하며, 삶 가운데 적용할 수 있습니까?

창조과학이란, 현존 자연계가 존재하려면 일차적인 원인이 창조될 수밖에 없음을 전재하고, 창조를 믿는 데 방해되어 온 잘못된 과학을 재회복하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창조과학이란 성경에 나타난 창조의 사실을 믿는 데 방해물을 치우는 도구이며, 그리스도인의 모든 활동이 하나님나라 확장에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 자체가 무의미하듯이 창조과학 운동도 하나님의 복음전파와 연결 지워지지 않는다면 그 결과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볼 수 있다. 모든 기독교인들은 진화론의 허구성을 밝혀 내고 타파하는 데 참여할 수 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모든 사람이 과학자나 신학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진화론은 과학이 아니라 믿음이다. 그것과 싸우기 위해서 과학의 학위가 있을 필요는 없다. 이를 위해 기독교인은 성서적인 창조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하여 세계관이 그것에 바탕을 둘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약간의 관심을 통해 쉽게 얻을 수 있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많은 과학적 증거들을 전함으로써 진화론의 벽을 깨고 전도를 효과적으로 행할 수 있다. 창조론적인 복음전도방법은 오늘날 세상에서 복음을 퍼트리는 가장 중요한 방법 중의 하나이다.[11]

4. 창조론과 과학교육

Q1 입학시험에서 진화론과 창조론 중 옳은 것을 골라야 하는 문제가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요?

진화론을 ‘믿는다’는 것과 ‘알고 있다’는 것은 서로 의미가 다르다. 만일 “믿느냐?”라고 물으면 “믿지 않는다.대답하면 될 것이고 “아느냐?”라고 물으면 아는 대로 대답하면 될 것이다. 교과서가 진화론을 다루고 있는 현실에서 그것을 배우지 않을 수는 없다. 즉, 문제가 나와도 진화론의 내용이 어떻다는 문제일 수밖에 없다. 진화론을 열심히 연구하는 것은 진화론의 잘못을 찾아내는 데 매우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6]

 Q2 창조론은 창세기의 창조기사에 근거해 있는데, 왜 그것이 과학교육에 포함되어야 하는가요?

창세기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종교적 가르침도 그 근거로 삼고 있지 않는 창조론을 ‘과학적 창조론’이라고 하며 이를 통해 성경이나 다른 어떤 형태의 종교도 참조하지 않고, 창조를 지지하는(그리고 진화를 반대하는) 과학적 증거들을 제시할 수 있다. 이러한 방법으로 쓰여진 책이 여러 권 나와 있다. 이들은 논거들로 유전학, 고생물학, 지질학, 열역학, 그리고 다른 과학들을 다루고 있으며, 신학이나 종교는 다루지 않고 있다. 실제로 창조에 대한 과학적인 변호는 우주법칙, DNA, 화석들 그리고 성경에는 나타나지 않은 다른 과학적 용어들과 개념들에 대한 우리의 지식에 근거해 있다. 나아가서 창조론 과학자들은 우주의 기원과 관련된 과학적 증거들을 철저하게 연구하고 있으며, 또한 과학적 자료들이 명백하게 창조모델을 지지하고 진화모델과는 모순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4]

 Q3 창조론과 진화론을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같이 다루려는 노력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국내에서는 그 동안 진화론의 주장만을 실은 생물교과서를 통하여 학생들에게 진화론이 주입되어져 왔다. 1988년 5월에 이화여대의 이양림 교수(동물발생학)와 서울과학고등학교 이광원 교사(생물학)는 1990학년도부터 사용될 고등학교 2종 생물교과서용 검정 심사본을 제출하여 2차 심사까지 합격하였으나, 기존의 진화론적 관점과는 다른 시각으로 기술하였다는 이유로 교과서 심사본 내용 중 생물의 진화 단원에 대하여 대폭적인 수정을 요구한 문교부에 불복, 불합격 처분된 교과서에 대하여 문교부를 상대로 "교과서 검정 불합격 처분 무효 확인 청구소송"을 1990년 2월5일 서울고등법원에 제출하였다. 이 교과서의 내용은 진화론이 절대적 과학적 사실이 아니며 여전히 가설로 남아 있는 진화론의 현재적 입장을 소개한 것이었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이후 여러 가지 다방면으로 창조론 교육을 모색하고 있으며, 99년 8월 창조 과학 교사연합회를 결성하여 현직 교사를 직접 교육하는 방향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일환으로 2000년도에는 교육청에 특수분야 연수기관 지정신청을 교육청에 상정하여 현직교사를 대상으로 창조과학연수를 실시하게 되었다. 하루라도 빨리 올바른 교육이 정착되어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하나의 과학적 주장으로서의 진화론의 문제점을 올바르게 인식케 하고 그들의 자유로운 과학적 사고에 장차 올바른 판단과 검정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길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13]

5. 진화론의 영향은 어디까지?

Q1 다윈의 종의 기원이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론에 영향을 주었다고 들었는데 어떤 면에서 그렇다는 것입니까?

마르크스는 다윈의 '자연선택', 혹은 '생존경쟁'이라는 개념을 경제학에 사용한 대표자라고 할 수 있다.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이 발표된 지  14년 후 1873년 칼 마르크스는 그의 저서 '자본론'의 속표지에 이렇게 썼다. "다윈 선생께, 그분을 진심으로 숭배하는 칼 마르크스로부터." 진화론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들 중에 하나가 바로 칼 마르크스인 것이다. 마르크스가 그의 동료인 엥겔스에게 쓴 편지를 보면, 그는 자연환경에서 생물의 경쟁에 관한 다윈의 생각은 계급들간의 경쟁과 관련된다고 하고 있다. 그는 '생존경쟁'의 개념을 '계급투쟁'이라는 말로 바꾼 것이다.[12,15]

Q2 현대 교육의 개척자라고 불리는 듀이는 인간이 정신적으로도 진화해 왔다고 주장했는데 그 설명이 맞습니까?

교육학에서 현대교육의 개혁자라고 할 수 있는 듀이는 인간을 육체적, 정신적으로 서서히 진화해 온 산물로 보았다. 진화론적 사고 방식을 강조한 듀이는 환경이 진화를 일으켰다고 주장하고 환경이 교육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하였으며, 환경론은 오늘날 학교에서 교육 원리와 정책 개발에 가장 유력한 견해가 되었다.[12] 그러나 성경에서는 인간이 진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타락한 것이라고 선포한다. 인간은 타락 이후 영적, 정신적, 육체적으로 치명적인 손상을 받았으므로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에 놓이게 되었고 그러한 상황을 깨닫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찾지도 못한다(롬 3:11).

 

2 노아 홍수는 역사적 사실인가? 

1. 노아 방주

Q1 노아 방주가 실제로 존재하였음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노아의 방주가 실제로 존재하여 수많은 동물들을 홍수로부터 구해 냈는지 여부는 매우 중요하다. 먼저 성경 창세기에 무려 6, 7, 8, 9장에 걸쳐 기록된 노아의 홍수사건과 방주로 동물들을 구해낸 사건이 한낮 설화나 후세의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라면,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권위를 지니지 못한다. 노아의 홍수와 방주사건은 성경 도처에서 인용되고 있고, 마지막 때에 예수님 재림시의 심판과 구원을 상징하는 사건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거부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성경을 비판할 때 노아의 홍수와 방주사건을 제일 먼저 들고 나와 비판해 왔으며, 무신론자, 이성주의자, 인본주의자, 과학주의자, 진화론자들이 성경을 비지성적이며, 비과학적인 책으로 폄하할 때 가장 먼저 인용하였던 부분이 이 노아의 홍수와 방주사건이었다. 노아의 홍수와 방주사건을 믿는 신앙인들은 과학적 지식이 없는 무식한 종교적 열심가들로 취급하게 되었고, 수많은 신앙인들이 이 사건에서부터 성경에 대한 권위와 믿음을 잃어버리고, 의심의 싹이 자라기 시작하여 마침내 성경을 발췌하기 시작하고, 비유의 말씀으로만 해석하기 시작하다가 마침내 신앙을 잃어버리게 되었던 것이다.(1)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최근 지질학의 발달로 지층과 지형의 모습들이 자세히 조사되면서, 지구는 과거에 대홍수와 같은 엄청난 격변을 겪었던 흔적들이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전지구 대부분에 수백 m에서 수 km 깊이로 쌓여 있는 퇴적지층들, 수조개의 화석으로 멸종되어 있는 생물들, 세계 도처에서 강같이 흘렀던 용암들, 구부러지고 휘어져 있는 산들, 바다 속에 깊게 패어진 해저캐년들, 지구를 휘감고 있는 해저산맥들, 엄청난 넓이로 평행하게 쌓여져 있는 지층들, 히말라야나 알프스 산꼭대기에서 발견되는 바다생물의 화석들, 극지방에서 발견되는 두터운 석탄층들, 온대지역의 풀을 먹다 얼어죽은 시베리아 매머드들, 지층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사람의 유물들, 오늘날의 모습과 똑 같은 채로 발견되는 고생대, 중생대의 화석들...등등. 그러므로 최근 지구의 지층과 지형은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동일과정설과 같이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노아의 홍수와 같은 대격변에 의해 단기간에 만들어졌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고 다시 부활하게 된 것이다.(2, 3, 4)

 그러면 이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전지구적 재난 속에서 오늘날의 수많은 동식물들은 어떻게 살아 남을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전 지구를 덮은 대홍수 속에서도 오늘날의 수많은 동식물들이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면, 대격변설은 결국 지역적 홍수설, 지역적 격변설로 그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아의 방주는 노아의 홍수와 같은 전 지구적 대격변설을 확실하게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며, 대격변설이 입증된다면 진화론적 동일과정설을 폐기될 것이며, 동일과정설이 폐기된다면, 수십억년의 지구연대도 폐기되어질 것이고, 진화할 시간이 없는 진화론도 당연히 폐기되어질 것이며,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위를 되찾고,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음이 밝히 드러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Q2 노아 방주의 성경적 의미는 무엇입니까?   

누가복음 17장 24-30절에는 예수님의 마지막 심판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 노아의 대홍수 심판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시 전개될 마지막 심판의 모형과 그림자였다. 그리고 노아의 방주는 이 마지막 심판에서 구원받을 유일한 영적 구조선인 보이지 않는 교회의 모형과 예표였다. 따라서 방주는 예수 그리스도가 몸되신 교회의 진정한 모습을 지상적 모형으로 보여주던 그림자였고, 방주 내의 동물 사육은 교회의 본질 곧 교회내 성도 양육의 모형이었던 것이다. 노아는 "그 집을 구원"(히11:7)하기 위하여 방주를 지으라는 명령을 받았고,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케"(창 7:3)하기 위하여 모든 종류의 동물을 둘 씩 방주에 태우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리고 순종하여 생명들을 구원하였다. 우리들도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까지 세상의 많은 영혼들을 오늘날의 방주인 예수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여야할 것이다.  

 Q3 노아 방주는 보통의 배와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노아 방주와 같은 의미로 방주는 아기 모세가 나일강에서 탔던 바구니를 지칭할 때 사용되었다. 방주는 내부에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거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노나 키가 없다. 단지 뜨기만 하고 조정이 불가능하여 물결이 흘러가는 대로 움직인다. 단지 뜨기만 하고 나의 삶을 내가 조정하지 않고 성령님께 맡기는 신앙을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Q4 노아 방주의 크기는 얼마입니까? 

창세기 6장 14~16절에 나와있는 치수대로의  방주 크기는 길이가 삼백규빗(135m), 폭이 오십규빗(22.5m), 높이가 삼십규빗(13.5m)으로, 43,200 m3 정도의 부피를 가지는데, 이는 한 량에 240마리의 양을 실을 수 있는 화차 522 량에 해당하는 용량과 같다. 방주는 농구코트 20개를 10개씩 2열로 배열한 넓이로서, 현재 축구장보다 길이는 더 길고 폭은 약간 좁은 넓이의 상, 중, 하 삼층으로 되었다. 그러므로 방주는 통상적인 배가 아니라 바지선 형태의 거대한 선박이었다. 

Q5 성경에 기록된 방주의 크기는 과연 배의 역할을 잘 할 수 있는 크기인가? 

길이와 폭의 비율 6 : 1은 매우 뛰어난 선박 안정성을 보이는 비율임이 선박공학자들에 의해서 밝혀졌는데, 노아의 방주는 홍수기간 동안의 폭풍과 파도속에서도 충분히 견디어 냈을 것이다. 노아의 방주의 규모에서 영감을 얻은 미국의 저명한 조선건축가 디키씨는 미국 전함 U.S.S.오레건 호를 설계할 때 노아가 방주를 건조할 때 이용했던  것과 동일한 설계 비율을 사용했다. 해군에서는 U.S.S.오레건 호를 지금까지 건조된 것 중 가장 견고한 군함으로 간주하고 있다. 노아의 방주의 안정성에 대해서는 'Q9 노아의 방주는 정말 대홍수를 견딜 만큼 견고합니까?'를 참고할 것.

 Q6 방주는 땅에 호흡하는 모든 동물 한 쌍씩을 실을 수 있을 정도로 컸습니까?  

노아 방주의 배수량은 약 20,000톤, 용적은 14,000톤이며, 방주내의 사용 가능한 총면적은 100,000 평방피트 이상이고, 총부피는 43,200 m3 정도이다. 이제 노아의 방주 내로 들어와야 하는 땅에서 호흡하는 동물들은 모두 몇 마리나 되는지를 알아보자.

미국의 유명한 분류학자인 Ernest Mayr에 의하면 세계에는 백만종(species) 이상의 동물(animals)이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중 대부분은 물에서 사는 동물이라 방주에 탈 필요가 없다. 21,000 종의 물고기(fish), 1,700 종의 피낭동물(tunicates), 600 종의 불가사리와 같은 극피동물(echinoderms), 107,000 종의 홍합이나 굴과 같은 연체동물(mollusks), 10,000 종의 말미잘과 같은 강장동물(coelenterates), 5,000 종의 해면동물(sponges), 30,000 종의 원생동물(protozoans)과 단세포생물 등이 이들이다. 또한 포유동물중 고래나 바다표범과 같은 일부 동물들은 물에서 사는 동물이다. 양서류도 모두 다 방주에 올라탈 필요가 없으며, 악어와 바다거북같은 파충류도 그러하다. 또한 838,000 종의 절지동물(arthropods)중 바다가재, 새우, 게 등과 같은 대부분의 동물들이 바다에서 사는 동물이다. 그리고 곤충(insect)들은 매우 크기가 작아 방주에 탓다 하더라도 적은 공간을 차지했을 것이고, 35,000 종의 벌레(worms)들과 같이 방주 밖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다. 사실 곤충과 벌레들은 홍수시 떠다니는 거대한 나무 매트(floating log mats)들에 붙어서, 또는 알이나 유충상태로 충분히 생존할 수 있다 (대홍수 Q5 참조).

그리고 성경도 곤충과 벌레는 방주에 타지 않았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성경 창7:22)에 나오는 "코로(through nostrils)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에 곤충은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곤충은 코로 숨을 쉬는 것이 아니라 외부 골격에 있는 작은 관(tubes)으로 숨을 쉬기 때문이다. 또한 성경 창6:19, 7:8~23, 8:17)에 나오는 "땅에 기는" 것들로 번역된 "creeping thing (remes)"은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사용된 예를 살펴볼 때 벌레보다는 파충류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또 하나 창세기에서 말하는 종류(kinds)의 개념이 오늘날의 종(species)의 개념과는 다를 수 있다. 많은 연구자들은 이 kinds는 오늘날의 분류학상의 과(family) 또는 아과(subfamily)에 해당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후대에 수많은 속(genera)과 종(species)들을 만들어 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즉 진돗개, 불독, 세파트, 치와와 등 모든 종(species)의 개들을 실은 것이 아니라 대표로 개의 한 종(kind)만 태웠다는 것이다. 이 경우라면 매우 적은 수의 동물들이 방주에 승선하였을 수도 있다. Don Batten 은  이미 존재했던 유전정보의 분류(sorting)와 소실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종들이 분화될 수 있다고 하였다.(5) 그는 분명히 다른 종과 속의 생물들이 교배되어 후손을 낳을 수 있는 잡종들이 만들어지는 예들을 제시하였는데, 말, 얼룩말, 당나귀는 아마도 equine kind에서, 개, 늑대, 코요테, 재칼은 canine kind에서 갈라졌을 수 있으며, 북극곰(polar bear)은 원래의 bear kind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진화가 아니다. 왜냐하면 북극곰은 새로운 유전적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북극곰은 위장을 위하여 색을 띄는 유전인자를 잃어버린 것으로 보인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다윈의 핀치새에 대한 연구는 4500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다양한 핀치새들이 분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1996년에 열린 분화(speciation)에 관한 주요 회의는 무심결에 진화가 아닌 홍수 후 빠른 분화에 관한 창조과학자들의 주장을 지지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종류(kinds)는 과(family) 이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노아는 육상척추동물의 매우 소수만 태웠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이 경우 2000마리 정도의 적은 동물들이 방주 내로 들어갔을 수도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최대로 오늘날 살고 있는 포유류 3,500종, 조류 8,600종, 파충류와 양서류 5,500종이 모두 승선하였다고 하여도 총 동물의 수는 17,600 마리로 각 쌍으로 계산할 경우 35,200마리의 동물을 실어야 한다. 이 동물들의 크기는 다양함으로 평균 크기를 양(羊)만하다고 가정하였을 때, 방주는 125,280 마리의 양들을 수용할 수 있는 용량이므로, 방주는 실제 승선했던 동물보다 3배 이상의 동물들을 태울 수 있는 크기임을 알 수 있다. 사실 양의 크기는 동물들을 크기 순으로 나열한다면 11% 정도에 위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양이 평균적 크기가 되기에는 너무 크고, 승선시킨 동물들 중에서 덩치가 큰 동물들의 경우 새끼나 어린 동물들을 태웠을 것이 예상되기 때문에 방주에 승선한 동물들의 용량은 더욱 줄어들 수 있다. 여분의 장소에는 멸종된 동물들, 식량, 물, 노아의 가족, 방주에서 태어난 새끼들을 위해 사용되었을 것이다.

     Dr. Woodmorappe는 그의 책 "Noah,s Ark : A Feasibility Study"에서 구체적으로 방주에 들어간 동물들의 종류와 마리 수를 포유류 7,428 마리, 조류 4,602 마리, 파충류 3,724 마리의 총 15,754마리로 약  16,000여 마리의 동물들이 방주 내로 들어간 것으로 추정하였다(6). 이에 대해 Don Batten은 방주에 탄 동물의 수를 16,000마리로 추정한 것은 진화론자들에게 너무도 관대한 수치라고 하였다.

     만약 동물이 평균 50×50×30 cm의 케이지에 들어간다면 부피는 한 동물당 75,000 cm3 으로 16,000마리이면 단지 1,200 m3에 해당한다. 만약 곤충 100만 종이 방주 내에 있다 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가로, 세로, 높이 10cm의 공간에 곤충이 한 종씩 있을 경우 1,000m3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곤충은 방주에 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여하간 이들의 부피는 방주 용량 43,200m3에 비하면 매우 적은 부피이다. 방주는 이들 동물들을 충분히 실을 수 있는 크기인 것이다.     

Q7 노아의 방주에는 수많은 크고 작은 동물들이 탔을 텐데, 배설물을 수거하고 음식물을 먹이는 일을 방주 안의 8명의 사람이 하기에는 너무 벅찬 일이 아닌가? 

어떤 사람들은 "노아의 방주 안에서 수많은 크고 작은 동물들의 배설물을 수거하고 음식물을 먹이는 일은 8명의 사람이 하기에는 너무 벅찬 일이다" 라고 주장하며 노아의 방주를  부인하려 한다.

창세기 8장 1절에는 "하나님이 노아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권념하사"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권념하사" 라는 말은 "기억하다, 간섭하다" 라는 히브리말 "자칼"을 번역한 것으로 하나님의 특별한 돌보심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동물들에게 주신 놀라운 능력중의 하나는 공기가 탁하거나 기온이 떨어지고 빛이 줄면 이에 적응하기 위해 동물들이 동면이나 하면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예를 들면 다람쥐는 동면에 들어가면 체온이 1~2℃로 떨어지며 심장박동이 350번 정도에서 2~4번 정도로 떨어져 평상시의 2% 정도의 에너지를 소비하며 긴 겨울을 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체온이 15~20℃만 되어도 모든 기능이 정지되어 버리는 사람과 비교하여 볼 때, 이런 낮은 온도에서도 모든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이유는 풀리지 않는 비밀이다. 또한 새들은 동면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푸우월 같은 새는 동면하는 것으로 알려져 새들도 동면의 잠재적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 하겠다. 이와 같이 동물들이 동면하는 능력들이 비정상적으로 강해져 대부분의 동물들이 동면을 하였다고 하면 홍수 기간 중 8명의 노아 식구들이 동물들을 돌보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동면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면 정말 노아의 8식구가 동물들을 돌보는 것이 불가능한 것인가. Woodmorappe는 16,000마리의 동물들이 방주에 승선한 경우를 가정하여 가능성이 충분함을 제시하였다.(7) 먼저 생각하여야할 것은 방주내의 동물들은 동물원과 같이 넓은 장소에서 관리되는 것이 아니라, 잘 계획된 실내공간에서 실험동물이 지내는 것과 같은 상황으로 관리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현대적인 시설의 실험동물 사육장에서는 한 사람이 5,900마리의 랫드, 마우스, 토끼를 사육하며, 양돈장에서는 3,840마리의 돼지를, 양계장에서는 30,000마리의 닭을 사육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물론 오늘날의 최신식 설비 하에서의 통계이지만 노아의 방주도 많은 설비를 갖추고 있었다면 노아의 식구 한 사람당 2,000마리의 동물사육은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노아의 방주는 120년의 설계와 제작을 거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창6:3). 실제로 노아의 방주는 수많은 동물들을 관리하기 위한 여러 구조나 장치들을 장착했음이 틀림없다. 예를 들면 자동먹이공급 장치, 자동음수 공급장치, 빗물을 받아 공급하는 장치, 경사진 배설물 처리구, 복도에 운반용 수레장치 등등을 설치했을 가능성이 높다. 어떤 이들은 흔들리는 배에서 동물들에게 물을 주는 것도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도 주장하나, 고대 로마인들은 머리만 들어가도록 구멍이 난 뚜껑이 있는 통에 물을 담아서 많은 새들에게 자동으로 충분히 물을 공급했다는 기록도 있기 때문에 노아가 그런 생각을 충분히 하였을 것이다.     

또한 노아가 동물들을 방주에 태우기 전 격리장소에서 동물들의 특성을 잘 파악하여 동면을 하는 그룹, 물을 많이 먹는 그룹, 건초를 좋아하는 그룹, 특별한 먹이를 줘야하는 그룹, 배설물을 많이 만드는 그룹, 어두운 곳을 좋아하는 그룹... 등으로 큰 부류로 나누어 승선시켰다면 이들을 돌보는데 훨씬 일이 줄어들 수 있다. 분명히 노아도 이러한 문제를 두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을 것이고, 이에 대한 철저한 준비를 하였을 것이다. 8식구가 동물들을 돌보는 것이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닌 것이다.      

Q8 노아는 어떻게 오늘날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는 육상동물들을 방주에 모을 수 있었습니까?

 노아는 어떻게 호주에서 캥거루 한 쌍을 데려 올 수 있었을까? 지구 반대 지점에 사는 동물이나, 섬에서 사는 동물들은 어떻게 데려왔을까? 펭귄이나 나무늘보 같이 육지를 이동하기 어려운 동물들을 어떻게 데려 왔을까? 또한 노아가 살던 지역의 기후와 다른 한랭지역 동물들, 열대동물들은 극심한 기후 차를 견디면서 어떻게 생존할 수 있었을까?  

이러한 생각은 과거의 기후환경도 오늘날과 같이 지역에 따라 극심한 온도차를 보이며, 동물들도 오늘날과 같이 바다로 가로막힌 지역에서 서식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먼저 우리가 생각하여야할 것은 노아가 살던 시기의 기후환경과 대륙분포가 오늘날과 같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많은 동식물의 화석들이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이 대홍수 전에 지구 전체는 따뜻한 아열대 기후였으며, 지역에 따른 극심한 온도차도 없었다. 북반구나 남반구에서 발견되는 동식물의 화석과 동일한 화석들이 남극에서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도 초기 지구는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실 정도로(창2:6) 온화한 기후였으나, 홍수 후에 추위와 더위가 생겨났다고(창8:22) 기록되어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모든 동물들은 섞여 살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가 살던 지역과 방주가 있던 지역과의 기후 차를 극복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또한 대륙도 하나로 붙어 있었고, 대륙사이의 바다나 높은 산맥들은 홍수 후에 생성되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바다나 높은 산맥들은 동식물들을 데려오는데 장벽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성경 창1:9~10)절에도 천하의 물은 한 곳에 모여 있었기 때문에 땅도 이어져 있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대륙이 과거에 하나로 붙어 있었다는 것은 여러 증거가 있는데, 먼저 남, 북아메리카의 동부해안과 아프리카, 유럽의 서부해안의 해안선이 조각 맞추기처럼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프리카 남부와 마다가스카르섬 및 남아메리카의 브라질에서 아르헨티나에는 빙하의 흔적들과 빙하가 운반해온 티라이트 라는 암석과 소철 무리인 Glossopteris 등의 식물이 같이 분포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다이아몬드가 많이 생산되는데 남아메리카의 남단 지역도 다이아몬드 광산이 있다는 것이다. 지질학에서도 지구의 육지가 한때는 초대륙으로 한 덩어리였다는 판게아 이론이 널리 알려져 있는데, 1910년대 독일의 베게너는 이것을 근거로 대륙이동설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홍수 후 엄청난 대륙들의 이동이 시작되었고, 융기와 침강을 동반한 엄청난 지질학적 격변들이 일어났고, 산맥과 해구들이 생겨났으며, 해수면의 변동이 일어났고, 궁창 위의 물층의 붕괴로 지역에 따른 극심한 온도차가 발생되었으며, 다른 대륙이나 섬으로 격리된 동물들은 서로 다른 열악한 환경 속에서 오랜 기간 적응하여 오늘날의 한대지역 동물, 열대지역 동물, 건조지역의 동물들이 되었다고 생각되는 것이다.(8)

 다음으로 노아의 8식구는 그 많은 동물들을 어떻게 다 포획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 문제도 조금만 깊게 생각하여보면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동물을 데려오는 사람들이 8명보다 많을 가능성이 높다. 창세기에 기록된 사람들은 대부분이 족장들이다. 노아도 족장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거대한 방주도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여 일사불란하게 지었을 가능성이 있고, 수많은 동물들도 많은 사람을 동원하여 데려올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족장이 아니더라도 거대한 방주를 지을 만큼 재력이 있었다면 동물들을 사거나 인부들을 동원하여 모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노아는 방주근처에 거대한 동물원이나 동물격리장소를 만들어 방주에 태우기 전까지 상당기간을 계류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곳에서 지켜보면서 가장 튼튼한 동물들로 선별하여 한 쌍씩 태웠을 것이다. 또한 노아는 홍수기간동안 동물들이 먹을 모든 식물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는 하나님의 명령대로(창6:21) 식물들을 저축하면서 각 동물들의 식습성과 소비량까지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고대 중국의 황제 Chi Hang-ti 는 거대한 동물원과 3000종의 식물들을 수집한 식물원을 가지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 하나의 가능성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로 많은 동물들을 방주로 불러 모으셨다는 것이다. 창6:20, 7:9, 7:15)에는 동물들이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노아가 잡으러 쫒아 다닌 것이 아니라 동물들이 노아에게 나아왔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여러 군데에서 하나님이 동물들을 마음대로 움직이셨음이 기록되어 있다. 애굽의 재앙을 가져온 개구리와 파리(출8장), 메뚜기(출10장), 발람의 나귀(민22:28), 요나를 삼킨 큰 물고기(욘1:17), 다니엘을 해치지 못하게 입이 봉해진 사자(단6:22), 엘리야에게 떡과 고기를 가져다주는 까마귀(왕상17:6)...등등. 이 경우라면 노아의 일은 매우 줄어들 수 있고 모든 동물을 방주에 태우는 일은 더욱 쉬어졌을 것이다.(9)         

Q9 노아의 방주는 정말 대홍수를 견딜 만큼 견고합니까? 

국민일보 1993년 2월 17일자

"현대조선공학으로 제작된 그 어느 선박보다도 뛰어난 안정성을 갖고 있다."  

- 해사기술연 홍석원 박사팀 -

국가공인기관인 해사기술연구소에 의해  수행된 노아 방주 실험은 다음과 같다.

해사기술연구소가 1992년 6월부터 한국창조과학회의 요청으로 노아의 방주를 조선공학적 입장으로 접근, 이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하여 주목을 받고 있다.(10) 이 연구소는 선박의 선형시험 및 관련성능 평가업무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관으로서 선박수출 2위국인 우리나라 수출선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성능평가를 받고 있고, 그 결과는 외국의 선주들에게도 그대로 인정되고 있으며, 지금까지 480여 척의 선박의 성능을 평가했다고 알려져  있다. 해사기술연구소는 본 학회의 의뢰를 받아 선박의 안정성 연구분야에서 국내 최고 권위자인 홍석원 박사를 팀장으로 한 9명의 전문연구팀에게 맡겨 선박의 안전성능을 실험하게 되었다. 연구에 앞서 우선적으로 해결할 문제가 있었는데, 기초자료의 부족이 그것이었다. 특히 방주의 외부모습, 방주의 내부구조에 대한 자료 등이 턱없이 부족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방주자료의 제약성에도 불구하고 성경 창세기에 나와있는 노아 방주의 규격(길이 135m, 너비 22.5m, 높이 13.5m)과 아라랏 산에서 목격된 방주의 형상을 토대로 제작한 노아 방주 복원도를 바탕으로 하여 실험용 방주를 건조할 수 있었다.

 그림 2-5 1993년 2월 17일자 국민일보에 난 노아 방주 실험결과 기사. "노아 방주는 매우 안전한 선박" 이라는 기사가 인상적.

 1950년대 미국에서도 일찍이 방주에 대한 실험이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 선박공학의 수준이나 기타 제반 여건들은 90년대인 지금과 비교할 때 모든 면에 있어서 뒤쳐져 있었다. 그래서 50년대 미국에 있었던 방주 실험은 아주 기초적인 선박의 복원안정성 정도에 그치고 말았다. 따라서 이때부터 40여 년이 경과한 시점에서 현대적 수준에 걸맞는 실험을 하고자 앞서 미국에서 있었던 복원안정성 뿐만 아니라 방주의 종합적인 안정성 평가에 주안점을 두었다. 특히 두드러진 점은 방주자체의 모형 실험에 큰 의의를 두었고 다른 형상을 갖는 배와의 상대평가도 수행하여 이 배의 진면목을 알아보려고 하였다. 이를 위해 홍박사 팀은 테스트에 쓰일 실험용 방주를 길이를 50분의 1로 축소(길이 2.7m) 제작하였고, 해사기술연구소의 대형수조(길이 200m, 폭 16m, 수심 7m)에서 인공적으로 다양한 높이, 강도, 속도의 조류, 파도, 풍랑, 바람을 만들고 역시 축소된 내부 선체, 선원을 실은 상태, 내부 화물을 적재한 상태 등 다각적으로 실험을 수행하였다. 그 결과 노아의 방주가 현대의 최첨단 조선공학적 기법으로 제작된 그 어느 선박보다 뛰어난 안정성을 갖고 있는 배였다는 것이 실증되었다. 또 우수성을 알아보기 위해 노아 방주와 동일한 부피를 가지면서 길이, 폭, 높이의 비율이 각기 다른 현대 조선공학적 기법으로 제작한 12척의 다른 모형선박을 만들어 선박의 안정성(파랑안정성,  구조안정성, 복원안정성)에 대해 수 차례의 비교 수치해석과정을 거쳤다. 조선공학적인 관점에서 변환 가능한 12척의 모형 배들과의 비교 수치해석결과, 선형의 높이가 같은 경우에는 노아 방주가 가장 최적인 복원안정성【그림2-6 참조】을 주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림 2-6 방주의 복원 안정성 (31o 기울어져 있는 경우) 방주의 치수대로라면 방주는 거의 전복될 수 없도록 만들어졌다. 예를 들어 90o 이하의 임의의 각으로 기울어져 있을 때 방주의 무게중심 G에 대해서 전복되려는 힘의 반대 방향으로 복원 부력이 작용하게 되어, 결국 원래 상태로 재빨리 되돌아 올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1 cu = 45 cm) 

Q10 목재로 된 거대한 방주가 1년여의 거친 항해를 견디어낼 수 있었습니까? 

노아의 방주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노아의 방주는 목재로 만들어졌고 강철로프도 없어 파도치는 바다에서 거대한 몸체는 부서졌으며,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썩고, 바다벌레들에 의해 구멍이 나며, 물이 계속 새어 들어오기 때문에 홍수기간동안 노아의 식구들은 물을 퍼내기에도 바빴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말 노아의 방주는 항해하기에 부적합했는가?

 이것은 고대인들의 건축기술과 선박건조기술을 터무니없이 낮게 평가하기 때문에 생겨난 오해이다.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는 고대문명들의 유적과 건축물들은 매우 놀랄만한 수준인 것이다. 수학, 물리학, 천문학, 수리학, 건축학 등은 오늘날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을 정도인 것이다. 노아 이전시기에 벌써 금속을 가공해 동철로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설계해 만들 정도로 고도로 기술이 발달되어 있었음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창4:22). 노아의 방주는 무지한 고대인이 만든 임시적인 피난용 뗏목이 아닌 것이다. 노아는 무려 120여년에 걸쳐서 치밀하게 설계하고 제작하여 방주를 만들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창6:3). 그리고 이 치밀한 설계와 제작을 여러 사람이 도왔을지 모른다.

노아의 나이 600세에 홍수가 났고(창7:11), 노아의 아들들은 노아가 500세 된 후에 태어났으므로(창5:32), 방주의 준비를 시작한 480세 경에는 아들들도 없었다. 노아의 아버지 라멕은 노아를 낳은 m후 595년을 살았음으로(창5:30) 홍수가 나기 5년 전 즉 노아가 방주제작을 시작한지 115년째에 죽었다. 또한 아담의 나이 687세 경에 태어난 노아의 할아버지 므두셀라는 아담, 셋,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 에녹 등 그의 선조들과 동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직접 대면하였을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다. 그는 하나님이 특별히 사랑하시고 늘 동행하던 에녹의 아들로서 손자인 노아의 신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되는 인물이다. 그는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 중 가장 오래 살았던 인물로서 969세로 죽었는데, 그 해는 공교롭게도 그의 이름이 말하는 것과 같이(므두 = death, 셀라 = to bring) 죽음을 가져오는 홍수가 나던 해였던 것이다 (187세 라멕 낳음 + 라멕은 182세 노아 낳음 + 노아 600세에 홍수 = 969년). 므두셀라와 라멕은 그들의 말년에 노아가 120여년에 걸쳐 방주를 준비하는 전 과정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을 지도 모르며, 많은 기술적 자문과 재정적인 후원을 하였을 지도 모른다. 135m의 거대한 목조선이 파도 속에서 견디기 위하여, 수많은 동물들을 싣고 홍수기간 동안 방주에서 노아의 식구들이 살아가기 위하여, 엄청난 홍수로부터 동물들을 살려내어 번성시키기 위하여, 그때까지의 모든 기술과 지식이 총동원되었을 것이며, 이 일을 위해 노아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이 치밀하고 철저하게 준비하였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방주가 오늘날의 배와 다른 것은 무거운 엔진이 없으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물에 뜨기 위한 것이므로 장사방형의 평평한 바닥구조를 가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중간이 침하되는 현상(sagging)을 매우 완화시켰을 것이다. 네덜란드의 선박기술자인 Werff는 배의 휘어지는 현상은 아래쪽에 보강용 갑판의 설치로 극복되어질 수 있다고 하였다. 실제 고대 그리스의 Syracusia (또는 Alexandris)라는 이름의 선박은 4,000톤의 화물을 운반했으며, 15세기 중국의 바다화물선이 Cheng-Ho 호는 노아의 방주와 비슷한 크기였으며, 8세기의 선박은 비록 호수에서 사용되었지만 노아방주보다 큰 배가 있었음이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목재가 긴 항해에 부적합했다면 과거에 목재로 만든 수많은 범선들은 어떻게 항해를 하였는가. 이들이 항해할 때 새어 들어오는 물을 퍼내는 일에 대부분의 인력을 동원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19세기에 목재로 만들어진 범선들은 1년 이상 항해에도 큰 수리를 필요로 하지 않았으며, 티크목재로 만들어진 몇몇 선박들은 중대한 수리 없이도 35년간을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노아 방주의 목재로 사용되어진 잣나무는 매우 견고하고 단단한 나무로 1년여의 항해를 충분히 잘 견뎠을 것이다. 바다벌레(shipworm) 문제도 그렇다. 바다벌레는 선박의 나무를 갉아내고 굴을 파고 사는 생물이다(대표적으로 Teredo). 그러나 이들은 주로 해안가에서 사는데 지역에 따라서는 서식하지 않는 곳도 많으며, 더욱이 대양에서는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대부분의 바다벌레들은 1.3 cm 이상으로 깊게 굴을 파지 않음이 보고되고 있다.(11)    

 Q11 방주 내로 그 많은 동물들을 7 일만에 다 태울 수 있습니까? 

노아의 방주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모든 동물을 노아의 방주에 태우는데 걸리는 시간으로 7일은 불가능하며 극히 비현실적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노아가 동물을 실을 수 있는 기간이 7일(10,080분) 밖에 없었다면, 35,200 마리의 동물들은 밤낮을 쉬지 않고 17초마다 들어가야 한다. 정말 그런가?

 이들은 창7:4절에 "지금부터 칠일이면 내가 사십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나의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라는 구절만을 근거하여 이러한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이 구절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간 후 하신 말씀임을 알 수 있다. 분명히 창7:9~10절에는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암 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더니 칠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라고 되어있다. 분명히 방주에 들어간 후 칠일 후에 홍수가 났음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창6:13~21절에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고 혈육 있는 생물을 암수 한 쌍씩 태워 생명을 보존케 하며 식물을 저축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창6:22절에서 "노아가 그와 같이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라고 되어 있고 그 이후에 7장 4절의 말씀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노아에게 동물을 태우는 시간이 실제로 7일만 주어졌다 하더라도 방주에 최대 35,200마리의 동물들을 싣는 것이 불가능한 일인가? 상황은 조금 틀리지만 1시간에 1,000마리의 돼지를 한 라인에서 도축할 수 있는 도축장도 가동되고 있다. 이 경우와 같은 속도라면 이틀이면 동물들을 방주에 다 태울 수 있다. 또한 앞에서의 계산들은 방주 내로 동물들을 태우는 문이 하나일 때만을 가정한 것이다. 그러나 창6:16)절에도 문은 옆으로 내라는 말씀만 기록되어 있지 문의 폭이나 개수는 알 수 없다. 거대한 방주 내부는 상, 중, 하 삼층으로 되어있고, 동물들의 대분류에 따른 큰 구획들로 나누어져 있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문도 이들 동물들이 구분되어 들어갈 수 있도록 여러 개였을 가능성이 매우 크며, 방주 내부 시설물의 설치 및 운반, 사료나 물의 운반 및 저장, 폐기물 처리 등을 위해서도 문이 여러 개였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것이다. 실제로 여러 문으로 동시에 동물들이 들어갔다면 7일만에 방주에 동물들을 태우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닌 것이다. 또한 동물들의 대부분이 초식을 하였다면 서로를 공격하는 일이 거의 없어 동물들을 태우는데 훨씬 수월하였을 것이고, 방주에 탄 동물들은 35,200마리 보다 훨씬 적을 수 있으며, 노아의 식구 8명 외에 방주에는 타지 않았지만 동물을 태우는데 동원된 사람들이 있었다면 7일이라는 시간은 충분할 수도 있는 것이다.(12)       

 Q12 방주 내로 태워지는 각 동물의 숫자는 암수 일곱씩입니까, 둘씩입니까? 

성경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방주에 태워진 동물의 숫자가 창6:20), 창7:9), 창7:14,15)에는 둘이고, 창7:2,3)는 일곱이기 때문에 성경의 오류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읽어보면 정결한 동물들은 암 수 일곱씩, 부정한 동물들은 암 수 둘씩 방주에 탔음을 알 수 있다. 창7:3)절의 공중의 새는 2절의 정결한 짐승 중에 포함되어 계속되는 문장인 것이다. 즉 공중의 새 중 정결한 새는 암 수 일곱씩 태워졌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홍수기간 동안 방주 내에서 정결한 짐승들을 잡아 노아가 제사를 드리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창8:20)절에는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서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를 드리는 장면이 나온다. 만약 모든 동물이 한 쌍씩만 들어갔더라면 그 동물은 노아의 번제와 동시에 멸종해버렸을 것이다.

그러면 정결한 동물은 얼마나 될까? 반추동물들은 모두 일곱 쌍씩 들어갔는가? 유대학자들은 정결한 동물을 단지 굽이 갈라진 모든 반추동물들이 아니라, 큰 포유동물 중 단지 소수만이 해당된다고 말하고 있다. 신명기 14장에는 정결한 동물들이 나와있는데, 이들은 매우 소수인 것이다.        

