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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답을 해주세요... 너무 궁금하고 혼란스럽습니다.

이름

박지영

등록일자

2015-05-17 오전 4:39:34

질문

진정한 믿음을 갖고 싶은데 문제는 성경책이 정말 사실을 기록한 책인지 확신이 안섭니다. 특히 구약성경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신화라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은 글을 적어 놓았습니다. (글이 좀 길긴한데, 구체적으로 적어야 여기서도 확실히 참고를 하시고 확실히 답을 해주실 수 있을 것 같아서 다 적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성경은 성경책이 쓰여지기 전에 이미 널리 퍼져있던, 다른나라의 신화들을 베껴서 모방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애초에 성서학자들이 영국 왕실의 지원하에 수메르 문명의 발굴에 적극 나선 이유는“성서의 내용이 사실이라는 고고학적 증거”를 찾으려고 한 것이었다. 즉, 성서학자들은 성경에 나오는 에덴 동산이 실제로 존재했다고 믿고,에덴동산을 발굴하려 했던 것이다.에덴동산이 어디에 있었을까?...성서고고학자들은 이스라엘 지방은 황폐한 땅이기 때문에이스라엘 지방에는 없었을 것으로 판단하고, 그러면 어디에 있었을까?땅이 비옥하고, 각종 과일나무와 풀이 잘 자라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유역에 있었을 것으로 판단하여 이 지역을 발굴하였다.그리고, 마침내 발굴한 것이 수메르 문명이었다. 수메르 문명의 발굴은 역설적으로 성경이 거짓이었음을 증명하는 사건이었다. 대체 성서학자들에게 기독교의 뿌리를 뒤흔드는 충격을 준 수메르 문명 유적의 발굴 결과물은 무엇이었을까? 1. 창세기 표절 구약 창세기는 수메르 창세기를 철저히 베꼈다. 구약 창세기는 그야말로 수메르의 창조신화를 그대로 베껴 온 수준에 지나지않는 다는 사실이니푸르(Nippur)에서 발굴된 점토판 문서로 명백히 드러났다. 《에리두 창세기(Eridu Genesis)》라고 불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아래는 수메르 문명의 '에리두 창세기'와 성경 대비. 0 엔키는 진흙을 가지고 검은머리의 사람들을 만들었다. [에리두 창세기] †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 [구약 창세기 2:7] 구약창세기에 나오는 진흙으로 인간을 창조하는 이야기도 바로 이 수메르 창세기에서 그대로 베껴 온 것이 수메르 쐐기문자 해독으로 밝혀졌다. (문자해독 된 에리두 창세기 점토판 -진흙으로 인간을 창조하는 이야기부분) 2. 에덴 동산, 노아의 홍수 표절 에덴이라는 명칭도 수메르어 에딘(E Din)에서 그대로 따왔다. 수메르어 E Din은 `초원지대, 평원`을 의미한다. 에딘(E Din)은 아카드어로는 에디누(edinu)로 표기된다. 낙원에 대한 개념은 수메르의 이상향 딜문(Dilmun)에서 왔다. 기원전 3000년 이전에 쓰여진 수메르의 점토판 문서에는 딜문이라 불리는 낙원이 있었다. 수메르에서 너무나도 철저히 베껴온 노아의 홍수 이야기 오늘날 여호와 신이 인류와 모든 생물을 멸하기 위해 일으켰다는 노아의 홍수 이야기가 히브리인들의 독창적인 문학작품이 아니라수메르, 길가메쉬와 바빌로니아의 홍수신화,..등, 당시의 여러 홍수 신화에서 표절한 것에 불과한 사실은 이미 증명되었다. 홍수설화는 길가메쉬외에도 메소포타미아 홍수설화,등 여러가지가 있는데,구약성서에 포함시켜 편집할 때 일부 명칭만 대체하였다. 홍수를 일으켜 인류를 몰살시키는 엘릴 신은 여호와 신으로, 대홍수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사람 `우트나피시팀`은 `노아`로, `7일 밤낮`은 `40일 밤낮`으로, `방주는 니무쉬 산 꼭대기에 머물렀다`는 `방주는 아라랏 산에 머물렀다`로, 홍수가 끝나고 `까마귀`를 날려보내는 것은 `비둘기`를 날려보내는 것으로, `제물`은 `번제`를 바치는 것으로 번안하였을 뿐이다. 3. 