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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과학의 만남 ⑴-시간의창조(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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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자

2005-03-21 오전 10:04:50

"…그가 하늘을 차일 같이 펴셨으며…"(사 40:22) 마치 둘둘 말려진 카펫이나 포장을 펴듯이 하나님께서 하늘을 쭉 펼쳤다는 의미다. 여기서 하늘(the heavens?NIV)이란 '하늘들' 혹은 '천체들'로 번역될 수 있는 복수의 개념으로 우주에 펼쳐져 있는 천체들과 공간을 의미한다. 적어도 이 구절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이 발표되기 이전의 과학자와 신학자들에게는 '성서의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었다. 특히 공간 창조의 개념에 대한 이해 없이는 도저히 수용하기 힘든 말씀이 그 이후에 또 다시 전개되고 있다.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사 42:5) 여기서 하늘을 창조하여 폈다는 것은 '확장시켰다'는 의미로 공간 창조에 대한 개념을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으나 이는 일반상대성 이론이 발표된 이후에야 과학적으로 수용이 가능해졌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공간이나 시간이 휘어지거나 말리거나 차일처럼 펼쳐질 수 있다고 증명한 데 있다. 아인슈타인은 중력의 본질을 물질에 의한 시간과 공간의 휨으로 해석했다. 평면에서 직진하는 공도 휘어진 평면에서는 휘어져 돌아가듯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는 것 역시 단순히 태양의 중력에 의해 공전하는 것이 아니라 휘어진 우주 공간에서 지구가 원을 그리며 휘어져 돈다는 설명이다. 공간 뿐만 아니라 시간 역시 공간과 묶여 있어 휘어지거나 말리거나 펴지기 때문에 길이가 늘어나거나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 일반상대성 이론이다(본보 5?12일자 26면 참조). 그 한 예로 과학자들은 종이가 둘둘 말려진 상태에서 쭉 펴는 과정을 꼽는다. 처음 말려진 상태에서는 종이의 양 끝부분이 매우 가깝게 붙어있으나 펴지면 멀어지게 된다. 이때 종이 위에 메뚜기(사 40:22)가 있다고 가정하면 처음 말려진 상태에서는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가는데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겠지만 펴지면 펴진 만큼의 공간에 따라 가는데 긴 시간이 걸리게 된다. 물론 이 시간은 메뚜기의 입장에서 측정한 결과다. 만약 메뚜기의 입장이 아닌 양쪽 끝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인간의 입장에서 측정하면 문제는 또 달라진다. 이처럼 차일 같이 쭉 폈다는 공간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간의 문제가 동반되고 시간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역시 공간의 문제가 수반되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이 서로 묶여 있다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면 성서의 이런 구절은 결국 미스터리로 남게 된다. 선지자 이사야는 초기 우주상태에서 하나님이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다볼 때 인간들이 메뚜기 같이 작게 보였음을 묘사하고 있다.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땅의 거민들은 메뚜기 같으니라…"(사 40:22) 아리스토텔레스의 고대 그리스 시대 이래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나오기 이전까지 인류는 우주의 중심에 지구가 고정돼 있고은 지구를 중심으로 천구상에 박혀 있는 천체들이 하루에 지구 주위를 한 바퀴 도는 것으로 인식했다. 이보다 훨씬 이전 이사야 시대에는 이런 천체물리학의 개념조차 확립되지 않은 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야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이 발표되기 2700여년전 이 이론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메뚜기가 보는 시간은 종이 즉,우주가 얼마 펴지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초기 우주 상태인 첫째날부터 여섯째날까지 극히 짧게 관찰됐지만 엄청난 속도로 계속 펼쳐진 지금의 우주는 그야말로 장구한 시간으로 계산될 수 있다. 창조과학자들은 창조 여섯째날까지는 얼마 펴지지 않은 우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창조기사에 등장하는 첫째날부터 여섯째날(창 1:5∼31)까지 '날'의 개념은 학자마다 차이가 없지 않지만 24시간일 것으로 보는 과학자가 많다. 성서의 무오성에 대해 미국 시카고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대학 학장을 역임했던 케네스 캔저 박사는 "성서는 우리에게 진리를 말하고 진리가 아닌 것은 말하지 않는다"고 갈파했다. 바로 이 무오성은 과학의 발달에 의해,특히 신학과 과학의 만남에 의해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성서는 전적으로 인간의 작품이면서 동시에 전적으로 하나님의 작품이다. 전자는 인간의 글이 갖는 모든 본질적 특징을 가진 반면 후자는 절대적 권위를 갖는다. 성서 기자들의 언어가 갖는 오역과 오해의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언어라는 불완전한 매개체를 통해 창조주 하나님은 인류에게 자신의 뜻을 성서를 통해 전달하고 계신다. 그 뜻은 성서의 무오성에 의해서만 전달이 가능하며 그 무오성은 신학과 과학의 만남에 의해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기사원문보기 - 출처 : 국민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