Q13 공룡도 방주에 실었습니까? 실었다면 그 큰 공룡을 어떻게 방주에 실을 수 있었습니까? 

오늘날 생존하는 동물뿐만 아니라 멸종하여 볼 수 없는 동물들까지 한 쌍씩 방주에 실었을 때에도 방주 전체공간의 1/3 공간에 해당될 뿐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멸종비율을 그대로 홍수이후 기간에 적용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실 동식물의 멸종은 산업혁명이후 환경오염의 심화로 가속화되었음으로 오늘날의 멸종비율을 일률적으로 수천년전까지 일정하게 적용하는 것은 무리이다. 진화론에서는 6천5백만년전에 공룡이 멸종하였고 인류는 400만년전에 출현하였다고 하지만, 인류와 공룡이 동시대에 같이 살았었다는 많은 기록과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일부 공룡들도 노아의 방주에 탔었음이 틀림없다. 물론 방주에 타지 못한 많은 공룡들은 노아의 홍수기간에 죽어갔을 것이다. 공룡은 668 종의 속(genera)이 있다고 하며, 10톤 이상의 공룡만 106종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공룡 속의 숫자는 다소 과장된 것으로 생각된다. 일례로 브라키오사우르스, 아파토사우르스, 디플로도커스 등과 같이 매우 큰 공룡중의 하나인 사우로포드(sauropods)는 87종의 속이 있다고 알려져 잇다. 그러나 12속만 확실히 확립되었고, 또 다른 12속만이 비교적 확립된 정도인 것이다. 그러나 Woodmorappe는 관대하게 이들 공룡을 모두 계산에 포함시켰다. 공룡은 덩치도 크고 대식가이며, 배설물 또한 엄청난 양이기 때문에 방주에는 아마도 공룡의 새끼들을(또는 알) 태웠을 것으로 추정된다.【그림2-3,4,7 참조】또한 대부분의 파충류들이 날씨가 추워지면 동면하는 것처럼 그 당시 방주의 어두컴컴하고 탁한 공기 때문에 공룡도 마찬가지로 동면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공룡을 방주에 태우거나 사육하는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성경 창7:2)절에 암수의 표현이 "the male and his mate" 로 되어 있어 어린 동물이 어떻게 짝이 있는가. 그러므로 동물들이 성적으로 성숙했음을 암시한다고 말하면서 어린 동물들을 태웠음을 부정하나, 창6:19), 창7:3), 창7:9), 창7:16)절에는 암수의 표현이 "male and female"로 되어 있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Q14 노아는 암 수가 같은 모양의 동물들은 어떻게 구별하였습니까? 

많은 동물들은 외부적으로 암 수의 구별이 쉽지 않다.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관찰한다면 암 수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구별해 낼 수 있다. 실례로 과학적으로 교육을 받지 않은 중국의 사냥꾼도 팬더곰의 암 수를 생김새와 행동의 약간의 차이로 구별할 수 있다고 한다. 조류의 경우도 깃털의 미묘한 차이나 번식기의 행동으로 암 수를 구별할 수 있으며, 쌍을 이룬 것은 같이 생활을 할 때가 많다. 노아가 동물격리장소를 만들어 동물을 모으고 있었다면 그곳에서 충분히 관찰할 수 있었을 것이고, 쌍을 이루어 후손을 낳을 수 있는지 확인한 후 방주에 태웠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또한 암수의 구별이 어렵고 무성생식을 하기도 하는 곤충들과 벌레들은 방주에 타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의 암수를 어떻게 구별하였겠는가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Q15 방주 내에서 수많은 동물들이 1년여 동안 먹을 먹이와 물은 엄청난 양일텐데 그 양은 도대체 어느 정도이며, 어떻게 저장할 수 있었습니까? 

노아의 방주에 들어간 16000 마리의 동물들이 홍수기간인 371일 동안 먹을 물과 먹이는 도대체 어느 정도의 양이며 그것을 노아가 과연 준비할 수 있었을까? 먹이들은 1년이 넘는 기간동안 냉장고도 없이 어떻게 부패되지 않고 보관될 수 있었을까?     

(Q7) 에서도 논의했지만 동물들이 동면에 들어간다면 이것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만나(출16:14~36), 사르밧 과부에게 주신 가루와 기름(왕상17:14~16)처럼 하나님의 특별하신 돌보심이 있어 기적적으로 먹이들이 공급되어진다면 더욱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아니라면 그것은 도저히 준비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인가?          

Woodmorappe는 동물들의 실제 소비하는 먹이량과 음수량 등을 동물원에서의 자문과 방대한 자료와 문헌 등을 통해 자세히 조사한 후 저장해야할 먹이와 물의 양, 그리고 부피를 계산하였다.(13) 먼저 먹이는 부패를 막기 위해 건조상태에서 저장되었을 것임으로 건조중량으로 총 1990톤으로 추정하였다. 건조 시 수분함량이 10~20 %는 남아 있을 것으로 보아 실제 방주에 저장한 먹이의 무게는 2200 ~2500톤으로 추정하였고, 이때의 부피는 3~6000 m3으로 이것은 방주부피에 6~12%를 차지하는 용량임을 보고하였다. 저장한 먹이는 주로 밀, 보리, 콩, 귀리 등의 곡류, 건초, 각종 식용씨앗, 압축한 건초펠렛, 말린 고기, 말려서 압축한 고기나 분쇄한 가루, 말린 과일, 말린 생선, 말린 벌레, 시럽, 설탕, 소금...등이었을 것이다.

또한 방주 내에서 마실 물의 량은 4.07ML(million liters)로 계산하였다. 이는 4,070m3의 용량으로 방주용량의 단지 9.4%에 해당하는 부피이다. 그러나 노아가 방주 지붕에 빗물을 받아 음수로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었다면 이 양은 대폭적으로 감소될 수 있다. 사실 노아의 방주는 다른 배와 특이하게 지붕이 있는 배임으로, 빗물의 고임에 의한 하중을 견디기 위해서라도 지붕을 경사지게 만들었을 것이고 이 경우라면 홈을 만들어 흘러내린 빗물을 필요에 따라 방주 안으로 끌어들이는 일은 매우 간단하였을 것이다. 또한 홍수초기 40일 동안 주야로 집중적인 강우가 있은 후, 홍수 나머지 기간에도 간간이 비가 왔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화산 등의 폭발로 바다의 온도가 따뜻하여 증발량이 매우 많았을 것으로 추정하기 때문이다.      

여하간 이러한 가능성까지도 배제하고 홍수 처음부터 끝까지 방주 내에 물을 싣고 사용하였다고 가정하고 먹이와 물, 그리고 동물들이 차지하는 부피를 계산하면 다음과 같다. 동물의 수는 정확히 알 수 없음으로 최대 35,200 마리의 동물이 탓을 경우 이들이 차지하는 부피는 방주용량의 28%이고, 16,000마리의 동물이 탔다면 용량은 13% 임으로 (Q5 참조), 먹이 6~12%, 물 9.4%와 함께 이것들이 차지하는 방주내 공간은 28.4~49.4% 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방주는 동물들과 함께 먹이와 물을 충분히 실을 수 있는 공간을 갖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방주의 크기는 실을 화물의 중량과 부피에 따른 선박의 안전성, 효율성 등을 따져볼 때 더 커서도 안되고, 더 작아도 안 되는 매우 적절한 크기로서 방주가 한낱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존재했던 배였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Q16 육식동물들은 방주 내에서 다른 동물들을 잡아먹고 살았습니까? 

다른 동물을 잡아먹고 사는 육식동물들은 방주 내에서 무엇을 먹고살았을까?  한 쌍의 동물들만 들어갔는데 육식동물이 잡아먹고 나면 그 종은 멸종되는 것인가? 먹이 피라미드 아래에 있는 동물들은 잡혀 먹히기 위해서 방주에 승선했는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동물들의 육식이 홍수 후에 시작되었다고 본다면 이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동물들의 육식이 홍수 전에도 있었다고 하더라도 방주에 탄 동물들의 상당수가 동면에 들어가 있었을 경우에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모든 경우가 아니더라도 그들을 위한 먹이의 준비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Woodmorappe는 오늘날의 육식성 동물들을 모두 조사하여 방주에 탄 육식동물의 수를 7 목(order)의 약 2000마리 정도로 추산하였는데, 이들 육식동물이 홍수기간동안 필요한 먹이를 332톤으로 계산하였다(전체 사료의 1/6 정도).(14) 물론 육식동물들이 방주에 탄 동물들을 잡아먹게 하는 일은 절대로 없었을 것이고, 냉장고도 없는 상태에서 몇 일 후면 썩어버릴 고기를 아무런 가공처리 없이 준비하였을 리도 없다. 노아가 이런 준비도 없이 방주에 동물들을 태울 정도로 바보가 아닌 것이다. 사실 이러한 부분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고의적이고 악의적으로 성경을 비판하는 자들이다. 고기들은 철저히 말려져서 건조된 상태에서 준비되었을 것이고, 고기, 내장, 피, 밀기울, 곡식가루 등으로 케이크를 만들어 말려진 후 비스켓처럼 제공되었을 것이다. 실제 이러한 먹이는 많은 사냥꾼들이나 동물원에서도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방법인 것이다. 또한 많은 물고기나 해산물들이 소금에 절여지거나, 말려져서 준비되었을 것이고, 어쩌면 일부 공간에서 개구리나 달팽이 같은 것들이 먹이용으로 사육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설치류와 같이 임신기간이 짧아 방주 내에서 태어난 많은 동물의 새끼들 중 일부는 먹이로 제공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Q17 뱀, 팬더, 코알라, 세발가락 나무늘보, 벌레를 먹는 동물, 과일을 먹는 동물 등과 같이 특수한 먹이만을 먹는 동물들은 어떻게 먹이를 조달할 수 있었습니까? 

특별한 먹이를 먹는 동물들은 어떻게 방주 안에서 먹이를 구했을까? 뱀들은 오직 살아 있는 것만 먹는다고 하는데 어떻게 먹이를 구했을까? 물고기를 먹는 동물, 과즙이나 과일을 먹는 동물, 벌레를 먹는 동물들은 어떻게 살아갔을까? 팬더곰이나 코알라처럼 한가지 나뭇잎만 먹는 동물들은 어떻게 방주 내에서 살았을까? 팬더(panda)곰은 대나무의 새로 난 순(bamboo shoot)을 먹으며, 코알라(koala)는 eucalyptus의 잎을 먹고, 세발가락 나무늘보(three-toed sloth, Bradypus)는 cecropia 잎을 먹기 때문에 이들의 먹이 공급은 불가능한가? 정말 그런가? 이러한 의구심들에 대해 생각하여 보자.

 사실 이러한 특별한 먹이만을 먹는 현상들은 홍수 후에 생긴 식습관일 가능성이 크다. 지역과 기후변화에 따라 자기가 살던 지역의 풍부한 동식물을 주식으로 하다가 굳어진 식습관일 가능성이 큰 것이다. 실제로 영장류인 Hapalemur는 매우 심하게 대나무 중심의 식생활을 하는 반면 유사한 다른 종들은 거의 대나무를 먹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을 배제하고 이들이 홍수 전에도 오늘날과 똑같은 식습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들은 먹을 수 있는 먹이가 없어서 방주 내에서 굶어 죽어야만 하는가?

뱀은 정말 살아있는 동물만은 먹는가? 뱀은 20세기초까지의 문헌에는 죽은 동물을 먹을 수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뱀이 살아 있거나 식지 않은 먹이만을 먹는다는 것은 오해인 것이다. 뱀은 쉽게 죽은 동물을 먹을 수 있도록 훈련될 수 있으며, 야생의 뱀도 배가 고플 경우에는 죽은 동물을 먹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또한 뱀은 껍질이나 썩은 고기도 먹을 수 있으며, 이스라엘 살모사(Pseudocerastes)는 썩은 고기를 더 좋아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뱀은 쉽게 건조된 펠렛(pellets) 사료에도 적응되는데, 베트남 땅군들에게 잡힌 코브라들은 건조된 펠렛사료로 잘 사육되고 있는 것이다. 팬더곰은 대나무순을 좋아하지만 포획 후에 쉽게 여러 먹이를 먹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며, 특히 쌀로 만든 오트밀죽을 잘 먹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또한 붉은 팬더는 대나무순의 공급 없이도 포획 후 상당기간을 지냈으며 아예 안 먹고도 살 수 있었음이 보고되고 있다. 팬더곰이 대나무순을 좋아함으로 이것이 없으면 죽는다는 생각은 과장된 생각인 것이다.

코알라는 비교적 먹이를 eucalyptus의 잎(= blue gum leaves)에 의존하고 있다. 그렇다고 다른 식물을 먹지 않는 것은 아니다. 코알라는 주로 eucalyptus를 먹지만 monterey pine도 잘 먹으며, 20여종의 gum leaves들을 먹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나무는 호주가 원산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여하간 신선한 eucalyptus의 잎이 없다면 코알라의 먹이공급은 불가능한가? 먼저 홍수 전에도 코알라가 eucalyptus의 잎만을 먹었는지를 알지 못한다. 대체식물이 있었을지도 모르며, 홍수 후에 생겨난 식습관일지도 모른다. 실제 과거에는 코알라가 eucalyptus의 잎 이외의 식물들도 먹었다는 기록들도 있고, 포획된 코알라는 사료로된 비스켓을 상당량을 먹는다는 기록도 있다. 코알라도 유아기 10개월 정도는 우유에 의지하며, 우유와 곡식가루, 우유와 빵을 혼합한 먹이로 상당기간 키웠으며, 이렇게 자라난 어린 코알라는 매우 다양한 음식을 먹는다는 기록도 있다. 또한 노아의 방주 내에 eucalyptus의 잎이 건초로 저장되었을 수도 있으며, 코알라가 건초로 eucalyptus의 잎을 먹고도 살 수 있다는 것은 코알라가 유럽 최초로 1880년 호주로부터 영국 동물원으로 수개월에 걸쳐 배로 수송되었을 때 확인되었다. 노아가 동물격리장소에서 관찰도중 코알라의 식습관이 생명에 지장이 있다는 것이 발견되었다면 이에 대한 준비를 하였을 것이다.         

세발가락 나무늘보는 우리에 갇혀 사는 생활을 잘 견디지 못하는 동물중 하나이다. 그래서 이 동물은 포획 후 상당기간을 동물이 살던 장소에서 다루어야 한다. 이것이 몇몇 사람들에게 세발가락 나무늘보는 cecropia 잎에 식사를 의존하기 때문에 우리에 가두어 키우는 것이 어렵다고 잘못 전해지게 되었고, 이것이 다시 노아의 방주를 비판하는 재료로 사용되게 되었다. 실제 세발가락 나무늘보는 다양한 식물들을 먹으며, 어떤 종들은 오히려 cecropia 나무근처에는 가지 않음이 보고되고 있다.

벌레를 먹는 동물들을 위한 준비도 하였을 것이다. 많은 벌레들과 곤충들이 말려져서 보관되었을 것이다. 미국 인디안들은 잘 말려진 메뚜기와 열매, 견과류, 씨앗 등을 섞어 케이크로 만들어 오랜 기간 식량으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노아도 수 톤의 말려진 벌레들을 준비했을 것이다. 또한 과일이나 과즙을 먹는 새나 동물들을 위하여 충분한 량의 과일이나 과즙이 건조되어 시럽이나 젤리, 설탕 등으로 보관되었을 것이고, 이들은 물에 불리거나 타서 제공되었을 것이다(15).    

Q18 모든 동물이 창조시에 초식을 하였다면 육식에 필요한 송곳니는 왜 만들어졌습니까? 

성경에 의하면 모든 동물은 식물을 먹도록 창조되었고, 죽음과 죄는 아담이 범죄하기 전까지는 없었으며, 모든 것들은 보시기에 좋았다고 기록되어 있다(창1:31). 그러나 많은 동물들은 육식을 위한 여러 신체적 특징을 갖고 있으며, 치명적인 독을 가지고 있기도 하며, 고안된 방어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것은 어떻게 된 것일까. 성경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상세히 말해주고 있지는 않지만, 여러 상황들을 종합하여 합리적인 추론을 하여볼 수는 있다.      

첫째, 하나님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이미 아시고 동물을 창조하실 때 육식에 필요한 기능들을 미리 만들어 놓으셨을 수 있다. 둘째, 육식에 필요한 기관들은 원래에는 다른 어떠한 양성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실제 날카로운 송곳니는 단단한 열매를 자르거나 껍질을 벗기는데도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셋째, 아담의 범죄 이후 유전적 변화가 일어나 만들어졌을 수 있다. 최초의 동물들은 초식동물로 만들어졌으나, 땅이 저주를 받아 거친 환경 속에서 변화와 적응이 일어나 육식동물로 변화되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넷째, 천사장 이었던 루시퍼가 타락하여 쫒겨난 후 하나님의 아름다운 창조물들을 파괴하기 시작하면서 변화되었을 수 있다.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범죄케한 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의 모습이 바꿔지고, 하나님의 창조능력을 흉내낸 사탄에 의해서 사람과 동물과 식물에 유전적 변형이 일어나고 서로 물어뜯고 죽이는 형상으로 바꾸어 놓았을 가능성이다.          창세기 3장에는 사람과 동식물이 저주를 받아 강력한 유전적 변형이 일어났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들이 저주를 받고(14절), 뱀은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게 되고(14절), 식물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고(18절), 하와의 신체도 변화되어 잉태하는 고통이 따르게 되고(16절), 땅도 소산이 줄어드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던 것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던 세상은 이제 죽음과 고통의 모습으로 바뀌었고, 아담은 자기의 잘못으로 저주받은 세상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였던 일을 뼈저리게 후회하였을 것이다.     

Q19 방주 내에 동물들의 배설물은 어떻게 처리되었습니까?  

매일 동물들은 엄청난 양의 배설물들을 생산할텐데 이들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냄새, 가스, 해충들을 어떻게 관리했을까? 이것들을 8명이 처리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앞에서도 논의했지만 동물의 많은 수가 동면에 들어간다면 배설물의 양도 적을 것이기 때문에 이것도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동면하지 않았어도 8명으로도 배설물의 처리는 가능할 수 있다.   

Woodmorappe는 많은 자료들을 참고하여 16,000마리의 동물들이 매일 배설하는 분변의 양을 하루 12톤으로 계산하였다. 동물의 분변은 평균 87%가 물이기 때문에 건조물로서는 1.57톤의 양이다. 이 양은 하루 5.32톤(371일 동안 1990톤의 건조식량)으로 제공된 건조 식량의 70.5%를 소화하고 나머지를 배설한 수치로, 농축사료로 제공되었을때 대부분의 동물들이 보이는 소화율과 일치한다. 노아의 방주에는 이러한 배설물을 처리할 수 있는 구조들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케이지 바닥에 경사판을 설치하여 큰 통으로 모은 후 관을 통해 방주 밖으로 처리하는 방법, 장기간 동안 교체하지 않는 두꺼운 깔짚을 깔아주는 방법, 두껍게 흙을 깔아주는 방법, 물은 걸러서 흘려버리고 고형분은 퇴비를 만드는 방법 ...등이다. 이러한 일들을 더욱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 맨 아래층에는 동면을 하거나 배설물을 적게 생산하는 그룹으로, 맨 윗층은 배설물의 양이 많은 그룹으로 나누어 승선시켰을 가능성이 크다.(16)

Q20 방주 내에서 배설물로 인한 냄새와 악취, 유독한 가스 등에 대한 환기는 적절했습니까? 

방주내의 동물들은 배설물들로부터 발생된 메탄, 이산화탄소, 암모니아 등의 가스 때문에 고통을 받았는가? 이러한 생각은 방주에 가로 세로 한 규빗(45cm) 정도의 작은 창이 하나만 있었다고 오해함으로 생긴 생각이다. 그러나 이것은 방주의 크기를 생각해 볼 때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창6:16)에는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라고 되어 있는데 창문의 개수는 알 수가 없다. 성경학자인 Ben-Uri는 방주의 창은 처마밑으로 길게 연속적으로 나있는 구조일 것이라고 하였다. 이 구조는 실제 많은 동물들을 사육하는 농장에서 사용하는 창의 형태이다. 높이 13.5m의 공간에 위로부터 45cm의 크기로 연속적으로 나있는 창은 양돈장, 양 우리 등의 창 크기와 비교하거나, 바다에서의 비교적 빠른 바람, 온도유지, 방주 내 동물수 등을 고려하여 볼 때 매우 적합한 크기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한 외부의 신선한 공기의 유입을 위해서 방주의 중간 중간에는 천장으로부터 연결되어진 공기유입관들이 설치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창과 공기유입관들은 필요에 따라 개폐나 크기가 조절될 수 있는 구조였을 것이다. 방주 내가 동물들의 배설물의 냄새로 고통을 받으며, 산소부족으로 숨쉬기도 힘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노아의 방주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과장으로 인한 오해인 것이다.(17)             

Q21 방주 내 동물들은 너무 밀집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까? 

방주 내에 16,000 마리의 동물은 너무 과도하게 밀집되어 있어 방주 내는 동물들이 발생하는 체온으로 찜통이었을 것이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먼저 동물들의 생체량을 파악하여야 한다. Woodmorappe는 16,000 마리의 동물들이 내는 열발생 생체량(biomass)은 241톤으로 계산하였는데, 방주 용적은 43,200 m3 임으로, 방주내 열생산 생체량은 5.58 kg/m3으로 계산된다. 이 수치는 밀집되지 않은 가금우리의 2.75 kg/m3 에 비해서는 2배 정도의 수치이나, 말들이 있는 마구간의 16.2 kg/m3에 비해서는 1/3 수준이며, 소들이 있는 외양간의 1/2~1/5 정도 수준이다. 오늘날 현대식 시설을 갖춘 양계장의 경우는 16 kg/m3 이며, 양돈장의 경우는 37 kg/m3 정도로 보고되고 있다. 그러므로 방주 내 동물들은 매우 적절한 공간에서 생활한 것으로 생각되며, 너무 밀집되어서 동물들의 체온으로 찜통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막연한 추측이요 오해인 것이다.(18)               

 Q22 굴을 필요로 하는 동물, 발굽이 자라는 동물, 뿔이 있는 동물들은 어떻게 지냈으며, 방주 내 동물들은 운동 없이도 1년여의 기간을 지낼 수 있었습니까? 

굴속에서 사는 동물들은 흙을 담아줘야만 하는가? 굴속에서 사는 동물의 대부분은 굴이 없어도 적어도 일년동안은 생명에는 전혀 지장 없이 살 수 있다. 오늘날의 몇몇 동물원에서 이들 동물들은 콘크리트 바닥에서 키우고 있는데, 이들의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우리 일부를 캄캄하게 만들어 빛을 차단시켜 주면 전혀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굴속에서 사는 동물들은 포획하여 동물원에서 사육 시 곧 그 습성이 바뀌는 것이 확인됐는데, 설치류인 마못류(pacas)와 게르빌루스쥐는 굴속에서 사는 습성을 곧 잃어버렸으며, 남미의 야행성 포유동물인 아르마딜로는 짝짓기 시에만 어두운 장소를 필요로 했고, 호주산 유대동물인 웜뱃은 포획 후 굴이 없이도 온도만 올라가지 않으면 잘 적응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러므로 방주에 거추장스럽게 따로 굴을 파줄 필요는 없었을 것이고, 방주 깊숙한 곳에서, 필요에 따라 빛이 차단되는 상자 속에서 이들 동물들은 잘 견디었을 것이다.

또한 코뿔소와 같이 뿔이 있어 위험한 동물들은 동물격리장소에서 미리 잘라주어 수송에 불편함이 없도록 하였을 것이고, 발굽이 있는 동물들은 바닥이 너무 딱딱하거나 부드러울 때 발굽에 손상을 입는데, 노아도 고대 로마인들이 했던 것처럼 마루바닥에 흙을 깔아주는 등 적절한 표면처리를 하여 발굽손상을 예방하였을 것이며, 설령 준비를 못했다 하더라도 발굽의 자람은 그리 치명적인 손상이 되지 않는다. 또한 동물의 운동문제인데 방주 내 작은 동물들은 갇혀 있는 장소에서 충분히 운동할 수 있었을 것이며, 문제는 큰 동물들인데 소형 동물원이나, 실험동물 사육실, 서커스 동물우리 등에서 지내는 큰 동물들은 오랜 기간 운동 없이도 우리안에서 잘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노아방주 안에 이들 동물들을 위한 운동공간이나 트랙이 존재하여서 정기적으로 운동이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19)

 Q23 노아는 역청(pitch)을 어디서 구했습니까? 

성경을 비판하는 자들은 역청은 석유나 석탄으로부터 만들어지는데, 노아의 시대에는 석유나 석탄이 발견되지 않았을 것임으로, 노아는 역청을 구하지 못했을 것이고, 노아의 방주는 방수가 안되어 물이 새어 들어왔을 것이다 라고 주장한다. 노아는 역청을 어디서 구했을까?

역청은 코올타르를 가열 증류할 때 남겨지는 검은색의 아교와 같은 끈적끈적한 물질로서 아스팔트와 유사한 물질이다. 오늘날 역청은 일반적으로 석탄을 가열할 때 만들어진다. 사람들은 석유나 석탄 외에 역청의 다른 출처를 대부분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역청은 나무(wood)를 가열하거나 증류할 때도 만들어지는 것이다. 석유와 석탄산업이 발달하기 전에 이미 역청을 만드는 방법이 존재했던 것이다. 적어도 천년 동안은 유럽에서 역청을 만드는 산업이 발달해 있었다. 거대한 목조 선박들을 만드는데 역청제조는 반드시 필요했고, 유럽 역사 도처에 기록되고 있다. 역청제조는 어느 정도 기술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많은 유럽사람들의 성씨에도 그 흔적들이 남아 있다. 폴란드에서 역청이나 타르를 의미하는 "smola"는 "Smola, Smolander, Smolen, Smolenski, Smolarz" 등으로, 독일에서 역청을 의미하는 "teer"는 "Teer, Teerman" 등으로, 영국에서는 "Pitcher, Tarrier, Tarmen" 등으로 성씨에 남아 있는데, 이들은 역청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역청은 울창한 숲에서 나무의 송진(resin)을 채취하면서 시작된다. 비스듬히 홈을 파 송진이 흘러내리게 한 후 나무밑에 용기를 두어 채취한다. 송진채취는 지금도 폴란드, 우크라이나, 러시아, 핀란드 등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송진채취가 끝난 후 나무를 잘게 잘라 흙으로 덮은 후 천천히 태워 숯(charcoal)을 만든다. 역청을 만드는 마지막 단계는 송진을 끓이면서 숯가루를 배합하는 것이다. 숯가루의 배합율에 따라 다른 성질을 가지는 역청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역청은 대양을 항해하는 목조선박의 방수를 위해 칠해졌던 것이다.

노아가 이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역청을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석유와 석탄이 없어도 역청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노아 이전에 벌써 역청을 만드는 방법이 개발되어 전해 내려왔을  가능성이 크고, 방법이 없었다 하더라도 노아는 방주를 만들면서 많은 나무들을 벌목하고 다듬었을 것이고, 그 과정 중에 송진도 발견하였을 것이고, 송진을 다루다가 역청을 만드는 방법을 습득하였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Q24 노아의 방주가 아라랏산에 도착하였다면 실제로 목격한 사람들이 있습니까?  

노아의 방주를 발견했다는 기록은 고대와 중세의 많은 문헌에 나타나 있다.(20) 먼저 BC 275년경 베로수스는 바빌로니아라는 역사책에서 "아르메니아에 있는 고르디엔 산맥에는 아직까지 배의 일부분이 남아 있어서 어떤 사람들은 역청의 조각들을 가지고 와서 ...그것을 부적으로 사용했다" 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이 배의 일부분은 아르메니아에 아직 남아있으며... 사람들은 역청을 가져다가 부적으로 사용한다.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이 장소를 방주가 보존된 하강한 곳으로 부르며, 오늘날까지 그 곳의 거주민들에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고 기록하였다. 4세기경 살라미스의 주교 에피파네스는 "노아의 방주의 잔해가 쿠르드의 나라에서 지금도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 산기슭에서 노아가 방주를 떠날 때, 주 하나님께 정결하고 살찐 짐승을 희생 제물로 제사를 지낸 제단의 잔해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라고 하였으며, 초대교회 교부였던 요한 크리소스톰은 "노아의 방주가 있는 아르메니아의 산이 그것의 증거가 되지 않는가? 그리고 또한 노아의 방주 잔해가 요즘까지 우리에게 경고로서 거기에 남아 있지 않는가?" 라고 하였다. 15세기말 동방견문록의 저자 마르코 폴로는 아라랏산 근처를 통과하면서 "아르메니아 중앙에 아주 크고 높은 산이 있는데, 그 위에는 노아의 방주가 남아 있다고 하며 그래서 이 산은 방주의 산이라고 불리고 있다" 라고 기록하였으며, 1647년 아라랏산 근처에 살았던 아담 올리어리우스는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방주 잔해들은 단단하게 되어 그들은 완전히 석화된 것처럼 보인다. 우리들은 메디아 페르시아에 있는 샤마키에서 검고 단단한 나무 십자가를 보았는데, 그 곳 주민들은 그것이 방주의 나무로 만들어졌다고 확신하였다."고 하였다. 아마도 방주를  가장 많이 목격한 사람은  프랑스 보르도의 사업가, 페르난도 나바라 이다. 그의 첫 탐험은 1952년 8월로서, 세상에 방주가 존재하고 있다고 증거하는데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빙하의 얼음 덩어리 밑에 있는 배 모양의 거대한 검은 물체는 방주가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충분한 증거가 되었다. 1953년 7월에 터키 사진사, 알래딘 세커를 동반하고 두 번째 탐험을 하였다. 그러나 악천후로 인해 방주의 파편을 가져오거나 사진을 찍는데 실패했다. 1955년 6월에 세 번째의 탐험이 이루어졌다.  1955년에 나 바라는 그의 아내와 세 아들과 함께 터키에 돌아왔다. 여행의 목적은 오직 아라랏 산에 올라 방주를 보았거나 만져보았다는 결정적인 증거들을 가지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마침 1955년은 수십년만에 빙하가 가장 많이 녹는 해로 탐험하기에는 적당하였다. 아내와 두 아들을 뒤에 두고, 이제 11살인 그의 막내아들 라파엘과 함께 나바라는 아라랏 산에 등정하였다. 마침내 이 부자는 방주 사진을 찍었던 곳에 이르렀다. 나바라 혼자서 로프 사닥다리를 타고 빙하의 갈라진 틈으로 내려가서 흙 속에 묻혀있는 방주를 찾아냈다. 거기에는 잘 잘려지고 손으로 다듬어진 나무 버팀목들이 있었다. 상당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5피트의 나무 조각을 잘라내어 들어 올렸다. 이 파편이 실제 방주의 것인지는 파편의 연대에 달려있다. 나바라는 몇몇 관계 당국에 나무 파편들을 보냈다. 이집트의 농무성은 이 시커먼 나무 파편의 연대를 약 BC 5,000년이라고 추정하였으며, 재질은 참나무라고 발표했다. 또한 나바라는 카이로 박물관의 고고학부서에도 이 나무 파편을 보냈다. 카이로 박물관에서는 약 5,000년에서 6,000년 되었다고 발표했으며, 이들은 방사성 연대측정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방주를 탐사하는 데에는 아직도 상당한 어려움이 따르고 있었다. 정부의 통제, 신체적인 어려움, 악천후의 날씨, 각종 동물들의 공격, 빙하 등이 산 정상에 오르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하였다. 유대-로마 역사가인 조세푸스(Josephus)나 칼디안 역사가인 베로수스(Berosus)와 같은 고대 역사가들은 자신들의 저서에서 노아의 방주가 실존한다고 언급하였고, 마르코 폴로도 아르메니아의 산악지역에 노아의 방주가 있음이 보고되었다고 쓰고 있다. 서기 200 ~1700년대에 살았던 기타 십여명의 기독교인 그리고 유대교 지도자들도 노아의 방주가 자신들이 살던 그 시대까지도 실제로 보존되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1856년경 노아의 방주를 믿지 않는 세 명의 영국과학자들과 두 명의 아르메니아 안내자들이 방주가 존재하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아라랏 산에 올랐다. 방주는 아마도 발견되었던 것 같은데, 영국과학자들이 현지 안내자들에게 사실을 그대로 보고하면 죽이겠다는 협박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몇 년이 지난 후 당시 미국으로 이주하여 살고있던 등반안내원인 아르메니아인중 한사람과 등반에 참가했던 영국인 과학자중 한 사람이 따로 따로 자기들이 등반당시 노아의 방주를 찾았었다고 보고했다.

19세기의 유명한 영국의 학자이며 여행가인 제임스 브라이스 경은 방주에 관한 대규모의 자료수집과 연구를 수행했다. 이 연구 후 그는 방주가 아라랏산 어딘가에 보존되어 있다고 확신케 되었다. 결국 1876년 그는 아라랏 산 정상까지 올랐고, 해발 13,000 피트 (timber line에서는 2,000 피트)에서 4 피트나 되는 손으로 만든 나무도구 조각을 발견했는데, 그는 이를 방주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했다.

1883년 일련의 신문기사들은 일단의 터키 위원회회원들이 이상기후로 유난히 더웠던 그 해 늦여름에 아라랏산의 산사태 상황을 조사하던 중 얼음 덩어리 밖으로 삐쭉 튀어나온 방주를 발견케 되었다고 보도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직접 방주의 잔해 안으로 들어가 조사했었다고 주장했다.

유별나게 무더웠었던 1902년 여름, 조지 하고피안이라는 한 아르메니안 소년과 그의 삼촌이 아라랏 산을 등반했는데 앞서 보도되었던 얼음 덩어리 밖으로 튀어 나와있던 방주의 잔해를 찾았다. 그 소년은 방주 위로 올라갔었으며, 그것을 자세히 조사해보았다. 1904년에 이 소년은 그 방주를 다시 한번 방문했다. 1972년 그가 죽기 직전, 그의 증언이 자세히 녹음되었다. 이 녹음 테이프는 음성분석시험을 통과했는데, 이는 그의 증언이 상당히 신뢰할 만함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1차 세계대전 중 아라랏산 상공을 비행했던 한 러시아 조종사는 자신이 방주를 보았다고 생각했다. 그의 발견소식은 러시아황제에까지 보고되어, 그 장소로 대규모의 조사단이 파견되었었다. 군인들은 그 배를 발견하여 조사까지 했으나, 그 결과가 황제에게 보도되기 전에 1917년의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다. 그들의 보고서는 분실되었고 그 조사대의 군인들도 흩어졌다. 그들 중 몇 명은 미국에 정착케 되었는데, 그들의 얘기를 들은 많은 그들의 친척들과 친구들이 이러한 사실을 확인했다.

1916년 다섯 명의 터키 군인들이 아라랏 산을 가로지르는 중에 방주를 보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들은 30일이 지나서, 자신들이 한 미국 탐험대를 그곳으로 안내할 때가 되어서야 이 얘기를 밝혔다. 그 탐험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으며, 그들의 활약상은 그들이 죽은 후까지도 추적되지 않았다. 1943년 7월, 미 육군 중사인 에드 데이비스는 이란에 근무하고 있었다. 거기서 그는 루드족 친구를 사귀게 되었는데, 그에게서 노아의 방주가 지척에서 볼 수 있을 정도로 아라랏산에 보존되어 있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데이비스가 이 방주에 대해 물어보았을 때 저들은 그를 먼저 자신들의 마을로 데리고 갔다. 거기서 그는 방주의 몇 가지 잔해들을 보았다고 주장했는데, 이 잔해들은 마른 콩, 양 지팡이, 기름 램프, 그릇 종류, 아직도 꿀을 담고있는 항아리였다. 이 모슬렘 족들은 이 방주를 외부사람들로부터 보호해야함을 자신들의 종교적 의무로 생각했었고, 필요하면 죽이기까지도 불사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저들과 예외적으로 친했었던 관계로 데이비스는 살아 나올 수 있었다. 그 부족의 지도자였던 아바스-아바스(Abas-Abas)와 데이비스의 친구였던 그의 아들은 제 삼일째에 아라랏산의 북동쪽을 등반했다. 급하고 미끄러운 바위와 설상가상으로 내린 비로 인해 그들은 방주에 0.5 마일 이내로 접근할 수 없었다. 안개와 구름이 걷히자 그들의 좌우로 약 0.5 마일 가량씩 떨어져있는 두 개의 방주의 부서진 잔해를 볼 수 있었다. 나무기둥들, 갑판, 그리고 방들을 볼 수 있었다. 아바스-아바스는 데이비스에게 방주에 대해 상세하게 말했다. 사용된 나무는 아주 단단한 나무이며, 방주 건조에 못 대신 나무못이 사용되었고, 대형 옆문은 헛간의 바깥문같이 배의 밑 부분에서부터 위로 열리게 되어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사용하는 지역은 최상갑판의 중앙에 48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985년에서 1986년까지 데이비스는 약 80여명의 방주 연구가들과 7가지의 광범위한 면담식 질문회의를 성공적으로 통과했으며, 1989년 거짓말탐지기의 시험을 통과했다.

석유탐사 지질학자인 조지 그리인은 1953년에 헬리콥터에서 방주의 사진을 몇 장 찍어왔고, 방주의 그림을 몇 장 그려왔다. 미국으로 귀환하는 여행 중에 그리인은 자신의 사진과 그림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육상탐험을 위한 후원금을 모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러다 그는 남아메리카를 여행 중에 죽었다. 비록 그의 사진과 그림들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30명 이상의 사람들이 산 절벽의 한 모퉁이에 위치한 녹고있는 얼음덩이로부터 돌출되어 나와있는 방주를 분명히 보여주는 사진들을 보았다고 증언했다.

그레고르 슈빙햄머는 1950년 말에 터키의 아다나에 위치했던 428 전략비행연대에 속해 있을 당시 F-100 비행기로 비행중 방주를 보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슈빙햄머는 그 방주가 마치 아라랏산의 높은 곳에 위치한 작은 골짜기에 누워있는 거대한 상자처럼 보였다고 증언하고 있다. 아라랏산 탐험자인 윌리암 크로스와  "산 위 매우 깊은 협곡에 보이는 거대한 기차화물칸이나 또는 직사각형 배" 처럼 생긴 방주를 목격한 조종사인 공군 대위 그레고르 슈빙햄머 사이에 우연치고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다름아니라 크로스가 방주의 목격자 하고피안 아래에서 아라랏산을 탐험했던 엘프레드 리가 그린 방주 전경 스케치를 담고 있는  '노아 방주 탐험' 이란 제목의 소책자를 슈빙햄머에게 보냈을 때에 일어난 것이다. 전에 한번도 방주의 사진을 보지 못했던 슈빙햄머가 그가 보았던 방주를 그려달라고 그의 친한 사람중 한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부탁했다. 산 정상의 눈 속에 묻혀있는 방주와 비행기에서 보면 아주 작아 보이지만 배의 상판을 따라 있는 창문만 빼놓고, 보통 세상에서 볼 수 있는 직사각형 배 모양을 하고 있는 방주의 두개의 모양은 똑같았다. 그러나 두 개의 그림사이에 일어났던 우연의 일치는 방주가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자료로서가 아니라, 단지 같은 물체를 보고 그렸다는 증거일 뿐이다.  

 
2 노아 홍수는 역사적 사실인가? 

 2. 대홍수

 Q1 노아 대홍수의 이유와 목적은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창 6:5-7)......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 보신 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 이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창 6:11-13)"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죄악이 관영하고,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고, 강포가 가득하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함께 이 세상을 물로 쓸어버리시고, 노아로 말미암아 새롭게 출발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노아의 홍수는 타락한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시기 위함이므로 일부 지역의 홍수가 아니었다. 패괴와 강포가 가득한 땅에서 범죄한 인류중 일부만 멸망시키고 남은 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죄악된 길을 계속 가도록 허용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 (창 6:7)",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창 6:17),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육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호흡을 기식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 (창7:21-23)  【그림2-9 참조】

세상 끝날 예수님의 재림시 이 땅의 사람들은 죄악으로 멸망하여 버린 노아시대의 사람들처럼 주님의 심판의 경고를 조소하며, 무관심할 것임을 경고하셨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하여 저희를 다 멸하였느니라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눅17:26-30).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후서 3장 3-7절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그러므로 노아의 홍수는 불의한 자들의 죄를 심판하시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노아를 구원하시는 과정을 통하여 마지막에 있을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과 십자가 구원의 복음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2-9. 하나님께서 물로 심판하실 때 방주에 타지 못한 생물들은 모두 익사하였다.

 Q2 노아 대홍수의 기간은 얼마입니까? 

성경은 노아홍수의 사건을 창세기 6, 7, 8, 9장에 걸쳐 매우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특히 홍수가 진행되어진 날자들을 매우 상세히 기록하여 놓고 있는데 이것은 노아의 홍수가 설화나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일어났던 일임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홍수는 노아가 육백세 되던 해 (약 BC 2,350년경으로 추정. 이 연대는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연대가 있을 수 있음으로 오차 가능성이 있음 )에 일어났는데, 노아가 방주 내에 있었던 기간은 일년이 넘는 371일 이었다.     