모세 표절 출애굽기에 나오는 모세가 갈대바구니에 떠내려와서 이집트왕궁의 시녀가 왕자로 키워서 훗날 노예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의 지도자가 되었다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가출애굽기가 쓰여지기 천여년도 전에 기록된 신화가 있는데그건 고대 페르시아의 사르곤왕의 일대기이다. 사르곤왕은 갈대로 된 바구니에 태워져 유프라테스강에 흘러내려가 궁전에서 자라고 훗날 페르시아왕국의 지도자가 된다모세는 실존 인물이 아니다.기자의 피라미드 근방에서 피라미드 건설 인부들의 거주지가 발굴되었는데,피라미드 건설 인부들이 도시에서 출퇴근 할수가 없어 공사현장 부근에 임시 거주지를 만들어서생활하던 주거지가 쿠푸 대(大) 피라미드(BC 2560년경) 근방에서 최근에 발굴됐다.거기에서 인부들의 출근기록부와 같은 상형문자로 된 문서와 유물들이 발굴되었는데어떤 인부는 동생 결혼식 때문에 결근하고, 어떤 인부는 술 먹고 숙취로 결근하고,어떤 인부는 본인 생일이라 결근하고..... 토기류와 사람 배설물, 엄청난 양의 동물뼈등...도 발굴되었는데 피라미드 건설 인부들이 육류를 즐겨 먹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특히 2살 이하의 수소,양,염소,...등 일급고기를 제공한 것도 확인됐다. ,또 다친 인부들을 외과 수술로 치료해주고, 며칠 간 쉬도록 했다는 기록도 발견됐다. 이 거주지의 발굴로 인하여 피라미드 건축에 유대인들이 노예로 동원됐다던 설이 근거를 잃었다.기록문화를 중요시해서 건축인부들까지 기록하는 이집트인들이 권력 2인자였던 애굽의 왕자인 모세의 기록이 어디에도 없는 이유이다.전체 인구가 얼마 되지 않던 고대 이집트 국가에서 60만명의 최하층 노동력이 일시에 탈출했다고 한다.(민수기 1장 1~46- 출애굽한 20세 이상 장정만 60만 3,550명. 그러면 부모,가족,아이들을 합친 애굽을 탈출한 총 인구는???---성경학자들은 장정 60만명에 그 가족, 즉, 부모,형제,자매,.. 4인가족으로 계산하여 출애굽 유대인 숫자를 약 250만이상으로 본다.)인구가 4800만명인 우리나라에서 최하층 외국인 노동력이 10만명만 일시에 빠져나가더라도 전 산업이 일시에 마비될 것이다.그런 엄청난 사건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을 이끌었다는 출애굽의 모세의 기록은어디에도 없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리라. 4. 성경의 솔로몬 역시 표절대상 솔로몬의 지혜를 나타내는 솔로몬 왕의 재판 이야기는, 고대 인도의 한 현명한 왕의 재판 이야기를 표절한 것이라는 사실은 일부 성서고고학자들이나 역사가들 외에는 아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다. 현명한 왕의 재판[인도 원전] 옛날 인도 달레르라는 곳에 한 경건한 왕이 살았다. 그의 경건함에 브라흐마 신도 감동하여 그에게 지혜를 내려주었다. 어느 날 두 여인이 서로 자기 아이라고 주장하며 판결을 내려고 법정에 왔다. 아주 어려운 재판이어서 재판관은 왕의 지혜에 호소하기로 하였다. 왕은 두 여인 사이의 바닥에 선을 긋고 둘이서 아이를 잡아당겨 빼앗는 자가 아이를 갖게 된다고 하였다. 두 여인이 아이를 잡아당기기 시작하자, 친어머니는 아이가 아파서 우는 것을 보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여 손을 놓고 그저 울기만 하였다. 왕은 아이의 고통에 조금도 애석해 하지 않는 여인이 거짓임을 알 수 있었다. 이에 왕은 친어머니에게 아이를 돌려주게 하고, 다른 여인에게는 벌을 주었다. 역사왜곡하면 일본사람들이 특히 유명하다. 그러나 일본인들도 유태인들의 역사날조하기에 비하면 정말 귀여운 수준에 불과하다.이런 사실들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유럽에서는 알려진 사실이라,교회는 믿음보다는 사교 목적의 장으로 이용되고,믿음 없는 교회는 참석율이 저조하게 마련이다.현재 유럽에서는 기독교인구가 줄여들어 교회 건물을 호텔,술집등으로 개조하여 사용한다. 참고:노아의 홍수(BC2348)로 전 인류가 멸종한지 101년만에 바벨탑(BC2247년)을 건축했단다.노아의 홍수(BC2348)로 전 인류가 멸종한지 15년 후에 고조선이 건국(BC2333년)되었다.물론, 중국에는 사람이 더 많았을텐데, 노아의 홍수가 얼마나 황당무계한 구라인가? ** 그리고 하나더 심지어 성서학자이자 목회자인 사람도 다니엘도 실존인물이 아니라며 성경이 오류가 있다고 다음과 같이 기록해놓았습니다. 하나, 다니엘서 자체가 증언하는 바에 따르면 다니엘서의 주인공인 다니엘은 여호야김 왕 제 삼년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을 침공했을 때 포로로 잡혀갔다(1:1,4). 그 때 다니엘은 분명 소년이었다고 표기되어 있다. 소년이라고 할 나이, 그러나 자기 주장이 있어서 환관장을 설득하여 자기 고집대로 우직하게 율법을 충실하게 지키고자 할 수 있는 연령대라면 아마도 우리 식으로 볼 때 고교 1~2년 정도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중학생이라고 보면 좀 어리다. 이 정도라면 아무리 체격이 크다고 할지라도 어른의 명령에 맞서서 자기 고집을 주장할 만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체로 고교 1~2년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하게 된다. 그렇다면 대략 우리 나라 나이로 16~18세 정도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이 어린 다니엘은 나중에 바벨론을 멸망시킨 페르시야(바사)의 고레스 왕도 섬겼다고 되어 있다(5:31~6:2). 다니엘서에 의하면 주인공 다니엘은 유대인으로서 바벨론의 궁정에서, 그리고 페르샤의 궁정에서, 그것도 페르샤 제국의 120도 위에 있는 세 명의 총리 중의 한 명으로 마음이 민첩하여 사실상 전국을 통치하는 권력자가 되었다(6:3). 그러다가 모함을 받아 사자굴에 던져진 것으로 되어 있는데(6:16) 바벨론 궁정사에 바벨론식의 이름인 벨드사살이란 고관이 유대인이었다는 기록을 찾아 보기 어려울 뿐만이 아니라 페르샤 궁정사에도 유대인으로서 어렸을 때 바벨론에 잡혀와 충성하다가 페르샤의 고레스 왕이 바벨론을 정복했을 때 여전히 바벨론식의 벨드사살이라는 이름으로 페르샤 왕정에 재등용된 유대인이 있었다는 기록도 찾아 보기 힘들다. 둘, 이 뿐만이 아니라 페르시야의 고레스가 바벨론을 멸망시킨 것은 기원전 538년의 일이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대로 남유다의 여호야김 재위 삼 년째 되는 해라면 대략 기원전 606년 경이 된다. 여호야김의 등극이 기원전 608년에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때의 다니엘이 16~18세였다면 페르샤 고레스 때의 다니엘의 나이는 대체 몇살이란 말인가? 90이 다 되어 가는 노인이란 이야기이다! 통상적으로 이런 나이의 노인을, 그것도 이방나라의 왕이 자국민도 아닌 유대인 노인을 재등용할 리도 없거니와 그 시절에 이런 연령으로 연이어 두 이방제국을 위해 일한다는 것 자체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대체로 그 시대의 인간 수명도 그렇게 긴 경우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두고 하나님의 은혜와 전능하심으로 되어진 일이었다고 주장한다면, 이스라엘 역사상 이와 같은 인물은 전설적인 인물로 거의 숭배받을 지경에 도달했을 만한다. 따라서 다니엘서의 다니엘을 역사상의 인물로 본다면 그의 행적이 거의 전설적인 영웅담에 가깝기 때문에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단순히 묵시문학의 주인공으로서만 등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다니엘서의 다니엘은 역사상 실존했던 인물이라고 보기가 매우 어렵다. 이렇기 때문에 성서신학의 입장에서는 단정코 오류는 어디까지나 오류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역사적으로 확인이 되지 않는 것을 확인이 되는 것처럼 아무 소리도 없이 슬쩍 지나가는 것도 이제는 옳지 못하다. ㅜ.ㅜ 도대체 정말 목회자라고 하는 분도 오류가 있다고 지적할 정도로 성경이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진정한 믿음을 가져야 할 지 막막합니다. ㅜ.ㅜ 도와주세요.