  480세 :

      대홍수 경고(창 6:13)

 

  600세 :

      홍수 시작(창 7:11-14)

  

 

      2월 10일

방주에 들어감. 7일을 기다림.

 

      2월 17일

40주야간 비가 내리기 시작.  

 

 

150일간 땅에 물이 창일

 

      7월 17일

방주가 아라랏산에 도착. 물이 감하기 시작.  

 

      10월 1일   

산들의 봉우리가 보임

 

      11월 19일

비둘기를 내보냄. 감람 새 잎사귀를 물고 옴.

  601세 :

      1월 1일       

방주 뚜껑을 제침

 

      2월 27일  

땅이 말랐으며, 방주에서 나옴.

 Q3 노아의 대홍수는 전 세계적으로 일어났음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노아의 홍수는 결코 지역적이 될 수 없고, 전 세계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지구 표면에 나타나 있는 여러 가지 현상들과 증거물들이 이것을 증명하고 있다. 노아의 홍수가 전 세계적 홍수였음을 증명하는 몇 가지 사실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1) 성경적 증거

   1) 노아홍수의 크기와 기간이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홍수로 인하여 천하에 높은 산이 다 덮였으며, 홍수가 1년 이상 지속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2) 노아홍수가 지역적이라면 거대한 방주를 지을 필요가 없다. 방주의 규모는 한 지역에 분포된 동물만을 싣기에는 엄청나게 큰 것이었다. 만일 지역적 홍수였다면 노아의 식구들과 동물들은 고산지대로 피하든지 이웃지역으로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43,200 m3의 용량을 가진 거대한 방주를 120년에 걸쳐 축조한 이유가 없다.

   3) 노아홍수가 지역적이라면 모든 동물을 방주에 태울 필요가 없다. 다른 지역에 사는 같은 종의 동물들이 얼마든지 있는데 굳이 종류대로 동물들을 태울 필요가 없다. 그리고 노아가 사는 중동지역에서만 사는 동물이 있어 구해내야 한다면 방주가 너무 크다.

   4) 노아홍수가 지역적이라면 새들을 태울 필요가 없다. 홍수시 새들은 다른 지역의 산으로 날아가면 된다. 굳이 방주에 탈 필요가 없다.

   5) 예수님과 사도들의 증언이 있다. 베드로(벧후 2:5, 3:6)와 바울(히11:7)은 물론, 예수님께서도 노아의 대홍수가 온 인류를 멸망시켰다고 증언하고 계신다 (눅17:26~30).

   6) 노아홍수가 지역적이라면 홍수를 겪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죄에 대한 심판을 받지 않았다는 결과를 가져오고,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에 어긋나며, 장차 예수님의 재림 시 심판을 피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7) 노아홍수가 지역적이라면 하나님이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시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실 필요가 없다.  

 (2) 지질 지형학적 증거

   1) 지구 표면 중 75%이상이 물에 의해 만들어진 퇴적지층이다.

   2) 세계 도처의 고산지대에 바닷물호수인 염호가 존재한다.

   3) 퇴적층 넓이는 너무도 광범위하고, 퇴적물질의 성분은 매우 균일하다.

   4) 퇴적층 경계면은 거의 평행의 층리현상을 보이며, 전혀 풍화나 침식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다.  

   5) 오랜 침식에도 부정합 지층의 경계면은 너무도 깨끗하다.

   6) 부서짐 없이 일률적으로 휘어지고 뒤틀려진 퇴적지층들이 발견된다.

   7) 지향사 구조가 존재하는 등 지구지각에 엄청난 격변의 흔적들이 발견된다.

   8) 히말라야나 알프스 같은 높은 산맥에 조개류, 물고기류, 해초류 등의 바다생물의 화석이 발견된다.

   9) 아라랏산 4200m 부근에는 용암이 물에 급격히 식을때 만들어지는 베게용암이 발견된다.  

  10) 엄청난 화산들이 과거에 폭발했던 흔적들이 남아있다.  

  11) 지층에는 토양층이 결여되어 있고, 생물들이 살았던 흔적들이 없다.

  12) 광범위한 지역의 한 물질로만 구성된 사암층과 역암층은 거대한 홍수가 있었음을 증거한다.

  13) 강과 계곡들은 과거에 엄청난 물이 흘렀던 수로들을 가지고 있다.

  14) 파도나 물의 작용에 의한 층면 구조들이 존재한다.

  15) 지표면에 수억년된 고평원들이 오랜 세월의 침식에도 평탄한 모습으로 발견된다.

  16) 과거에는 해수면이 훨씬 낮았다는 증거들이 있다.

  17) 과거에 엄청난 바닷물이 증발한 흔적들(Salt Dome 등)이 남아 있다.

  18) 대양바닥에 물에 의해 침식된 모습의 해저캐년(submarine canyons)이 존재한다.

  19) 대양 속에서 길이 74,000km로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해저산맥(해령)이 발견되었다.

  20) 대양의 해저산맥은 로키, 안데스, 히말라야, 애팔래치아 산맥들과 평행하게 달리고 있다.

  21) 영구 동토지역에서 발견되는 매머드 사체는 지구에 대격변이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22) 시베리아 1200m의 깊이에, 알래스카 300m깊이에, 푸르드호만 570m 깊이에 엄청난 양의 나뭇잎, 소나무, 야자수나무 등 고대숲이 발견되었다.

  23) 최근 화산폭발 지역에서 하루에 7.5m의 지층과, 1~2년에 120m의 지층이 생성되는 것이 관찰됐다.

  24) 그랜드캐년도 대홍수에 의한 격변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증거들이 무수히 나오고 있다.         

  25) 지구 육지 표면의 80~85%는 진화론적인 순서대로의 3개의 연속적 지층을 가지고 있지 않다.

  26) 오래된 지층이 젊은 지층위에서 발견되는 곳이 지구상에 500여 지역이 넘는다.

  27) 세 개 지층의 순서가 바뀌어 있는 즉 공중에서 뒤집혀야만 설명이 가능한 충상단층이 발견되고 있다.  

  28) 루이스 충상단층은 길이 217 km, 폭 24km, 두께 4.8km의 덩어리가, 거대한 애팔래치아 산맥은 250km를, 마테호른산은 48~97 km를, 미텐산은 아프리카에서 지중해를 건너서 젊은 지층위로 올라갔다고 하는데 이동한 흔적이 없다.      

 (3) 화석학적 증거

   1) 오늘날에는 만들어지지 않는 화석이 엄청난 양으로 발견된다.

   2) 대부분의 화석이 급격히 매몰된 양상을 가지고 나타난다.

   3) 열대, 한대, 건조지역의 동식물화석이 무더기로 함께 쌓여있는 화석무덤들이 발견된다.

   4) 동물과 식물의 화석이 분리된채 발견된다.  

   5) 수십만년이 걸렸다는 지층을 수직으로 뚫고 서있는 다지층나무 화석들이 발견된다.

   6) 발자국, 빗방울자국, 물결자국, 벌레가 기어간 자국 등 순간적인 흔적들이 남아있다.

   7) 수억년된 고생대 지층에는 오늘날 볼 수 있는 생물들이 똑같이 화석으로 발견되며, 어떤 것들은 살아서 발견되고 있다.  

   8) 완벽한 장기를 가진 동물들이 갑자기 출현한다.

   9) 식물들의 화석은 너무도 갑자기 출현한다.  

  10) 지질연대와 맞지 않는 화석들이 너무도 많이 발견된다.

  11) 수억년된 화석에 분해되기 쉬운 아미노산, 단백질, DNA가 남아있다.

  12) 발견된 화석의 95%가 바다생물 화석이다.

  13) 발견된 곤충목의 1,263개 과(families)의 화석을 조사한 결과 84%가 1억년전 중생대 백악기에 살아있던 형태와 완전히 동일한 모습으로 현존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14) 몸이 발견되는 지층의 수천만년 아래 지층에 발자국만 남겨 놓는 이상한 현상이 발견된다.

  15) 그랜드캐년의 코코니노 사암층에는 천만년동안 모든 동물의 발자국이 경사가 높은 북쪽으로만 나있다.

  16) Nautiloid 캐년의 Redwall 석회암층의 오징어 화석들은 모두 태평양쪽을 향하여 죽어있다.   

  17) 수억, 수천만년전 지층 깊은 곳에서 사람의 유물들이 나오고 있다.

  18) 사람과 공룡이 동시대를 살았다는 많은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다.  

  19) 석탄이 매우 빠르게 형성되는 것이 발견되었다.

  20) 화석의 광물화가 불과 수십년만에 이루어짐이 발견되었다.

 (4) 역사적 증거

   1) 모든 고대문명의 역사에서 홍수에 대한 전설을 찾아볼 수 있다. 중국, 뉴질랜드 마오리족, 호주 원주민 등에는 홍수 전설이 내려오고 있고, 특히 니느웨에서 발견된 바벨론의 길가메쉬 서사시나 미국 미시간 주에서 발견되는 오래된 인디언의 석판 등에는 노아의 홍수가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2) 40일간에 내린 비에 의한 지역적 홍수였다면 노아의 방주는 하류인 남쪽으로 흘러 페르시아만으로 흘러갔을 텐데, 방주는 강상류인 북쪽에 있는 아라랏 산에 도착했다. 이는 강물에 의한 작은 홍수가 아니라 바닷물의 육지 침범이 동반된 엄청난 홍수였음을 말해준다.

   3) 노아의 후손들의 이름이 도시나 국가, 민족의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4) 단군의 가르침을 기록한 민간전승의 규원사화나 중국 순황제때 상제께 드리는 제사문을 보면 기독교적인 신앙고백내용과 유사하다. "그분께서 하늘을 펴시고, 땅을 펴시고, 인간을 지으셨도다.", "하나님은 오직 한분으로 가장 높은 자리에 계시며, 천지를 창조하시고 ~"  

   5) 상형문자인 중국의 한자에 창세기와 홍수관련한 문자들이 남아 있다.   

   6) 성경에 기록된 인류의 역사도 약 6000년전이고, 노아의 홍수는 대략 4350년전이다.

   7) 가장 오래된 문자는 수메르인의 상형문자로 5~6000년 전이다.

   8) 고대언어 발생은 5,000년전을 넘지 못한다.

   9) 최초의 도시형성 연대는 약 5000년전으로 보고 있다.

  10) 농업을 시작한 시기를 5~6000년전으로 보고 있다.

  11) 가축을 길러 이용한 시기를 5~6000년전으로 보고 있다.

  12) 최초로 야금술은 5~6000년전으로 보고 있다.

  13)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의 나이테 수령은 4,300년이다.

 (5) 인구통계학적 증거

   홍수 이후 노아의 8식구로 시작된 세계인구는 통계학적 견지에서 볼 때, 오늘날의 인구와 잘 들어맞는다. 만일 홍수이후 인구의 연간증가율이 현재 세계 인구증가율의 1/4에 불과한 0.5%만 되어도 현재 인구에 도달하는 데에는 4,000년이면 충분하다.

 Q4 세계적으로 육지 깊숙한 곳이나 높은 산 위에 염호(鹽湖)가 존재하는데 이는 노아 홍수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현대 과학자들이 인정하듯이 40일간에 내린 비만으로 지구의 모든 산을 덮기에는 부족하다. 그러므로 전 지구적인 홍수가 되려면 해저가 솟아오르거나 대륙이 가라앉는 등의 지각 변동이 일어나야만 한다. 따라서 홍수의 주요 원인으로 바닷물의 육지침범이 고려되어야  한다. 노아 홍수 시 바닷물이 육지를 침범했다는 많은 증거들이 있다. 먼저 노아의 홍수가 단지 강우에 의한 일부 지역의 홍수였다면 노아의 방주는 노아가 살았다고 추정되는 유프라테스, 티그리스강 하류인 남쪽으로 흘러 페르시아만으로 떠내려갔을 텐데,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방주는 상류쪽인 북쪽에 있는 아라랏에 도착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지구상의 여러 곳에 있는 염호(鹽湖)의 존재는 바닷물의 육지 침범의 증거가 된다. 많은 학자들이 고산지역에 있는 염호의 생성원인을 조사하였는데 담수호가 증발이나 어떤 원인에 의해 자연적으로 염호가 될 수 없으며, 결국 언젠가는 바닷물의 침습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터어키 동부에 위치한 만호는 해발 1,700m에 있는데 다량의 염분을 함유하고 있으며, 바다에 사는 청어가 이 호수에 서식하고 있다. 또한 이란에 있는 우르미아 호수는 해발 1,470m에 위치하며 염분의 함유량은 23%나 된다. 그리고 해발 3,800m의 안데스산맥에 위치한 티티카카 호수는 그 넓이가 480km2나 된다고 하니 가히 놀라울 지경이다. 또한 카스피해와 고비 사막에 남아 있는 내지해(內地海)는 염호로써 육지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다. 이러한 고산지대의 염호는 과거 그 지역이 바닷물로 덮였음을 말해주고 있다.(21)  

 Q5 노아 홍수 시 식물들은 어떻게 바닷물 속에서 살아남았습니까? 

성경에서는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창 6:17)라는 하나님의 '멸망의 선포'에서 보면 그 대상에는 식물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또 실제로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지으신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실 때에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육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창 7:21-22)"라고 성경에 적힌 대로라면 동물만 멸절시킨 것이지, 식물을 멸절시키지 않으셨음은 자명한 일이다. 그리고 "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감한 줄 알았으며(창 8:11)"란 구절을 접하면, 동물들을 방주로 인도하는데도 특별한 섭리와 인도를 하셨던 하나님께서 바닷물 속의 식물들도 특별한 방법으로 보존하셨음을 알 수 있다. 홍수 때에 바닷물의  범람으로 인하여 육상식물이 다 멸절하고 다시 자연발생하고 그것이 진화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은, 다윈이 1859년에 출간한 그의 저서 '종의 기원'에서 제시한 '생명의 자연 발생은 한번만 일어난다'는 가정에도 명백히 배치된다. 어떻게 식물들은 전세계적인 홍수 속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었을까. 

1) 식물들의 씨앗(seed)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육상식물의 종자들은 여러 농도의 소금물에서 일년 동안 잠갔다가 꺼낸 후에도 발아할 수 있음이 보고되고 있다. 또한 이보다 더한 혹독한 환경에서도 식물의 종자는 살아남을 알 수 있다. 고대 미이라의 손에 쥐어진 밀알 씨를 수 천년이 지난 지금 땅에 심으면 싹이 트는 것이다.

2) 식물들은 홍수 시 떠다니던 거대한 나무 매트들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세인트 헬렌산 폭발 후 Spirit 호수에는 백만 그루 이상의 떠다니는 거대한 통나무들로 매트처럼 덮여졌는데, 노아의 홍수 시에도 화산폭발에 의해 엄청난 면적으로 이 떠다니는 나무 매트(floating log mats)들이 수면 위에 있었음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식물들에 의해 만들어진 석탄층들이 종종 한 주(state)를 덮을 정도로 넓은 면적으로 발견되며 심지어는 극지방에서도 두꺼운 석탄층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섬을 이룬 이 떠다니는 거대한 나무 매트들은 홍수지질학(flood geology)에서 꽤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몇몇 지층들에는 나무 파편들의 흔적들이 발견되는데, 이것은 떠다니던 나무매트들이 서로 부딪치거나 얕은 물에서 바닥 표면과 부딪혀 떨어져 나간 조각들로 보이며, 많은 암석지층들은 평온한 물에서 퇴적되어진 양상을 보이는데, 이 매트들이 홍수의 격랑 속에서 제동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 매트들은 여러 동물들에 대해 수주 혹은 몇 달 동안 일시적인 피난처 역할을 했을 것이며, 식물들의 생존뿐만 아니라 특별히 곤충(insects)이나 벌레들이 알이나 유충상태에서 생존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했음이 틀림없다.

많은 식물들은 이 나무 매트 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고, 얕은 물가로 흘러간 나무 매트의 식물들은 다시 뿌리를 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가라앉고 묻힌 거대한 나무 매트들은 넓은 면적에 석탄층을 형성했음이 틀림없다. 방주에서 노아가 내보낸 비둘기가 물고 온 감람 새 잎사귀(Olive branch)는 감람나무가 싹이 새로 나서 자란 것이 아니라, 이 나무매트에서 살아남은 감람나무가 물이 감하면서 뿌리를 내려 새 잎사귀를 낸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실제로 감람나무는 매우 재생력이 강하여 작은 가지를 꺾어 땅에 심어도 쉽게 자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나무매트 위에서 식물들의 씨앗, 포자들은 더 쉽게 생존할 수 있었을 것이다.   

3) 일부 식물들은 방주 내에 비축된 먹이 중에 섞여서 우연히 또는 노아에 의해서 많은 종자들이 계획적으로 보관되어 살아남았을 수도 있다. 사실 노아는 홍수 후에 피폐된 환경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많은 준비들을 했을 것이다. 기구, 기계, 연장, 재료, 물품, 의복, 그릇 등등을 준비했을 것이고, 농사를 위해 곡식, 야채, 과일나무 등 많은 식물들의 종자들을 모았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노아가 모든 식물들의 종자를 준비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농사를 바로 시작하기 위해서 필요한 종자들은 모아 두었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창9:20)절에는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는 장면이 나온다. 분명히 노아는 농업을 준비하였으며, 포도나무 씨앗도 준비하였음이 틀림없다.(22)   

Q6 노아 홍수시 민물고기는 어떻게 바닷물 속에서 살아남았습니까? 

노아의 홍수가 바닷물의 침습에 의한 전지구적 홍수라면 어떻게 모든 물고기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어떤 종류는 차고 깨끗한 물을 필요로 하고, 어떤 종류는 탁한 물, 어떤 종류는 바닷물을, 심지어 어떤 종류는 바닷물보다 더 짠물을 필요로 한다. 민물에 사는 생물과 바닷물에 사는 생물이 어떻게 같이 살아 남을 수가 있었을까.

실제 그들 중 많은 수가 살아 남지 못했다. 현재까지 발견된 모든 화석의 95% 이상이 바다생물이다. 그들은 견디지 못하고 죽었고, 수조개(trillions)의 화석으로 남게되었다. 많은 수가 거대한 화석무덤을 만들었고, 무더기로 퇴적물에 덮여져 질식되면서 부패될 시간도 없이 죽어갔다. 분명히 그들은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어갔다. 그러나 소수 아니 극소수의 몇 마리라도 살아 남았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이들 소수의 나머지들은 어떻게 살아 남았을까.    

1) 최근 연구에 의하면 어떤 지역에서는 홍수 중 바닷물의 염분농도가 서로 다른 층을(salinity stratification) 이루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큼이 밝혀졌다. 즉 심부의 바닷물의 염분농도는 13~15ppt, 중간부위는 7~11 ppt, 표면은 5ppt 이하로 염분농도가 다르게 층을 이루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렇게 민물이 바닷물과 완전히 섞이지 않고 바닷물 위에 염분농도의 경사를 이루며 놓여져 있었다면 바다고기는 심부에서, 민물고기들은 표면부위에서 충분히 살아 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2) 홍수환경에서 어떤 지역은 민물로 고립된 지역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기억해야할 것은 엄청난 강우가 한동안 지속됐다는 것이다. 비는 담수이다. 퇴적물들에 대한 많은 연구들에 의하면 구성성분이 다른 퇴적물들이 어떤 지역에 격리되어 발견되고 있으며, 물의 화학성분, 물의 온도 등이 서로 다른 상태였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홍수동안 상당기간동안 이러한 고립지역들이 남아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3) 홍수 전 바다의 염분농도, 온도, 혼탁도 등을 알지 못한다. 오늘날의 바다와 같이 홍수 전에도 짠 바다였는지  알지 못한다. 홍수전의 바다는 오늘날의 바다보다 덜 짤 수도, 더 짤 수도 있다. 왜냐하면 홍수의 시작은 큰 깊음의 샘이 터지면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4) 민물과 바닷물에서 같이 사는 물고기들이 있다. 오늘날에도 바다에 살던 연어가 산란을 위해 산골짜기의 차가운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장면을 누구나 한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연어, 줄무늬농어, 철갑상어 등은 민물에서 알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성장하며, 장어는 바다에서 태어나 호수나 냇가에서 자란다. 민물과 바닷물에서 같이 살 수 있는 물고기들은 toadfish order, garpike order, bowfin, sturgeon, herring/anchovy, salmon/trout/pike, catfish, clingfish, stickleback, scorpionfish, flatfish order 등이다. 그러므로 민물고기들은 홍수시기에는 민물과 바닷물에 다같이 견디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홍수 후 분화가 되면서 많은 종들이 그 능력을 잃어 버렸을 수 있다. 또한 민물고기와 바다고기의 생리적 차이가 매우 적을 수 있다. 스코틀란드에서 보고된 야생의 송어(민물고기)와 양식된 연어(민물, 바닷물 이동)와의 잡종(hybrids)은 이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 경우에 담수와 바닷물이 처음부터 완전히 혼합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음으로 염분의 농도가 천천히 올라간다면 어느 정도 기간을 거쳐 적응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또한 강 하류에 사는 종들은 염분농도의 변화에 원래 잘 견딘다. 불가사리는 정상적인 바닷물의 염분농도의 16~18%에서도 살 수 있고, 따개비는 10% 이하로 감소된 농도에서도 살 수 있다.(23)

   Q7 홍수 후 바닷물의 침습에 의한 육지토양의 염분농도는 식물이 살 수 없을 정도였습니까? 

바닷물이 물러간 후 육지표면은 소금이 남아있어 식물이 살 수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은 17,8세기부터 이성주의자들이 성경을 비판할 때 사용하던 주장이다. 그러나 바닷물이 물러가면서 남긴 소금은 빗물에 의해서도 쉽게 용해되어 제거되며, 관개용수로 사용된 물에 의해서도 쉽게 제거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심지어 배수가 잘 되는 곳에서는 한 번의 강한 비에도 소금농도가 극적으로 낮아졌다는 보고도 있다. 홍수 후 지구의 곳곳은 바닷물의 급격한 후퇴로 인한 침식으로 수로와 계곡들이 잘 발달되어 있었을 것임으로 빗물에 의한 염분의 세척은 매우 신속히 일어났을 것이다. 바닷물이 물러간 후 수일에서 수주 후에는 육지의 대부분에서 염분은 제거되었을 것이고, 염분에 민감한 식물들까지도 쉽게 발아하고 자라기 시작하였을 것이다(24)       

    Q8 화분을 필요로 하는 식물의 경우 화분 시킬 곤충이 없는데 어떻게 번성하였습니까? 

곤충매개식물(entomophilous plants)은 곤충에 의해서 번식하는 식물로서, 성경비판자들은 이들 식물들이 홍수후 자라는 것이 불가능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에는 두 가지 이유를 근거로 하고 있다. 하나는 홍수 직후에는 곤충들이 없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곤충매개식물은 종자를 퍼트리는데 절대적으로 곤충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먼저 곤충들을 생각해보자. 앞에서도 논의했지만 곤충들은 방주 밖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다. 그러므로 곤충들의 수는 홍수말기에는 매우 증식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식물들이 자라 처음으로 꽃을 피울 때쯤에서는 곤충들은 상당한 숫자로 불어나 있었을 것이다. 또한 곤충매개식물들은 자가수분이나 바람에 의한 수분으로도 충분히 번식할 수 있음이 확인되었는데, 몇몇 연구자들은 식물의 꽃에 곤충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망을 씌운 후 관찰한 결과 곤충 없이도 수분이 이루어졌다고 보고하고 있다. 곤충매개식물의 대부분은 곤충 없이도 씨를 퍼뜨릴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곤충들이 매개할 때보다는 수분율이 떨어지지만 멸종할 수준은 아닌 것이다. 절대적으로 곤충에 의존하는 식물들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극소수이며 소진화에 의해 종 내에서 변형된 식물일 것이다.(25)           

    Q9 홍수 후 황량한 세계에서 동물들은 먹이를 어디서 구했습니까? 

어떻게 황폐화된 서식지에서 많은 종들이 살아 남았을까? 홍수는 대부분의 종들이 생존에 필요로 하는 식량과 서식처를 파괴했을 것이다. 방주에서 내린 동물들은 무엇을 먹었을까? 방주에서 나온 육식동물들은 방주에서 내린 다른 동물 외에는 먹이가 없었을까?  

이러한 생각들은 홍수 후 방주에 약간 남아있을 먹이 외에는 육지에는 먹을 것이 전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홍수 후에도 먹을 것이 있었던 것이다. 1) 먼저 홍수 뒤에 남겨진 쓰레기들이다. 나무의 껍질들은 토끼, 코끼리, 호저(porcupine) 등에게 임시적인 좋은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 2) 그리고 빠르게 자라난 풀들이다. 창세기 8장에 노아의 방주가 아라랏산에 도착한 후 10월 1일에는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고, 40일 후에는 까마귀를 보내고, 다시 7일 후에(11월 17일) 비둘기가 감람 새 잎사귀를 물고 왔으며, 홍수 다음해 1월1일에 물이 걷히고, 2월 27일에 방주에서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감람 새 잎사귀가 난 후부터 100일 후에, 물이 걷히고 57일 후에 노아와 동물들은 방주에서 나오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씨앗으로 살아남은, 빠르게 자라는 풀들은 이 기간동안 충분히 발아하여 잎사귀를 내고 있었을 것이다. 3) 또 다른 먹이는 해초(seaweed)들이다. 홍수기간동안 해초들은 광대한 지역에 번성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물소, 코끼리, 토끼 등은 해초를 잘 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소, 말, 여우, 곰 등도 해초를 주식으로 살아갈 수 있으며, 아이슬란드의 양은 눈이 많은 겨울의 4달을 해초만을 먹고 살아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4) 버섯류도 좋은 식량이 되었을 것이며, 5) 파묻혀진 죽은 동물의 사체들도 식량이 되었을 수 있다. 6) 상당기간동안 매우 중요한 먹이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 수생생물들이다. 홍수기간동안 전 지구의 물고기의 종 수는 감소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몇몇 종은 홍수 후 바다에 영양물질들이 풍부하였을 것이기 때문에 빠른 시간 내에 많은 숫자로 증가하였을 것이다. 또한 바닷물이 후퇴하면서 어떤 지역은 물이 갇혀  작거나 큰 호수를 이루다가 말라가면서 많은 물고기들을 남겼을 것이고, 이러한 지역에서는 많은 수생식물들과 죽어 가는 많은 물고기들을 먹이로 쉽게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자, 하이에나, 표범과 같은 육식동물이나, 매, 갈매기와 같은 각종 조류, 설치류, 파충류 등은 이러한 풍부한 물고기들을 먹으며 어쩌면 먹이 걱정을 전혀 하지 않고, 여유롭게 번식해 갔을지도 모른다.(26)              

  Q10 홍수 후 첫 번째 먹이사슬(food chain)이 어떻게 형성될 수 있었습니까? 

홍수에 의해서 동식물의 개체 수는 급격히 감소하였고, 생존하여 살아남은 동식물들은 주변에 경쟁자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폭발적으로 개체수가 증가하였을 것이다. 특히 방주에서 나온 동물들 중에서 곤충과 벌레들과 설치류들은 빠른 시간 내에 현저하게 증가했을 것이며, 이러한 동물들은 홍수 후 첫 먹이사슬의 기초가 되었음이 틀림없다. 이에 비해 덩치가 큰 동물들의 개체 수는 천천히 증가하였을 것인데, 이것은 생태학적으로 먹이사슬 관계에서 매우 중요하다. 홍수 후에 떠다니는 많은 쓰레기나 나무 부스러기들은 곤충들이 알을 까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예를 들어 썩어 가는 동물의 사체들이나 채소, 해초 등에 파리는 많은 알들을 낳았을 것이다. 증식하는데 장애물이 없다면 1㎎의 작은 곤충의 알들은 6개월 후에는 1,200억배로 증식할 수 있으며, 300마리의 개미도 1년 안에 수십억 마리로 증식될 수 있다는 보고가 있다. 홍수 후 초기부터 곤충들은 이미 상당수에 도달되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방주에서 나온 동물들은 충분히 먹이를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우, 야생돼지, 호랑이, 사자, 곰, 늑대 등은 곤충을 먹을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땅속에서 사는 벌레(earthworm)들은 홍수에서도 어느 정도는 살아 남을 수 있다. 비 온 후에 길가에서 흔히 관찰되는 지렁이 같은 벌레들은 1년 동안 침수된 진흙에서도 살아 남았으며, 물 속에서도 수주 이상 살 수 있었고, 이들의 낭(capsules)은 나무 뿌리에 묻어 수천 km의 바다를 건너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었음이 보고되어 있다. 물의 온도가 10℃ 이하인 지역에서 이들의 낭은 휴면상태에 들어가는데, 이렇게 살아 남은 땅속벌레들은 홍수가 물러가는 시기에 폭발적으로 증가했을 것이다. 자랄 수 있는 최적의 환경조건의 1/4 수준만 되어도 earthworm 1000마리는 6개월 후에 73,000마리, 1년 후에 883,000마리로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대부분의 조류는 벌레를 먹으며, 뱀도 그렇고, 많은 육식성 포유동물들 예를 들어 여우, 오소리, 족제비, 너구리, 주머니쥐 등도 벌레를 즐겨 먹거나 먹을 수 있다. 그러므로 땅속에 사는 벌레들은 홍수 후 먹이사슬의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또한 설치류(rodents)의 경우 그들의 증식율은 믿기 어려운 정도인데, 방해하는 경쟁자가 없을 경우 한 쌍의 쥐는 1년 만에 15,000마리로 증식할 수 있으며, 야생의 경우에서도 10개월에 2,557마리로 늘어남이 보고되고 있다. 더군다나 이들의 번식은 홍수 후 땅에 먹이가 되는 벌레나 곤충들이 풍부하였다면 더욱 가속되었을 것이다. 이 경우 수주에서 수개월후면 설치류들은 땅에 매우 흔하게 존재하여 육식동물들의 훌륭한 먹이감이 되었을 것이다.(27)                       

  Q11 동물들은 대홍수 이후 어떻게 전 세계 방방곡곡으로 이동 분산하게 되었습니까? 

남아메리카의 밀림에서 찾아볼 수 있는 나무늘보나 개미핥기 등 빈치류는 느리게 움직이는데 어떻게 먼 근동의 아라랏산으로부터 옮겨올 수 있었을까? 캥거루 같은 유대류들은 오직 호주와 서반구에서만 발견되는데 어떻게 바다를 건너 왔을까?

   1) 오늘날 동물들은 대륙과 심지어 광막한 바다를 놀라운 속도로 횡단하며 이동할 수 있음이 알려져 있다. 1883년 크로카토아 섬의 화산폭발 당시 이 섬에서 서식하던 동물들은 완전히 멸종하였고 수년동안 이 섬에는 아무 것도 살지 않았다. 그런데 그 후 25년이 지난 뒤에는 곤충, 벌레들뿐만이 아니라 각종 조류, 파충류들 심지어 소수의 포유동물까지 놀랍도록 다양한 생물들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사람들은 바다를 건너 많은 생물들이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건너 왔던 것이다.  

   2) 과거의 대륙은 바다에 의해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 많은 진화론적 고고학자들도 과거에 베링해협이 육지로 되어 있어서 아시아와 아메리카가 연결되어 있었고, 이 육교(陸橋)를 통해 사람과 동물들이 이동하였을 것이라는 데는 동의하고 있다. 사실 진화론자들은 대륙이동설이 유행하기 전까지 빙하기에 많은 물들이 얼음으로 갇혀 있어서 해수면은 낮았을 것이며, 따라서 유럽에서 여러 대륙 심지어 호주까지도 육지로 이동할 수 있었을 것으로 믿어 왔고 가르쳐 왔다. 사람들은 캥거루와 같은 유대동물(marsupials)들은 호주에서만 발견된다는 잘못된 믿음을 대부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캥거루는 호주에서 독특하게 진화됐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살아있는 유대동물들이 미대륙에서 발견되고, 화석은 유럽에서도 발견되는 것이다. 최근 남아메리카에서 발견된 오리너구리 이빨 화석의 발견은 과학자들을 당혹하게 만들었는데, 이들 유대동물들은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같이 진화되어 왔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호주와 남아메리카도 과거에는 연결되어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3) 창조과학자들은 대부분 홍수 후 한번의 빙하기가 있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상당기간동안 대륙은 연결되어 있어서 동물들이 이동하는 것이 가능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홍수 후 대륙이 나뉘어졌다고 생각하는 시점은 벨렉이 태어난 시점으로 보고 있다.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 Two sons were born to Eber: One was named Peleg, because in his time the earth was divided ~" 창10:25). 이 시점은 홍수 후 백여년이 지난 시기여서 대륙이 바다로 나뉘어지기 전에 동물들은 충분히 분산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4) 또 하나의 중요한 분산 방법은 사람에 의해서 일 수 있다. 호주 개척 초기에 이주민들은 몇 마리의 토끼들을 가지고 갔다. 그러나 지금은 호주 대륙 끝에서도 야생의 토끼들을 볼 수 있다. "캥거루는 방주에서 내려서 호주까지 계속 깡충깡충 뛰어갔는가?" 가끔 이러한 비아냥거리는 질문을 들을 때가 있다. 캥거루는 뛰어간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배의 우리 안에서 아름다운 바다풍경을 감상하며 편안하게 호주대륙에 도착하였을 수도 있는 것이다.

  Q12 한 쌍의 동물이 많은 수로 불어나는 것이 가능합니까? 

한 쌍의 동물이 많은 수로 불어나는 것이 많은 예에서 보고되고 있다. 호주대륙으로 전해진 많은 새들은 한 쌍으로부터 출발했고, 하와이군도에 전해진 Laysan Finch 새도 한 쌍으로부터 번식되었으며, 호주 빅토리아 지역에 전해진 미국산 밤색다람쥐(American Gray Squirrel), 하와이에 전해진 rock wallaby, 고대 로마인들에 의해 밸리아릭 섬에 전해진 토끼, 19세기 호주에 전해진 토끼, 바하마에 전해진 아메리카너구리(raccoons), French Ⅰ섬에 전해진 코알라, 캘리포니아에 전해진 고라니(elk), 일하우트 섬에 전해진 양(sheep), 마우리티우스 섬에 전해진 짧은 꼬리원숭이(macaques) 등은 모두 한 쌍으로 오늘날의 숫자로 늘어났다. 또한 한 쌍은 아니지만 소수의 동물로 늘어난 예는 일하우트 섬에 전해진 순록(reindeer), 유럽에 전해진 미국산 사향뒤쥐(muskrat), 남아메리카 광대한 초원에 살게된 유럽산 말들, 남아프리카에 전해진 여러 종류의 유럽지역 새들, 유럽에 전해진 중국산 꿩(pheasants) 등 많은 수의 동물들이 한 쌍 또는 소수에서 오늘날의 숫자로 번식하였던 것이다.(28)

  Q13 떼로 모여 사는 동물인 경우 번식하기에 한 쌍으로는 부족한 것이 아닙니까?  

어떤 이들은 군집으로 모여 사는 동물들은 한 쌍만 있을 경우 번식할 수 없고 멸종해 버린다고 주장한다. 정말 그런가?

먼저 떼로 군집을 이루어 모여 사는 습성이 오늘날과 같이 과거에도 동일했는지를 알 수 없다. 바다새에서와 같이 떼로 사는 습성은 방주생활에서 생겨난 습성일 수 있다. 또하나 바다사자나 다람쥐원숭이 같이 군집으로 사는 동물들 중 많은 수가 수태율은 좀 떨어지지만 동물원 등에서 한 쌍으로도 잘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군집을 이루는 새들중 많은 수가 독립된 한 쌍으로도 번식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음을 여러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동물들의 군집 크기도 같은 종 내에도 다양한데, 홍학의 어떤 군집은 수천 마리씩으로 집단 서식하나, 어떤 군집은 10쌍 보다도 적은 수가 모여 산다. 펠리칸은 6마리 보다 적은 수에서도 후손을 번식시키는 것이 보고되었다. 군집생활은 홍수이후에 생겨난 습성일 가능성이 크며, 방주 내에서나 방주 밖에서 동물들이 살아가지 못하게 되는 요인이 될 수 없다.(29)

   Q14 병원균과 같은 미생물들은 어떻게 살아 남았습니까? 노아의 식구들이 각종 병원균에 감염되지 않았다면 이들은 홍수 시에 모두 사라졌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노아의 홍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질병을 일으키는 균들이 오늘날 살아 남기 위해서는 방주 안에 8명에 감염이 일어났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홍수와 함께 사라졌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노아의 8식구는 콜레라, 티푸스, 소아마비, 결핵, 나병 등 온갖 질병의 병원균을 가지고 있었어야 하며, 심지어 매독, 임질 등의 성병과 회충, 요충 등의 각종 기생충, 에이즈 바이러스 등도 보유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정말 그런가? 정말 노아의 식구 8명에게 감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오늘날 이러한 질병은 전해질 수 없는 것인가?

이러한 주장들은 사람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모든 병원균들이 사람에게서만 감염을 일으키고, 사람에서 사람으로만 전염되며, 홍수전과 오늘날의 병원균이 수천년 동안 전혀 변형되지 않고 동일했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서만 유효한 주장이다. 먼저 방주 안에는 영장류만도 400여종이 타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이들이 증상을 나타내지 않고 사람의 감염병 균들을 보유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람에 기생하는 촌충과 같은 기생충은 중간숙주인 돼지나 소와 같은 여러 동물에 무증상으로 존재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사람 감염병의 80% 이상이 동물로부터 전염될 수 있으며, 대부분의 기생충들은 한 숙주에게만 기생하지 않으며, 병원균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형(specialization)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를 감염시킨 결핵균은 사람에게 전파될 수 있는데, 나중에는 사람만 감염을 일으키는 종으로 변형되기도 한다. 많은 포유류, 파충류, 조류 등이 보유하고 있던 균들이 변형되어 훗날 사람에게 감염을 일으키는 병원균으로 바뀌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는 것이다. 한 숙주에만 감염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많은 균들이 실제 다른 종에도 감염을 일으키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개의 디스템퍼는 고양이에게는 감염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었으나 감염을 일으키는 것이 확인되었으며, 최근에는 변형이 일어나 사자에게도 감염을 일으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병원균들은 짧은 기간 내에 변형이 일어나 감염 방법을 바꿀 수 있는 것도 밝혀졌는데, 어떤 바이러스들은 원래의 숙주에서 다른 동물로 옮겨가면서 맹독성이 증가되는 것이 발견되었으며, 기생충인 선충류는 소진화의 결과 단지 3년만에 숙주를 완전히 바꾸어 나중에는 원래의 숙주에 기생할 수 없는 정도가 되었다는 보고도 있다. 에이즈 바이러스도 최근에 영장류로부터 변형되어 발생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매독은 인도마마(yaws)로부터 유래되었다고 추정되고 있다. 진화론을 믿는 연구자들도 사람 질병의 대부분이 수백만 년의 인류역사 중 단지 마지막 수천년 동안에 발생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병원균과 기생충들이 방주 밖에서도 살아 남을 수도 있다. 먼저 병원균이 매개 곤충에 남아 있을 수 있다. 말라리아의 경우 모기 몸 속에 남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동물들의 시체 속에서 살아 남았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홍수가 끝난 후 초기에는 식량의 부족으로 죽은 사체들을 파내서 먹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포나 내생포자로 살아 남을 수 있다. 파상풍균이나 탄저균은 아포를 형성하여 상당기간 살아 남을 수 있다. 그 외에도 건조상태로 살아 남을 수 있다. 박쥐에 감염을 일으키는 rabies 바이러스는 공기 중 먼지로 날아다니다 동굴탐험가에게 감염되곤 한다. 마지막으로 극지방에 동결로 살아 남을 수 있다. 시베리아의 매머드와 같이 병원성 미생물들에게도 갑작스런 동결이 일어났다가 추후에 해동되면서 동물에 접촉이 일어났다면 가능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아의 식구들이 수많은 질병을 앓고 있지 않았다면 병원균들이 오늘날까지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은 과장에 의한 오해이다.(30)  

   Q15 고대문명들은 다같이 홍수 설화를 가지고 있다는데, 이는 노아 홍수를 의미한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사실이다. 대격변적 대홍수에 대한 기억이 지구상 대부분 민족들의 신화나 전설 속에 보존되어 있는 것이다. 대홍수 전설은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지방뿐 아니라 이집트의 경전, 인도 산스크리트의 고어, 태평양 여러 민족들의 민담, 남 북아메리카 원주민, 호주 뉴질랜드 원주민, 유럽의 토착민들의 전설 속에 남아 있는 것이다. 신화는 어떤 과학적 가치를 가지지는 못하지만, 인간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지워질 수 없는 인상을 남기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은 신화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우습고 불합리한 이야기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 사실에 기초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앗시리아인들과 바벨로니아인들은 여러 개의 홍수전설을 가졌었고, 그 중 길가메쉬의 서사시는 성경의 기록과 매우 유사하다.【그림2-11 참조】서사시 열한번째 석판에 기록된 이 신화는 메소포타미아 계곡의 다른 전설들과 같이 배를 건조해서 살아있는 모든 것을 실으라고 명령받은 한 사람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가축과 야생 짐승들이 그 배로 들어온 후 그 문이 닫혔다. 그 후 번개, 천둥, 지진, 지하수의 분출과 어둠을 동반한 폭우가 쏟아졌다. 마침내 그 폭풍이 가라앉고 배가 땅에 닿았다. 그 사람은 한 마리 비둘기와 한 마리 제비 그리고 한 마리 까마귀를 먼저 내보내었다. 그 후 그는 배에서 나와 희생제물을 드렸고, 신들은 그를 잊지 않겠다는 약속의 표시로 무지개를 보내주었다."