답변

관리자님의 답변입니다. [2015-07-09 오전 11:37:00]
안녕하세요.

아래에 질문에 대한 답변을 나눕니다.


진정한 믿음을 갖고 싶은데 문제는 성경책이 정말 사실을 기록한 책인지 확신이
안섭니다. 특히 구약성경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신화라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은 글을 적어 놓았습니다. (글이 좀 길긴 한데, 구체적으로 적어야 여기서도
확실히 참고를 하시고 확실히 답을 해주실 수 있을 것 같아서 다 적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성경은 성경책이 쓰여지기 전에 이미 널리 퍼져있던, 다른 나라의 신화들을 베껴서 모방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애초에 성서학자들이 영국 왕실의 지원하에 수메르 문명의 발굴에 적극 나선 이유는“성서의 내용이 사실이라는 고고학적 증거”를 찾으려고 한 것이었다. 즉, 성서학자들은 성경에 나오는 에덴 동산이 실제로 존재했다고 믿고,에덴동산을 발굴하려 했던 것이다. 에덴동산이 어디에 있었을까?...성서고고학자들은 이스라엘 지방은 황폐한 땅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지방에는 없었을 것으로 판단하고, 그러면 어디에 있었을까? 땅이 비옥하고, 각종 과일나무와 풀이 잘 자라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유역에 있었을 것으로 판단하여 이 지역을 발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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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2:10-14의 말씀을 근거로 힛데겔 강(티그리스 강)과 유브라데 강(유프라테스 강) 일대로 추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홍수라는 격변을 거치고 이 세계는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시작되었기 때문에 실제로 에덴의 흔적이 남아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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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침내 발굴한 것이 수메르 문명이었다.
수메르 문명의 발굴은 역설적으로 성경이 거짓이었음을 증명하는 사건이었다.
대체 성서학자들에게 기독교의 뿌리를 뒤흔드는 충격을 준 수메르 문명 유적의
발굴 결과물은 무엇이었을까?
1. 창세기 표절
구약 창세기는 수메르 창세기를 철저히 베꼈다.
구약 창세기는 그야말로 수메르의 창조신화를 그대로 베껴 온 수준에 지나지않는 다는 사실이니푸르(Nippur)에서 발굴된 점토판 문서로 명백히 드러났다.
《에리두 창세기(Eridu Genesis)》라고 불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아래는 수메르 문명의 '에리두 창세기'와 성경 대비.
0 엔키는 진흙을 가지고 검은머리의 사람들을 만들었다. [에리두 창세기]
†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 [구약 창세기 2:7]
구약창세기에 나오는 진흙으로 인간을 창조하는 이야기도 바로 이 수메르 창세기에서
그대로 베껴 온 것이 수메르 쐐기문자 해독으로 밝혀졌다.
(문자해독 된 에리두 창세기 점토판 -진흙으로 인간을 창조하는 이야기부분)