          앗수르어로 기록되어 있는 이 '길가메쉬서사시'의 서판은 열한번째 서판으로 1873년 니느웨의 아쉬바니팔 도서관에서 발굴되었다. 창세기 기록과 일치하지는 않으나 유사한 점이 매우 많아 동일한 사건을 중심으로 기술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도 이와 유사한 홍수전설이 있다. 이 전설에 의하면 모든 중국인들은 대홍수를 극복함으로써 이름을 떨친 옛 선조 "누와" 의 자손이라고 한다. 누와가 성경의 노아와 유사함을 알 수 있다. 또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상형문자인 한자에서도 노아 홍수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배 선(船) 자는 아래와 같이 배 주(舟)와 여덟(八) 명의 사람(口)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이는 방주에 8명이 탔음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홍수 홍(洪) 자는 노아의 8식구(八)가 함께 손잡고(共) 치뤄낸 물난리, 계집 여(女) 자는 첫 번째(一) 사람(人)의 갈비뼈 하나를 빼내서( ) 만든 사람, 금할 금(禁) 자는 하나님(示)께서 두 나무(林)에 대해 명하신 것, 탐할 람( ) 자는 두 나무(林)를 바라보는 여자(女)의 마음, 지을 조(造) 자는 흙(土)에 생기( )를 불어넣으니 사람(口)이 되어 걸어다님(造), 서녁 서(西) 자는 최초의(一) 사람(人)이 살던 동산(口)있던 방향 (에덴동산이나 아라랏산은 중국사람들에게는 서쪽이었음), 올 래(來) 자는 선악과를 따먹은 후 나무(木)사이에 숨어있던 두 사람(人人)이 나옴...등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31)

또한 미국의 인디언들은 무려 58개의 대홍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특히 인디언들이 많이 살았던 미시간 지방 일대에서는 오래된 석판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석판 중 5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 석판이 있는데 첫 부분에는 일그러진 태양아래 한 노인이 경배하는 모습이 보이며, 둘째 부분은 큰비가 내리고 있으며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세 번째 부분은 물위에 떠 있는 큰배가 보이고 40 주야를 나타내는 네모진 40칸이 좌우에 있으며, 나뭇잎을 물고 있는 새 한 마리가 있다. 넷째 부분은  둥근 태양과 함께 큰배에서 동물들이 쌍쌍이 내려오고, 네 사람의 남자들이 만세를 부르는 모습이 보이고, 마지막 부분은 하나님과의 언약의 상징인 무지개를 볼 수 있다. 궁창 위의 물로 인한 빛의 산란으로 태양이 일그러져 보이다가, 궁창 위의 물이 사라짐으로써 둥근 태양이 보인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이 석판은 노아의 홍수를 매우 정확하게 나타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인류학자 프레이져(1854~1941)는 북·중·남아메리카의 130개 인디오 종족중 대홍수를 주제로 한 신화를 가지고 있지 않는 종족은 하나도 없다고 하였다. 고대 멕시코의 티마르포포카 그림문서에는 "하늘이 땅에 다가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사라졌다. 산도 물 속으로 숨었다. 바위가 땅위에 모든 것을 뒤덮고, 테트존트리(구멍이 많이 난 용암)가 무서운 소리를 내면서 끓어오르고 붉은 산이 춤추며 위로 솟구쳐 올랐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과테말라에 사는 인디오인 키체족의 포플부흐 라는 고서에는 "대홍수가 일어났다. 사방이 어두워지면서 검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쏟아졌다. 사람들은 죽을힘을 다해 달아났다. 어떤 사람들은 지붕으로 기어올라갔지만 집이 무너져 땅으로 떨어졌다. 또 그들은 나무에 매달렸지만 나무는 그들을 흔들어 떨어뜨린다. 또 다른 사람들은 동굴 속에 피난처를 찾았다. 그러나 동굴이 무너지면서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아 버렸다. 이리하여 인류는 멸망했다." 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아마존강의 인디오 전설에는 "어느 날 천지가 무너져 내리는 듯한 무서운 소리가 났다. 만물이 암흑 속에 잠긴 뒤에 큰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는 만물을 휩쓸어 버렸고, 온 세계가 물에 잠겨 버렸다." 라고 전해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노아의 홍수 이야기가 바벨론 설화에서 온 설화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홍수 이야기는 이렇게 세계적으로 퍼져있는 이야기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바벨탑 사건이나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한 사건은 전 세계에 설화로 남아 있지 않다. 이것은 이 사건들은 국지적 사건이었기 때문이며, 노아의 홍수만이 전 세계적인 사건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역사가들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 한반도에도 과거 우리 조상이 이주해 살기 전에 사람들이 살았으나, 그 후 어느 날 갑작스럽게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다가 오랜 후에 다시 나타났다고 한다. 이것은 노아 홍수 이전에 한반도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었으나 홍수 때문에 다 죽어버려 노아의 후손이 중앙 아시아로부터 바이칼 지방을 거쳐 한반도에 들어오기까지 한반도에는 아무도 살지를 않았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1896년 9월 3일 미국 미시간 주에서 발견되었다. 홍수가 시작하여 온 땅이 물에 잠기자 높은 데로 올라가서 살려달라고 외치는 두 번째 장면을 주시하자.

 Q16 노아의 홍수로 엄청난 퇴적물이 쌓였다면 당시 바닷물은 흙탕물이어서 물고기들이 살 수 없었던 것은 아닙니까?  

 어떤 이들은 지구에는 엄청난 퇴적물들이 있는데 이들이 1년여의 홍수로 퇴적되려면 방주는 진흙 수프 위에 떠 있었을 것이고, 물고기들은 살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물이 실제 어떻게 퇴적물을 운반하는지를 고려하지 않았으며, 모든 퇴적물이 홍수기간 철저히 섞여져 있었다고 가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퇴적물은 이와 같이 쌓여지지 않는다. 흐르는 물은 퇴적물을 "basin" 안으로 이동시키고, 이들은 퇴적되어 다시 섞이지 않고 계로부터 독립된다. 그래서 같은 용량의 물이 더 많은 퇴적물을 대륙을 가로지르며 쌓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또한 퇴적물들은 대홍수 시 물에 의한 수압으로 다져지기 때문에 재비산없이 연속적으로 퇴적될 수 있는 것이다.(32)     

3. 궁창 위의 물과 큰 깊음의 샘 

Q1 궁창 위의 물은 지구에 어떤 영향을 주었습니까? 

노아 홍수의 시작은 두 가지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노아 육백세 되던 해 이 월 곧 그 달 십칠일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창7:11,12)" 즉 큰 깊음의 샘이 터지는 사건과 하늘의 창들이 열리는 사건으로 엄청난 비가 오게되었다는 것이다. 창세기 1장에는 창조 둘째 날에 하나님이 물 가운데 궁창(하늘)을 만드시고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누셨음이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 궁창 위의 물은 대기권 밖에 존재하였던 것으로 오늘날 대기권 안에 비를 내리게 하는 구름과는 다른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물층은 거대한 수증기 천장의 형태로 지구를 둘러싸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수증기로 구성되어 있어 불가시적 이었지만 지구의 기후와 기상 변화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며, 이로 인한 가장 직접적이며 분명한 효과는 지구 표면의 온도를 따뜻하고 균일하게 유지시켜 온화한 기후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대기 중에 있는 수증기는 지구의 온도를 조절하는 특별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 홍수전의 수증기층은 이를 투과하는 태양의 복사 에너지를 대부분 흡수 보유하여, 그 열을 계절적으로나 위도적으로나 오늘날보다 더 균일하게 지구 위에 분배함으로써, 지구의 온도를 조절하는 매우 중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결과 현 대류권의 특징인 위도상 온도차 및 지형에 따라 발생되는 대기의 순환이 억제되었을 것이다. 일정하고 대규모적인 기상전선은 없었을 것이므로, 홍수전의 기후는 따뜻했을 뿐만 아니라 격렬한 폭풍우도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수증기는 공기 및 다른 대기권내의 가스보다 대체적으로 더 가볍다. 그러므로 대기권 상부에 한 때 광대한 뜨거운 증기막이 있었다는 가정이 물리학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 또한 대홍수 전에는 비가 없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이는 창세기 2장 5, 6절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수증기막의 효과로  인하여 고도가 높아짐에 따른 온도의 감소율도 적었을 것임으로, 증기는 증발된 후 가벼운 안개처럼 재응축되어 이슬로 내리는 경향이 있었을 것이다. 물의 순환은 비를 통해서가 아니라 안개를 통해 이루어졌다고 생각된다.(33)

 Q2 궁창 위의 물은 어떤 형태였습니까? 

많은 학자들은 이것을 대기권에 의해 떠받쳐 있는 수증기 형태의 물로 생각한다. 즉 지구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담요와 같은 수증기막 형태로 '수증기 덮개'(water vapor canopy)라고 일컬어지고 있다.【그림2-14 참조】액체상태의 물에 비해 수증기는 훨씬 가볍고 잘 분산되므로 대기권 위에 골고루 떠있을 수 있다. 죠셉 딜로우(J. Dillow) 박사는 얼마나 많은 양의 수증기가 지구 대기권 위에 담요처럼 둘러싼 형태로 떠있을 수 있는 지를 계산했다. 그 결과 액체상태의 물로서 약 12m(40ft) 두께에 해당됨을 알았고, 이만한 양의 물이라면 40주야 동안 폭우를 쏟아지게 하기에 충분한 양임을 확인했다. 그러므로 "하늘의 창이 열리다"라는 창세기 7장 11절의 말씀은 이 수증기 덮개가 어느 정도 불안정한 상태로 변한 후 비로 무너져 내렸다고 보는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화산폭발을 동반한 깊음의 샘들이 터졌을 때 대기 중에 폭발한 화산재가 퍼져나가 수증기막에 이르렀을 것이고, 먼지 입자들이 물방울의 핵생성을 촉진하여 비를 유발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대홍수 이전에 존재했던 이 수증기덮개에 대한 또 다른 간접적인 증거를 들 수 있다. 그 당시 지구는 이 수증기 차단막의 효과로 온실과 같이 매우 쾌적하고 온화한 기후를 유지했을 것이다. 따라서 여러 학자들은 대홍수 이전에는 지금은 얼음으로 덮여 있는 극지방까지도 포함하여 지구 전역에 걸쳐 쾌적한 아열대성 기후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것은 지구 전역에 걸쳐서 무성한 식물들이 자랄 수 있도록 하였을 것이며, 실제로 이러한 흔적들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즉 현재 극지방에서는 자랄 수 없는 식물들을 함유한 석탄층들이 남극대륙에서 발견되는 등 온화한 기후 조건 하에서만 자랄 수 있는 식물화석들이 극지방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와 같이 노아홍수 이전에는 극지방과 적도지방 사이에 온도차가 없고 현재와 같은 높은 산들도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기압차가 형성되지 않아 오늘날과 같은 바람의 움직임도 없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반면 오늘날에는 높은 산들로 이루어진 산맥들과 바람들이 주기적으로 대륙에 비를 가져다주는 매우 중요한 원인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홍수 이전에는 다른 방법으로 지상에 물이 공급되었기 때문에 이런 조건들이 필요 없었다. 우리가 창세기 전반부를 읽어 나갈 때 초창기의 족장들은 평균 900세 이상의 아주 긴 수명을 가졌던 것을 알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이와 같은 사실을 오늘날의 평균수명(약 70세) 비교하여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 수증기 덮개의 또 다른 역할을 생각하면 이해될 수 있다.  즉, 노화현상에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있는 해로운 우주복사선의 침투로부터 인류를 보호해 주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가시광선을 포함한 저주파의 빛들은 통과시키고 고주파의 빛들은 차단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제안은 수증기 덮개 아래에 지금보다 더 큰 분압의 산소가 존재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풍부한 산소는 인간과 동물들의 수명을 연장시켰음에 틀림없다. 이런 사실은 호박(amber : 화석이 된 나무의  진) 안에서 포집된 공기방울 속에 오늘날 보다 약 50% 이상의 산소농도가 있음으로 확인되었다. 결과적으로 노아홍수 이전의 족장들의 수명이 길었던 사실을 수증기 덮개의 존재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노아홍수 사건 이후에 인류의 수명이 급속하게 감소한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성경에 표현되어 있는 여러 흥미로운 사실들은 지층에 남아있는 많은 지질학적 현상과 더불어 원시 대기권 위에 있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수증기 덮개(차양)라고 간주되는 "궁창 위의 물"(창 1:7)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다. 그러한 덮개는 기존 온실효과를 증대시켰을 것이므로 지금보다 훨씬 온화한 기후를 전 세계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Q3 궁창 위의 물이 존재하였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이는 과거에 전 지구에 걸쳐 아열대권이 형성되었다는 증거로 증명될 수 있다. 즉 남극에서 화석이 된 활엽수 숲이 발견되었으며, 현재 최고로 큰 버드나무가 2.5m 정도인 시베리아에서 익은 열매와 초록색 잎을 가진 2.7m 크기의 과일나무가 발견되었다. 이는 과거 한때 양 극지방이 아열대권이었다는 증거이다. 또한 북부 시베리아 해안을 따라 알래스카에 이르는 지역에는 약 500만 마리에 달하는 매머드 유해가 매장되어 있다고 한다. 이 매머드들이 급작스럽게 파묻혔다는 증거는 많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그들의 위 속과 입안에서 소화되지 않은 음식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입안에는 녹색식물, 불루벨(blue bells), 버터컵(buttercups), 사초과의 각종 목초(Sedges), 야생콩 등이 발견되고 있다.【그림2-15】매머드의 멸종은 노아 대홍수사건과 밀접한 연관을 지닌다.

 Q4 '궁창 위의 물'은 지구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높은 에너지를 갖고 인간의 세포를 파괴해 노화현상을 일으키는 X선과 같은 고주파 방사선을 완전히 차폐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수증기층은 저주파를 흡수하고 산란시킴으로써 지구상에 온실효과를 일으켜 전 지구를 통해 27℃ 내의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역할을 했으며, 또한 전 지구에 걸쳐 따뜻한 기후를 형성하였을 것이다.  성경은 초기 지구의 기후에 대해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창 2:6) 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슬은 바람이 없어야 형성되며, 바람은 기압차에 의해 생기며, 기압차는 온도차에 의해 발생된다. 따라서 안개만 땅에서 올라왔다는 이 구절은 지구상에 온도차가 별로 없었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 또한 노아 이전에 성경에 기록된 사람들은 900살 이상 살았는데, 이는 온도의 변화가 없는 아열대 기후와 고주파 방사선의 제거로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창세의 생태계를 미루어 볼 때 이해될 수 있다. 노아 홍수 이후 등장한 인물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은 175세까지, 모세는 120세까지, 다윗은 70세까지 살았다는 사실은 노아홍수 이후 궁창 위의 물이 사라짐으로써 생태계에 변화가 생겨 사람수명이 급격히 감소되었음을 말해 준다. 또한 창세의 생태계는 거대한 동물들이 살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대홍수 이전의 인간으로 추정되는 네안데르탈인이나 크로마뇽인의 뇌의 용적이 현대인보다 크다는 것이 우연이 아니며, 또한 거대한 동물인 공룡이 어느 날 갑자기 지구상에서 사라졌다는 점은 대홍수와 연관이 될 수 있다. 

Q5 '하늘의 창' 이란 무엇입니까? 

창세기 1장에는 창조 둘째 날에 하나님은 궁창(하늘)을 만들고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 궁창 위의 물은 대기권 밖에 존재하였던 것으로 오늘날 대기권 안에 있어 비를 내리게 하는 구름과는 다른 것이다. 따라서 홍수 이전에는 무지개도 없었다. 창세기 9장 8-17절에서 하나님은 노아와 그와 함께한 아들들에게 다시는 생물을 거대한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언약의 증거로 구름 속에 무지개를 두셨음을 보여준다. 즉, 작은 물방울들로 이루어진 구름에 의해 태양 빛이 프리즘에서와 같이 산란되어 무지개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무지개를 통한 언약의 사실이 이것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새로운 것이며, 따라서 이 땅에 무지개가 나타난 첫 번째 사건임을 확신시켜 준다. 

Q6 어떻게 하늘의 창들이 열렸습니까? 

창7:11)절에는 하늘의 창들이 열리기 전에 먼저 큰 깊음의 샘들이 터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엄청난 지하수가 터져 분출하고, 화산들도 폭발하여 발생된 엄청난 화산재가 응결작용을 일으켜 하늘의 창들을 열어 엄청난 강우가 시작되었던 것이다.【그림2-16 참조】그런데 현대 과학자들이 인정하듯이 40일간에 내린 비만으로 모든 산을 덮기에는 부족하다. 전 지구적인 홍수가 되기 위해서는 해저가 솟아오르거나 대륙이 가라앉는 지각 변동이 일어났음이 틀림없다. 그래서 홍수의 주요 원인으로 바닷물의 육지 침범이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다. 노아홍수 때 바닷물이 육지에 침범했다는 많은 증거들이 있다. 먼저 비에 의한 지역적인 홍수였다면 노아의 방주는 남쪽으로 흘러 페르시아만으로 갔을 텐데, 성경은 방주가 상류지역인 북쪽의 아라랏 산에 도착했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지구상의 여러 곳에 있는 염호의 존재는 바닷물이 육지를 침범했다는 증거가 된다. 염호인 카스피해와 고비사막에 남아 있는 내지해는 육지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다. 이 두 문제의 해결점이 바로 큰 깊음의 샘들이 터졌다는 사실에 있다. 바다 속에 있는 화산이 폭발함으로써 엄청난 해일이 일어났으며 육지는 가라앉고 바다는 솟아오르는 지각 변동이 일어나 엄청난 양의 바닷물이 육지에 침범해 들어 왔다. 현재 수많은 활화산을 지니고 있는 환태평양 화산대는 그 당시의 화산 폭발에 대한 흔적으로 생각된다. 지난 1883년 인도네시아의 쟈바섬과 스마트라섬 사이에 위치해 있는 크로카토아섬에서 화산폭발이 일어난 적이 있다. 이때 화산재는 27 km 이상의 상공으로 치솟았고, 화산재로 말미암아 하늘이 어두워져서 근처 주민들은 대낮에도 등불을 켜야 했으며, 수천 만톤의 화산재가 3년에 걸쳐 지상에 떨어져 마을과 숲을 덮었다. 화산으로 생긴 해일은 높이가 15 m나 달했으며, 화산폭발 후 6주일 동안이나 전세계적으로 폭우가 계속되었고, 3년간 사진으로 인해 기온이 뚜렷하게 내려갔었다. 

Q7 큰 깊음의 샘이란 무엇이며, 대홍수 당시의 물은 어디로부터 왔습니까? 

성경은 노아홍수를 일으킨 많은 물의 근원은 창7:11)절에 언급되어 있는 '큰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들' 위에 존재했던 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들 중 주요 근원은 '하늘의 창들'에 앞서 먼저 언급된 '큰 깊음의 샘'이라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깊음의 샘'들은 대홍수 기간동안 150일간을 물을 내보냈고, 반면에 대기권(하늘의 창) 위의 물의 양에는 한계가 있고, 비는 단지 40일간 내렸기 때문이다. 초창기 지구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고, 다만 표면을 적시고 물을 공급하기 위하여 땅으로부터 안개만이 솟아올라 왔던 것이다(창2:5~6). 안개에 대한 히브리 원어의 뜻은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안개와 이들이 모아져서 이루어지는 이슬뿐만 아니라, 간헐천(geyser)이나 광천(spring)과 같은 글자 그대로의 샘들을 의미한다. 결국 이 샘들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흘렀던 4개의 강(창 2:10)들의 근원이 되었던 것이다. 원래의 창조순서에 있어서 이들 샘물의 중요성을 요한계시록 14장 7절에서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는데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라고 표현되어 있다. 여기서 물들의 근원이 샘을 가리킴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 깊음의 샘들이 노아홍수 때 150일간의 물 공급의 중요한 근원이었다면, 그들은 광대한 양의 물을 함유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어째든 우리는 대홍수가 시작되었을 때 이 샘들의 분출과 연관하여 땅바닥의 거대한 균열, 즉 지각운동이 일어났으며, 이로 인해 지각내부에 압력을 받으며 갇혀있던 물이 갑자기 분출하게 된 것으로 생각되어진다.【그림2-16 참조】또한 오늘날 폭발하는 화산의 90%이상이 물(주로 수증기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는 흥미로운 사실과 노아 홍수시대에 퇴적된 것이 분명한 퇴적암층의 화석지층들 사이에 수많은 화산석들이 산재해 있다는 사실로부터 깊음의 샘들이 일련의 화산폭발과 함께 거대한 양의 물을 방출한 것으로 믿어진다. Walt Brown은 지하 16 km 깊이에 1.6km 두께로 엄청난 고압의 물층이 갖혀 있었다가 이것이 터져 나오면서 대격변을 일으켰다는 Hydroplate theory를 제안하고 있다.(34) 또 다른 물의 근원은 하늘과 창의 열림이다. 40주야를 끊임없이 비가 내렸다는 사실로부터 하늘의 창들이 열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것은 첫 번째 내린 비의 시작이었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창 2:5). 이것은 노아가 엄청난 비가 올 것이라고 그렇게 외쳤지만 노아의 말을 믿는 사람들이 없었던 이유일 수 있다. 즉 노아가 이렇게 외쳤던 당시 사람들은 비나 지엽적인 홍수를 전혀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노아의 경고를 무시하고 비웃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Q8 노아 홍수가 끝나고 난 후 창일했던 물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노아홍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산을 잠기게 한 엄청난 물이 수개월만에 마르려면 태양은 얼마나 뜨거워야하며, 물은 지구 수권 내에서 순환하는데 그 물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라고 하면서 노아의 홍수를 비판한다. 물들은 어디로 갔는가?

지금도 육지를 깎아 바다를 메울 경우 지구는 평균 2.4 km 의 바닷물에 잠기게 될 정도로 지구에는 물이 풍부하다. 노아홍수가 끝나고 창일했던 물이 감소하고, 육지가 드러나는데 가장 큰 원인은 물의 증발이 아니라 홍수기간 중 계속된 육지의 융기와 침강 같은 조산운동에 의해서인 것이다. 즉 지층판의 대이동과 지각 변동에 의해 바다는 깊어지고 대륙이 융기함으로서 물이 후퇴하고 육지가 들어 났다는 것이다. 성경 시편104편 6~9절에는 이와 같은 사실을 잘 암시하는 기록이 있다. "옷으로 덮음같이 땅을 바다로 덮으시매 물이 산들 위에 섰더니, 주의 견책을 인하여 도망하여 주의 우뢰소리를 인하여 빨리 가서 주의 정하신 처소에 이르렀고,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갔나이다.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산이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갔다는 것은 과학적 용어로 '조산운동'이라 한다. 퇴적층을 관찰해 보면 대홍수가 있은 이후 전세계에 걸쳐 조산운동이 있었음을 지질학으로 밝혀지고 있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에레베스트산에서 물고기 뼈와 대합조개 등의 화석이 발견되는데, 이는 에베레스트 산이 홍수 이전에는 바다로 덮여 있다가 그 후 융기했다는 성경말씀과 일치한다. 또한 창8:1)절에 보면 "~바람으로 땅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감하였고" 라고 기록되어 있다. 수면 위의 큰바람은 물의 증발을 가속화시켜 물이 감하는데 큰 역할을 수행했을 것이며, 궁창 위의 물이 사라지고 시작된 급격한 온도 강하는 극지방에 거대한 규모의 강설과 빙하를 초래하여 물의 감소에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4. 노아 홍수의 영향

Q1 빙하기는 노아 홍수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빙하기는 늘 과학분야에서 풀어야할 과제 중 하나로 남아 있다. 북부아시아, 북부유럽, 캐나다, 미국의 1/4 지역이 한때 빙하로 덮였었다는 풍부한 증거들은 발견되고 있지만, 그 원인은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지구의 냉각, 태양빛의 감소, 화산폭발 등 여러 시나리오들이 제안되어 왔지만 어떠한 것도 이러한 엄청난 변화를 적절하게 설명할 수는 없었다. 빙하기는 육지에 엄청난 양의 얼음층이 만들어진 시기이며, 얼음층은 눈이 극지방에 과도하게 축적된 후 무게에 의해 다져질 때 만들어진다. 그런데 얼음은 강도가 비교적 작기 때문에 과도히 축적되었을 경우 무게에 의해 낮은 쪽으로 흘러가게 된다. 빙하는 지구의 단지 일부분만을 덮고 있는데, 나머지 지역들은 녹아버려 존재할 수가 없다. 오늘날 육지표면의 10%를 차지하는 얼음층은 과거에는 30% 정도 차지했었으며, 엄청난 량의 물을 저장하는 역할을 하여 해수면을 약 120m 정도 낮추는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람들은 4번에서 60번까지의 빙하기가 있었으며, 각각은 오랜 기간 지속됐고, 광대한 시간에 의해 나누어진다고 말하여 왔다. 몇 번의 빙하기가 있었다는 주장은 신생빙하 점토 아래에 풍화된 빙하점토가 있다는 것과 두 개의 빙하점토 퇴적물 사이에 온대지방 식물군과 동물군을 함유하고 있는 지층이 발견된다는 것을 근거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홍수가 있어 빙하퇴적물이 활발히 재형성되고, 빙하층이 짧은 기간 내에 전진 후퇴하면서 빙하 가장자리의 식물군과 동물군을 퇴적시켰을 경우에도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빙하기가 여러 번 있었다는 증거들은 희박하며, 오히려 한번의 빙하기가 있었다는 주장들이 다시 강력히 주장되고 있다.

많은 얼음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강설량이 많아야 하며, 내린 눈이 적게 녹아야 한다. 또한 너무 춥다면 공기는 많은 습도를 가질 수 없으며, 결국 많은 강설을 유발할 수 없다. 많은 강설을 위해서는 많은 증발이 필요한데, 이것은 따뜻한 바다일 때 쉽게 일어날 수 있다. 또한 많은 강설을 위해서는 극지방에 춥지 않은 겨울이 필요하며, 바다에서 증발된 습기가 대륙까지 이동될 수 있는 기후상태가 필요하다. 그리고 내린 눈이 녹지 않고 수년동안 축적될 수 있도록 추운 여름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들은 이러한 상태가 빙하기의 원인이 되었을 것이라는 데는 동의한다. 이러한 상태가 어떻게 발생할 수 있었을까? 동일과정설에 의하면 과거도 오늘날과 동일하였음으로 이러한 빙하기의 조건들과 모순된다. 그러나 창조과학자들은 노아의 홍수를 빙하기의 열쇠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홍수전의 지구기후는 전체가 온난한 아열대 기후였을 가능성이 크고, 홍수동안 많은 해저 화산활동으로 인해 바닷물은 덮여져, 홍수가 끝났을 즈음 바다는 오늘날보다 따뜻했을 것이다. 이러한 따뜻한 바다는 습기를 대기 중으로 지속적으로 발생시킴으로서 따뜻하고 축축한 겨울을 만들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홍수말기에 육지의 표면은 매끈한 진흙 펄과 같아서 태양열을 흡수하지 않고 상당부분을 반사시켜버림으로서 육지의 온도는 바다에 비해 매우 낮았을 것이며, 이러한 바다와 육지간의 상당한 온도차와 극지방의 냉각은 강력하고 지속적인 폭풍을 유발하여, 바다에서 증발된 습기를 극지방까지 운반하였을 것이다. 또한 홍수기간에 분출된 화산재들은 대기 중에서 태양열을 반사시켜 추운 여름을 유발하였을 것이다. 많은 증발, 따뜻한 겨울, 강력한 폭풍, 추운 여름의 결과는 무엇일까? 그것은 빙하기였던 것이다. 따뜻했던 바다가 식어지고, 화산활동이 감소되어지며, 식물들이 육지를 덮기 시작하면서 빙하기는 사라졌다. 이 기간은 홍수가 끝난 후 천년보다 적은 기간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35)

 Q2 어떻게 거대한 파충류(공룡)들이 멸종하였습니까? 

공룡과 같은 거대한 파충류는 진화론적인 지질연대로 추정할 때 고생대 말엽에 출현하여 중생대의 트라이아스기, 쥬라기를 거쳐 백악기(Cretaceous)와 신생대 제 3기(Tertiary)의 경계인 약 6500만년 전쯤에 급작스럽게 멸종되었다고 주장되고 있다. 그래서 이 시기를 두 시대의 머리 글자를 따서 C-T경계라고도 한다. 공룡의 멸절은 현대과학이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어려운 문제의 하나이다.【그림2-18 참조】그러기에 공룡의 멸절에 대한 가설 또한 다양하게 제시된다. 그런데 근래 가장 관심을 끄는 가설은 C-T경계에서 발견되는 이리듐(Iridium; 어떠한 온도에서도 탄소, 니켈, 유황, 납, 금 등과 반응하지 않고 내산성임. 백금과 합금하여 이화학 기계 제조 등에 쓰임)과 관련된 것이다. 이 C-T경계에서의 퇴적층에서 유난히 고농도의 이리듐이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노벨 물리학 수상자인 물리학자 알바렛(L. Alvarez)을 중심으로 하여 그 아들 월터(Walter)가 이끄는 연구팀은 운석에 이리듐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데 착안, '대운석 충돌의 가설'을 내세워 이리듐을 많이 포함한 대운석의 지구충돌이 지구생물계에 대멸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왜 공룡만 멸종하고 다른 생물들은 살아 남았는가 하는 의문에는 답을 못하고 있지만, 근래 가장 유력하고도 설득력 있는 공룡멸절 이론으로 내세워지고 있다. 그런데 흥미 있는 것은 오히려 이것이 창조론적인 입장에서 결정된 단서가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이리듐은 지구의 맨틀에서도 존재하여 화산재에도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C-T경계의 이리듐 퇴적은 과거 심한 화산활동의 결과라고 추정되는 것이다. 이것은 노아홍수 당시를 기록한 창세기 7장 11절의 '하늘의 창들이 열리기' 전에 먼저 '큰 깊음의 샘'(즉 화산폭발 등 큰 지각 변동)이 터졌다는 성경말씀과 잘 일치하는 것이다. 그림2-18에서 보듯 헤엄치는 모습의 이 어룡화석은 아주 완전하여 현미경으로 보면 그 구조의 자잘한 부분까지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급격한 매몰에 의하여 화석이 형성되었음을 말해주는 자료이다. 즉 홍수와 화산폭발 등 대격변에 의하여 산채로 곧 화석화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림에서 보듯 헤엄치는 모습의 이 어룡 화석은 아주 완전하여 현미경으로 보면 그 구조의 자잘한 부분까지 파악 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급격한 매몰에 의하여 화석이 형성되었음을 말해준다. 즉 홍수와 화산폭발 등 대격변에 의하여 산채로 화석화되었음이 분명하다.

Q3 노아의 대홍수에 의해 급격히 화석이 형성되었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캐나다의 노바스코티아에서는 수십 수백만년이 걸렸다는 지층을 뚫고 서있는 다지층 나무화석들이 발견되는데, 형체가 남아있는 부분만 해도 3m 이상 되는 아름드리 나무로 큰 홍수가 일어나서 이로 인해 엄청난 퇴적층이 나무를 급격히 뒤덮었음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또한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으려고 막 입에 무는 순간에 화석이 된 것도 있다. 이 물고기가 얼마나 급격히 퇴적물에 파묻혔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캐나다의 앨버트에서는 거대한 화산폭발로 한꺼번에 매장된 대규모의 공룡화석 집단이 발견되었는데,【그림2-19 참조】방금 알에서 태어나 눈이 커다랗고 발톱이 나지 않아 마치 개구리 발처럼 보이는 강아지 크기의 새끼공룡들이 알껍데기조각 속에서 생생하게 화석이 된 경우도 있다. 최근 캘리포니아 Lompoc 근처 규조토 광산에서 발견된 24~27m 크기의 수염고래(baleen whale) 화석은 기존의 동일과정적 지질학자들을 매우 당혹하게 하였는데, 이 거대한 크기의 고래가 오랜 세월에 화석이 되었다면 뼈들은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거대한 고래의 완전한 화석으로의 발견은 거대한 홍수에 의해 지층이 급격히 만들어졌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36)

Q4 석탄과 석유는 어떻게 생성되었습니까? 

동일과정설에서는 석탄을 구성하는 식물이 자라던 장소인 거대한 민물 습지나 늪지에서 수천, 수만년동안 축적되어 만들어졌다고 한다(growth-in-place). 그러나 최근 석탄과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의 기원은 대홍수와 대격변에 의해 다른 지역에서 이동되어온 동식물의 유기체가 대량적으로 신속히 매몰되면서 압력과 열을 받아 생성되었음을 뒷받침 해주는 증거들이 발표되고 있다. 그 증거들은 다음과 같다.(37)

1)몇몇 석탄층은 수십m의 두께로 수백m 폭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것은 넓은 지역의 숲이 빠르게 묻혀야 되는 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숲에서 나무들이 죽은 후 여기저기에 조금씩 묻혀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2)석탄에서는 흔히 물고기, 연체동물, 조개류 등의 바다화석이 발견되고 있다. 바다생물인 Spirorbis (tube worm)는 유럽과 북아메리카 지역의 석탄식물에 매우 흔하게 부착되어 발견된다. 석탄식물들이 바다 늪지에서 자랐다는 증거들은 거의 없기 때문에, 육상식물들이 운송에 의해 바다로 이동되어 혼합되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3)석탄화된 나무의 오목한 부분에서 발견되는 물질들은 나무가 있던 원래 장소의 물질이 아닌 것이 많으며, 석탄층 위아래에서 발견되는 점토들도 나무가 자랐던 원래의 토양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4)석탄층은 물에 의해 만들어진 퇴적층에서만 발견된다. 5)석탄층의 기본 구성식물(예로 Cordaites, Calamites 등)들은 습지에서는 자라지 못하고 배수가 잘되는 토양에서만 자라는 식물들이다. 6)석탄을 이루는 식물들은 열대 또는 아열대 기후식물인데, 오늘날의 늪지대는 고도가 높은 한랭지역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또한 열대 또는 아열대 지역은 태양의 증발력이 매우 강렬하여 토탄은 거의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 7)석탄층을 뚫고 똑바로 서있는 나무, 지층을 비스듬히 사선으로 통과하고 있는 나무, 거꾸로 뒤집혀 서있는 나무들이 같이 발견된다. 8)석탄식물의 뿌리라고 하는 Stigmaria는 자주 석탄 경계층 아래층서 발견되어 growth-in-place의 증거로 제시되고 있으나, 나무화석들은 보통 부러져서 조각이 나 있고, 줄기는 거의 붙어있지 않으며, 흐름의 작용에 의해 장축은 잘 정리되어 발견되어지며, 똑바로 선 나무에 의해 관통되어진 채 수평으로 칸칸이 발견되어지는 등 이들이 이동되어 퇴적되었다는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다. 9)종종 석탄층의 옆넓이는 너무도 광대한데 (예로 미국 중부, 동부지역의 석탄층은 10만 평방마일을 넘음), 오늘날 이와 같이 광범위한 늪지대는 없다. 10)만약 석탄형성이 동일과정설에 의해 식물이 자라던 장소에서 축적되어 만들어졌다면, 수천년동안 이탄축적률과 해수면 상승의 믿을 수 없는 균형이 유지되어야만 한다. 즉 광범위한 지역이 늪지대를 이루어 나무가 축적될 수 있도록 해수면보다는 높았다가, 홍수 시에는 바다물이 흘러 들어올 만큼 낮아야 한다. 만약 석탄 숲이 해수면보다 너무 높다면, 늪과 이탄축적에 필요한 방부 역할을 하는 물은 배수되고 말았을 것이고, 만약 이탄의 축적시기에 바다물이 늪지대를 침습 하였다면, 바다환경은 나무를 죽였을 것이고, 이탄 대신에 다른 침전물이 퇴적되었을 것이다. 11)석탄나무의 토양이라고 생각하는 하반점토(underclay)는 오늘날의 토양과 비슷하지 않으며, 물에 의해 부유된 후 퇴적된(graded bedding) 양상을 보인다. 즉 무겁고 치밀한 물질이 바닥에 나타난다. 12)많은 석탄층들은 하반점토들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몇몇 석탄층은 토양으로는 부적합한 화강암, 편암, 역암, 기타 암석층위에 놓여 있다. 또한 하반점토 위에 석탄층이 없는 경우도 많고, 오히려 석탄층 위에 하반점토층이 있는 경우도 흔하다. 13)석탄에는 화성암이나 변성암의 둥근 돌들(boulders)이 뿌리 안에 엉켜서 존재하곤 한다. 14)석탄의 변형은 수백만년 동안의 압력과 열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짧은 가온(heating)에 의해서 빠르게 만들어질 수 있음이 실험에 의해 입증되었다. 15)석탄은 5~2억년전 고생대에 대부분 형성되었다고 주장되는데, 석탄 속에서 사람이 만든 도구나 물건들이 발굴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400만년 전에 출현했다는 사람의 도구가 석탄층 속에서 발견될 수 있는가? 석탄 속에서 발굴되어진 물건들은 작은 강철입방체, 쇠로 만든 단지, 철기구, 못(nail), 종, 종 모양의 금속용기, 어린이 턱뼈, 사람 두개골, 사람의 어금니, 화석화된 사람발 등이 보고되고 있다.     

또한 놀라운 것은 남극지방에도 풍부한 석탄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여러 탐험대들은 남극점(South Pole) 근처에서 화석화된 나무줄기와 석탄의 두꺼운 층을 발견하였는데, 어떤 나무는 길이가 7.3 m, 두께가 60cm나 되었다. 또 다른 지역에서는 무연탄(anthracite)이 0.9~1.2 m 두께로 30여 층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남극지방이 식물이 자랄 수 있는 따뜻한 환경이었을까? 일년 중 6개월 동안 밤이 지속되는 곳에서 그렇게도 많은 식물이 어떻게 자랄 수 있었을까? 아마도 거대한 홍수에 의해 떠내려온 식물들이 묻혔을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이다.       

또한 석유에는 포피린이라는 물질이 400ppm(0.04%) 정도로 존재하는데, 포피린은 식물의 성분일 뿐만이 아니라, 동물의 혈액 중에서 발견되는 물질로서 그 유도체는 헤모글로빈, 시토크롬, 비타민 B12 등인 것이다. 그런데 이 포피린은 산소가 존재하거나 산화조건하에서는 급격히 분해되어 버리기 때문에 석유의 기원이 되는 물질은 대량적으로 신속하게 매몰되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전세계적인 대격변에 의해 동식물의 유기체가 매우 빠르게 퇴적되었음을 증거하여 주고 있는 것이다.(38)

 Q5 노아 대홍수가 일어났다면 해수면의 수위가 높아졌을 텐데 이에 대한 증거가 있습니까? 

과거에는 해수면이 지금보다 훨씬 낮았다는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1,000개가 넘는 해저 산들의 정상들은 평평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flat-topped seamounts, tablemounts), 이것은 해저 산들이 해저에서 화산폭발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해저의 거대한 협곡들은 육지의 거대한 강에 의해서 만들어진 협곡들과 매우 유사하며, 대륙붕을 지나 멀리 해양 쪽으로 뻗어 있다. 이것들은 육지에서 형성된 후 바다에 잠긴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것이다. 미시간대학의 지질학자인 Kenneth Landes는 "광범위한 지역의 해양저(sea floor)가 수 km 밑으로 꺼져 버렸다는 명백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라고 하였다.     

독일 시사 주간지 <슈피겔>의 기사를 인용한 한겨레 97년1월 3일자 기사는 미국 지리학자 윌리엄 리언과 월터 피터먼이 발표한 연구보고서를 기사화 했다.【그림2-20 참조】이들은 흑해의 퇴적층을 분석한 결과 신석기 시대 말기에 엄청난 규모의 대해일이 있었으며, 이로 인해 광활한 인근 농경지가 침수되는 대홍수가 발생했음이 확인되었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지난 93년 러시아 연구선이 채취한 퇴적물을 분석한 결과 약 7,500년전 전 세계 대양의 수위가 높아지면서 순수한 내해였던 흑해로 바닷물이 넘쳐 들어와 오늘날 보스포러스 해협이 생겼으며, 흑해의 수면이 이전보다 무려 150m나 높아졌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연구발표 했다.

97년1월 3일자 신문에는 독일 시사 주간지 <슈피겔>에 실린 미국 지리학자 윌리엄 리언과 월터 피터먼이 발표한 노아 홍수에 대한 연구보고서 내용을 기사화 했다. 

Q6 시베리아나 알래스카에서 어떤 매머드가 어떤 상태에서 발견되었습니까? 

1800년이래 최소 10번 이상의 과학적 탐사를 통해 멸종된 매머드의 신선한 시체가 발굴됐다. 가장 신선한 시체는 북극권내에 있는 북쪽 시베리아의 영구 동토권에 묻혀있었는데, 알래스카에서만 6구가 발견되었다. 몇 개는 완전한 시체로 발견되었으나, 과학자들이 도착하기 전에 대개 야생동물이 땅에 드러난 시체의 일부분을 먹어버려 훼손된 상태로 발견되곤 하였다. 1977년에 완전한 형체를 지닌 아기 매머드가 발견되었는데, 나이가 6-12개월로 추정되는 디마라 불리는 어린 수컷 매머드였다.【그림2-21 참조】매우 잘 보존된 살찐 몸체는 약간 경사진 산의 표면 1.8m 아래에 있는 얼음덩어리 안에 파묻혀 있었다.

벤켄돌프 매머드

    1846년 봄 벤켄돌프와 그의 일행은 시베리아 인디기르카 강가에 텐트를 쳤다. 봄 해빙과 엄청난 폭우로 인해 물이 불은 강은 새로운 계곡들을 침식시키고 있었다. 벤켄돌프는 강가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큰 물체를 발견했다. 무엇인가 잃어버린 것을 찾는 듯이 움직이는 긴 몸체를 가진 검고 거대한 물체를 물 밖으로 밀어냈을 때, 그것은 강력한 어금니로 무장된 거대한 매머드였던 것이다. 그들이 로프나 체인들을 이용해서 매머드를 물가로 끌어내려고 시도했을 때, 그것은 서있는 자세로 강 밑바닥에 뒷다리가 단단히 고정되어, 사실상 얼어붙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24시간 후에, 강은 해빙되었고 강의 밑바닥을 침식시킨 강물은 매머드를 자유롭게 했다. 50여명의 사람들과 말들이 힘을 합쳐 매머드를 물가로부터 3.6m 떨어진 마른땅으로 끌어냈다. 4m의 키와 4.5m길이를 가진 짐승은 뚱뚱했으며, 완전히 보존되어 있었다. 그들이 어금니를 제거하고 씹고 있는 상태에서 전나무와 소나무의 어린 싹을 함유하고 있는 위를 개방했다. 몇 시간 후 아무런 조짐도 없이 강둑은 무너져 내렸다. 왜냐하면 강은 천천히 둑의 아랫부분을 침식시켰기 때문이다. 매머드는 북극해로 강물에 실려 떠내려가 다시 볼 수 없었다.

베레조브카 매머드

   1900년 시베리아의 베레조브카 강의 새롭게 침식된 제방에서 가장 유명한 50년된 수컷 매머드가 발견되었다. 일년 후 오토 헐츠 박사가 이끄는 탐색팀은 냉동된 몸체를 러시아의 성페트스부르크에 있는 동물박물관으로 운송했다. 베레조브카 매머드의 등은 상당히 구부러져 있었고 그의 뒷다리는 휘어져 있었지만 똑바로 선 채로 있었다. 여러 갈비뼈, 어깨뼈, 골반은 부러져 있었다. 놀랍게도 그의 오른쪽 앞다리의 긴뼈는 둘러싸고 있는 조직을 크게 파괴하지 않고 약 12개의 작은 조각으로 부러져 있었다. 30cm 길이의 텁수룩한 철선 같은 머리털은 대부분 손상이 없었다. 매머드의 입은 씹거나 삼키지 않은 풀로 채워져 있었다. 풀은 매우 빨리 얼어 이빨자국이 남아 있었다. 러시아의 햅굳의 번역물은 입안에 발견된 8개의 잘 보존된 완두콩 꼬투리와 5개의 완두콩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Q7 노아의 대홍수와 시베리아에서 발굴되는 매머드와는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베레조브카 매머드의 위 속에서 발견된 24 파운드의 소화되지 아니한 식물들은 채취되었고, 러시아 과학자 브이 엔 수카체브에 의해 분석되었다. 그는 약초, 풀, 이끼, 관목과 나뭇잎과 같은 40여 가지의 종류의 식물들을 확인했다. 대부분의 식물들은 오늘날 추운 북쪽지역에서는 자라지 않는 것들이었으며, 나머지는 시베리아나 멕시코 양쪽에서 다 자라는 식물들이었다. 딜로는 이러한 잔해로부터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1) 일반적으로 온화한 남쪽에서 주로 자라는 다양한 식물이 위 속에 존재한다는 것은 매머드가 살던 당시 그 지역의 기후가 오늘날보다 더 온화했음을 이야기해준다.

 2) 익은 과일, 풀, 다른 식물의 발견은 매머드는 7월말이나 8월초에 죽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3) 매머드는 급격한 동결에 의한 순간적인 죽음과 함께 갑자기 매몰되었음에 틀림이 없다. 갑작스러운 죽음은 매머드의 이빨 사이에 강낭콩을 아직도 함유하고 있었으며, 씹히지 않은 강낭콩의 꼬투리가 있으며, 심부까지의 급속한 냉동은 위에 남아있는 물질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는 것으로 입증될 수 있다.

정상 체온에서 위산과 효소는 한시간 내로 식물을 분해해 버린다. 무엇이 이 과정을 막았을까? 가능한 유일한 설명은 10시간 내로 약 40F(약 4.4℃)까지 위의 온도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위는 따뜻한 체온에 의해 보호받고 있기 때문에 위의 온도가 40F까지 떨어지기 위해서는 바깥 온도가 얼마나 추워야하나? 실험에 의하면 피부의 바깥 층의 온도가 갑자기 영하 175F(약 -79.5℃)까지 떨어져야함으로 나타났다. 풍부한 음식이 있기 위해서는 오늘날의 북부 시베리아의 기후보다 훨씬 따뜻한 온화한 기후를 필요로 한다. 베레조브카 매머드의 입이나 위에서 발견된 음식들 중 극히 일부분만 오늘날 북부 시베리아에서 자라고 있다. 게다가 위에서 발견된 꽃 조각은 따뜻한 온도에서 지내던 매머드가 갑자기 얼어죽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매머드는 극지방 동물이 아니고 온난 동물이다. 매머드의 많은 시체들이 두 대륙에 걸쳐 5000km 지역에 걸쳐 보존되어 있다. 그러한 넓은 영역에 걸쳐 일어난 엄청난 기후격변이 국부적인 현상으로 볼 수만은 없는 것이다. 상상력을 동원한 이론까지 합쳐서 대략 9개의 이론이 냉동된 매머드의 수수께끼를 설명하기 위해 제안되었다. 그러나 궁창 위의 물이 제거되면서 온화하던 시베리아 일대가 짧은 시간 내에 급격히 얼어붙기 시작했다고 생각하는 노아의 대홍수에 의한 급격한 기후격변 이론은 매머드의 급격한 동사와 매장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또 하나 Hydroplate theory에 의하면 지하 깊은 곳에 엄청난 압력으로 갇혀 있던 물층이 지각의 균열로 대기권으로 분출하면서 일부는 대기권 밖까지 올라가, 급격히 차가워진 후 얼음으로 일부 지역에 쏟아져 내려 온대지역에 살던 매머드의 급격한 동사의 원인이 되었다고 제안하고 있다.(39) 

Q8 알래스카와 시베리아 일대 수백m 깊이에서 발견되는 고대의 열대숲은 노아의 홍수와 관계가 있습니까? 

식물들이 퇴적 부패하여 만들어진 유기질 토양인 흑니(muck)는 주요 지질학적 수수께끼이다. 이들은 지표의 1/7을 덮고 있고, 그것도 북극해를 둘러싸고 있는 지표에서 주로 발견되고 있다. 흑니는 주위에 그것을 침식시킬 수 있는 산이나 계곡이 없는 일반적으로 편편한 지형에 존재한다. 러시아 지질학자들은 몇몇 장소들에서 지하로 구멍을 뚫어 딱딱한 바위층 없이 1200m의 깊이로 흑니(muck)층이 덮여있는 곳을 발견하였다. 그와 같이 엄청난 부식 재료(나무잎 등)들은 어디로부터 생겼는가? 알래스카 muck층을 통과하여 구멍을 뚫었던 유정발굴자들은 지표면 아래 약 300m 지점에서 18인치 길이의 나무줄기 덩어리를 캐내었다. 그것은 얼려져서 석화되지 않았다. 오일회사들은 Prudhoe Bay 지역 부근에서 지표면으로부터 570m 깊이의 유정을 파다가 고대의 열대숲을 발견했는데, 그것들은 석화되지 않고 얼려져 있었다. 그 숲은 깊이 330m에서 510m 사이에 있었다. 거기에는 야자수나무, 소나무, 그리고 열대 잎이 무성한 나무들이 있었다. 어떻게 딱딱하고 얼려진 땅 수백미터 아래에 무성한 나무들이 묻혀 있는가? 윌리암은 알래스카에서 비슷한 발견을 한 후에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프루드호만 표면에서부터 570m 깊이까지의 지표는 얼어붙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석유회사에서 이 지역에 유정을 뚫는 곳마다 고대의 열대숲을 발견했다. 이것은 화석화된 상태가 아니라, 얼어붙어 있는 상태였다. 종려나무, 소나무, 열대지역에서 자라는 나뭇잎들이 매우 풍부하게 그곳에 있었다."

수백m의 딱딱하고 언 땅 아래 어떻게 나무들이 파묻혀 있었을까? 우리는 냉동된 매머드와 똑같은 의문에 부딪치게 된다. 결국 지금은 얼어서 딱딱한 흑니층의 갑작스런 매몰과 함께 급격하고 엄청난 기후변화가 있었다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다.  

Q9 노아의 홍수로는 설명될 수 있지만 기존 학설인 동일과정설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지구 지층과 지형의 특성들이 있습니까? 

너무도 많다. 지구의 지층과 지형의 형성이론은 백년이 넘게 동일과정설만이 유일한 해석 이론으로 알려져 왔다. 즉 지층은 오늘날과 똑같은 퇴적과 침식율로 과거에도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퇴적과 침식 속도는 매우 느리기 때문에 엄청난 퇴적과 침식은 수십억년의 세월이 흘러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구의 지층과 지형은 과거 한때 어떠한 대격변이 있었으며 강력히 말하고 있으며, 수억년에 걸쳐 퇴적되면서 고생대에는 하등한 동물이 신생대에는 고등한 동물이 나올 것이라는 기존의 진화론적 동일과정설에 너무도 많은 의문점들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1) 지질시대와 맞지 않는 연대의 화석들이 너무도 많이 발견된다.

  2) 지질주상도(geologic column)를 만족시키는 지층이 없다.

  3) 잃어버린 지층(missing strata)들이 너무도 많다. 지구표면 94%는 현지층 아래로 3개 이상의 지층을 잃어버렸고, 지구 지층의 80~85%는 연속적으로 맞는 3개의 지층도 가지고 있지 않다.     

  4) 너무도 광대한 크기의 충상단층(연대가 뒤바뀐 지층)이 너무도 많이 발견된다. 어느 지역은 세개 지층의 순서가 바뀌어 있는 즉 공중에서 뒤집혀야만 설명이 가능한 충상단층이 발견되고 있다.  

  5) 퇴적층 넓이는 너무도 광범위하고, 퇴적물질의 성분은 매우 균일하다.

  6) 퇴적암의 구성 성분은 매우 다양하다.

  7) 퇴적층 경계면은 거의 평행의 층리현상을 보이며, 전혀 침식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다.

  8) 오랜 세월의 시간차가 나는 부정합의 경계면들도 너무도 깨끗하며 침식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다.   

  9) 광범위한 지역의 사암층과 역암층은 거대한 홍수가 있었음을 증거한다.

 10) 석회암층의 경우 수십, 수백만년 동안 알칼리인 석회암만 쌓였을 경우 독성으로 생물이 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석회암층에서 수많은 화석들이 발견된다.

 11) 지향사(geosyncline) 구조가 존재하는 등 지구지각에 엄청난 격변의 흔적들이 발견된다.

 12) 부드러운 곡선형태로 채 굳기 전에 휘어진 퇴적층들이 발견된다.

 13) 파도나 물의 작용에 의한 층면구조들이 존재한다.

 14) 거대각력암이 존재한다.

 15) 엄청난 화산들이 과거에 폭발했던 흔적들이 남아있다.    

 16) 히말라야, 알프스, 아라랏산 등은 한때 물에 잠겨있었다.

 17) 진화론적 지질연대에서도 조산운동은 최근에 이루어졌다.

 18) 과거에는 해수면이 지금보다 훨씬 낮았다는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다.

 19) 최근 폭발한 세인트헬렌 화산은 지층형성이 격변적으로 일어남을 실제로 보여주었다.    

 20) 영구 동토지역에서 온대지역의 식물을 먹다 얼어죽은 매머드 사체는 지구에 대격변이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21) 오래 지속될 수 없는 순간적인 흔적들이 지층에 남아 있다.

 22) 지층에 생물이 살았던 흔적(bioturbation, 생물에 의한 뒤섞음 현상)들이 없다.

 23) 토양층(soil layer)이 매우 결여되어 있다.

 24) 여러 지층에 걸친 다지층 화석들(수직으로 서있는 나무, 고래, 공룡 등)이 발견된다.

 25) 오랜 시간에 걸쳐서 생성되었다는 Yellowstone Park의 화석숲도 최근 연구결과 물에 의해 이동되어 생성됐다는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다.  

 26) 지표면에서 발견되는 고평원(paleoplains)들은 오래된 시간개념과 상반된다.

 27) 수억 수천만년 동안 대륙에 침식이 진행됐다면 대륙은 이미 사라졌어야 한다.

 28) 강과 계곡의 수로들은 오늘날의 흐름에 비해 너무도 크기가 크다 (underfit streams)

 29) 변성암 (metamorphic rock)의 존재에 대한 동일과정적 해석은 매우 부적합하다.

 30) 불균일한 지열(geothermal heat)이 존재한다.

 31) 엄청난 바닷물이 증발한 흔적들(Salt Dome 등)이 남아 있다.

 32) Mid-oceanic ridge의 발견은 지구에 대격변이 있었다는 또 하나의 증거이다.

 33) 대양 바닥에 해저 캐년(submarine canyons)이 존재한다.

 34) 빙하기(ice age)는 화산폭발을 동반한 거대한 홍수 후에 초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35) ice core 에 의한 연대측정은 매우 젊은 지구를 지지하고 있다.    

Q10 장엄한 협곡들은 진화론적인 견해와 달리 짧은 시간 내에 형성될 수 있습니까? 

1980년 5월 18일 미국 위싱턴주의 세인트 헬렌산에서 일어난 화산폭발은 히로시마에서 투하된 원자탄 33,000개가 폭발한 것과 같은 규모의 폭발이었다.【그림2-22 참조】헬렌산의 화산폭발은 그랜드 캐년의 1/40 규모인 30m 높이의 리틀 그랜드 캐년을 단 몇 일만에 형성하였다.(40)【그림2-23 참조】이는 화산 폭발시 분출된 화산재와 분출된 물이 진흙으로 되어 빠른 속도로 흘러내려, 엄청난 침식과 다지층을 형성하게 되었다. 흘러내리는 진흙의 파괴력이 얼마나 강했던지 강력한 물의 압력으로 철을 잘라내는 도구처럼 거대한 바위들을 파괴했다. 이 정도 캐년의 형성은 진화론적인 견해에 의하면 수십만년 이상 걸리는 것이다. 그러나 세인트 헬렌산의 화산폭발은 비교적 작은 규모의 화산폭발이다. 예를 들면 1815년 일어난 인도네시아의 탐보라의 화산폭발은 헬렌산 화산폭발 규모의 약 80배정도 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5. 인구 민족의 형성과 이동

Q1 노아의 세 아들로부터 현재 60억의 세계인구가 가능합니까? 

어떤 사람은 아담과 하와로 시작된 몇 천년의 인간 역사로는 현재의 50억 인구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참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는 수백만년전에 인류가 출현했다면 오늘날의 인구가 고작 60억 밖에 되지 않은가 하는 문제이다. 간단히 홍수 이후 노아의 8식구로 시작된 세계 인구는 통계학적 견지에서 볼 때 연간 인구증가율이 0.5%만 되어도 현재 인구에 도달하는 데에는 4,000년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세계 인구증가율의 1/4 에 불과하다 (노아홍수 BC 2350 년경 발생추정. 4350년 후 세계인구 60억. 이는 연간 0.47%의 인구증가율). 인구증가율은 여러 기록에서 보고되고 있는데, 미국의 인구증가율은 1800년 이후 연간 0.71 ~ 3.0 %로 기록되어 있으며, 세계인구는 1650년 이후 0.26~2.55%의 인구증가율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또 하나 고대의 인구증가율을 살펴볼 수 있는 예가 성경에 나와 있다. 야곱의 가족은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70명이 내려갔는데, 430년 후에 출애굽을 하는 시점 (BC 1450년경)에서의 인구가 1~2백만명으로 늘어났었다는 것이다. 이 인구증가율은 연간 2.25 ~ 2.41%로 계산되는데, 오늘날의 인구증가율 범위 안에 들어가는 수치인 것이다. 만약에 1백만년전에 인류가 출현하여 오늘날의 60억이 되었다면 이때의 년간 인구증가율은 단지 0.00217%가 되며, 인구가 2배로 되는 기간(doubling time)이 무려 32,000년이나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구통계학적으로 수백만년전에 인류가 출현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를 좀더 통계학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오늘날의 인구는 최초의 아내와 남편, 즉 두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가구당 평균 출산한 아이는 C명의 남자아이와 C명의 여자아이인 2C였다고 가정하자. 첫 번째 세대는 C가구수 (2C와  처음 2명이  살아있다)가 될 것이다. 두 번째 세대는 (C가구수)   2C로 2C2이 된다. 세 번째 세대는 2C3가 된다. n세대에 전체 인구수 Sn은

        Sn = 2 + 2C + 2C2 + 2C3 +        + 2Cn = 2 {C(n+1) - 2} / (C - 1)

 실제인구를 얻기 위해서는 차세대 이후의 사망자수를 빼야 한다.

 n 세대 이전에 이미 죽은 사람들은 (n-x) 세대의 앞 세대라고 한다면 사망자수 Sn-x는 다음과 같다.

        Sn-x = 2 {C(n-x+1) - 2} / (C - 1)

 따라서 실제 총인구 Pn은

        Pn = Sn - Sn-x = 2 {C(n+1) - C(n-x+1)} / (C - 1)

 예를 들어 5인 가족이 현재의 세계인구에 도달하는 데에는 52세대가 걸린다. 즉 평균가족의 수치로서 3명의 어린아이를 낳고, 한 세대만 살고 죽는다면 C = 1.5,  x = 1 임으로 현재의 세계인구에 도달하는 데에는 52세대가 걸린다는 것이다.

 성경의 역사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주교 어셔(Ussher)의 연대로 홍수는 4,350여년 전에 일어났다고 추정되는데, 지구상의 현재 인구는 최초로 노아의 세 아들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창 9:19), 한 세대를 43년으로 생각하면 노아로부터 100세대가 지났을 뿐이다. 현재 인구 46억을 산출하기 위해 (여전히 x = 1로 가정) 위의 공식을 이용하면 C는 다음과 같다.

                4,600,000,000 = 2C100

                      C = 1.24

따라서 한 가구 당 2C의 어린아이가 있어야 하므로 약 2.48명의 어린아이가 있게 된다. 이는 단지 산술적 수치이지만 합리적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는 인류의 역사가 성경의 연대보다 더 오래 수백만년이 되었다는 주장은 현재 인구수에 비추어 보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위의 비율로 계산하면 백만년 동안에는 102700 인구가 산출되어야 한다. 따라서 인류가 지구상에 거주한 기간이 100만년이나 그 이상이라는 것은 불가능하고 설명이 곤란하며, 홍수 후 수천년 동안에 증가하여 오늘날의 인구가 되었다는 것이 더욱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것이다.(41)  

Q2 노아의 가족으로부터 어떻게 오늘날 이렇게 많은 민족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노아의 세 아들로부터 민족들의 기원이 이루어져서 오늘날의 인류가 되었다.(42) 성경도 사도행전 17:26에서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라며 인류의 모든 족속은 한 혈통임을 말씀하고 있다. 노아의 후손들은 다음과 같은 지역의 조상들이 되었다.

  야벳(창 10:2~5) : 야완(그리스), 마곡, 메섹, 두발(러시아), 고멜(독일), 디라스(트라키아, 에트루리아), 마대(메데), 아스그나스(독일), 도갈마(알메니아), 도다님(다르다니아). 유럽으로 이주하여 코카시아인과 아리안족의 조상이 됨. 아메리카, 서아프리카 그리고 도서지방으로 퍼져 나감.

  셈(창10:21~31) : 에벨(히브리), 엘람(페르시아), 아람(시리아), 앗수르(앗시리아), 후에 이스라엘과 아브라함의 다른 후손들, 그리고 모든 아라비아족의 조상이 됨.

  함(창10:6-20)  : 미스라임(이집트), 구스(에디오피아), 가나안, 붓(리비아).

        참고로 우리 몽고인종은 셈족에 속한다. 그리고 노아의 예언(창9:25-27)에 의한 각 종족의 특성으로는 함족은 물질적이고 야벳족은 지적이며 셈족은 종교적이다.

 그림2-24 진화론자들은 모든 인류의 종족이 공통 조상으로부터 시작했다는 데에는 창조론자들과 의견을 일치한다.

 Q3 대홍수 이전 시대의 족장들의 나이는 대부분 900살 이상인데 이 이유는 무엇입니까?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사람은 대홍수 이전에 900년 이상을 살았다. 이 숫자의 확실성에 관한 증거중의 하나는 대홍수 이후 족장들의 나이가 950세를 향수한 노아로부터, 464세에 죽은 에벨, 175세에 죽은 아브라함, 120세에 죽은 모세를 지나, 오늘날의 평균수명과 비슷한 70세 수명에 이르기까지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감소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그림2-25 참조】위와 같이 대홍수 이후 수명의 감소현상은 먼저 대홍수 기간 중 지구를 보호하고 있던 수증기층이 없어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수증기층은 (아마도 그 효과를 증대시킨 대량의 이산화탄소와 오존을 포함) 전세계에 걸쳐 따뜻하고 쾌적하며, 생각컨데 건강에 매우 좋은 환경을 이루어 주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또한 수증기층은 우주로부터 지구로 유입되는 강렬한 우주선과 방사선을 막아

그래프는 홍수 후 족장들의 연령(성년과 사망)이 급격히 감소함을 보여준다. 수평축의 세대수는 약간의 오차가 있을 수 있다. (Ref. William P. Vis, "Medical Science and the Bible", Modern Science and Christian Faith, P241)

 주는 보호작용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우주 방사선은 대량으로 쪼이게 되면 매우 치명적이 될 수 있는데, 피부암과 백혈병과 같은 질환의 발생과 생체기능저하 및 기형발생 등의 확률을 높인다. 그러므로 방사선에 노출된 사람들에게 상당한 유전적 손상과 돌연변이를 일으키게 하는 원인이 되었을 것이며, 대홍수 이후 수세기에 걸쳐 생체 내에 이러한 손상이 누적됨으로서 점진적인 퇴화와 수명의 감소현상이 유발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그리고 홍수 후에 급격히 변화된 환경들 즉 온도변화, 대기조성의 변화, 기압의 변화, 토양의 변화, 황폐화된 생태계, 육식의 시작, 기타 여러 변화들이 사람의 수명을 감소시키는데 원인이 되었을 수 있다.(43)

 Q4 어떤 이는 대홍수 전에 근동(近東)의 메소포타미아 유역에만 인류가 분포하였다고 하는데 이것이 사실입니까? 

그렇지 않다. 이는 성경을 통해서 두 가지 이유로 설명될 수 있다. 첫째는 대홍수 이전시대 사람들의 장수에 기인된 방대한 인구증가 가능성이 인정되어야 한다. 창세기 5장을 살펴보면 아담 930세, 셋 912세, 에노스 905세, 게난 910세, 마할랄렐 895세, 야렛 962세, 에녹 365세(죽지 않고 승천함), 므두셀라 969세, 라멕 777세, 노아 950세를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에녹을 제외한 평균 연령이 912세이다.【그림2-27 참조】오늘날 많은 학자들은 이와 같은 장수(長壽)가 선천적으로 불가능할 것은 없다고 인정한다. 따라서 대홍수 이전의 사람들은 수백년 이상 생존하였으며, 이에 따른 출산 능력도 수백년이였을 것임으로, 인구증가율은 현재 세계 인구증가율인 년간 2%를 상회하였을 것이며, 이와 같은 장수와 대가족의 복합효과로 인하여 인류는 급속히 땅에 충만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우리가 홍수이전 시대의 인구증가율을 년간 1.5% 라 한다 하더라도 창조 후 노아의 홍수까지는 대략 1650년이 흘렀음으로 대홍수 당시 세계 인구는 대략 10억명 정도로 추산할 수 있다. 이런 대규모의 인구는 메소포타미아 유역을 벗어나 멀리 흩어져 "땅에 충만" 하였음이 확실하다. 대홍수 이전시대 사람들이 근동을 훨씬 넘어 분포했다고 믿는 두 번째 이유는 고고학적 사실에 근거하는데, 고대인들의 화석이 실제로 메소포타미아 유역에서 수백, 심지어 수천 마일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죠지 라이트는 "북반구 도처에서 선사시대인의 유해가 발견되는데, 이는 노아의 대홍수가 있기 오래 전에 이미 사람들이 널리 북반구에 분포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Q5 성경은 아르밧삭의 나이를 잘못 기록하고 있습니까? 

성경은 하나님께서 여러 선지자들과 예언자들을 통해서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쓰게 하신 책으로,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하나님을 거부하는 자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기기를 또한 거부하며, 그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어떻게든지 성경의 오류를 발견하고자 애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시대를 통하여 성경의 오류를 찾아내려고 애썼지만 성경은 .성경자체에서나, 역사적 기록, 고고학적 사실, 과학적 측면에서나 다른 어떠한 문제에서건 성경의 내용이 진짜로 잘못되었다고 증명된 적이 한번도 없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고고학의 최고 권위자인 Dr. Nelson Glueck는 "어떠한 고고학적 발견도 성경과 위배되는 것이 없다. 고고학적 발견이 이루어질 수록 성경에 기록된 문장의 정확성이 더해질 뿐이다. 오히려 성경에 기록된 사실이 놀라운 발견으로 이어질 때가 많다." 라고 하였다.       

성경비판자들이 노아의 홍수에 관련해서 성경의 오류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르박삿의 태어난 시기와 관련해서이다. "노아가 오백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창5:32)", "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가 육백 세라 (창7:6)", "~셈은 일백 세 곧 홍수 후 이 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창11:10)". 앞의 두 구절에서 홍수는 셈의 나이 100세에 일어났기 때문에, 창11:10)절의 홍수후 이 년은 셈의 나이가 100세가 아니라 102세 (홍수가 시작된 시점에서 이 년후)또는 103세(홍수가 끝난 시점에서 이 년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어성경 NIV에는 창11:10)절을 "This is the account of Shem. Two years after the flood, when Shem was 100 years old, he became the father of Arphaxad."로 기록하고 있어 when 이하의 문장이 flood를 설명한다고 볼 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즉 "셈이 백살이었던 홍수가 나던 해부터 이 년 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라고 해석될 수가 있는 것이다. 또한 KJV 에는 "These are the generations of Shem: Shem was an hundred years old, and begat Arphaxad two years after the flood" 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셈이 100세 였다는 문장은 홍수 후 이년에 아르박삿을 낳았다는 문장과 별개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이 성경의 오류라고 보기는 힘든 것이다.  

성경을 비판하는 자들은 자주 억지 주장들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단4:10~11)절에 "내가 침상에서 나의 뇌 속으로 받은 이상이 이러하니라 내가 본즉 땅의 중앙에 한 나무가 있는데 고가 높더니 그 나무가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그 고는 하늘에 닿았으니 땅 끝에서도 보이겠고" 라는 구절을 들어 지구가 둥근데 어떻게 땅끝에서 보이겠는가? 이것은 성경이 평평한 지구를 말하는 것임으로 오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구절은 어떤 이방나라의 왕이 꾼 꿈인 것이다. 이 구절을 가지고 성경의 오류다, 성경이 평평한 지구를 주장한다 라고 말하는 것은 대단한 억지요 편견인 것이다. 오히려 성경은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하기 수천년 전에 지구가 둥근 구형임을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북편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공간에 다시며 (He stretches out the north over empty space ; He hangs the earth on nothing) (욥26:7)",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으로 해면을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When He prepared the heavens, I was there, When He drew a circle on the face of the deep) (잠9:27)", "그는 땅위의 궁창에 앉으시나니~ (It is He who sits above the circle of the earth~) (사40:22)", "수면에 경계를 그으셨으되 빛과 어두움의 지경까지 한정을 세우셨느니라" (He drew a circular horizon on the face of the water, at the boundary of light and darkness) (욥26:10)".  

3 인류 문명의 기원

1. 인류의 기원

Q1 교과서에서 나오는 유인원 화석들은 진화를 증거 합니까?

종과 종사이의 연결이  가능하다는 대진화에서는 원숭이로부터 인간으로 진화했으며 이들 사이에는 인간도 아니고 원숭이도 아닌 중간 형태의 괴물들, 즉 원시인들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들에 대한 화석 증거를 찾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밝혀진 원시인의 것이라고  주장되어진 증거들은 다음과  같이 허구임이 드러나고 있다.

1. 원숭이 계열                  

 (1) 오스트랄로피테쿠스 - 멸종된 큰 침팬지 종류

 (2) 필트다운인 - 현생 원숭이류의 것

 (3) 자바원인 - 긴팔원숭이의 것으로 조립됨.

2. 인간 계열

 (1) 네안데르탈인 - 관절염(혹은 곱추병)을 앓은 인간

 (2) 뉴우기니아인 - 현재 존재하는 인간

 (3) 크로마뇽인 - 현대 인류와 차이가 없음

3. 허구의 존재

 (1) 하이델베르그인 - 인간의 턱뼈를 가지고 조립된 인간

 (2) 네브라스카인 - 멸종된 멧돼지의 치아에 의해 조립됨

4. 기타

 (1) 북경원인 - 증거가 없음  

 Q2 가인은 어디에서 아내를 얻었습니까? 

성경은 인류의 역사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창조, 구속, 섭리에 대한 말씀입니다. 따라서  당시의 모든 인간들의 이름을 다 기록할 필요는 없었으며 단지  중요한 의미를 가진 이들을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아담은 첫  인간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고전15:45) 그 이전에 인간이 존재했을  가능성은 없으며, 또한 여자가  없이는 자손을 낳을 수 없기 때문에 최소한  하와가 창조되기 이전에는 아담 외에는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또한  가인은 장남(창4:1), 아벨은 차남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가인이 자기 동생을 죽인 후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징벌을 내려 그의 가정과 하나님의 존전으로부터 영원히 떠나가게 하셨다. 그 다음에 우리는 가인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할까봐 두려워했다는 것, 그의 아내와  동침했다는 것,  성을 쌓았다는  것 등을 알  수 있다(창4:14-17).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인류  생성 초기에는 아담과 하와의 자식들이 서로  결혼해야만 했다. 성경의 가르침대로  아담과 하와로부터 온 인류가 생겨나려면 다른 가능성은  있을 수 없다. 후에는 이러한 근친 상간은 기형아가  나오는 위험성 때문에 금지되었지만,  아담과 하와는 돌연변이가 없는 완전한 인간이었기 때문에 근친상간으로 인한 위험성은 없었을 것으로 본다.  더욱이 성경 상에서와 같이 아담은 960세(약10세기)를 향수 했기 때문에 이 기간동안에 세 아들만  낳았을 것이라는 것은 그리 현명한 판단이 못된다. 아마도 이 외에도 딸들을 포함해 여러 자손들을 낳았을 것이며 이들은 인근 지역에 퍼져  살았을 것이고 놋 땅도 그 중의 한 지역일 것이다.

 Q3 히틀러가 주창한 '아리안족의 우수형질'이 성경에서 보면 타당한 이론입니까? 

그렇지 않다.  세계전역에 걸쳐 인간들은 그의  이웃에 대한 자신의 우월성을 나타내는 이야기를 꾸며 왔다. 히틀러는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서 순수혈통의  아리안 족속의 신화를 만들어  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나치당은 인류의 진화과정을 추정하고 이를 시험해 보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우수한 인종을 개량시키고 인류의 유전인자 공급원을 정화시키기 위해 탐탁지 않은 인종과 개인을 근절해버리려는 노력도 있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나치주의는 '적자생존' 이라는 진화론적인 표어를 믿고 살아왔다. 히틀러는 이것이 자연의 운명이며 게르만족 백성에게는 더 연약한 민족들을 지배할 권리가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러한 환상극을 가지고 있지  않다. 창세기 10장 32절에서 성경은 모든 나라에 퍼져 있는 모두가 노아의 후손들이라고 주장한다.  " 이들은 노아 자손의 족속이요 그 세계와 나라 대로다. 홍수 후에 이들에게서 땅의 열국 백성이 나뉘었더라. "(창세기 10장 32절)  이 귀절은 인류가 한  종족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이 사실은 생물학적 사실에 의해 증명된다. 이 지구상의 어떤 남자도 그와 다른 지역의 여자와 결혼하여 자녀를 낳을 수 있으며, 그 또한 자녀나 손자들을 가질 수 있다. 인류는  한 중심점에서 세계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것은 또한 인류가 아직도 세 부류  - 백인종, 황인종 그리고 흑인종으로 구분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러한  분류를 셈, 함 야벳족으로 거슬러 올라가 적용시킬 수 있을 지 확신할 수 없지만 그 분류를 세 가지로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놀라운 일치를 보이고 있다.

Q4 석기시대 인류는 정말로 원시인이라는 증거가 있습니까?

'선사시대'에 관한 책들은  인류가 처음에는 수렵인 이었다가, 그 후 농업으로 정착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아담이 에덴에서 추방된 후 바로 농민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그를 추방한 뒤 땅을 갈게 하셨다.

1. 가장 오래된  문명에 대한 모든 역사적  기록들은 인간이 처음부터 농부였음을 보여준다. 

2. 선사시대 인간(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에 주어진 연대들은 증명될 수 없으며 아마도 틀린 것일 것이다.

3. 우라늄이나 나트륨-아르곤에  의한 암석연대측정은 전혀 신뢰할 수 없음이 입증되었다.

4. 동굴인은 초기부터 문명화된 사람들의 주위에서 존재해 온 것이 사실이다. 욥기 24장(B.C. 2,000년 경)은 '광야에서 먹을 것을 부지런히 구하는' 사람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 산들은 폭우로 젖었고,  피난처를 원하므로 바위를 끌어안았고, 골짜기들의 갈라진 틈 사이와 땅과  바위들의 터진 틈에서 거해야 했다."(욥 30장)

5. 오늘날에는 뉴멕시코와  필리핀에는 동굴 거주인이 있다. 어떤 아프리카 부족들은 사냥과 방목 만으로만 살아간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들이 농경인 들과 연관을 맺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6. 정글과 원시 오두막에서 야생 매니옥주, 물고기 그리고 원숭이들을 먹으며 살아온 많은 남미 부족들은 마야, 아즈텍, 잉카의 후예들인데, 그들의 조상들은 숙련된 건축가, 점성가, 장인, 무사 그리고 농민이었다. 그들은 고구마를  탈수하는 방법까지도 알고  있었다. 이 사실은 사람이 야만 상태로부터 일관되게 더 나은  상태로 진화해야 한다는 법이 없음을 말해준다.

 2. 고대 인물과 성경  

 Q1 아시아의 생성시기는 창세기 연대 중 어디에 해당합니까? 

최근 외국 학자들에  의하면 우리 나라의 고조선은 기원전 400년 가량에 세워졌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 이전에는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 지역의 초원을 누비던 유목민족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중앙아시아에서 계속 동진 했음이 밝혀져 있다. 중국의 경우 기원전 2,000년 내지 2,500년경으로 추정되는 상나라를 시작으로  해서 하-은-주(기원전1,000년경)로 이어지는데, 사실 주나라 이전은  전설상의 국가일 뿐더러 이들은 한족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결국 노아의  홍수가 기원전 2,500년경에 발발했다고  할 때 아시아 국가들의 현실적인 기원은 모두  이 사건보다 더 훗날의 일들이며, 바벨탑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라크 지역으로부터 각 민족들(아시아계 포함)이 퍼져 나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Q2 단군은 성경 상으로 어느 시대 사람입니까? 

단군의 건국 연도는 전통적으로 기원전 2,333년으로 알려져 있으나, 민족학자들 중에는 고문(사마천의  사기, 한단고기) 등을 인용하여 기원전 4,000년 내지 5,000년전 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의 언어학, 인류고고학 계열의 연구자들은  기원전 4세기경일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따라서  단군의 건국연도를 현재로서는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노아의 홍수 사건이 약 4,500년전(기원전 2,500년경)이고 바벨탑 사건이 그로부터 약 100-200년 후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기원전 2,333년 건국으로 보면 바벨탑 이후 급격한 민족 대이동에 의해 이주한 사람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단군이 건국하기 이전에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미루어 기원전 4세기경의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만약 기원전 4세기 설이 맞다면 성경 상으로는 이미  유다가 멸망하고 느헤미야가 다시 예루살렘 성을 회복하는 시기에 해당한다.

3. 민족의 기원 

Q1 노아홍수 이후로부터 인구가 증가해 왔다면  지금의 인구가 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 야곱의  가족들은 70여명이 애굽으로 이주해 와서 약 400여년을 있는 동안 60만명가량으로  늘어났다. 이와 같이 자연 사망이나 전쟁, 기근, 질병 등으로 인한  사망을 고려해 연 인구증가율 0.5%, 한 사람당 평균 수명을  40년으로 잡고 한 가정에 2.5명 가량의 자녀를 낳는다고 가정했을 때, 노아 홍수이후(지금으로부터 약 4500년전 이라고 추정)로부터 계산을 해보면  약 50-60억명 이라고 하는 통계가 나온다. 오히려 아주  오랜 옛날로부터 원숭이로부터  서서히 인간이 진화되어 나왔다면 현재의 인구는 아마  지금보다도 엄청난 수로 불어났을 것이며, 아마도 현재의 인구는 온 우주에 꽉 차고도 남을 것이다.

4. 언어 및 문자

Q1 중국 문자인 한자에 창세기의 비밀이 들어있다는데 어떠합니까?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오랜 기간 지속되어온 문명은 의심할 바 없이 중국 문명이다. 그 최초의  왕조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B.C. 2205년까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세기 5,  9장 그리고 11장의 계보로부터 계측해 볼 경우 노아와 셈은  당시 아직 생존해 있었다. 이때는 대략 대홍수 후 120년이 지난 때이다. 그리고 그 이전 20년이 채 못되는 시기에 바벨탑에서의 분산이 있었다.  그러면 그 당시 시작된 문화들은 새로운 언어를 소유하였을까?  중국인들의 역사 초기에 문자가 발명되어졌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수긍되는  사실이다. 이 문자는 많은 고대 문명 가운데서 쓰여진 글자 중  오늘날 유일하게 남아 있는 독특한 상형문자이다. 214개의 시초어근 즉  상형문자의 자모로부터 이들 글자들의 결합으로  더욱 복잡한 글자들이 만들어졌다.  한자의 일반 형태인 표의문자라는 점이 사실적인 스토리  묘사로부터 글자의 개념을 나타내 주었다.  그러므로 역사적인 자료들이 수  천년을 유지하며 영원히 수록, 보존될 수 있었을 것이다. 현재 쓰이는 한자에 남아있는 창세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天(하늘 천)

어른을 나타내는 "大"와 하늘을 나타내는 수평선 "一"이 결합되어져 "天"이 이루어 져서, "천당, 창공, 하늘"을 의미한다.

 神(하나님 신)

"示"와 "申"으로 나누어진다. 왼쪽의 "示"는 "하나님의 신"이라는 뜻으로 세분의 하나님 "小"이 하늘 "一"에서 땅"一" 아래로 내려와 나타내 보이고 "示"있음을 묘사한다. 오른쪽의 "申"은 "펼치다, 알리다"라

는 의미를 가지고 또한 밭이나 동산, 정원의 뜻을 가진 "田"과 관계가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내려 오셔서 동산을 창조하신 모습을 사실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仁(어질 인)

어질 인(仁)은 처음 사람 즉 아담(人)과 그의 옆구리로부터 취한 하와 즉 두 번째(二) 사람을 나타내  준다. 아담과 하와는 범죄하기 전 인류 역사상에서 오직 2인의 완전한(仁) 인류였었다.

 七(일곱 칠)

일곱(七)은 인간이 신을 찬양하기 위해 손을 치켜올리고 있는 경건한 모양을 나타낸다. 심지어는 현재까지도 중국에서는 정월 초이렛날을 ' 인날(人日)'이라고 부르고 있다.

 船(배 선)

큰 배(船)는 배(舟)에  여덟(八) 사람(口)이 탔음을 말한다. 중국에서는 사람을 말할 때  입 구(口)를 썼었다. 이는  노아 홍수 때의 방주에 노아와 그의 가족 여덟 명이 탄 방주를 뜻한다. 

Q2 모세는 문자가 없던 시대에 어떻게 창세기를 기록할 수 있었습니까? 