2. 에덴 동산, 노아의 홍수 표절
에덴이라는 명칭도 수메르어 에딘(E Din)에서 그대로 따왔다.
수메르어 E Din은 `초원지대, 평원`을 의미한다.
에딘(E Din)은 아카드어로는 에디누(edinu)로 표기된다.
낙원에 대한 개념은 수메르의 이상향 딜문(Dilmun)에서 왔다.
기원전 3000년 이전에 쓰여진 수메르의 점토판 문서에는 딜문이라 불리는 낙원이 있었다.
수메르에서 너무나도 철저히 베껴온 노아의 홍수 이야기
오늘날 여호와 신이 인류와 모든 생물을 멸하기 위해 일으켰다는 노아의 홍수 이야기가 히브리인들의 독창적인 문학작품이 아니라 수메르, 길가메쉬와 바빌로니아의 홍수신화,..등, 당시의 여러 홍수 신화에서 표절한 것에 불과한 사실은 이미 증명되었다. 홍수설화는 길가메쉬외에도 메소포타미아 홍수설화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구약성서에 포함시켜 편집할 때 일부 명칭만 대체하였다. 홍수를 일으켜 인류를 몰살시키는 엘릴 신은 여호와 신으로, 대홍수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사람 `우트나피시팀`은 `노아`로, `7일 밤낮`은 `40일 밤낮`으로,
`방주는 니무쉬 산 꼭대기에 머물렀다`는 `방주는 아라랏 산에 머물렀다`로, 홍수가 끝나고 `까마귀`를 날려보내는 것은 `비둘기`를 날려보내는 것으로, `제물`은 `번제`를 바치는 것으로 번안하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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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홍수 사건이나 창조사건은 현존하는 모든 인류가 노아의 후손들이기 때문에 그 원형을 잃어버렸더라고 유사한 형태로 남아 전래되어 왔다고 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성경이 원래의 출처인 동시에 바르게 보존된 내용이고, 다른 민족들에게서 발견되는 내용들은 왜곡된 내용이라고 생각됩니다. 성경만이 원래의 내용이 보존되어 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역사기록들은 힘 가진 사람들에 의해 영웅담으로 미화되고 강조되고 왜곡되고 날조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큰 홍수사건 이야기를 들으면 두 부류로 나누어지는 것 같습니다. 한 부류는 우리가 모두 노아의 후손들이기 때문에 모든 민족들 가운데 이 사건이 전래되어 오고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전래되면서 원형이 왜곡되어서 여러 형태로 남게 된 것은 자연스런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한 부류는 혹시 창세기의 노아홍수가 이런 이야기들로 아이디어를 차용해서 지어낸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창조과학 홈피에서 “노아홍수 기사와 유사한 고대의 이야기들”을 검색하여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노아 홍수와 길가메쉬 홍수
http://kacr.or.kr/library/itemview.asp?no=3725&;keyword=길가메쉬&isSearc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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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모세 표절
출애굽기에 나오는 모세가 갈대바구니에 떠 내려와서 이집트왕궁의 시녀가 왕자로 키워서 훗날 노예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의 지도자가 되었다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가 출애굽기가 쓰여지기 천여 년도 전에 기록된 신화가 있는데 그건 고대 페르시아의 사르곤왕의 일대기이다.
사르곤왕은 갈대로 된 바구니에 태워져 유프라테스강에 흘러내려가 궁전에서 자라고 훗날 페르시아왕국의 지도자가 된다. 모세는 실존 인물이 아니다. 기자의 피라미드 근방에서 피라미드 건설 인부들의 거주지가 발굴되었는데, 피라미드 건설 인부들이 도시에서 출퇴근 할 수가 없어 공사현장 부근에 임시 거주지를 만들어서 생활하던 주거지가 쿠푸 대(大) 피라미드(BC 2560년경) 근방에서 최근에 발굴됐다. 거기에서 인부들의 출근기록부와 같은 상형문자로 된 문서와 유물들이 발굴되었는데 어떤 인부는 동생 결혼식 때문에 결근하고, 어떤 인부는 술 먹고 숙취로 결근하고, 어떤 인부는 본인 생일이라 결근하고.....
토기류와 사람 배설물, 엄청난 양의 동물뼈등...도 발굴되었는데 피라미드 건설 인부들이 육류를 즐겨 먹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특히 2살 이하의 수소, 양, 염소,...등 일급고기를 제공한 것도 확인됐다. 또 다친 인부들을 외과 수술로 치료해주고, 며칠 간 쉬도록 했다는 기록도 발견됐다.
이 거주지의 발굴로 인하여 피라미드 건축에 유대인들이 노예로 동원됐다던 설이 근거를 잃었다. 기록문화를 중요시해서 건축인부들까지 기록하는 이집트인들이 권력 2인자였던 애굽의 왕자인 모세의 기록이 어디에도 없는 이유이다. 전체 인구가 얼마 되지 않던 고대 이집트 국가에서 60만명의 최하층 노동력이 일시에 탈출했다고 한다.(민수기 1장 1~46- 출애굽한 20세 이상 장정만 60만 3,550명. 그러면 부모, 가족,아이들을 합친 애굽을 탈출한 총 인구는???---성경학자들은 장정 60만명에 그 가족, 즉, 부모, 형제, 자매,.. 4인 가족으로 계산하여 출애굽 유대인 숫자를 약 250만 이상으로 본다.) 인구가 4800만명인 우리나라에서 최하층 외국인 노동력이 10만 명만 일시에 빠져나가더라도 전 산업이 일시에 마비될 것이다. 그런 엄청난 사건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을 이끌었다는 출애굽의 모세의 기록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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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델란드의 라이덴 박물관에는 이푸워라는 사람이 기록한 것으로 전해지는 이집트의 파피루스기록이 보존되어 있는데 거기에는 출애굽 당시의 10가지 재앙에 해당하는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고 합니다.


“재앙은 온 땅을 휩쓸고 지나갔다. 피는 모든 곳에 있다..... 강은 피로 변했다. 한 사람이 그것을 마시려고 했다. 그러나 마실 수 없었다. 그는 목이 타들어 갔다..... 오, 문과 기둥, 벽들은 모두 불타버렸다..... 오,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형제들의 무덤 옆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은 도처에 있다.... 오, 그러나 왕궁에 있는 사람은 지금도 인정하려하지 않는다.... 타지방에서 이상한 사람들이 애굽으로 들어왔다.... 오, 곡식(corn)들은 모든 곳에서 죽어버렸다. 옷도 없고, 향료도 없고, 기름도 없다. 모두가 말한다. ”이제는 아무 것도 없다“.... 곡식 창고는 텅 비었다.... 올 것이 왔다. 왕은 가난한 사람들에 의해서 쫒겨 났다.”

호주 고고학자 데이비드 돈 박사는 모세의 흔적에 대하여 연구하였으며, 우리에게 좋은 정보를 제공해주었습니다.