이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들을 수 있는 케케묵은 질문입니다.  첫째로,  모세 시대  훨씬 이전부터  사람들은  기록하는 일을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널리 사용하고 있었다.  모세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기록하는 일이 성행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예를 들면 고고학자들은  아브라함의 고향인  우르 성에서 석재 서적 수천권을 소장하고 있는 고대 박물관을 발굴해냈읍니다.  이 석재 서적들은 아브라함 시대이전에 기록되었읍니다.  그리고 이것들 중에서  많은 서적들은 속세에 관한  기록들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것은 학자들  뿐만 아니라 평범한 상인들조차 읽고 쓸 수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5. 노아의 홍수 

Q1 대홍수 이전의 사람들은  대부분 900살 이상인데, 어떻게 이렇게 오래 살 수 있었습니까? 

어떤 이는 나이를 세는  방법상의 차이로 주장하고 있으나, 당시 기록에 의하면 하루의 기준은 '욤'(yom),  즉 해가 뜨고 지는 것을 하루의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길이로 하루를 보았다.노아의 홍수  이전에는 상당히 살기 좋은  환경이었다. 우리 나라의 옛 역사책(동이전 등)에서도 1,000여년  가량 장수한 인물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여기서 살기  좋은 환경이었다는 것은 홍수시기에 소멸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기  상층권의 물층(보이지 않는 수증기의 형태)으로 말미암아  생명체에 해로운 자외선의  차단효과가 지금보다 월등 뛰어났을 뿐더러 훌륭한 '온실  효과'를 나타내어 전 세계에 온화하고 고요한 기후를 만들었을 것이라는데 주 근거를 둡니다.

Q2 노아의 8식구로부터 오늘날 인류가 모두 나왔습니까? 

만약 진화가 사실이라면 현재의 인종들과 나라들은 인간으로 화하는 기초적 진화과정이 완성된 후에 단  하나의 공통 조상 선행 인류 개체로부터 시작하여  각각의 부족들과 나라들이  퍼져나갔든지(단종족 이론), 아니면 선행 영장 인류의 각각 다른 다수의 무리들로부터 병행진화에 의해 생겨났든지 (다종족  이론)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진화론자들은 이중 다종족 이론을 지지한다. 역사적 기록을 보면 고도의 문명을 가진 나라들이 여러 곳(중국, 인도, 이집트, 유카탄, 영국, 페루, 페르시아등)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들은 고도의 발달된 문명을 보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종족 이론에 의하면 이와  같은 국가적, 인종적 구별들은 아주 오래 된 것으로서 각각 다른 기원으로부터의 병행진화를 반영하고 있다. 오늘날의 대부분의 진화론적 인류학자들은 사회학적 관점과 고찰을 통해 단종족 이론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현재의 모든 인종들이 최근의 생물학적 시간에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여러 갈래로 생겨났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과연 어느 계통이 이 처음 인간으로 변화되었는지, 그리고 그 후에  각각 다른 "인종들"로 다양하게 변화된 메카니즘과 방향들에 대해서 그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한 실정이다.  성경말씀은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한계를 한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행17:26-27)"라고 증거하고 있다.

나라의 분리는 바벨에서 있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으며,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기 때문이다 (창11:9). 이 심판은 대홍수 후에 "국제연합"을 만들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인간의 뜻을 높이려고 처음 시도했던 인간에게 임했던 것이다.  창세기 10장은 이 분산의 결과로 생겨난 최초의 국가적 단위들 70개를 일일이 열거하고 있다. 그리고 고고학과 민족학을 통해 이는 입증되어 있다. 결국 홍수 후의 바벨탑 사건이 민족형성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4 생명의 기원

1. 생명의 기원

Q1 생명이란 무엇입니까? 

  동아출판사의 세계대백과 사전에  "생명이란 모든 생물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속성 또는  특성으로 어느 누구나 쉽게  느낄 수 있는 것이지만, 정확하게 정의하기는 대단히 어렵다"로 되어 있다 (1).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생명에 대한 명제는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인류가 사색해 온 가장 근본적인 문제로서  철학적, 종교적 입장에서 논의되어 왔음은 물론이고 오늘날에 와서는 유전공학으로 이 문제에 답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생명현상의 핵심물질이라고  하는 DNA의 구조가 밝혀지고 유전자를 떼었다 붙였다 하는 유전자 재조합(Recombinant DNA)기술이 발달된 오늘날의 첨단 과학기술이라도 생명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완전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인간의 몸은 성인의 경우 약 100조개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2).【그림4-1 참조】 1개의 수정란 세포가 100조개의 세포로 어떻게 분화, 발달, 성장해가고 노화하는지에 대해서 아직까지 우리는  잘 모르고 있다. 차라리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고 하는 것이 솔직한  표현일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과학자는 "신만이 알 수 있었던  생명의 신비가 유전자연구로 밝혀지고 있다"고 했다. 사람의 유전자는 3∼5백만 개로 되어 있고 지금 인간 게놈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가 수행되고 있어 4여년 후면 사람 유전자의 해독은 완전히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해독하는 데 더 빠른 방법들이 개발되면 훨씬 단축될 수도 있다. 그래서 혹자는 인간의 유전정보가 완전히 해독되면 생명의 비밀이 해명되어 DNA는 새로운 바이블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람의 유전정보가 완전히 해독되더라도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은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생명이 너무나 신비스럽다는 것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들이 알고 있는 것은 유전자에는 단백질을 생합성할  수 있는 정보가 들어 있다는 것뿐이다. 다시 말해  유전정보가 완전히 해독된다 하더라도 어떤 단백질이 어떻게 합성되어지고 그  역할에 대한 이해는 가능하지만 그것들이 모여서 어떻게 생명을 만들어  내는가에 대한 해답은 얻을 수 없다는 말이다. DNA를 생명의  설계도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있지만 엄밀하게 말한다면 생명을 만드는 물질의 설계도이지 생명자체의 설계도는 아니다. 이와 같은 사고는 과학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할 수 있다고 믿는데서 생기는 결과라 생각한다. 과학은 가설을 포함하여 어떤 유한성을 갖는 진리(때로는 일시적)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장균과 같은  세균은 진화론자들의 가설에  의하면 20-30억년전에 생겼다고 한다. 이렇게 하등한 세균 하나도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만들지 못한다. 대장균이라는 것이 어떻게 해서 생겼다는 것을 즉 그 기원에 대해서는 과학적으로는 전혀 해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과학의 기술이 발달해서 대장균이라는 생명체를 구성하고 있는 성분들 이를테면 단백질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는가  하는 과정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고 어떤 것은 추출하기도 하고 일부는 만들 수도 있어도, 대장균의 생체를 구성하는 재료를 끌어 모아도 결코 대장균은 되지 않는다. 하물며 100조개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는 인간에 대해서라면 차라리 아무 것도 모른다고 하는  편이 진실 되고 꾸밈없는 표현이라 확신한다. 한마디로 말해 현대과학의 발달로  생명의 속성에 대해서는 많이 알게되었지만 <생명이 무엇이냐>고  하는데 이르러서는 첨단과학인 유전공학도 속수무책인 실정이다.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오히려 생명에 대한 성경의 표현은 확실하다.

 "나는 진리요 생명이니...",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다" 생명의 본질은 예수님 자신이며 그분을 알 때 그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유전공학 기술이 생명이 창조한다거나, 신을 대신한다거나 하는 따위의 이야기는 생명에 대한 불이해와 겸허하지 못한 자들의 책임감 없는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Q2 생명이 자연적으로 발생했다는 <오파린의 가설>은 과학적인 가설입니까? 밀러(Miller)의  생명생성 시험관 실험은 이를 뒷받침합니까?

  과학기술 시대에 살고 있는 오늘 날, 생명기원에 관한 해답을 과학자들로부터 기대해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생명의 출발은 과거의 단 한번 일어난 역사적으로 유일한 사건이다. 한편 자연과학은 현재  규칙적이고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일을 연구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과거에 단 한번만 일어났고 아무도 그것을 관찰한 사실이 없는 생명의 기원은 엄격히 과학적 증명의 대상은 아니다. 가령, 누가 몇 가지 간단한 유기 화합물을 시험관에 넣고 에너지를 가해서 생명을 합성하는데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생명을 합성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 중 한가지를 발견한 것이지 현존하는 생명이 반드시 그것과 동일한 절차를 거쳐 만들어졌다는 것을 증명한 것은 아니다. 기계론적 유물론적 입장에서 보면 생명은 물질의 매우 특수한 조직체로 간주되고 진화론자들은 수소원자와 같은 간단한 무기물질들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 생명체로 조직 될 수 있다고 믿어 왔다. 1920년대에 소련의 생화학자 오파린과 영국의 생물학자인 할데인에 의해서 제안된 지구상에서의 생명의 자연발생에 관한 소위 오파린-할데인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은 가설을 포함한다. (1) 지구상에 생명체가 존재하기  전에 원시대기는 암모니아, 메탄, 수증기, 수소 등으로 구성된 환원성 대기였다. (2) 앞에 기술한 환원성 가스에 자외선, 열등 각종 에너지가 작용하여 아미노산, 당류, 핵산염기등 단량체들이 합성되었다. (3) 단량체들이  바닷물에 녹아서 축합하여 단백질, 핵산 등 생체고분자 물질로 중합하였다. (4) 생체고분자 물질이 간단한 물질대사를 수행할 수 있는 원시세포로 조립되었고 마침내 진정한 세포로 진화되었다.

  오파린-할데인 가설에 대한 실험적 접근이 1953년 시카고 대학의 밀러에 의해서 처음으로 시도되었는데 밀러는 자신이 고안한 교묘한 반응기 속에 메탄, 암모니아, 수증기 및 수소가스를 주입하고 전기방전에 의한 에너지를 공급하여 글리신, 알라닌등 소량의 아미노산을 포함하는 간단한 유기화합물을  합성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밀러 실험이 보고된 후 지난 35년간 많은 과학자들이 밀러 실험을 모방한 많은 모의 실험을 수행한 결과 물질에  에너지를 공급하여 스스로 물질이 복잡하면서도 질서가 있는 유기적 조직체로 조작되는 것에는 한계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즉 상기한 선택된 환원성 가스혼합물  또는 시안산 가스등에 에너지를 가해서 얻을 수 있는 물질은 가장 구조가 간단한 아미노산 2-3가지, 그리고 핵산  염기, 몇 가지 당류에 불과하며 이들도 항상 광학이성질체의  혼합물로 생성되며 극히  미량으로 생성될 뿐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문제는 여기서 해결된 것이 아니고 시작되었다. 아미노산이나 당류들의 광학이성질체의 분리, 그리고 수용액 중에서의 다양한 기능기를 가지고 있는 무수한 혼합물로부터 단백질, 핵산 등의 매우 선택적인 축합반응의 불가능성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오파린-밀러에 의한 막연한 가설이 실험실적인 세밀한 고찰의 결과 과학적인 타당성이 없음이 증명된  것이다. 산, 염기, 알데히드, 알코올 등 복잡한 관능기들을 가지고 있는 혼합물로부터 선택적으로 아미노산들이 중합하여 단백질이 된다거나 인산염, 핵산염기, 리보스등이 축합하여 DNA가 합성되는 반응은  적어도 현대과학 이론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희망적인 공상에 불과한 것임을 이 방면의 전문가들에게는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다. 엔트로피 법칙으로 잘 알려진 열역학 제 2 법칙은 아미노산등 단량체가 중합하여 고분자물질이 합성되는 것보다는 오히려 고분자 물질이 에너지 유입이 있을 때 간단한 물질로 분해되는 것이 훨씬 보편적인 방향임을 지시해  준다. 또 한가지 더  심각한 문제는 과연 물질에 에너지만 가하면 어떤 정보(information)가 창출될 수 있는 가이다. 생명의 본질은 DNA(핵산)의 유전정보가 정보판독기인 리보좀에 의해서 특별한 구조와 기능을 갖는 각종 단백질로 변화되는 것이라고 생명과학자들은 의견을 모으고 있다. 생명현상에 필요한 모든 정보가 DNA를 구성하는 4가지  종류의 핵산 염기의 배열  순서에 의해서 결정되는데 가장 간단한 단세포 생명체인 대장균은 약 470만 쌍의 핵산염기들로 구성되는 유전정보를 소장하고 있다 (3). 4가지의 상이한 핵산 염기들로부터 임의로 선택된 3가지 염기군이 각기 한 개의 아미노산에 상응한 암호역할을 하며 20가지 아미노산들은 생체단백질과 효소와 같은 고분자 화합물로 중합된다. 즉 대장균은  DNA에 소장된 유전정보에 따라서 3000개의 서로 다른 효소 및 단백질을 합성하고 이들 효소의 도움으로 5000종의 유기 화합물을 합성한다. 시계를 구성하는 모든 부품을  통속에 집어넣고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공급해 주면 시계가 조립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지구과학자들은 지구가 금성과 화성 사이에 존재하기 때문에 만약에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원시대기가  존재하였다면 그것은 주로 탄산가스나 질소등으로 된 산화성 대기였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오파린-할데인 시나리오의 첫 단계인 환원성 대기의 존재는 적어도 현대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가정을 위한 가정에 불과한 것이다. 산화성 기체에 에너지를 공급하더라도 유기화합물의 합성이 불가능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실험적 사실이기 때문에 밀러형 모의 실험이 생명기원설과 연관해서 의미를 가지려면 소위 원시대기가 암모니아, 메탄등 환원성 기체로 가득 찰 수 있는 생성 기작(mechanism)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질소, 탄소, 수소 존재 하에 에너지를 공급할 때 암모니아나 메탄이 합성되는 쪽보다는 오히려  이미 합성된 메탄이나 암모니아가 다시 분해하는  쪽으로 화학평형이 이루어지는  것이 경험적 사실이다. 원시대기를 구성하는 암모니아, 메탄가스등의 존재를 증명하지 않는 한 밀러형 모의 실험은 다만 실험을 위한 실험에 불과한 것으로 지구상에서의 생명의 기원과는 무관할 것이다. 1953년 밀러에 의한 오파린-할데인 가설에 대한 실험은 결국 오파린-할데인 가설을 부인하기 위한 최초의 실험이 된 셈이다.

2. 진화론자들이 진화의 증거라고 주장하는 것

Q1 노아의 아들로부터 백, 흑, 황인종이 생길 수 있나요? 

 성경에 의하면 오늘날 지구상의 모든 인류는 노아와 그의 아내 그리고 세 아들들과 자부들로부터  기인하며, 그 이전의 기원은 아담과 이브로 거슬러 올라간다.  실제로 진화론자들도 여러 인종들이 각기 다른 기원을  지니지 않는다는 데에는  견해가 일치한다. 즉 그들이 다른 종류의 동물로부터 각기 진화되지는 않았다는 것이 진화론자들의 일치된 입장인 것이다. 그러므로 진화론자들도 동일한 고유의 집단으로부터 모든 인종이 유래하였다는 데에 관하여는 성서적 창조론자들과 견해를 같이한다. 오늘날 다양한 모습을 지닌 인종과 집단이 존재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피부색깔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실은 단 한가지 피부 색소만 존재한다. 즉 그것은  멜라닌 색소인 것이다. 약간의 멜라닌만을 만들어 낸다면 유럽계  백인을 의미하며 다량의 멜라닌을 만들어 낸다면 매우 검은 피부의 흑인이 될 것이다.【그림4-7 참조】물론 이중에는 갈색 피부의 사람이 있을 것이다.  다른 피부의 색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짧은 기간 동안에 어떻게 다양한  피부색깔이 생겨나게 되었는지 설명해 줄 수 있는 몇 가지  관찰을 해보자(여기서  피부색깔이라는 의미는 엄밀히 말해 하나의 피부색깔에서  나오는 다른 색조를 의미함이 더 정확하다). 피부색은 적어도 두개조(組)의 유전자로부터 지배받고 있음이 알려져 있다. 이것을 A와 B로 부르고 여기에 대하여 열성인 유전자는 a 와 b로 부르기로  하자(이 경우 소문자는 소량의 멜라닌을 나타내는 유전자 암호이다). 그러므로  상호 결혼하여 오직 검은 피부의 2세만을 낳는 검은 피부의  사람은 AABB로 표시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백색 피부를 지닌 사람의 경우는 aabb가 될 것이다. 예를 들어 흑백혼혈(AaBb)인 경우에는  퍼닛구획법(punnet square)에  의하여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를 보면 놀랍게도 단지 한 세대동안에 완전한 백인으로부터 완전한 흑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범위를 망라한 피부색깔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것은 단지  특별한 유형의 중간 갈색피부를 지닌 양친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AABB를 지닌 자녀들은 피부에 전혀 밝은 색조가 없는 유전자를 지닌 완벽한  흑인이다. 만일 그들이  결혼하여 그들의 후손들이 다른 피부색깔을 지닌 사람들과는  전혀 결혼할 수 없는 지역으로 이주한다면, 그들의 모든 자녀들은 검은 피부일 것이다. 즉 완전한 흑인혈통이 될  것이다. aabb의 사람들은 흰  피부이다. 만일 그들이 서로 결혼하여 다른 피부 색깔의 사람들과 서로 결혼할 수 없는 지역으로 이주한다면, 그들은 완전한  백인의 혈통이 될 것이다. 그들은 검게 되도록 하는 유전자 즉  다량의 멜라닌을 만들 수 있는 유전자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두 사람의 중간 갈색피부를 지닌 양친으로부터, 모든 피부색깔뿐  아니라 영원히 피부색이 다른 인종들이 손쉽게 태어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오늘날 볼 수 있는 항상 중간 유색을 지닌 인종들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이것도 쉽게 설명이 가능하다. aaBB 라든지 AAbb와 같은 사람들은 그들이 더 이상  다른 인종의 사람들과 결혼하지  않는다면 항상 중간 갈색 피부의 후손을 낳는 일이 가능해진다.  만일 지구상의  모든 인류가 자유로이  서로 결혼하고 자연스럽게 결합하여 스스로 지켜왔던 종족간의 결속을 깨뜨린다면 모든 종류의 새로운 조합이 나타날 것이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어떤 특정한 인종 내에서 종종  다른 인종과 결합된 것과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목격이 된다. 예를 들어 여러분은 때때로 납작코를 지닌 유럽인이나 매우 창백한 피부의 중국인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또 다른  특징들을 연구하는 유전학자들은, 이제 각 인종간의 평균적인 유전적  차이라는 것은 각 인종간에 존재하는 상이점만큼 그렇게 큰 것이 아님을 잘 안다. 이것은 역시 각 인종이 오랜 기간 개별적으로 진화되어 왔다는 것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Q2 교과서에서 배우는 시조새는 정말 진화의 증거입니까? 

 진화론에서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 형태라고 내세우는 가장 유명한 것은 시조새의 화석이다. 이제까지 발견된  많은 시조새의 화석 중 가장 선명한 것은 독일의 졸른호펜(Sornhofen)의 석회암에서 발견된 쥬라기 화석이다. 시조새의 새로서의 특징은 깃털, 날개, 부리이며, 파충류로서의 특징은 뼈가 있는 긴 꼬리, 날개 전면의 발톱, 부리의 치아 등이다.【그림4-11 참조】 그러면 시조새가 정말로  진화론에서 말하는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 형태인지 알아보자.  진화론자들은 시조새의 깃털이  파충류의 비늘에서 진화했다고 한다. 그러나 시조새의 깃털은 다른 종류의 새들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발달한 형태이다. 시조새는 완전히 날 수 있는 새의 깃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깃털로서는 조류가 파충류에서 발생했다는 어떠한 증거도 찾을 수 없다. 진화론에서 시조새가 파충류와 비슷하다고 주장하는 또 하나의 특징은 날개의 앞쪽 끝에 있는 발톱(날개 발톱)이다. 그러나  날개 발톱이 시조새가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 형태라는 증거가 되지  못하는 이유로 현존하는 새 중에도 날개 발톱을 가진 새가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그림4-12 참조】 예를 들면 현재 남아메리카에 서식하고 있는 호애친(Opisthocomus hoatzin, 남미산의 뱀을 잡아먹는 새)이라는 새는 날개 끝에 발톱 두개가 있다. 호애친은 100% 새이면서도 날개 발톱을 가진다.【그림4-13 참조】 그러므로 날개 발톱은 시조새가 중간 형태라는 증거로 전혀 사용될 수 없다.

 그 다음으로 진화론자들이  내세우는 것은 시조새의 치아이다. 그러나 시조새의  치아도 시조새가 파충류와  조류사이의 중간 형태의 증거가 될 수 없는데 이유는 화석으로 나타나는 새들 중에는 시조새 외에도 치아를 가진 새들이 있기 때문이다. 치아의 유무가 파충류와 조류의 판별기준이 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오늘 날 파충류에도 거북이 같은 경우처럼 치아가  없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만일 치아가 없는 포유류인 오리  너구리 등은 여러 모로 볼 때 모든 포유류 중에서 가장 "원시적인"동물이다. 그러므로 치아의 유무도 시조새를 전이 형태로 내세우려는 진화론자들의 입장을 지지해주는 기준이 되지는 못한다. 이상의 논리를 종합해볼  때 시조새를 파충류와 조류의 전이 형태로 채택한 것은  진화론자들의 편견 때문이지 객관적인 증거에 기인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진화론적 조류 전문가인  스윈톤은 "조류의 기원은 대부분 추론에 불과한 것이며  파충류에서 조류로의 변화를  명백히 보여주는 화석 증거는 없다"고 말한다. 이  말은 화석 기록을 볼 때 조류가 파충류에서 진화했다는 진화론의 주장을 부정하는 동시에, 조류의 화석이 독립적으로 갑자기 나타날 것이라는 창조론의 예언과 완전히 일치함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최근에  발표된 한 기사는 이제까지의 진화론에 도전하고 있다. 1977년 9월  24일 발행된 <과학 뉴스-Science News>지 112권의 128페이지에 실린  한 짤막한 기사에서 새의 화석이 시조새와 똑같은 지질 시대의 암석에서 발견되었다는 놀랄 만한 사실이 발표되었다. 만일 실제 새가 시조새와 같은 시대에 존재했다면 시조새는 명백히 조류의 조상이 될 수 없으며 파충류와 조류 사이의 중간 형태도 아니다.

Q3 상동기관을 진화의 증거로 이야기하는데 사실입니까? 

 동물들의 구조를 자세히 관찰한 해부학자들은 뼈,  근육, 신경 등이 동물들간에 서로 비슷한 것이 많음을 발견한다. 진화론자들은 구조적으로 비슷한 것은 같은 조상으로부터 진화된 증거라고 주장한다. 척추동물들은 두개골, 목뼈, 팔, 팔뼈 등 골격과 구조가 유사하다. 예를 들어 목이 긴 기린이나, 목이 짧은 고래의 목뼈는 다 일곱 개로 되어있다. 해부학적인 유사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공통 조상에서 진화했음을 증거 한다고  유추하는 논리는 타당하지 않다. 예를 들어 서울 시내에 학교들이 많은데 모양은 조금씩 다르다고 관찰했다고 하자. 교실들이 있고, 운동장이 있고…. 서로 비슷하다고 해서 이 학교들이 한 학교로부터 진화해서 만들어졌다거나 한 조상으로부터 진화되었다는 논리가 타당하지 않은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생물체의 구조가 비슷하다고 해서 진화를 증거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모양과 구조가 비슷한 것은 창조를 뒷받침 해준다고 볼 수 있다. 성경을 보면 생물체간의 구조적 유사성은 창조주 즉, 설계자가 한 분이었다는 사실을 뒷받침 해준다. 즉 창조주가 여러 종류의 생물을 지으실 때 한가지 기본 모형을 마음에 두신 다음 그 모형에 따라 여러 가지 변형된 모습들을 만들어서 그 생물이 살아갈 환경에 맞게 지으셨다고 본다. 사람의 발은 3개 팔은 열 아홉 개, 소는 다섯 개, 개는 여섯 개 등 다 다르게 지으실 수도 있었다. 소화기관도 동물마다 다르게 지으실 수도 있었고…. 그러나 비슷하게 지으신 이유가 있다고 생각된다. 모든 동물들이 한 지구상의 비슷한 환경에서 같은 공기로 숨쉬고 물도 마시며 비슷한 음식물을 먹고사는 것이기 때문에 비슷하게 지으시고, 필요에 따라 조금씩 변화를 주신 것이라고 본다. 해부학상 비슷한 점이 많을수록 더 진화론적으로 가까운 유연 관계가 있고 같은 조상으로부터 진화한 것을 증거 한다고 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예를 들어 고래는 그 모양이나 물에서 사는 것을 보면 물고기라고 할 수 있다. 진화론 주장대로라면 고래와 물고기는 친척 관계다. 그러나 알다시피 물고기는 냉혈동물이고 알을 낳아 번식하지만 고래는 고양이 , 말, 원숭이처럼 온혈동물이며 포유동물이다. 알을 낳지 않고 새끼를 낳아서 젖을 먹여 기른다. 이런 내부적인 것들은 내륙지방 동물들과 비슷하고 물고기와는 다르기 때문에 육상동물로부터 진화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생물간의 유사성과 차이를 통해 근연관계와 그 계통을 유추하고자 하는 것이 진화론의 방법이기는 하지만 분자수준에서 유사성은 재고되어야 한다. 분자의  생화학적 상동현상을 비교해 보면 해부학적인 유사성은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진화했다는 증거가 될 수  없다는 얘기다. 이제껏 진화론에 근거한 생물종간 비교와 아미노산  배열의 예는 거의 진화론을 지지하는 쪽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예는 진화론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여러 동물의 체내에 존재하는 단백질인 인슐린의 아미노산 차이를 한번  비교해보자. 인슐린을 이루는 아미노산의 구조가 닭, 오리, 타조의  경우에는 거의 유사하며, 생쥐와 토끼도 서로 닮아있다. 그런데 가다랭이(bonito)라는 물고기의 인슐린 구조는 같은 어류인 복어(toadfish)보다  오히려 닭이나 오리, 사람 등과 더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생쥐는 가까운  돼지보다는 오히려 닭, 방울뱀, 가다랭이와 더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예로 시토크롬  C는 에너지 대사에 중요한 효소인데 104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뤄져 있다.  이 효소 단백질의 동물간 유사성을 조사해 봐도 비슷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예컨대 젖먹이 동물인 회색고래의 시토크롬 C는 같은  젖먹이 동물인 원숭이보다 오리의 그것에 더 가까운 것으로 밝혀졌다. 또 두꺼비는 방울뱀보다 초파리와 더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참치의  시토크롬 C도  같은 어류인 돔발상어(dogfish)보다 오히려 토끼의 그것과 닮았다. 이상의 예를 통해 볼 때 상동기관은 진화의 증거가 될 수 없다 (9).

3. 진화론 대 창조론 

Q1 생물학적 진화란 무엇입니까? 

 진화란 말은 다양한 일반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일의  진전, 발전의 과정 (2) 이 과정의 결과, 진화의 결과로 생긴 산물  (3) 어떤 종이나 기관이 그것의 원형으로부터 현재의 상태로  이르는 발전 그리고 (4)  모든 식물과 모든 종들은 초기의 형태로부터 발전되어 왔다는 이론이다. 대개 진화라고 하면 마지막 두개의  정의, 즉  소진화(microevolution), 대진화(macroevolution)라고 부르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소진화와 대진화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함으로써  많은 문제들이 혼동되며, 불필요한 오해가 생긴다. 진화론에 대한 공격은 대부분 대진화에 집중되고 있다. 

Q2 최신의 진화이론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종래의 진화개념을 바꾸어야할 다른 이론이 최근 진화론자들에 의해 제안되었다. 다아윈의 '종의 기원'이 발표된 이래 가장 획기적인 변혁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1980년 10월, 진화론 사상의 큰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스스로  평가한 중요한 진화론자 학술회의가 개최되었다. 진화론과 관련되는 여러  분야 즉, 생물학, 분자생물학, 진화유전학, 화석학, 해부학 등의 세계적 권위를 가진 진화론자들 160명이 시카고의 학 박물관(Field Museum of Natural History)에 모여 '대진화'란 제목으로 회의를 열었다 (11) (Science Vol. 210, 21 Nov. 1980, Evolutionary theory under fire). 결론부터 간단히 말하면 소진화가 일어난다 해서 그것을 연장해서 대진화가 일어난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동안  창조론자들이 지적해 왔던 진화론의 큰 문제점 두 가지중 한가지를 스스로  포기하고 창조론의 주장과 유사한 이론을 받아드린 결과가 된 것이다. 이 회의에서 하버드 대학의 구울드(Stephen J. Gould)교수가 제안한 이론은 종래 진화개념과 다른 것이다. 즉  장기간에 걸친 점진적 변이의 축적의 결과로 대진화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수 백만년 동안 서서히 변화하다가 수 세대동안 갑작스럽게 도약하게 되어 새로운 종류의 생물이 생긴다는 이론이다. 급진적이고 거대한 유전인자의 변화는 괴물이 나올 수도 있으므로 Gould교수의 이론을 '있음직한 괴물이론(Hopeful Monster)'이라고 부른다. 사실 이 괴물이론 또는 단속평형설(Punctuated Equilibria, 또는 Hopeful Monster Mechanism)은 1940년대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의 유명한 유전학자  골드슈미트(Richard B. Goldschmidt)박사가 그의 저서 <진화의 물질적 기초-The Material Basis of Evolution>에서 처음 제안했던 것이다. 그는 말하기를 화석자료는 지구상에 있는 생물의 역사를 보여주는 유일한 직접적 증거가 되는데 다아윈 이후 100여년이 넘도록 아무리 화석을 캐내어 보아도 다윈의 진화론을 지지해 줄 수 있는 중간형태의 생물화석이 하나도 나오지 않자 사실을 사실대로 받아들이고 다른 이론을 제안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그가 관찰해보니 이따금 돌연변이가  일어나 두 다리만 있는 양이 생기기도 하고 머리가 두개 달린 거북이가 생기기도 하는데 다 괴물처럼 생겨서 그냥 곧 죽어버리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괴물 같은 것이 계속 생기면 죽고, 생기면 죽고 하다  보면 혹 언젠가는 좋은 것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착안을 한 것이다. 어느 날 뱀이 알을 까보니 뱀의 알에서 새가 튀어나오는 것과  같은 이론【그림4-15 참조】을 그가 제안했을 때 진화론자들은 그것을 증거도 없이 제안된 터무니  없는 이론이라고 일축했었다. 그 이론이  다시 구울드 교수에 의해 제기된  것이다. 한 종이 점점 진화하여 다른 종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새로운 종들이 나타나는 것이 화석학적 증거이므로 골드슈미트의 괴물이론이 다시 제기될 수  밖에 없다고  말하며 다아윈의 자연선택설은 소진화에는 적용될 수 있을지 모르나 대진화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모임에 모였던 진화론자들은 이 모임은 진화론에 일대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Q3 진화론의 역사는 어떻게 되나요? 

 1785년 휴톤은  '현재는 과거를 아는  열쇠다'라고 했는데, 5년간의 항해에서 관찰한 것을 토대로  1859년 다아윈은 <종의 기원>을 발표하였다. 정치적으로는 혁명을  거부하고 식민지 확장주의가 지배하고 있었으며 사회적으로는 이성주의가  득세하고 있었다. 1865년 영국 과학자 협회 소속 617명의 과학자들이 모여 "성경의 진리의 말씀에 의심을 던지는 당시대의 과학자들의  태도에 마음이 아프고, 자연과학은 완전하지 아니하며 성경말씀과 연구결과가  일치하지 않는 것이 있다 해도 그들이 서로 일치할 때가  온다고 확실히 믿는다"라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철저한 다아윈의  추종자요, 진화론자인 헉슬리는 1959년 다아윈의 <종의 기원>출판 100주년  기념 모임에서 "다아윈의 이론은 창조주로서 하나님의  존재를 우리 인식의  세계에서 완전히 제거했다."라고 했으며, 1960년 그의  저서<Issues in Evolution>에서 "다아윈의 이론은 이제 이론이 아니고  사실이다. 이제 진화론은 부인하는 것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을 부인하는 것과 같다"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1980년 시카고  진화론 회의에서는 "화석기록에서 빠진 고리(missing link)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의 법칙이다. 과학자들이 종과 종 사이를 이어주는  전이 형태의 화석을 찾으려고 하면 할수록 찾지 못하고 실망만 한다."고 할 정도로 진화론의 과학적 증거의 허구성을 스스로 지적하였다. 1980년대에는 굴드교수가 괴물이론을 주장하였는데 그는  쉬아의 균일설의 12가지  허점을 지적하고 알바레즈의 공룡의 대격변적 멸족설을 주장하였다.  따라서 진화론자들도 다아윈식의 진화를 포기한지 오래이며 그들 사이에서도 수많은 모순이 존재함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최근 리차드 도킨스와 같은 동물행동학자(영국 옥스퍼드대)는 다시금 다윈의 점진적 진화론을 신봉하며 전파하고 있는데 역시 이에 대한 비판도 진화론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다. 

Q4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다면 자연에 나타난 그 흔적으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인간이 만든 것 중에 가장 복잡하다고 하는 항공기나 로케트보다도 나뭇잎이 훨씬 더 복잡하고 정교하다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능력이 무한하심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현대과학이 자랑하는 컴퓨터보다도 훨씬 복잡하고  뛰어난 우리의 뇌는 하나님의 창조의 손길을 느끼게 하는 작은 예에 불과하다.  우리는 추웠던 겨울 내내  움츠리고 얼었던 나뭇가지들이 따스한 봄 햇살을 받고, 다시금 파릇한 잎사귀들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본다. 우리는 또한 한편으로 흉측해 보이는 애벌레가 적당한 때가 이르면 자신의 허물을 벗고, 아름다운 날개를  가진 자신의 어미와 꼭 닮은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무엇이 얼었던 나뭇가지들로 하여금 새로운 잎사귀를 내게 하는가? 무엇이 애벌레로 하여금 아름다운 날개를 만들도록 하는가? 또한 우리의 눈은  그 어떤 카메라도 쫓아올 수 없는 정교함을 지녔으면서 어찌 그리도  다양한 느낌을 전할 수 있는가? 다양한 생물들이 각기 다른 모습들을 나타내고 있지만 그들의 구조와 기능을 잘 살펴보면 결국 하나 하나의 세포가 기본 단위가 되어 그 생물체의 생명현상을 영위해 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생물체의 유전을 말해주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는 팥 난다"라는 우리 나라 속담이 사실이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의문은 DNA라고 하는 비교적 간단한 물질에 의해 유전이 이루어짐을 알게 하였다. 이 DNA에 들어 있는 정보에 의해 후손의 특징이 결정되는 것이다. 이러한 정보를 처음 제공하신 분은 누구일까? 수정란 한 개에서 100조의 세포로 분화하는 신비함은 현대과학으로도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이다 (13). 

5 지질, 화석, 공룡

 1. 지질(지층) 분야 

Q1 동일과정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동일과정설이란 "현재는 과거를 아는 열쇠이다" 라는 기치아래 만물의 기원과 발달은 현재의 자연법칙이나  현재의 진행과정과 같은 관점으로 설명되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가설이다. 즉 오늘날과 같은 점진적인 퇴적과 침식과정이 과거에도 동일한 율로 있었고, 이러한 점진적인 과정에 의해 지층은 수억년의 장구한 세월에 의해 생성되었다 라고 주장한다.(1) 이 가설은 과거를 설명하는데 현재의 법칙과 관찰에 근거를 두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이 학설의 신봉자들은 그들의 가설과 반대되는 과거에 대격변이 일어났었다는 것을 힘써 부인하고 있다. 이 가설은  James Hutton에 의해 처음 소개되어 Charles Lyell에 의해 일반화되었다가, Charles Darwin의 생각과 업적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이 학설은 현대지질학의 근간을 이루어 왔으며, 이에 근거하여 지구의 나이가 수십억년 되었다는 가정을 낳게 된 것이다. 사실 19세기 이전까지 거의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지구의 나이가 창조론과 격변설에 따라 매우 젊다고 믿었었다. 동일과정설의 가정에 의하면 퇴적암층은 5,000년에 30cm씩 쌓여 형성되었다고 한다. 즉 100년에  6mm씩 쌓여 퇴적암층이 형성되었고 그 사이에 생물들의 시체가 화석으로 변하였다고 주장한다.【그림5-1 참조】그러므로 두께가 2cm밖에 안 되는 물고기라도 그 위에 흙이 쌓여 화석이 되려면 최소한 333년 동안 물고기는 썩지 않은 채 그 모양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믿기 어려운 계산이 나온다. 동일과정설이 등장하면서 지구의 나이는 불과 100년만에 수천년에서 수십억년으로 나이를 먹게된 셈이다. 그러나 최근 지질학의 발달로 지구 여러 곳의 지형들이 자세히 조사연구된 결과 실제로 퇴적암층이 형성되는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음이 밝혀지고 있다. 미국의 세인트 헬렌산은 화산폭발후 불과 몇 년만에 진화론자들의 계산으로 몇 천만년에 해당되는 퇴적암층이 형성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창조론에서 주장하는 '격변설'을 지지하는 과학적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동일과정설은 하나의 가설이지 과학적으로 입증된 법칙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경은 이러한  거짓 이론이 출현하여 사람들을 미혹할 것이라고 미리 예언하여 놓았다. 베드로 후서 3장 3절 - 5절엔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여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라고 기록되어져 있다. 베드로 사도가 예언한 대로 동일과정설이 홍수에 의한 격변설을 대신하게 되어 문자 그대로 성경의 예언이 성취된 셈이다. 동일과정설에 근거한 진화론이 "현재는 과거의  열쇠"라고 믿고 있는데 대하여 창조론은 "과거는(인간의 타락과 그 구속역사) 현재의 (현 세계의 정치, 윤리, 도덕적인 문제들) 열쇠"라고  주장한다. 현재의 각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문제점들이 어디서 파생되었는지 그 근본문제에 접근하지 않는한 해결할 수가 없는 것이다. 

Q2 대격변설 이란 무엇인가요? 

대격변설(Catastrophism)은 대홍수설이라고 하며 창조론에서 주장하고 있는 이론으로, 현재의 지층과 화석, 지표면의 모양은 과거에 일어난 전지구적 규모의 대홍수와 지층의 융기와 침강과 같은 대격변에 의해 단기간 동안에 갑작스럽게 형성되었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그러므로 지층 속에서 발견되는 화석은 진화계열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단지 홍수 때 매몰되었던 순서에 불과하며, 지층은 수억년의 장구한 세월에 걸쳐서 생성된 것이 아니라 매우 짧은 기간 안에 생성되었음을 주장한다.(2) 

Q3 퇴적지층들이 노아의 대홍수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되는 이유가 있습니까?  

현재 지구 표면의 75%는 수 km에 달하는 두터운 퇴적암으로 덮여있다. 많은 경우 퇴적층들은 수백에서 수천 km2 넓이로 형성되어 있다. 이들은 매우 광범위한 지역을 수평을 유지한 채 발견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만들어져 관측되는 어떠한 퇴적층도 과거에 지구상에서 발견되었던 것처럼 광범위한 지역에 엄청난 두께와 넓이로 발견되어지지 않고 있다. 또한 이들 광범위한 지역에 형성된 두꺼운 퇴적층들은 거의 균질한 물질로서 구성되어 있다. 일예로 미대륙 중앙부의 St. Peter 사암층은 50만 평방마일의 광범위한 지역에 펼쳐져 있는데, 캘리포니아주로부터 버몬트주까지 약 20개 주에 걸쳐 퇴적층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암층은 마치 백사장의 모래와 같이 거의 순수한 석영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미국 남서부 지역의 Shinarump 역암층은 뉴멕시코에서 Saskatchewan과 Alberta까지 125,000 평방 마일의 광범위한 지역에 펼쳐져 있다. 어떻게 이러한 넓은 지역의 퇴적층들이 균일하게 한 물질로만 이루어질 수 있는가? 또한 대부분의 지층과 지층 안의 입자들은 매우 동일한 경도를 유지하고 있다. 콘크리이트의 경우 모래와 세멘트가 균질하게 섞여지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쉽게 부서질 것이고, 경도도 매우 틀려질 것이다. 퇴적암의 전형적인 응결인자는 석회암 또는 탄산칼슘(CaCO3)이다. 지구에는 현재의 생성율에 비할때 매우 많은 석회암이 있다. 지표면을 덮고 있는 퇴적암중에 10~15%는 석회암 (CaCO3)이다. 이 많은 석회암들은 어떻게 생성되었을까? 그리고 이들 중 많은 부분이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석회암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들은 지구적인 대홍수의 결과 발생한 엄청난 량의 퇴적물에 의해서 빠르게 형성된 지층현상인 것이다. 그러므로 짧은 기간에 걸친 전지구적 대홍수에 의해 엄청난 량의 퇴적층이 만들어지고, 거대한 압력과 물의 분류(sorting) 작용인 액화작용(liquefaction)만이 이러한 광범위하고 균질한 퇴적지층을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이다.(7)   

Q4 광범위한 지역의 사암층과 역암층은 거대한 홍수가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St. Peter 사암층과 같은 광대한 넓이의 사암층이 형성되려면 자갈이나 침니, 흙덩어리로부터 모래가 분리되기 위하여 침전물들이 먼 거리를 엄청난 물에 의해 꾸준히 이동해 오면서 분리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더군다나 엄청난 넓이의 역암층의 경우 자갈들이 분리되어 쌓이기 위해, 먼저 맹렬한 물의 힘으로 암석이나 흙덩어리 등이 부서진 후 온갖 크기의 암석과 돌들이 수백 수천 km를 이동하면서 분리가 일어나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광범위한 지역의 사암층과 역암층의 형성은 동일과정설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으며, 거대한 홍수에 의해서만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그랜드캐년의 Tapeats 사암층, Toroweap 사암층, Coconino 사암층 등은 해양의 모래파랑(sand wave)에 의한 퇴적암으로 밝혀지고 있는데, 이들 사암층은 매우 먼 거리를 이동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예를들어 Coconino 사암층은 미국 남서부의 아리조나주, 뉴멕시코주, 텍사스주, 오클라호마주, 콜로라도주, 캔사스주에 걸쳐 무려 520,000 km2의 면적에 40,000 km3의 부피를 차지하는 것으로 밝혀졌으나, 그 근방에 이러한 엄청난 모래를 퇴적시킬만한 출처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10)     

Q5 엄청난 화산들이 과거에 폭발했던 흔적들은 동일과정설과는 맞지 않는 현상이지 않습니까? 

과거에는 오늘날보다 훨씬 격렬하고 광범위한 화산활동이 있었다는 흔적들이 있다. 태평양 북서쪽지역, 인도 등과 같은 지역에는 수백에서 수천 평방마일에 걸쳐 화산용암이 분출되어 흘러내린 지역이 있다. 이들 화산용암들은 강처럼 흘러내렸으며, 수백미터의 두께로 거대한 층을 이루고 있다. 예를 들어 용암류(lava flow)로 인한 거대한 용암대지(lava plateau)가 미국의 워싱턴주, 오레곤주, 아이다호주, 캘리포니아주 북부에 걸쳐 존재하고 있는데, 그 면적이 무려 500,000km2가 넘는다. 인도 서부의 거대한 데칸고원(Deccan Plateau)을 형성한 용암류는 200,000 평방마일에 걸쳐 평균 1.8km 깊이로 어떤 곳은 깊이가 자그만치 3km를 넘는다. 특별히 태평양 해저에는 수많은 용암화산들이 분출한 흔적들이 남아 있는데, 서태평양의 Ontong-Java Plateau에 분출된 용암류는 데칸고원의 25배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으로 이러한 스케일의 화산활동은 오늘날에는 보고되지 않고 있다. 또한 흥미로운 점은 화산암과 퇴적암층이 교차되며 존재한다는 것인데, 캄브리아기 지층 아래로는 오래된 용암류가 발견되지 않아 홍수전에는 화산폭발이 없었으며, 신생대 4기인 Pleistocene기와 후반기까지 폭발한 것으로 보이는 수천의 사화산들이 지구 도처에서 발견되는 것을 볼 때 홍수의 시작과 함께 격렬한 화산폭발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12) 이와같은 사실들은 큰 깊음의 샘들이 터져(창7:11) 막대한 양의 용암과 지하수가 터져나와 홍수가 시작되었다는 창세기 내용과 일치한다.

 을 침식시켜 몇번이고 사라지게 할 수 있는 광대한 시간이 흘렀는데도 어떻게 이 평원은 유년기 상태로 남아 있는가?" 

 Q6 지금의 대륙은 정말 수억 수천만년 동안 침식이 진행되어온 것입니까? 

동일과정적 진화론자들은 일반적으로 대륙은 25억년전에 생성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호주대륙은 30억년 이상 되었으며, 대륙의 어떤 곳들은 6~30억년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육지대륙의 침식률들이 측정되면서 이러한 주장들은 터무니없음이 밝혀졌다.

물(water)은 많은 광물질들을 용해하며, 육지의 암석과 토양을 부숴뜨려 바다로 운반하고 있다. 물에 의한 침식은 바람, 빙하, 파도 등에 의한 침식보다 월등히 크며, 비(rain)로 인한 침식작용이 주요한 원인이다. 물에 의한 침식작용은 쉬지 않고 끊임없이 일어나며, 육지의 강들은 매년 엄청난 양의 토사를 운반하여 바다를 메우고 있다. 많은 연구자들이 세계적인 강들의 퇴적물 량을 계산하여 육지의 침식률을 계산하였다. 몇몇 강들은 수계 유역을 1,000년에 1,000mm (39인치) 이상 침식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가장 작은 것은 1mm (0.04인치)였고, 평균 침식률이 60mm인 것으로 계산되었는데, 이것은 1년에 240억톤의 퇴적물량과 동일한 것이다 (세계적인 강들의 1,000년당 수계유역 침식률 : 와이호 1350 mm, 황하 900, 갠지스 560, 라인과 론 340, 티그리스 260, 인더스 180, 양쯔 170, 포 120, 아마존 71, 포토맥 15, 나일 13, 세느 7, 코네티컷 1 mm). 사람의 생애를 기준으로 볼 때 이러한 침식률은 미미한 것이지만, 수억년의 세월 동안이라면 엄청난 량으로, 1,000년에 60mm는 25억년이면 150km 높이에 해당된다. 특히 히말라야, 멕시코, 파푸아뉴기니 등의 깊은 계곡과 경사면을 가지고 있는 산악지역의 침식률은 매우 큰데 가장 빠른 침식률을 보이는 파푸아뉴기니의 화산지대는 1,000년당 침식률이 19,000mm 로 10만년이면 1,900m의 산을 평평하게 할 수 있으며, 황하강의 경우 천만년이면 에베레스트산 만한 고원을 없애버릴 수 있다. 따라서 대륙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어야 하며 (현재 대륙의 평균 고도는 623m), 앞으로 1400만년 후면 모든 대륙은 사라져버릴 것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침식이 빠르게 진행되는데 아직도 산들과 대륙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많은 지형들은 수억 수천만년이 되었다고 하면서도 진행된 침식현상들을 발견할 수 없는가?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지구의 연대는 매우 젊은것은 아닐까? 그러나 진화론적 지질학자들은 이러한 결과들을 도저히 수용할 수 없기 때문에 늘 다른 설명들을 만들어낸다. 하나는 산의 윗부분은 침식되지만 밑에서부터 계속 융기되어 올라오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처럼 만약 침식과 융기가 계속 일어나고 있다면, 산은 25억년동안 몇 번에 걸쳐 재생성되어야만 하는데, 산의 많은 지역들은 젊은 지층부터 오래된 퇴적지층까지 모든 시대의 지층들을 가지고 있는 채 발견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설명은 기각되고 만다. 또 하나는 오늘날의 침식률이 과거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높을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농업, 목축, 도시화 등 인간의 활동으로 인한 자연에 대한 간섭은 침식률을 높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Judson은 인간활동에 의한 영향은 침식률을 단지 2~2.5배정도 증가시킬 뿐임을 보고하였다. 그러므로 수백배의 증가요인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 설명도 기각되고 만다. 또 다른 하나는 과거의 기후는 건조하여 강우량이 적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강우량이 적으면 침식률도 적음). 그러나 발견되는 풍부한 식물과 동물 화석들은 과거의 기후가 매우 온습하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면 무엇인가? 결론적으로 침식률에 의하면 육지대륙의 형성연대는 절대로 수십억년 아니 수천만년도 될 수 없다는 것이다.(16, 17, 18)  

Q7 창조론에서는 빙하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진화론에 의하면 지금까지 4번에 걸쳐 빙하기가 있었다고 하는데 몇 번의 빙하기가 있었다는  증거는 주로 신생 빙하점토 아래에 풍화된 빙하점토가 있다는 것과 온대지방 식물군과 동물군을 함유하고 있는 지층이 두개의  빙하점토 퇴적물 사이에서 발견되어 따뜻한 간빙기의 증거로 사용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노아홍수와 같은 한번의 대빙하 작용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빙하층이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소규모로 불어났다 줄었다 하였을 것이고, 빙하의 가장자리에는 홍수가 있어 빙하 퇴적물을 활발히 재형성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빙하의 가장자리에 살던 상당수의 식물군과 동물군이 빙하 가장자리의 움직임에 따라 빙하 점토 사이에서 발견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아의 홍수이후 수증기층의 붕괴로 인한 양극지방의 기온강하, 따뜻한 바닷물의 증발에 의한 엄청난 강설 등에 의해 빙하기가 초래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점점 신빙성을 더해가고 있다(23, 24) (노아홍수의 영향 (Q1)을 참조할 것).  

Q8 히말라야, 알프스, 아라랏산 등과 같은 높은 산들도 노아 홍수때 물에 완전히 잠겼습니까? 

노아 홍수 때 지상을 덮을 수 있는 물의 최대 높이는 이론적으로 약 3km 정도 된다고 한다. 성경에는 분명히 "~천하에 높은 산이 다 덮였더니 (창7:19) " 라고 기록되어 있고, 지금의 에베레스트산은  높이가 8km가 넘는데, 이것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그런데 홍수 전에는 모든 산들이 지금의 산들처럼 그렇게 높지 않았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그러므로 모든 산들을 덮기 위한 물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특히 과거에 에베레스트산은 지금보다 훨씬 낮았으며, 한때는 바닷물에 잠겨 있었다는 증거로 에베레스트산 정상근처에서 물고기뼈와 대합조개 등 바다생물의 화석들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에베레스트산 역시 노아 홍수 때 확실히 물 속에 잠겨 있었으며, 홍수 이후 조산운동으로 인해 지금처럼 높아지게 되었다는 생각을 강력히 뒷받침 해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아라랏산(5,160m, 3,920m의 두 봉우리)의 2,100m 근방에는 주먹만한 소금덩어리가 발견되고, 4,200m 근방에서는 베게용암(pillow lava)이 발견된다. 이러한 베게용암은 물 속에서 용암이 매우 빠르게 냉각될 때 형성되는 것으로 매우 높은 유리성분을 함유한다. 지질학자들에 의해 조사된 아라랏산의 화성암들은 매우 높은 유리성분을 함유하였음이 보고되었다. 아라랏산은 분명히 4,200m 부근 이상으로 물에 잠겼었음이 확실하다. 그리고 이 베게용암이 만들어질 당시 엄청난 홍수가 있었음에 틀림없다.성경은 분명히 노아 홍수때 물은 천하에 높은 산들을 덮고도 약 7m(십오 규빗)정도 남을 정도로 전 세계적 홍수였음을 기록하고 있다 (창7:20). 

Q9 남극이나 북극에 쌓여 있는 얼음층의 아이스코어를 채취 측정한 결과 수만년 이상에 걸쳐서 쌓였다고 하는데 그러면 성경의 연대가 잘못된 것 아닙니까?  

어떤 이들은 그린랜드의 아이스코어의 연대를 층(연륜)을 이용해서 측정한 결과 4~16만년이기 때문에 성경의 연대는 잘못되었고, 전 지구적인 홍수가 있었다면 여기에 어떠한 흔적을 남겼을 것이라고 한다. 정말 그런가?

극지방의 ice core를 조사함으로 먼 과거의 기후를 조사할 수 있다는 말을 자주 들어왔을 것이다. 미국, 러시아, 덴마크, 프랑스 등의 연구팀들은 극지방의 얼음층을 1마일(1.6 km) 이상의 깊이로 뚫어 분석을 시도하였다. 산소동위원소의 변화율, 기포 중에 갇힌 CO2의 농도, 산성도, 입자 등을 조사한 결과 가장 밑바닥의 얼음층은 16만년 전에 쌓였다고 보고하였다. 그러나 이 결과는 얼음층을 직접 측정한 결과가 아니라 과거의 기후 모델을 추정하여 만들어낸 결과인 것이다.

1942년 그린란드의 동쪽해안 얼음 위에 불시착했던 비행기들은 1988년 발굴 시 75m 깊이의 얼음층 속에 묻혀서 발견되었다.(25) 불과 50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 내에 놀라운 두께의 얼음층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1년에 1.5m). 위의 경우에 의하면 그린란드의 평균 1200 m의 얼음층은 단지 1000년보다도 적은 기간동안 축적된 양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아래 눈층은 엄청난 압력을 받아 압축되어질 것이 예상됨으로 그 높이를 평균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

그린란드 북쪽 끝에 위치한 Camp Century 지역의 얼음층을 조사한 결과 윗부분은 년간 36 cm, 바닥부분은 년간 5 cm 정도 형성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평균 20cm로 계산한다 하더라도 조사된 1,200m의 얼음층은 6000년이면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이 결과는 그린란드 중심지역에서 측정된 년간 δ18O의 변동치와 비교적 잘 일치하며, 역사적으로 기록된 화산폭발에 의한 화산재 강하와 산성도의 계절적인 변화치를 측정한 결과와도 매우 잘 일치하였다. Hammer 등은 AD 553 ~ 1972년 동안 역사적으로 기록된 화산폭발과 매년 얼음층의 평균 산성도의 피크치와 관계가 있었으며, 그린란드 중앙의 Crete 지역의 ice core 에서는 12번의 역사적 기록과 일치하는 화산폭발의 증거들을 발견하였다고 보고하였다. 알려지지 않은 화산폭발들도 ice core 에는 남아 있었고, 깊은 얼음층에서의 년간 변화치는 적었고, 역사적 기록도 적어 연대결정은 매우 불확실하였음을 보고하였다.

남극에서도 ice core 가 조사되었는데, 구 소련의 남극탐험대는 남극 동쪽의 Vostok 지역을 조사한 결과 3,600 m 깊이로 얼음층이 형성되어 있었으며, 이중 2,100 m 길이의 ice core를 채취하여 조사하였다. 그린란드의 ice core와 같지 않게 년간 δ18O 변화치와 다른 측정요소들은 깊은 얼음층에서는 확인할 수 없었다. 가장 바닥층의 연대는 대략 100,000 년 이상으로 추정하였는데, 이 추정치는 오늘날 남극지역의 강설량은 그린란드보다 훨씬 적다는 것과, 가장 바닥층의 얼음층은 낮은 지형부터 채워지기 위해 수평적으로 이동하는 등의 변수들을 고려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연대추정에 결정적인 변수를 고려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과거의 강설량이 오늘날의 강설량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몇몇 창조과학자들은 컴퓨터를 이용 대홍수후의 기후변화를 추적한 결과 극지방에 쌓인 얼음층의 95%는 대홍수 후 500 년 안에 형성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대홍수 후 화산폭발, 따뜻한 지하물층의 분출 등으로 따뜻해진 바다에서의 대규모의 증발과 이에 따른 엄청난 강설은 오늘날에 비해 수십배에 이를 수 있으며, 이것이 사실이라면 빙하의 형성연대는 매우 축소될 수 있는 것이다. 대홍수후의 강설량이 많았고, 동일과정적 연대가 사실이라면 극지방에는 훨씬 두터운 얼음층이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그린란드와 남극지역에서 조사한 ice core에 의한 오래된 지구의 주장은 근거가 희박한 것이다.(26)  

Q10 석회암은 정말 오랜 세월에 걸쳐 쌓여진 것입니까?  

"석회암은 엄청난 수의 미세한 바다 동물들의 뼈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어떤 퇴적층은 두께가 수 천 미터나 된다. 이 모든 동물들이 홍수가 시작될 때 살아 있었나? 그렇지 않다면 이 퇴적물 속의 잘 정리된 화석들의 순서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오늘날에는 대략 1.5 x 1015 그램의 CaCO3가 대양의 밑바닥에 매년 쌓인다 (1000년에 30cm정도). 홍수가 일어나기 5000년동안 지금의 퇴적 속도보다 열배는 더 많이 쌓인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전체의 0.02%의 석회암 퇴적보다 적은 양을 설명할 뿐이다."

이러한 주장은 모든 석회암의 생성근원이 생물체에 의한 유기적 석회암으로만 가정하고 하는 억지 주장이다. 석회암은 무기적 석회암도 있는 것이다. 석회암은 탄산칼슘(CaCO3)을 주성분으로 하는 주요 퇴적암의 하나로서, 석회석이라고도 한다. 보통 세립, 괴상의 무구조 암석으로 순백 또는 회백색이나, 불순물이 섞인 것은 암회색이나 흑색 등을 띤다. 석회암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되는데, 하나는 생물의 유해로 이루어지는데 비교적 pH가 높은 곳에서 탄산 석회질의 껍질을 분비하는 생물에 의해 유기적으로 침전, 고정되어 형성된 것으로 유기(적) 석회암 또는 유기(적) 침전암이라 하며, 주로 따뜻하고 얕은 바다의 조용한 환경에서 산호, 조개 및 유공충과 같은 탄산염 껍데기를 갖는 광물이 번성한 후 이들의 유해가 퇴적되어 형성된다. 다른 하나는 물에 용해된 탄산칼슘이 무기적 화학작용에 의해 침전되어 생성된 것으로, 이를 침전석회암 또는 화학적침전암이라고 한다.  

최근 엄청난 두께의 석회암층은 생물체에 의한 유기적 석회암이 아니라 바닷속 화산폭발에 의해 단기간내에 만들어진 무기적 석회암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오늘날의 lime-muds는 Aragonite 로서 대략 20 ㎛ 크기의 미사 (silt, 모래보다 잘지만 진흙보다 굵은 침적토) 결정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랜드캐년의 미세한 석회암은 방해석(calcite)으로서 4 ㎛ 이하의 진흙 결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미세한 결정은 석회암의 근원이 화학적으로 무기질에 기인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Walter Brown 박사는 "In The Beginning" 이라는 책에서 석회암층의 형성과정을 잘 설명하고 있다. 오늘날 화산에서 분출된 가스는 70% 수증기와 15~20%의 CO2로 되어있다. 화산용암의 주요 광물중 하나는 사장석(plagioclase feldspar)으로서 이것은 칼슘을 함유한 anorthite(CaAl2Si2O8)와 나트륨을 함유한 albite (NaAlSi3O8)의 두 종류가 혼합되어 구성되어 있다. 이때 anorthite의 칼슘은 기회만 주어진다면 나트륨으로 치환되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free calcium이 유출되어진다. 창7:11)절에 노아의 홍수는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 시작되고 있기 때문에, 거대한 화산폭발들이 대양에서도 이루어졌을 것이며, 이때 많은 수증기와 CO2, 그리고 장석(feldspar)를 함유한 용암들이 바다 속으로 흘러나왔을 것이다. 바다에는 염분(NaCl)이 풍부하기 때문에 anorthite feldspar와 반응을 하여 free calcium을 유출시켰을 것이며, 칼슘은 물에서 쉽게 수산화칼슘(Ca(OH)2)과 수소를 생성하고, 이것은 연이어 이산화탄소와 반응하여 방해석과 수소를 만드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석회암의 형성이론은 화산폭발을 동반한 거대한 격변에 의해 거대한 석회암층이 빠른 시일내에도 생성될 수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석회암이 1000년에 30cm 정도로 오랜 세월에 걸쳐 퇴적되었다면 많은 의문점들이 발생한다. 먼저 독일 Solnhofen 석회암 지층은 시조새 화석을 함유하여 유명해진 석회암층이다. 이 지층은 매우 미세한 석회암 입자를 가지고 있어 화석을 매우 잘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앞에서 처럼의 논리라면 이 석회암층은 매우 미세하기 때문에 매우 천천히 퇴적되었어야 한다. 그러면 완전한 매몰이 일어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흘렀을텐데 화석은 그동안 썩지 않고 어떻게 남아 있었을까? 브라질 Santana Formation 석회암 지층의 석회암 속에는 많은 물고기 화석들이 발견되는데, 이들의 죽음의 원인이 석회암의 격변적 매몰이었음으로 밝혀졌다. 이 경우는 어떻게 된 것인가? 1966년 그랜드 캐년의 Redwall 석회암층에서는 다수의 오징어화석 발견되었는데, 매우 미세한 석회암 입자에 묻혀 있었다. 60cm 정도 생물의 화석화는 매우 빠른 퇴적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랜드캐년의 석회암층에는 평온한 물에서는 결코 분리되어질 수 없는 석영모래 알갱이와 모래크기 이상의 조개 껍질조각들이 함유되어 있다. 이러한 커다란 알갱이들은 동일과정설에 의한 평온한 얕은 바다에서는 만들어질 수 없고, 빠른 움직이는 물에 의해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게 하는 것들이다.

또한 동물성 플랑크톤의 사체로 만들어지는 백악(chalk)은 미세하기 때문에 수백만년에 걸쳐 천천히 축적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백악의 축적률은 매우 변동이 심하며, 격변적인 홍수기간중에 coccolithophores와 같은 작은 생물체의 폭발적인 증식에 의해서 짧은 기간 안에 퇴적될 수 있음이 보고되고 있다.(30, 31, 32)  

Q11 그랜드캐년은 수천만년동안 콜로라도강의 침식에 의해 만들어졌다는데, 이것은 성경의 연대와 틀리는 것 아닙니까?

 그랜드 캐년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하는 의문에 대해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콜로라도강에 의해 수백만년동안 조금씩 침식되어 만들어졌으며, 물의 힘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제시되어 왔고, 동시에 엄청나게 긴 시간에 대한 실례로 사용되어 왔다. 그랜드캐년의 형성 이론 중에서 100여년이 넘게 유일하게 주장되어오던 이론이 이 River theory 이다. 이 이론은 모든 교과서에 기록되어 있으며, 그랜드 캐년 국립공원 안내소에서도 채택하고 있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1869년 동일과정설을 믿는 지질학자인 Jojn Wesley Powell이 강을 따라 뗏목 여행을 하면서 생각해낸 이론으로서, 강은 5천~7천만년전 콜로라도 고원이 융기하기 전부터 현재의 위치와 같이 과거에도 동일하게 존재하였고, 서서히 융기가 일어나면서 강도 융기된 부분을 침식하기 시작해 현재의 위치에 도달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많은 지질학자들은 이러한 설명이 잘못되었음을 주장하고 있다. 즉, 그랜드캐년 자체 1,000 cubic mile의 퇴적지층이 제거되었고, 콜로라도 고원 100,000 평방마일에 걸쳐 300~900m 사이의 지층이 침식되었는데, 이들 막대한 침식퇴적물의 흔적을 강하구나 연안바다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1926년부터 1950년까지 Glen Canyon Dam이 만들어지면서 콜로라도강의 퇴적물의 양이 세밀하게 측정되었는데, 그 양은 평균적으로 하루에 50만톤(1927년 홍수 시는 하루에 2천3백만톤 까지)으로 일년에 대략 1억6천8백만톤으로 측정되었다. 그러므로 7천만년동안 침식이 일어났다면 그 양은 168 million tons/year×70 million year = 11.8 million billion tons으로서, 이 양은 1.3million cubic mile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양으로 그랜드 캐년 전체의 1500배나 되는 양이다. 그러나 강 하구 어디에도 이러한 거대한 퇴적지층이 쌓여 있는 삼각주는 없다. 그랜드캐년의 서쪽 끝 Pierce Ferry에는 약간의 퇴적 지층이 발견된다. 그러나 이것도 부분적으로 화강암의 조각들을 가지고 있는 석회암으로서, 수백만년 동안 그랜드캐년이 침식된 퇴적물이 쌓인 것이라고는 전혀 볼 수 없다. 이 지층은 Muddy Creek Formation이라 불리워지고 있으며, 대략 2천만년전 신생대 Miocene 기에 생성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1964년 그랜드캐년의 서쪽지형에 관해 지질학자들이 심포지움을 열었는데, 이들은 만장일치로 기존의 그랜드캐년의 형성이론은 잘못되었음을 인정하였던 것이다.

또하나 이상한 것은 콜로라도강은 고도가 높은 그랜드캐년의 서쪽지역을 통과하여 흐르고 있다는 것이. 콜로라도 강의 동쪽(유타-아리조나 경계선의 북동쪽)은 강이 높은 고도에서 낮은 쪽으로 정상적으로 흐르고 있다. 현재 Powell 호수를 형성하고 있는 Glen Canyon Dam 근처 지점은 고도가 1500m 정도이다. 그러나 그랜드캐년의 서쪽지역은 융기된 광대한 콜로라도 고원이 수백마일에 걸쳐 올라가 있다. 이것은 전에 있던 평평한 지층을 900m 정도 융기시킨 Kaibab Upwarp 또는 Kaibab Monocline에 기인한다. 이 고원은 강의 흐름을 막았을 것이며, 강의 물줄기를 남동쪽의 Rio Grande와 연합시켜 멕시코만으로 돌렸을 것이다. 그러나 강은 이 거대한 Monocline(단사)을 통과하여 자르고(거슬러 올라가 침식을 일으키고) 서쪽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33) 

2. 화석 분야

Q1 창조론과 진화론에서 화석은 왜 중요합니까? 

생명의 기원이 창조냐? 진화냐? 에 대한 직접적인 과학적 증거자료는 화석이다. 왜냐하면 화석은 과거 지구상에 있었던 생물의 모습을 직접 보여 주기 때문이다. 유전적 돌연변이에 의한 진화는 오늘날 발생하지 않고 관찰할 수도 없기 때문에, 한 종에서 수많은 다른 종으로 진화하였을 경우 화석은 그 과정을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화석으로 나타난 과거생물의 형태나 구조, 흔적들을 조사 연구함으로써 생명의 기원에 대한 학설 중 어느 것이 과학적으로 더 타당한지를 판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Q2 화석은 어떻게 형성됩니까? 

화석은 퇴적암 지층에 보존되어 있는 과거생물체의 유체, 유해 및 흔적을 말한다. 생물이 죽어서 썩기 전에 화석 형상이 만들어져야 하므로, 화석은 물이 진흙이나 모래들을 급속히 퇴적시킬 때 특히 많이 형성된다. 생물의 시체를 포함한 퇴적층은 적당한 압력과 온도 등의 여건들이 갖추어지면 퇴적층 속에 있는 광물질과 식물의 섬유질이나 동물의 단백질이 교환작용을 해서 생물의 형태를 그대로 보존한 채 암석화되는 것이다.【그림5-4 참조】화석은 여러 형태로 발견되는데 뼈, 껍질, 치아 등 딱딱한 경부조직이 주로 화석으로 남아있고, 얼음 속에 보존된 맘모스 화석, 호박 속에 갇힌 곤충화석, 타르 구덩이에 빠진 동물화석 등에서는 살, 내장, 피부 등의 연부조직도 남아 있는 경우가 있다. 규화는 나무 등에 광물질이 치환되어 돌같이 굳은 것을 일컫으며, 인상은 생물체의 조직이나 외형이 퇴적물에 찍혀 보존된 것을 말한다. 생물의 골격 등이나 생활 흔적이 퇴적층에 찍혀 보존된 화석을 몰드라 하고, 그 비어있던 곳에 퇴적물이 채워진 경우를 캐스트라 한다. 화석들은 전 세계에 걸쳐 발견되는데, 오늘날에는 화석이 형성되고 있지 않다. 화석은 오직 부패되거나 산화될 여유 없이 급격히 매몰된 후 계속되는 퇴적으로 인한 엄청난 압력을 받아야만 형성될 수 있다. 따라서 대홍수와 같은 예외적이고 급격한 환경 변화에서 대량적으로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Q3 창조론과 진화론은 화석과 지층 형성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화석과 지층을 해석하는 데는 두 모델이 있다. 하나는 지층이 수억년의 오랜 시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형성  되었다는 진화론적인 동일과정설이며, 다른 하나는 지층이 대홍수(성경의 노아홍수)와 같은 천재지변에 의하여 단기간에 급속히 형성되었다고 보는 창조론적인 격변설이다. 진화론에서는 무생물인 유기물로부터 생명체인 세포가 우연히 만들어진 후 수많은 돌연변이를 거쳐 어류,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 사람으로까지 엄청난 변화를 하였다고 가정한다. 그러므로 지층은 수억년의 엄청난 기간동안에 쌓였으며, 지층의 가장 아랫부분에서는 가장 간단한 생물의 화석이 나와야 하고 위로 갈수록 복잡한 고등동물이 나타나야 하며, 그 중간마다 진화도중의 전이화석들이 존재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창조론에 의하면 대부분의 동식물 화석은 단기간에 천재지변적 대홍수 때에 거의 동시에 형성되었으며, 지층의 화석 분포가 생물의 진화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단지 서식지와 기동성에 의해 묻혔다고 본다. 즉 가장 밑에 층은 낮은 위치에 살았던 바다생물들이 나오고, 윗지층은 육상생물들이 나온다는 것이다. 또한 모든 생물은 태초에 각각 서로 다른 종류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가장 낮은 지층에서도 완벽한 기능을 갖춘 각종 생물체들이 종류대로 나올 것이고, 진화도중의 중간화석은 발견되지 않을 것이며, 종 안에서 작은 변화만 있을 뿐 오늘날과 똑같은 생물의 모습으로 나올 것으로 예측한다.(36)

Q4 그동안 얼마나 많은 화석들이 발견됐으며, 발견된 화석들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1859년 다아윈이 "종의 기원" 이라는 책을 통해 진화론을 발표한 후 140여년 동안 25만종의 생물들이 1억개 이상 화석으로 발견되어 수천의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지만, 진화를 증거 하는 화석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육상척추동물 중 생물분류학상 목(orders) 에 해당하는 살아있는 동물의 97.7%가 화석으로 거의 모두 발견되었으나, 진화의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우리는 국회의원 선거 때에 1% 이하의 출구조사 자료를 가지고도 당선후보를 정확히 예측하는 보도들을 종종 보았을 것이다. 수백만종의 동식물의 엄청난 진화가 사실이라면 벌써 화석으로 그 증거들이 나왔어야 한다. 97.7%의 동물들이 발견되고, 1억개 이상의 화석이 발견되었는데도 입증되지 않는 이론은 사실이 아닌 것이다. 앞으로 진화를 증거 할 화석이 발견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이제는 하지 않는 것이 옳다. 진화론자들은 가끔 몇몇 유인원의 화석과 시조새의 화석을 진화의 증거로 제시하지만, 이들은 전혀 진화의 증거가 될 수 없음이 밝혀졌다. 그리고 중간화석이라고 주장하는 것들도 종 내의 소규모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들뿐이다. 초창기 진화론자들은 앞으로 화석이 다량으로 발견되면 진화론이 입증될 것이다 라고 하였으나 그 반대로 화석이 발견되면 될수록 진화론이 틀렸음이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37, 38, 39, 40)   

Q5 진화도중의 전이(중간)형태의 생물화석이 발견된 적이 있습니까? 

사람은 무생물로부터 시작하여 원생동물, 후생동물, 척추어류,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 유인원을 거쳐 사람으로 진화했다는 것이 진화론자들의 주장이다. 그러므로 단세포동물에서 오늘날과 같은 다양한 동식물로 진화되기 위해서는 무수한 진화중간단계의 동식물들이 발견되어야 한다. 그러나 단세포와 무척추동물사이, 무척추동물과 척추동물사이, 어류와 양서류사이, 양서류와 파충류사이, 파충류와 조류사이, 파충류와 포유동물사이, 포유동물과 사람사이, 수많은 식물종 사이에 있어야할 전이형태의 생물체 화석은 발견된 적이 없다. 이것을 대부분의 진화론자들도 인정하고 있으며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 또는 "fossil gap" 이라고 한다. 일예로 파충류에서 포유류로 진화하였을 경우 매우 심각한 문제들을 극복해야한다. 알을 낳다가 새끼를 낳게 되고, 냉혈동물에서 온혈동물로, 횡격막이 생기면서 호흡기관이 변했고, 젖을 먹일 수 있도록 유선이 만들어졌으며, 비늘이 털로 바뀌고, 붙었다 떨어졌다하는 파충류의 턱뼈가 광대뼈에 붙게 되었고, 귀에 코티씨관이 생겼으며, 덩치 큰 코끼리, 목이 긴 기린, 날아다니는 조그마한 박쥐, 물 속에서 사는 고래 등 매우 다양한 포유류들이 모두 다 진화로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엄청난 변화를 겪었을 동물들의 중간화석들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중간화석이 발견되지 않자 격리된 그룹에서의 진화는 매우 빠르게 일어나기 때문에 중간형태의 화석이 결여되었다는 단속평형설을 제시했는데, 이 이론은 유전학적으로 불가능하고, 실제 관찰된 바도 없으며, 화석으로도 증명된 바 없는 이론인 것이다. 또한 몇몇 진화론자들은 풍부한 전이형태의 생물화석들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을 하는데, 그 예들은 거의 대부분 종 내에 소규모적인 변이를 보이는 생물들의 화석들인 것이다. 진화를 증거 하는 진화도중의 전이(중간)화석은 발견된 적이 없다.(42, 43) 

 Q6 화석의 형성은 대홍수와 같은 대격변에 의해 짧은 기간에 만들어졌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진화론에서는 생물이 진화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지층의 형성에 대해 동일과정설을 주장하고 있다. 지층이 1cm 쌓이는데 수백년, 30cm쌓이는데 수천년이 걸리며 지구의 나이는 약 46억년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수십만년의 시간이 걸렸다는 퇴적층을 수직으로 뚫고 서 있는 다지층나무, 거대한 공룡, 고래 화석들이 발견되며, 빗방울자국, 물결자국, 발자국 등의 일시적인 흔적들이 화석으로 발견되고 있다. 즉 퇴적층은 결코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죽은 동식물들은 부패되거나 먹히기 때문에 빠르게 분해된다. 그러므로 화석으로 보존되기 위해서는 두터운 침전물에 빠르게 묻혀야 한다. 또한 물고기의 경우 죽으면 물위에 떠서 다른 물고기에게 먹히거나 쉽게 부패하기 때문에 화석이 되기가 극히 힘들다. 그러나 미국의 크로마이티지역에는 뒤틀리고 구부러진 수억의 물고기 화석이 발견되는 것이다.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다가 화석이 된 물고기화석도 발견되며, 발버둥친 흔적들을 볼 수 있고, 해파리와 같이 죽었을 때 쉽게 부패하고 녹아 없어지는 연부조직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생물들의 화석들도 발견되는데, 이것은 순식간에 침전물들이 덮쳤음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또한 엄청난 량의 동식물 화석들이 무더기로 뒤엉켜진채 발견되는 화석무덤들이 발견되고 있는데, 미국 메릴랜드의 Cumberland 동굴에는 추운 지역의 동물뿐만 아니라 온대, 아열대, 습지, 건조지역의 동물들의 화석들이 모두 섞여서 발견되고 있으며, 영국 노퍽주에는 많은 수의 한대지역 동물들, 열대지역 동물들, 온대지역 식물들이 함께 발견되고 있다. 그 외에도 네브라스카의 Agate Spring Quarry, 인도의 Siwalik Hills, 캘리포니아의 Lompoc, 스코틀란드의 Old Red 사암층, 이태리, 독일, 스위스 등지에는 여러 지역의 동식물들의 화석이 섞여있는 화석무덤들이 발견되는데, 이러한 것들은 전 지구상에 대홍수와 같은 대격변이 있었으며, 화석들은 짧은 기간 안에 형성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조개류, 해초류, 물고기 등 바다생물의 화석이 대륙가운데의 산지인 알프스나 히말라야산맥 등지에서 발견되고 있고, 온대지방에 사는 식물과 동물의 화석뿐만 아니라 두꺼운 석탄층이 극지방에서 무수히 발견되고 있으며, 시베리아에서 얼어죽은 맘모스의 입에서는 온대지방에서만 자라는 아기미나리아재비라는 풀이 발견되기도 하는데, 이것은 대홍수 후 급격한 기온의 변화가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도처에는 오늘날 만들어지지 않는 화석들이 엄청난 량으로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동일과정설로는 수 조 개에 이르는 엄청난 량의 화석생성을 설명할 수 없다. 일예로 미국 남부 오하이오주의 신시내티에는 160km2 의 면적에 수백미터의 두께로 헤아릴 수 없는 정도로 수많은 해양생물들의 화석이 발견되는데, 이러한 것은 생물들이 매몰될 당시의 격변적 상황을 강력히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엄청난 량의 동식물의 화석들은 대홍수에 의한 침전물들에 의해 격변적으로 단기간에 만들어졌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화석은 오늘날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화석의 형성과정을 알아보고자 벌판이나 습지 등에서 수많은 시도를 하여 보았다. 그러나 식물들은 썩어 버렸고 화석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어떤 생물체가 화석이 되려면 부패되기 전에 순식간에 퇴적되어야 하고, 거대한 압력을 받아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은 화석이 새로 생성될 수가 없는 것이다. 비교적 최근까지 팔레스타인 지역에 사자들이 살았다는 기록을 가지고 있으나, 한 마리의 사자 화석도 발견되지 않았다. 1920~40년대 미국에서는 수백만의 들소(buffalo)들이 죽었는데 화석으로 남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지구상에는 무수한 화석들이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지층형성율이 오늘날과 같다고 보는 동일과정설로는 오늘날과 같이 화석이 만들어질 수 없으며, 대격변적 홍수만이 다량의 화석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2, 44, 45)   

Q7 화석은 창조론과 진화론 중 어느 쪽을 더 지지합니까? 

모든 교과서와 대부분의 책들에는 진화의 직접적인 증거로 화석을 들고 있지만,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종과 종 사이를 연결시키는 중간단계 형태의 화석들이 발견되지 않고 중간형태 없이 완전한 형태로 각 종류대로 나타난다면 화석은 틀림없이 창조론을 증거 하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의 주장대로 무척추동물에서 척추동물인 물고기로 물고기에서 양서류로 양서류에서 파충류로 파충류에서 조류와 포유류로 변할 때마다 반드시 중간단계의 생물들이 존재해서 화석으로 발견되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화석들 가운데 그러한 중간단계 화석은 단 하나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다음은 그 동안 발굴된 화석을 연구한 결과이다.

    1) 오늘날에는 만들어지지 않는 화석이 엄청난 양으로 발견된다.

   2) 대부분의 화석이 활동중 에 급격히 매몰된 양상을 가지고 나타난다.

   3) 열대, 한대, 건조지역의 동식물화석이 무더기로 함께 쌓여있는 화석무덤들이 발견된다.

   4) 선캄브리아기에서는 다세포 동물의 화석이 전혀 없다가 캄브리아 지층에서 갑자기 삼엽충, 해파리, 벌레, 해면동물, 연체동물, 완족류, 산호 등이 완벽한 형태로 나타난다. 단세포 동물에서 다세포 동물로의 전이화석이 없다.

   5) 가장 낮은 지층에서도 매우 복잡한 구조의 생물체가 발견된다

   6) 다양한 물고기 화석이 중간형태 없이 대량으로 독립적으로 갑자기 나타난다. 심지어 캄브리아기에서도 발견된다.

   7) 수많은 진화가 일어났을텐데 진화도중의 전이(중간)동물의 화석이 발견되지 않는다.

   8) 멸종된 생물을 제외하고는 화석의 생물형태는 그것이 발견된 지층에 관계없이 현존하는 생물의 형태와 동일하다.

   9) 발견된 곤충목의 1,263개 과(families)의 화석을 조사한 결과 84%가 1억년전 중생대 백악기에 살아있던 형태와 완전히 동일한 모습으로 현존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10) 실러캔스, 쥐라기 소나무 등 수천만년 전에 멸종했다는 생물들이 살아서 발견되고 있다.

   11) 수억년된 화석에 분해되기 쉬운 아미노산, 단백질, DNA 등이 남아 있다.

   12) 발견된 화석의 95%가 바다생물 화석이다.   

   13) 동물과 식물의 화석이 분리된 채 발견되고 있다.   

   14) 지질연대와 맞지 않는 화석들이 너무도 많이 발견되고 있다.

   15) 수십만년이 걸렸다는 지층을 수직으로 뚫고 서있는 다지층 화석들이 발견된다.

   16) 발자국, 빗방울자국, 물결자국, 벌레가 기어간 자국 등 순간적인 흔적들이 남아있다.

   17) 식물들의 화석은 너무도 갑자기 출현한다.  

   18) 몸이 발견되는 지층의 수천만년 아래 지층에 발자국만 남겨 놓는 이상한 현상이 발견된다.

   19) 그랜드캐년의 코코니노 사암층에는 천만년동안 모든 동물의 발자국이 경사가 높은 북쪽으로만 나있다.

   20) Nautiloid 캐년의 Redwall 석회암층의 오징어 화석들은 모두 태평양쪽을 향하여 죽어있다.   

   21) 수억, 수천만년전 지층 깊은 곳에서 사람의 유물들이 나오고 있다.

   22) 사람과 공룡이 동시대를 살았다는 많은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다.  

   23) 석탄이 매우 빠르게 형성되는 것이 관찰되었다.

   24) 화석의 광물화가 불과 수십년만에 이루어짐이 발견되었다.    

Q8 시조새는 과연 진화를 증거합니까? 