한국창조과학회 홈페이지 내 아래의 기사를 참조하십시오.

“모세를 찾아서1”,“모세를 찾아서2”,
http://kacr.or.kr/library/searchList.asp?isSearch=1&;select2=%C0%DA%B7%E1%BD%C7+%C0%FC%C3%BC&keyword=%B8%F0%BC%BC%B8%A6+%C3%A3%BE%C6%BC%AD

“이집트연대기”
이집트 연대기와 성경 : 현장 고고학자 데이비드와의 대화
http://kacr.or.kr/library/itemview.asp?no=3148&;keyword=이집트 연대기&isSearch=1

“모세와 출애굽에 대한 이집트기록"
출애굽의 역사성을 확증하고 있는 영화, “출애굽의 증거들”이 개봉되었다.
(Encore Presentation of ‘Patterns of Evidence: Exodus’)
http://kacr.or.kr/library/itemview.asp?no=6089&;keyword=출애굽&isSearc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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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성경의 솔로몬 역시 표절대상
솔로몬의 지혜를 나타내는 솔로몬 왕의 재판 이야기는,
고대 인도의 한 현명한 왕의 재판 이야기를 표절한 것이라는 사실은
일부 성서고고학자들이나 역사가들 외에는 아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다.
현명한 왕의 재판[인도 원전]
옛날 인도 달레르라는 곳에 한 경건한 왕이 살았다.
그의 경건함에 브라흐마 신도 감동하여 그에게 지혜를 내려주었다.
어느 날 두 여인이 서로 자기 아이라고 주장하며 판결을 내려고 법정에 왔다.
아주 어려운 재판이어서 재판관은 왕의 지혜에 호소하기로 하였다. 왕은 두 여인 사이의 바닥에 선을 긋고 둘이서 아이를 잡아당겨 빼앗는 자가 아이를 갖게 된다고 하였다. 두 여인이 아이를 잡아당기기 시작하자, 친어머니는 아이가 아파서 우는 것을 보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여 손을 놓고 그저 울기만 하였다. 왕은 아이의 고통에 조금도 애석해 하지 않는 여인이 거짓임을 알 수 있었다. 이에 왕은 친어머니에게 아이를 돌려주게 하고, 다른 여인에게는 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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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고 해서 성경이 그것을 표절했다고 생각하고 주장하는 저의가 무엇인지 의심스럽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가능성도 있고, 어쩌면 각각 다른 사건이 실제로 비슷하게 일어났을 수도 있습니다. 의심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의심스러워 보이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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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왜곡하면 일본사람들이 특히 유명하다. 그러나 일본인들도 유태인들의 역사날조하기에 비하면 정말 귀여운 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사실들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유럽에서는 알려진 사실이라, 교회는 믿음보다는 사교 목적의 장으로 이용되고, 믿음 없는 교회는 참석율이 저조하게 마련이다. 현재 유럽에서는 기독교인구가 줄여들어 교회 건물을 호텔, 술집등으로 개조하여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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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교회가 문을 닫아가는 것을 마음 아픈 일입니다. 여러 가지 원인들에 대한 연구들 가운데 2003년 “Already Gone”에 따르면, 크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라고 합니다. 첫째, 교회의 지도자들이나 교인들의 삶이 모범적이지 않고 신뢰를 주지 못한다. 둘째, 성경을 기록된 그대로 사실로서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둘째 이유는 실제로 성경의 기록이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 아니라 세속적인 주장들에 대해 성경보다 그것을 신뢰함으로써 성경을 믿지 않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성경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기록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알고 복음 알게 되고 믿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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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노아의 홍수(BC2348)로 전 인류가 멸종한지 101년 만에 바벨탑(BC2247년)을 건축했단다. 노아의 홍수(BC2348)로 전 인류가 멸종한지 15년 후에 고조선이 건국(BC2333년)되었다. 물론, 중국에는 사람이 더 많았을텐데, 노아의 홍수가 얼마나 황당무계한 구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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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노아홍수의 연대는 B.C. 2518년경이고, 바벨탑사건은 B.C. 2417년경입니다. 세부적인 연대산정 과정에 대해서는 홈피 “성경이 들려주는 기원의 연대-한국창조과학회가 젊은 지구연대를 주장하는 성경적 이유”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질문하신 분께서 제시하신 연대인 제임스 어셔의 연대기는 애굽체류기간 430년을 아브라함이 소명을 받은 75세부터 출애굽까지로 보았고, 솔로몬왕 즉위년을 B.C. 1050년으로 계산했기 때문에 노아홍수 연대와 바벨탑 사건 연대에 오류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실제로 애굽체류는 야곱이 130세에 애굽으로 내려간 때로부터 출애굽 때까지이며, 솔로몬왕의 즉위는 B.C. 970년이기 때문에 이를 바로 잡아야합니다. 이에 대하여는 한국창조과학회 홈피 “솔로몬왕의 즉위연도에 대한 제임스 어셔의 오류”를 참조하십시오.
야곱은 손주들까지 남자들만 계수하면 68명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 여성들까지 합치면 아마도 100명은 족히 넘었을 것입니다. 왕하 10:1에 의하면 아합왕의 아들들은 70명입니다. 아마 딸들까지 치자면 100명이 넘겠지요. 그런데 노아홍수 직후에 사람들의 수명과 자녀들을 낳은 내용에 대하여 창 11:10-13 “셈은 백 세 곧 홍수 이 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아르박삿을 낳은 후에 오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아르박삿은 삼십오 세에 셀라를 낳았고 셀라를 낳은 후에 사백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노아도 홍수 후 350년을 더 살았기 때문에 자녀들을 낳았을지도 모릅니다. 지금과 같은 상식으로 당시 상황을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자녀를 낳는 나이 또한 상식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 마할랄렐이나 에녹은 65세에 아들을 낳았는데 노아는 500세에 아들을 낳았습니다(창 5:15, 21, 32 참조). 더구나 하나님께서는 노아홍수 이후에 창 9:1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새롭게 시작된 인류사는 말씀으로 만유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창 11:10-25에서 노아홍수 이후에도 사람들은 약 삼십 세부터 수백 년 동안 자녀들을 낳았다고 기록한 중요성을 기억나게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고대 역사시대는 주전 2300년 이후로 시작되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바벨탑 사건의 긍정적인 증거로 바라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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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하나더 심지어 성서학자이자 목회자인 사람도 다니엘도 실존인물이 아니라며 성경이 오류가 있다고 다음과 같이 기록해놓았습니다.
하나, 다니엘서 자체가 증언하는 바에 따르면 다니엘서의 주인공인 다니엘은 여호야김 왕 제 삼년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을 침공했을 때 포로로 잡혀갔다(1:1,4). 그 때 다니엘은 분명 소년이었다고 표기되어 있다. 소년이라고 할 나이, 그러나 자기 주장이 있어서 환관장을 설득하여 자기 고집대로 우직하게 율법을 충실하게 지키고자 할 수 있는 연령대라면 아마도 우리 식으로 볼 때 고교 1~2년 정도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중학생이라고 보면 좀 어리다. 이 정도라면 아무리 체격이 크다고 할지라도 어른의 명령에 맞서서 자기 고집을 주장할 만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체로 고교 1~2년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하게 된다. 그렇다면 대략 우리 나라 나이로 16~18세 정도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이 어린 다니엘은 나중에 바벨론을 멸망시킨 페르시야(바사)의 고레스 왕도 섬겼다고 되어 있다(5:31~6:2). 다니엘서에 의하면 주인공 다니엘은 유대인으로서 바벨론의 궁정에서, 그리고 페르샤의 궁정에서, 그것도 페르샤 제국의 120도 위에 있는 세 명의 총리 중의 한 명으로 마음이 민첩하여 사실상 전국을 통치하는 권력자가 되었다(6:3). 그러다가 모함을 받아 사자굴에 던져진 것으로 되어 있는데(6:16) 바벨론 궁정사에 바벨론식의 이름인 벨드사살이란 고관이 유대인이었다는 기록을 찾아 보기 어려울 뿐만이 아니라 페르샤 궁정사에도 유대인으로서 어렸을 때 바벨론에 잡혀와 충성하다가 페르샤의 고레스 왕이 바벨론을 정복했을 때 여전히 바벨론식의 벨드사살이라는 이름으로 페르샤 왕정에 재등용된 유대인이 있었다는 기록도 찾아 보기 힘들다.