진화론에서 파충류와 조류의 전이 형태라고 내세우는 가장 유명한 것은 시조새의 화석이다. 시조새 화석은 1860년 독일 남부 바이에른 지장의 졸른호펜 석회암층(초기 쥐라기)에서 발견되었다. 시조새가 파충류와 조류를 연결시켜주는 중간단계의 화석으로 생각한 이유는 파충류의 특징과 조류의 특징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시조새가 새로서 가지고 있는 특징은 깃털, 날개, 부리이며 파충류로서 가지는 특징은 뼈가 있는 긴 꼬리, 날개 앞쪽의 발톱, 부리의 치아 등이다. 진화론자들은 시조새의 깃털이  파충류의 비늘에서 진화했다고 하는데 시조새의 깃털은 다른 새들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발달한 형태를 갖춘 날 수 있는 새라는 것이 밝혀졌다. 또한 호애친(남미산의 뱀을 잡아먹는 새), 타조와 같이 현재 살아있는 새들도 날개의 앞쪽 끝에 발톱이 있어, 날개끝의 발톱이 시조새가 파충류와 조류사이의 전이형태의 생물이라는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진화론자들이 내세우는 것은 시조새의 치아이다. 그러나 시조새의 치아도 파충류와 조류 사이의 전이형태의 증거가 될 수 없는데, 이유는 화석으로 나타나는 새들 중에는 시조새 외에도 치아를 가진 새들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조새의 화석과 동일 지층에서 완벽한 새의 화석이 발견되었으며, 텍사스에서는 더 오래된 지층인 트라이아스기 지층에서도 완전한 조류가 발견되었다. 1982년 독일 Eichstatt에서 개최된 국제 시조새 회의에서 시조새는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동물이 아닌 조류(bird)이며, 현대 조류의 조상이 될 필요도 없다고 결정하였고, 유명한 조류학자인 F.E.Beddard는 그의 책에서 시조새를 조류로 분류하고 있다.(48, 49)  

Q9 분해되기 쉬운 단백질이나 DNA가 수억년된 화석에 남아 있을 수 있습니까?   

화석과 지층에 관한 최근 연구에 의하면 모든 지층에서 분해되기 쉬운 아미노산이 미량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있다. 예를 들어 1억8천만년에서 1억3천5백만년전 쥐라기 지층에서 발견된 바다조개에서는 아미노산과 단백질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 발견되었으며, 7,500만년에서 1억5천만년전의 공룡 뼈에 단백질이 잔존하는 것이 발견되었다. 즉 이 바다조개는 수만년 아니 수천년 이상도 될 수 없음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DNA도 동물과 식물이 죽은 후 분해되기 시작한다. 1990년까지만 해도 DNA는 10,000년을 넘어 존재할 수 없다고 학자들은 공공연히 말하여 왔다. 이 분해율에 대한 기준은 이집트의 미이라와 같이 보존 상태가 매우 좋으며, 분해 시점이 알려진 것을 면밀히 연구한 결과였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1,700만년 전의 목련속의 나무(magnolia) 잎에서 DNA가 남아 있는 것이 보고되었으며, 석탄층 속에 묻혀 있는 8천만년 전 공룡의 뼈에서 DNA 조각이 남아 있는 것이 발견되었고, 2억년 전의 물고기 화석의 비늘에서도 DNA가 남아 있었으며, 2천5백~1억2천만년 전으로 추정된다는 호박(amber) 속의 곤충과 식물들에서도 남아 있었던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이러한 보고에 대해 화석의 보존 상태에 따라 즉 건조, 한랭, 산소결핍, 박테리아결여, 방사선 등에 따라 오래 잔존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나, 보존상태가 매우 좋았던 시료에 대한 실제 측정된 분해율과는 수천배에서 수만배의 거대한 차이는 날 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분해되기 쉬운 단백질이나 DNA가 화석에 남아 있다는 것은 화석과 화석을 갖고 있는 모든 지층은 최근에 만들어졌으며, 그것도 동시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58, 59, 60, 61, 62, 63, 64)  

Q10 화석의 광물화는 수십 수백만년의 오랜 기간이 지나야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요? 

성경의 연대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화석의 광물화는 오랜 세월의 증거라고 말한다. 광물화란 원래 있던 동식물의 유기물질들이 다른 광물들로 치환된 것으로서, 모세 시대에 묻힌 이집트 평민의 유해는 심하게 광물화되어 있지 않고, 공룡이나 삼엽충, 규화목 등은 심하게 광물화되어 있음으로 화석의 광물화는 오랜 세월의 증거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노아홍수처럼 수천년전에 일어난 사건으로 화석의 광물화가 일어나기는 곤란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화석은 매우 짧은 기간에 만들어질 수 있음이 확인되었다. 뉴질랜드의 북쪽 섬에 타라웨라(Tarawera) 호수라는 호수가 있고, 그 호수 옆에 타라웨라 화산이 있었다. 그 화산이 1886년 6월 10일 폭발하여 주변 마을은 완전히 화산재로 뒤덮어 버렸다. 그후 60년이 지나서 매몰된 마을을 발굴하였을 때, 사람들은 놀라운 사실을 목격하게 되었다. 화산폭발전 집에서 보관하고 있었던 햄, 쏘세지, 밀가루, 모자 등이 완벽한 돌 화석으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그림5-9참조】 즉 화석의 광물화는 수십 수백만년에 걸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짧은 시간만에 일어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또한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과학자들은 나뭇조각을 실리콘, 알루미늄 등과 섞은 후 열과 압력을 가해 인공적으로 이들 광물로 치환된 화석을 만들어 냄으로서, 화석제조기술을 특허를 신청하여 특허번호를 받았다. 그러므로 화석의 광물화는 오랜 시간보다는 화석이 퇴적된 후 조건 즉 온도나 압력 등에 더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1971년 발견된 Malachite Man은 발견당시 공작석과 터키옥으로 완전히 광물화가 일어나 있었으나, 어떤 공룡의 뼈들은 광물화가 일어나지 않은 채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화석의 광물화는 오랜 세월의 증거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Q11 거의 대부분의 지층과 화석이 노아의 대홍수 기간에 만들어졌다면 지층 깊숙한 곳에서도 사람의 화석이 발견되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실제 지층 깊숙한 곳에서 사람의 화석들이 나오고 있다. 1971년 10구의 완전한 현대인의 유골이 1억4천만년전으로 추정되는 중생대 백악기 초기의 Dakota Sandstone 지층 17.4m 깊이에서 15~30m 에서 발굴되었다. 이 지층은 공룡들로 유명한 Dinosaur National Monument에서 발견된 지층과 동일한 지층이다. 10명의 유골중 4명은 여성이고, 1명은 어린이, 5명은 남성이었다. 뼈들의 일부분은 관절로 이어져 있었고, 연장이나 인공도구 등은 발견되지 않았다. 1971년 이 뼈들을 처음 발견한 불도져 운전사는 어떠한 터널구조나 갈라진 틈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말하였다. 뼈들은 녹색의 광물인 공작석(malachite)과 터키옥(turquoise)으로 치환되어 있어서 "Malachite Man"이란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그림5-10참조】 10명의 유골이 동시에 한 지층에서 무더기로 나온 것은 어떤 격변에 의해서 빠르게 묻혔음을 알 수 있게 하며, 관절로 이어진 뼈들은 빠른 매몰을 더욱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몇몇 진화론자들은 지질연대와 전혀 맞지 않는 이 뼈들은 광산이 붕괴하면서 매몰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어떠한 터널구조도 없었으며, 여자와 어린이가 광산에 있었다는 것도 이상하고, 갱이 무너져 매몰되었다면 있어야할 도구나 연장도 발견되지 않으며, 무너진 갱에 깔려 부서진 형태의 뼈는 없었던 것이다. 400만년전에 출현했다는 인류의 화석이 공룡들이 살았다는 중생대 백악기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외에도 이와 같은 발굴들은 많이 있었다. 1866년 1200만년된 캘리포니아 Table mountain 금광에서 돌그릇, 돌연장 더불어 사람의 두개골과 유물들이 발견되었고, 1867년 Rocky Point 광산의 1억 3500만년전 지층에서는 사람 유골과 도구들이 발견됐는데 사람 뼈에는 구리 화살촉이 같이 발견되었고, 1877년 네바다주 Spring Valley 지역 1억8500만년전 쥐라기 지층에서는 사람의 다리뼈, 무릎, 정강이뼈, 완벽한 발뼈 등을 발견되었는데 여러 의학자들의 검사결과 매우 현대적인 사람의 뼈로서 크기는 뒷굼치로부터 무릎까지가 99cm로 3.6 m의 신장을 갖는 사람의 뼈로 조사됐다. 1880년 미조리주 철광산의 무려 4억 2500만년전 고생대 실루리아기 지층에서 사람의 두개골, 갈비뼈 일부, 척추, 쇄골 등과 두 개의 화살촉 모양의 부싯돌, 숯조각 등이 발견되었고, 1926년 몬타나주 Bear Creek 석탄광산의 3,000만년전인 Eocene 지층에서는 사람의 어금니가 발견되었는데 에나멜층은 탄소로, 뿌리부분은 철로 대치되어 있었으며 여러 치의학자들의 조사결과 사람의 두 번째 아래 어금니로 밝혀졌다. 1958년 이탈리아 투스카니 석탄광산의 지하 180m의 2,000만년전 Miocene 지층에서 5~7세의 완전한 현대인의 어린이 턱뼈가 발견되었고, 1973년 유타주 Big India 구리광산에서 1억년 이상 추정되는 Lower Dakota와 Upper Morrison formation 지층에서 두 구의 매장된 사람뼈들이 발굴되었다. 그러나 이와같이 진화론적 지질시대와 맞지 않는 수많은 발굴들은 진화론적 편견에 의해 철저히 무시되어 버렸고 기록에서 모두 제외되었던 것이다.(65)

Q12 지층과 화석의 연대측정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지층은 발견된 장소, 위치, 구조, 형태, 모양 등에 의해서 연대가 결정되지 않으며, 방사능동위원소의 반감기를 이용한 방법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한 연대측정방법은 너무도 편차가 심할뿐더러, 화석을 보유하고 있는 퇴적암은 물에 의해 자원소들이 쉽게 녹아 없어짐으로 측정되어질 수 없다. 지층은 단지 "어떤 화석이 발견됐느냐" 에 따라 연대가 결정되며, 화석은 "어떤 지층에서 발견됐느냐" 에 따라 연대가 결정되어지고 있다. 이것은 소위 Circular Reasoning (순환론법)이라는 것으로 상호모순인 것이다. 모든 진화론적 지질학에서 지층은 소위 시준화석 (index fossils)이라는 극소수의 몇몇 화석에 의해서 지층연대가 결정되어지는데, 실제 모든 화석의 99.8 %는 연대결정을 위해 사용할 수 없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화석들은 여러 지층에 걸쳐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시준화석은 무엇을 기초로 연대를 결정하였을까? 놀랍게도 시준화석의 연대는 상상에 의하여 결정되어진 것이다. 즉 진화론을 기초로 하여 하등하다고 생각되는 화석은 오래된 화석으로, 고등하다고 생각되는 화석은 최근 화석으로 임의로 결정한 것이다.(81)

 Q13 전세계에 매장된 석탄이 한번의 홍수로 만들어지기 것은 불가능합니까?  

"전세계에는 약 1.16 x 1013 metric tons 의 석탄이 저장되어 있고, 이것의 약 100배의 식물들이 퇴적되었을 것이다. 전형적인 숲을 생각하고 이것이 전 지구를 다 덮었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겨우 1.9 x 1013 metric tons뿐이다."  동일과정설을 지지하는 진화론적 지질학자들은 현재 지구상의 모든 식물이 갑자기 석탄으로 변한다 해도, 그 양은 지구에 존재하는 석탄매장량의 1~3%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지구상의 석탄이 모두 홍수로 만들어지려면 33번의 홍수가 있어야 하며, 더욱이 한번의 홍수로는 만들어질 수 없다며, 노아의 대홍수와 같은 격변에 의한 석탄형성을 비웃고 있다. 정말로 한번의 대홍수로 지구상의 모든 석탄이 만들어지기에는 식물의 양이 너무도 적은 것인가?

이러한 주장은 오늘날 육지표면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의 양과 홍수이전의 식물의 양이 같았으며, 동시에 석탄 1 m가 형성되려면 식물 12 m 정도(어떤 사람은 100 m)가 쌓여야 한다는 석탄형성이론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의하면 석탄 1 m가 형성되는데는 식물이 2 m도 안되는 적은 양이 필요한 것으로 주장되고 있으며, 광산에서 조사된 몇몇 지질학자들의 보고에 의하면 식물과 석탄의 compaction ratio 는 2:1 보다도 적은 1:1 에 가까운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러한 보고에 의하면 오늘날 전체 식물의 양은 석탄매장량의 1~3 %에 해당하는 양이 아니라, 적어도 30 %에 해당되는 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나머지 70 %는 어디로부터 왔을까?

여기에는 두 가지의 요소와 관련이 있다. 하나는 오늘날 육지표면의 60%는 사막이거나 식물이 자랄 수 없는 황무지 또는 빈약한 식물만 자라고 있는 땅이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극지방에는 광대한 빙하가 자리잡고 있는데, 놀랍게도 빙하 아래층에도 두꺼운 석탄층이 발견되는 것이다. 극지방에서 석탄층이 발견되는 것처럼 만약 홍수이전의 지구기후가 매우 온난하여서 지구 육지표면 전체에서 골고루 식물이 왕성하게 자랄 수 있었다면 석탄매장량의 50 %에 해당하는 양은 설명이 가능해진다. 또 하나는 홍수 이전에 육지면적에 관한 것이다. 몇몇 연구자들은 지질학적 자료들을 근거하여 홍수이전에는 육지면적이 60%, 바다면적이 40% 정도(오늘날은 육지가 30%, 바다가 70%)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즉 대홍수 이전의 육지면적은 오늘날의 육지면적의 2배 정도는 넓었을 가능성이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어서 광대한 육지와 온난한 기후 속에서 식물들이 지구전체에 골고루 번성하였다면 석탄매장량의 100%가 설명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85)   

알려진 석탄매장량과 식물의 양을 비교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있다. 그것은 식물에 저장되어진 에너지와 석탄 속에 축적된 에너지를 비교하는 방법이다. 태양에너지의 국제적인 권위자인 Mary Archer는 전세계에 분포되어 있는 화석연료(fossils fuels)의 에너지 총량은 14일 동안 지구표면에 쏟아지는 태양에너지의 총량과 동일하며, 지구표면에 쏟아지는 태양에너지는 단지 0.03% 만이 광합성을 통하여 식물에 화학에너지로서 축적된다고 보고하였다.(86) 그러므로 화석연료의 에너지 총량 즉 100 %로 14일 동안 쏟아진 태양에너지는 0.03%로 46,667일(128년) 동안에 식물에 축적된 에너지 총량과 같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다시말해 128 년이면 오늘날 알려진 석탄매장량 속의 에너지가 식물들을 통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창조 후 노아홍수까지의 기간은 약 1600년으로 보기 때문에 이 기간이면 충분히 만들어질 수 있는 양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지구상에 있는 알려진 석탄매장량은 한번의 홍수로도 만들어질 수 있는 양이며, 오히려 수억 수천만년 동안 식물들이 축적되어 석탄으로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인 것이다.  

  Q14 미국 엘로스톤 국립공원에서 발견되는 화석숲(petrified forests)은 수십 수만년에 걸쳐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이것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미국 옐로스톤 국립 공원에는 평행하게 놓여있는 수많은 암석 지층의 단면들이 노출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화석화된 나무들중 많은 수가 성장 위치처럼 자란 것처럼 똑바로 선 채로 발견되고 있다. Specimen Creek 근처 산등성이에 있는 27개의 연속적인 지층들이 조사되었는데, 50그루 이상의 나무들이 높이가 다르게 여러 세대가 지난 것처럼 수직으로 묻혀 있었다. 숲의 나무들은 자라던 상태에서 화산재와 부스러기들에 의해 묻혔고, 석화되었으며, 일정시간 후 표면에 노출된 재들은 흙으로 풍화되어 새로운 숲이 자랄 수 있는 토양으로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높이가 다르게 선 채로 묻혀 있는 나무들은 여러 세대의 숲이 자라야하는 오랜 시간들을 필요로 하며, 이러한 모습은 성경의 짧은 연대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985년 Fritz는 나무가 퇴적된 전체 기간은 적어도 수만년은 확실히 되었으며, 산허리의 침식은 매우 천천히 진행되어 동일과정적인 퇴적보다 더 많은 시간에 걸쳐 이루어졌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Harold Coffin은 수년동안 Specimen Ridge의 화석숲을 연구한 결과 나무들은 자라던 장소에서 화석화된 것이 아니라는 증거들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1)나무의 뿌리들은 부러져 있거나 갑자기 끝나있다. 2)대부분의 나무들은 껍질이 벗겨져 있고, 큰 가지들만 남아 있다. 3)이웃한 나무들의 나이테 수령이 일치하지 않는다. 4)똑바로 선나무와 기울어진 나무들이 마치 물의 흐름에 의한 것처럼 한 줄로 늘어서서 발견된다. 5)나무가 자랐다면 있어야할 토양층이 발견되지 않는다. 6)토양층이 있었다면 발견되야할 동물이 전혀 발견되지 않으며, 나무의 열매(cones)들이 발견되지 않는다. 7)침엽수 나무만 있는 곳에 활엽수의 넓은 잎사귀들이 발견된다. 8)꽃가루는 매우 드물게 발견되는데, 화석화된 나무와 같은 종류의 것이 아니다. 9)한 나무의 가지 위치에서 다른 나무의 뿌리가 중첩되어 존재한다.  이러한 증거들은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화석화된 숲은 오래된 세월에 걸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물에 의해 떠내려온 나무들이 그 장소에서 수직으로 똑바로 선 채로 빠르게 퇴적되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똑같은 현상이 1980년 미국 세인트 헬렌산이 폭발하였을 때 스프릿 호수에서 관찰되었는데, 뿌리 채 뽑혀 수직으로 떠다니던 나무들이 퇴적물에 의해 자라던 모습으로 선 채로 서로 다른 높이로 묻히는 것이 19,000 그루 이상 관찰되었던 것이다(88, 89, 90, 91).

3. 공룡 분야

Q1 공룡이란 무엇입니까? 

공룡은 전통적으로 파충류이었던  것으로 생각되어지는 거대한 짐승이다. 물론, 파충류는 알을 낳고, 비늘을 가지며, 냉혈동물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런 사상에 논박하고, 논쟁하는 많은 과학자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기를 공룡은 포유동물처럼  털을 가졌다고 주장하며, 심지어  몇몇 과학자들은 공룡이 깃털을  가졌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많은 논쟁거리가 만연하고 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여전히  공룡이 파충류이었다고 계속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공룡을 현재  파충류와 별도로 생각한 것은 그들의 엉덩이 구조가 bird  hip혹은 lizard(도마뱀)hip과 같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오늘날 많은 포유동물처럼 직립으로 걸었다. 그리고 다리가 측면으로 나와 있는 악어 같은 현대판 파충류와는 반대로 걸었다. 공룡은 또한 그들의 두개골의 측면에 특징적인 구멍을 가졌다. 오늘날 그들의 두개골에 유사한 구멍을 가진 살아있는 일부 파충류들이 있다. 그러나 직립의 자세를 가지는 파충류는 없다.  기술적으로 얘기하면,  해양파충류와 지상파충류는  공룡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bird hip이나  lizard hip 둘 중에 하나를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화론에 따르면 그들은 공룡시대에 살았던 거대한 파충류로 생각된다. 

Q2 공룡은 처음부터 초식성과 육식성으로 창조되었습니까? 

창세기 1장 끝 부분에,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에게  식물을 먹게 될 것이라고  가르쳤다. 거기에는 육식성 행위나 고기를  먹거나 명백하게 죽음도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일부 공룡이 육식성이었다는 것을  화석기록에서 본다. 우리는 확실히 이것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많은 공룡들이 육식성 행위를 지적하는 이빨과 공격용, 방어용 무기를 가졌음을 알게 한다.  그런데 성경은 공룡이 창조되었을 때 그들은 모두 초식성 동물이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심지어 티라노사우루스 같은 공룡조차도 육식성 동물은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 살아있는 많은 초식성 동물들도 길고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티라노사우루스의 이빨이  그의 턱에서 뿌리가 깊지  못하고, 싸움에서 쉽게 쫓겨난다는 것이 밝혀졌다. 또한  그의 팔은 너무 짧아서 먹이들이 그의 입에 다다를 수가 없었다.  다시 말해서 공룡에게 육식성 행위가 있었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Q3 공룡은 어떻게 멸종했습니까? 

공룡과 같은 거대한 파충류는 진화론적인 지질연대로 추정할 때  고생대  말엽에 출현하여 중생대의 트라이아스기, 쥬라기를 거쳐 백악기(Cretaceous)와  신생대 제 3기(Tertiary)의 경계인 약 6500만년 전쯤에 급작스럽게 멸종하게 된다. 그래서 이 시기를 두 시대의 머릿글자를 따서 C-T경계라고도 한다. 공룡의 멸절은 현대과학이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어려운 문제의 하나이다.  그러기에 멸절에 대한 가설 또한 다양하게 제시되곤 한다.  그런데 근래 가장 관심을 끄는 가설은 이리듐(Iridium; 어떠한 온도에서도 탄소, 니켈, 유황, 납, 금 등과 반응하지 않고 내산성임. 백금과 합금하여 이화학 기계 제조 등에 쓰임)과 관련된 것이다. 이 C-T경계에서의 퇴적층에서 유난히 고농도의 이리듐이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노벨 물리학 수상자인 물리학자 알바렛( L. Alvarez )을 중심으로 하여 그 아들 월터(Walter)가 이끄는  연구팀은 운석에 이리듐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데 착안 '대운석 충돌의 가설'을 내세워 이리듐을 많이 포함한 대운석의 지구 충돌이 지구 생물계에 대사건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근래 가장 유력하고도 설득력 있는 이론으로 내세워지고  있다. 그런데 흥미 있는 것은 오히려 이것이 창조론적인 입장에서 결정된 단서가 된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 이리듐이 지구의 맨틀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C-T경계의 퇴적 등은 과거 심한 화산활동의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노아 홍수 당시를 기록한 창세기 7장 11절의 '하늘의 창들이 열리기' 전에 먼저 '큰 깊음의 샘'(즉 화산폭발 등 큰 지각 변동)이 터졌다는 성경말씀을 입증하는 것이다.

Q4 영화 "쥬라기공원"에서처럼  DNA복제를 통해서 공룡을 다시 만들 수 있습니까? 

영화 "쥬라기공원"에서 유전공학자들이 쥬라기 시대의 나무 수액이 화석화된 호박(amber )에서 공룡의 피를 간직하고 있는 모기를 발견하여 모기의 피 속에서 추출한 공룡의 DNA를 복제하여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공룡으로 재현시킨다.  그렇다면 DNA 몇 개 추출로 공룡을 재생시킬 수 있을까?  대답은 '아니다(No)'이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를 복제하는데 성공했지만 좀 더 복잡한  생명체를 복제하는 데는  근처에도 얼씬못했다. 문제는 아주 간단한  생명체라도 수천 개의 유전인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설사 한 생명체의  완전한 유전자를  갖는다해도 생명체로 만들자면 수백 만개의  유전자를 아주 정확한 배열로 짜 맞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4. 연대측정 분야 

Q1 지층과 화석의 연대측정 방법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지층과 화석의  연대는 두 가지 방법으로 결정  된다. 첫 번째 방법은 진화론에 근거를 둔 것으로 생명체가 수 백만 내지 수 천 만 년 동안에 서서히 진화하였다고 가정하여  화석을 여러 지층으로 분류하고 이들 지층이 포함하고  있는 화석의 종류에 따라  연대를 추정하는 것이다. 둘째 방법은 방사선  붕괴 속도와 지층이 축척 되는  속도에 근거를 둔 것이다. 생명체의 연대 측정  기준은 C-14 방사선 동위원소이며, 암석 연대는 우라늄-238 원소를 기준으로 한다.  방사선 방법에서는 붕괴의 초기조건을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붕괴 속도가 항상  일정하다고 가정하기 때문에 오차가  크다. 지층의 축적 속도에 가정을 둔 방법은 그  축척 속도가 과거나 현재나 항상 일정 하다고 보며 약30cm(1feet) 쌓이는데  5000년 정도 걸린다고 본다. 그러나 지층의 퇴적속도는 홍수 등에  의하여 크게 좌우되므로 과거와 현재가 동일하다고 보는 동일과정설(혹은 균일설)은 과학적 신빙성이 희박한 것이다.(102, 103)

6 우주의 기원

1. 대폭발설(Big Bang)

Q1 빅뱅(Big Bang,대폭발)이론을 뒷받침하고 있는 과학적 증거는 무엇입니까? 

빅뱅이론은 1947년 가모프가 원시원자이론을 확장하여 제안한 것으로 지금부터 100에서 200억년 전에 1016K 이상의 초고온과 1014g/cm3 이상의 초고밀도의 원초물질이 폭발하여 오늘날과 같은 우주가 형성되었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의 증거로 적색편이 현상(우주팽창의 근거로 인용)과 3°K(절대온도 3°) 파장의 존재를 들고 있다. 3°K 흑체배경복사는 1964년 벨 연구소의 펜지아스와 윌슨이 고감도 전파 망원경에 생기는 전파잡음의 원인을 연구하다가 발견한 것을 프린스턴 대학의 로버트 디키와  제임스 피블스가 가모프의 대폭발에 의한 우주배경복사이론 (5K의 배경복사를 예언)으로 이를 설명하였다. 우주에는 0.1 ∼ 50 cm까지의 약하고 등방적이며 연속적인 파장을 가진 배경복사가 존재한다. 이러한 것들이 빅뱅이론으로 가장 간단하게 설명되긴 하지만 단지 빅뱅이론으로서만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Q2 빅뱅이론이 설명하지 못하는 점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빅뱅(대폭발)의 원초물질은 어디서 왔으며 그 폭발의 원동력은 무엇이며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한 의문에 대답할 수 없다. 최근 우주론에서는 아무 것도 없는 '무(無)'에서 '양자요동'에 의하여 10-33cm 정도 되는 아주 작은 크기의 원시양자우주가 탄생해서 빅뱅을 일으켰다는 '양자우주 가설'을 내세우기도 하지만 그러한 경우에도 최초의 '양자요동'의 실재성, 4차원 시공의 탄생 및 우리우주와의 관계성에 대한 의문에는 여전히 답할 수 없다.

둘째로, 자연계에는 중력, 전자기력, 약력, 강력 등의 네 가지 힘이 존재하며 그 힘들은 대칭성[1]과 규칙성 가운데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극히 우연적이고도 혼란스런 방법인 대폭발을 통해 대칭성과 규칙성이 생겨날 수 있을까? 이는 마치 인쇄소에서 일어난 폭발 사고로 인해 흩어진 활자들이 날아가 저절로 백과사전 하나를 만들 가능성보다도 희박하다. 무신론적인 설명은 그러한 모든 아름다운 물리법칙들도 비록 아주 낮은 확률이지만 빅뱅초기에 우연적인 과정으로 생성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유신론적인 대응은 실제로 그러한 과정이 있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이 있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우주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2. 태양계의 기원 

Q1 지구와 달의 기원에 대한 진화론과 창조론의 차이점은? 

진화론의 설명은 생명의 기원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연(우연)발생론으로 설명하고 있다. 빅뱅(대폭발)에 의해 생겨난 태양에 의해 태양 주위의 기체와 먼지들이 태양인력으로 말미암아 뭉쳐져서 지구가 되었다는 성운설이 가장 인기 있는 설명이다. 그리고 지구가 생겨날 즈음에 지구로부터 떨어져 나와 달이 생성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월석의 성분을 살펴본 결과 지구의 것과 상당히 달라서 달이 지구로부터 떨어져 나갔을 것이라는 추측과 상반됨이 밝혀졌다. 창세기 1장에는 태양이 존재한 후 지구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지구가 먼저 존재한 후에 해와 달이 만들어졌다는 말씀이 나온다. 해와 달이 실제로 지구보다 나중에 창조되어진 것이건 아니면 이미 있던 천체가 비로소 보이게 된 것이건 간에 이것은 천체에서 중요한 것은 그리고 하나님의 관심은 지구였지 태양이나 별이 아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또한 각 천체들은 그들 고유의 역할에 맞게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그 자리에 두신 것이지 저절로 우연히 그 자리에 있게 된 것이 아니다. 전지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인정하면 천체의 질서를 설명함에 있어서 아무런 논리적 어려움이 없다. 

Q2 진화론에서는 무생물(광물)의 연대를 측정하는 방법으로 어떤 것을 사용합니까? 

금세기에 와서 과학적인 방법으로 자리잡고 있는 대표적인 것이 바로 방사성 동위원소인 우라늄238(U238)을 이용한 방법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U238은 붕괴되면서 헬륨을 방출하고 납으로 변한다. 100%의 U238이 절반의 양으로 줄어들고 대신 납이 절반정도 생기는 때까지의 기간을 반감기라고 한다. 보통 U238의 반감기는 약 45억 년 정도이다. 그러므로 어떤 암석 중에 포함되어 있는 U238의 양과 납의 양을 알면 그  비율로부터 그 암석의 나이를  추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과학적으로 오류를 내포할 여지가 있다(Q4 참조). 다소 비과학적인 방법으로 시준화석에 의한 방법이 있다. 이 방법은 18세기에 완성된 것으로 진화과정을 가정하여 연대표로 작성한 후 암석층에서 발견되는 기준 동식물의 잔재를 찾아 시준화석으로 비교하여 지층의 나이를 상대적으로 결정한다. 그리고는 그 지층에서 나오는 광물을 비롯한 모든 생물의 화석의 나이도 앞서 결정한 지층의 나이와 같다고 주장한다. 즉 이 방법은 진화 가정을 어떻게 세우느냐에 따라 연대는 큰 차이를 가질 수 있다. 증명되지 않은 가정에 의한 것이므로 그 방법 자체가 비과학적이다. 삼엽충(아래설명 참조)을 고생대 시준화석으로 정해 놓은 후 삼엽충이 발견되는 지층은 무조건 고생대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렇다면 과연 삼엽충이 고생대에 살았다는 분명한 증거가 있어야 할 것이나 그렇지 않다. 어느 경우에는 화석의 검출이 일관성 없이 뒤섞여 나오거나 여러 다른 시준화석이 동일지층에서 발견되는 때도 있으며 여러 층의 지층을 뚫고 형성된 나무 화석들을 볼 때에 이 방법을 적용해서 나이를 계산한다는 것은 많은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참고  삼엽충은 덜 진화된 미개한 생물이 아니라 오히려 첨단 광학으로라야 이해되는 수많은 정밀 복합렌즈를 갖고 있으며 그 눈으로 물 속에서도 물체를 정확히 볼 수 있는 놀라운 동물임.

3. 지구의 유일성

Q1 "지구"만이 생명체가 살고 있는 행성입니까? 

사람들은 종종 "하나님께서 광활한 우주를 만드셨다면 그렇게 광활한 곳 중의 아주 작은 행성인 지구에만 생명을 두셨다는 설명은 불합리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진화론은 우연에 의하여 지구가 생겨났으므로 우주공간에는 지구와 비슷한 별이 무수히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지구를 광활한 우주 속의 별로 중요하지 않은 행성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태양 같은 항성주위를 도는 지구와 같은 특별한 조건을 갖고 있는 행성이 있다는 사실은 확인된 바가 없다.   

지구는 우연에 의해 생겨 났다기 보다는 오히려 지혜자의 설계에 의해 존재하는 행성이라고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상상이나 편견을 버리고 대신 성경의 내용을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1) 창세기 1장에서는 모든 별 가운데 제일 먼저 지구가 만들어졌으며 나머지 천체들은 지구의 계절과 연한을 이루기 위해 그보다 나중에 만들어졌음을 밝히고 있는데 이는 문자적으로 꼭 그렇다는 것보다는 의미적으로 우주의 중심이 태양과 같은 별이 아니라 바로 지구임을 나타낸다고 본다. 이는 한 나라의 중심을 말할 때 지리적으로 중간되는 지점을 중심이라 말하지 않고 국민의 정치, 경제적, 문화적 관심의 중심을 지적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2) 지구 이외의 별에 생명체가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은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상상에 불과하다. 이는 생명체는 우연히 진화에 의해 생겨났다는 진화론에 근거한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3) 하늘과 땅과 그 외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그 가운데 인간이 모든 창조물 가운데 가장 존귀한 존재로 창조되었으며 모든 창조물은 인간에게 다스림을 받게 되었다.

(4)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은 모든 인류의 타락 때문에 전 우주의 모든 창조물이 저주를 받게 되었고 부패의 속박 아래로 떨어졌다.

(5) 타락한 인간을 구속하시기 위해 창조주이신 그리스도가 직접 피조물의 형상으로 지구에 오셨고 그리고 죽으심으로 전 우주적인 타락으로부터 구속하셨다. 하나님의 구속사는 지구에서 행하여졌으며 그 효력은 전 우주적이었다.

Q2 외계인(UFO)의 존재는 ? 

외계인에 대한 문제는 창조/진화와 관련된 중요한 문제중 하나이다. 외계인, 다시 말해서 어느 별엔가 생명체가 있고 인간과 비슷한 사고의 능력을 가진 고등동물이 있다고 하면 진화론이 설득력을 얻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진화론에 의하면 어떤 적절한 환경만 주어지면 우연에 의해 저절로 생명체가 생겨날 수 있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태양계와 같은 구조는 우주에 많이 있을 것으로 상상할 뿐이지 지금까지 관측한 바로는 생물이 존재할 수 있는 다른 태양계를 발견한 적이 없으며 생명체가 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별 또한 확인한 적도 없다. 물론 성경에는 외계인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있다, 없다를 속단하기는 성급한 것이며 또한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보다 훨씬 어렵고 불가능할 지 모른다. 그렇지만 성경 말씀의 내용을 잘 살펴보면 외계인의 존재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오히려 생명의 창조에 관한 한 지구가 중심이 되어있지 다른 어떤 별이 아니었다. 또한 아담의 범죄가 전체 피조물의 타락으로 연결되었으며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두 번째 아담으로 묘사되고 있는 점, 그리고 인류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의 묘사는 지구를 중심으로 한 전 우주적으로 되어있는 점과 예수님의 구원의 사역이 전 우주적이었음을 보면 생명체를 가진 행성으로서 지구의 유일성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지구의 신비한 사실들을 살펴볼 때 그저 우연에 의해 지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4. 성경과 우주

Q1 성경에 현대과학으로 보아도 천체에 관한 훌륭한 기록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성경은 과학책은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과학으로라야 이해할 수 있는 기록들이 많이 있다. 그것들 중에 대표적인 몇 가지를 살펴보도록 하자.[10]

(1) 기원전 2000년 정도의 사람인 욥에 대한 기록인 욥기에서 26장 7절에는 "땅을 공간에 다시며..."라고 되어 있다. 이는 그 당시의 생각으로는 결코 상상할 수 없는 말씀이다. 뉴턴의 만유인력법칙에 의해 지구가 허공에 떠 있으며 태양과 지구 사이에는 인력이 작용하여 지구를 붙잡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그보다 수천년 전에 이미 지구가 허공에 떠 있음을 성경은 말하고 있었다. 오늘 날 우주 비행사들이 찍은 지구의 사진으로부터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2)  여호수아 10장 11절에는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덩이 우박(great stone:큰 돌덩이)을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게 하시매"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운석에 대한 기록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운석의 존재에 대한 인정은 과학자들이 1803년에 밝혀지기까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3) 예레미야 33장 22절에는 "하늘의 만상은 셀 수 없으며..."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 시기 그리고 그 이후의 과학자들은 하늘의 별은 많아야 3000개 정도라고 했으나 갈릴레오가 망원경을 발명한 이후 오늘날의 거대한 전파 망원경을 통해서 비로소 하늘의 별은 셀 수 없이 많다는 것이 밝혀졌다.

 (4) 욥기 38장 31절에는 "네가 묘성을 매어 떨기 되게 하겠느냐 삼성의 띠를 풀겠느냐" 라는 묘성과 삼성에 관한 놀라운 기록이 있다. 맨 눈으로 볼 때에 묘성은 7개의 별 밖에 보이지 않지만 오늘날의 고성능 망원경으로 관측한 결과 묘성은 200개 이상의 별들이 모여 개방성단(떨기)을 이루고 있으며 공간에서 함께 움직이고 있음이 밝혀졌다. 또한 오리온자리로 알려진 삼성은 묶여 있지 않다. 맨 눈으로 보면 이 별들이 서로 가까이에 있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각각의 별들이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으며 함께 모여 있지도 않다. 즉 욥기의 표현대로 띠가 풀려 있다. 오늘날의 망원경을 통해서야 알 수 있는 사실을 이보다 3천년 전에 성경은 이미 이들 별자리에 대한 과학적 사실을 기록했다. 

Q2 성경에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돌고있는 것처럼 쓰여진 사실에 대해 어떻게 대하면 좋을까요?  

우선 성경의 기록 목적을 분명히 하고 설명을 시작해야 하겠다. 그 목적은 바로 평범한 사람들에게  구원의 소식을 알리기 위함(요한복음 5장 39절)이지 천문학 및 다른 난해한 학문을 배우려 한다면 다른 책을 펼쳐야 할 것이다. 사건기록의 목적은 사건의 중심인 하나님의 일하심을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었으므로 관측되는 사실을 그대로 기록한 것이지 그 당시 사람들의 이해 수준을 넘어서는 천문학적인 사실을 정확히 설명하고자 함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속에서 저속하고 교육받지 못한 무리로 하여금 배우는 길을 막아 버리기보다는 오히려 우리와 함께 말을 더듬거리는 쪽을 택했다.(1550 캘빈) 그러므로 성경 속에는 과거에 알지 못했던 과학적 사실이 밝혀진 오늘날에 와서 볼 때에 때때로 어색한 표현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과학으로라야 이해되는 말씀도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다. 한편 중세 교회가 받아들였던 천동설은 성경적인 것이라기보다 중세 철학 및 신학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체계 위에 형성되면서 고대 희랍의 천문학적 체계를 성경의 표현과 그대로 연결시켜 해석한 오류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에도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할 수 없는 미완성의 학문인 과학에다 성경을 짜 맞추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다윈의 진화론이 교회를 난처하게 했을 때 일부 신학자들은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되 진화의 방법도 사용하셨다고 타협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완성된 학문이 아닌 과학을 무한한 지혜의 하나님의 말씀보다 위에 둘 수 없으며, 만약 둔다면 이는 욥기38장에서 꾸짖으시는 말씀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것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의 과학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기록에 대해서는 비과학적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초과학적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과학 아래에 둘 수 있는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들과 우리의 감각기관으로 감지할 수 없는 것들이지만 존재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뒤섞여 있는 용액의 성질을 알고 싶을 때에 리트머스 시험지를 담그면 간단히 알 수 있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은 믿음이라는 도구를 이용하면 그 능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현대의 많은 크리스챤 과학자들이 말하고 있다. 진실로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창조주 하나님은 없다고 하는 자)가 핑계치" 못할 것이다. (로마서 1:20)  

Q3 하나님께서는 왜 천지를 창조하셨을까요? 

인간이 하나님의 마음과 목적을 충분히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주제넘은 일이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로마서11:34)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로마서9:20) 반면에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인간의 마음이 그와 같은 질문을 직관적으로 제기하고 있으며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생각들을 인간의 마음속에 깊이 심어 놓으셨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인간의 근본적인 필요들 중의 하나가 생의 목적을 갖는 것, 즉 왜 자기가 이 세상에 태어났으며 자신의 삶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느냐를 아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 관한 의문은 의미심장한 중요성을 갖는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겸손과 믿음으로 하나님의 목적을 찾는 자들에게 그것을 알게 하신다. 위의 질문의 대답은 하나님의 계시인 말씀을 통해 숙고해보아야만 한다. 요한계시록4:11에는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렸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이사야 45:18에는 "...땅을 창조하시고 견고케 하시되 헛되이 창조치 아니하시고 사람으로 거하게 지으신.."이라고 되어 있다. 즉 땅을 창조하신 목적은 사람으로 거하게 하는 것이었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창조된 자연을 다스리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물리적인 창조물인 우주와 생물이 인간을 섬기도록 창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창세기 1:26-28) 이 사실은 진화론의 불합리를 강조한다. 창조는 오로지 인간의 통치를 위한 것이므로 창조주께서 지구와 생물을 45억년 동안이나 혼란하고 무의미하게 존재하도록 놔두시다가 그 후에야 지구의 주인이 나타나 지구를 파악하고 명령하려고 애썼다는 것은 옳지 않은 설명이다.  이사야43:7에는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느니라"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인간의 주된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것, 그분을 경외하고 겸손히 섬기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함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게 되고 생령(창2:7)이 변하여 육체(창6:3)로 되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기 위해 독생자 예수를  보내어 우리를 구속 곧 회복시키셨으며 장차 잠시 가로막은 죄와 고통의 시대가 지난 후 그 분은 만유(우주)를 회복하실 것이다. 그  때에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과 구속의 은혜를 온전히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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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R. A. Lyttleton, "Mysteries of the Solar System", Oxford Clarendon, 1968.

[5] S. A. Austin, "Private communication",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El cajon, CA, July 1988.

[6] "Workers find whale in diatomaceous earth quarry", Chemical & Engineering News, 1976.

[7] D. T. Gish, "A decade of creationist research", Creation Research Society Quarterly, v.12.

[8] 김정욱, "지구의 유일성", 창조 67호, 1990.

[9] D. T. Gish, "당신은 진화론에 세뇌되지 않았습니까?", KACR 역, 생명의 말씀사.

[10] 심영기, "성경과 과학", 창조 71호,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