둘, 이 뿐만이 아니라 페르시야의 고레스가 바벨론을 멸망시킨 것은 기원전 538년의 일이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대로 남유다의 여호야김 재위 삼 년째 되는 해라면 대략 기원전 606년 경이 된다. 여호야김의 등극이 기원전 608년에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때의 다니엘이 16~18세였다면 페르샤 고레스 때의 다니엘의 나이는 대체 몇살이란 말인가? 90이 다 되어 가는 노인이란 이야기이다!

통상적으로 이런 나이의 노인을, 그것도 이방나라의 왕이 자국민도 아닌 유대인 노인을 재등용할 리도 없거니와 그 시절에 이런 연령으로 연이어 두 이방제국을 위해 일한다는 것 자체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대체로 그 시대의 인간 수명도 그렇게 긴 경우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두고 하나님의 은혜와 전능하심으로 되어진 일이었다고 주장한다면, 이스라엘 역사상 이와 같은 인물은 전설적인 인물로 거의 숭배받을 지경에 도달했을 만한다. 따라서 다니엘서의 다니엘을 역사상의 인물로 본다면 그의 행적이 거의 전설적인 영웅담에 가깝기 때문에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단순히 묵시문학의 주인공으로서만 등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다니엘서의 다니엘은 역사상 실존했던 인물이라고 보기가 매우 어렵다. 이렇기 때문에 성서신학의 입장에서는 단정코 오류는 어디까지나 오류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역사적으로 확인이 되지 않는 것을 확인이 되는 것처럼 아무 소리도 없이 슬쩍 지나가는 것도 이제는 옳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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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유다의 요아스왕 때(B.C. 835-796) 제사장 여호야다는 요아스가 1살 때 그 할머니 아달랴가 자기 아들 아하시야가 죽자 손주들을 모두 죽이려 했습니다. 이때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사브앗이 요아스를 몰래 숨겨서 남편인 제사장 여호야다의 보호 아래 자라납니다. 그리고 6년 후 요아스가 7살 때 요아스를 왕위에 옹립하고 아달랴를 제거합니다. 이 제사장 여호야다는 130세에 죽었습니다(왕하 24:15).
다니엘은 B.C. 605/606년경에 10대의 나이에 바벨론으로 잡혀가서 그곳에서 60년 이상을 살았습니다. 당시에 노인들은 지혜자로 존경받았으며 그래서 장로라고 불렀습니다.
세계를 재패하는 스포츠 선수들 가운데 10대 선수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팔청춘이란 문구를 사전에 찾아보면 열여섯 살 전후의 젊은이, 젊은 나이, 16세 무렵의 꽃다운 청춘, 또는 혈기 왕성한 젊은 시절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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ㅜ.ㅜ 도대체 정말 목회자라고 하는 분도 오류가 있다고 지적할 정도로 성경이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진정한 믿음을 가져야 할 지 막막합니다. ㅜ.ㅜ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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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과학의 한계 속에 갇혀 계신 분이 아니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세계를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과학이나 이성주의 합리주의 사고의 한계를 벗어난 초월적인 사건입니다. 우리는 자연과학적인 법칙을 뛰어넘어서 발생하는 이러한 사건들을 기적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성경은 일어난 수많은 기적들을 기록함으로써 그 분이 하나님이심을,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알려줍니다. 그런데 과학주의, 이성주의, 합리주의 사고방식으로 성경을 판단하려고 하다 보니 온통 믿지 못할 내용들로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그 원본은 오류가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만약 질문자께서 성경을 베껴 쓴다고 가정해보십시오. 필사를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오류가 발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수 없이 체크하면서 기록하지만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성경사본들이 약간씩 다른 부분을 보이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말 성경을 영어로 번역한다고 가정해보십시오. 저도 번역을 하고 질문자께서도 영어로 번역을 해서 두 번역본을 대조해 보면 어떨까요? 아마도 많은 부분이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동일한 의미를 전달하는 다양한 단어들이 있고, 그에 앞서 우리 말 성경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어떤 영어단어를 택할 것인지가 달라질 것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역본들이 존재하고 서로 달라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는 다양한 번역들을 통해서 더욱 풍성하게 성경을 이해할 수 있게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말 성경도 근자에 개역성경에서 개역개정판이 다시 출간되어서 이제는 개역성경보다 개역개정성경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들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성경원본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구약성경의 경우에는 사본들 가운데 주후 6-10세기경에 맛소라학자들에 의하여 모음부호를 붙이고 정리하여 필사한 히브리 성경 BHS를 가장 원본에 가까운 성경으로 인정하여 사용하고 연구합니다. 그 외에도 여러 사본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된 사본들도 있습니다.

이 외에도 이 시대에 질문자께서 받으시는 도전과 같은 도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알고 믿는 믿음이 요구됩니다. 우리는 이성주의 합리주의 과학주의 시대 상황 속에서 초이성적이고 초합리적이고 초과학적인 성경의 기록들을 믿는 것이 요구되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우리 시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열왕기와 역대기를 읽어보십시오.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열왕기와 역대기는 왕들과 백성들의 삶에 대하여 분명한 평가기준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무엇을 얼마나 이루었는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청종하였는가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길을 따라 갔는가, 아니면 여로보암의 길로 갔는가를 평가하고 있습니다. 많은 학식을 갖추고 있었던 유다와 이스라엘의 왕들과 방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났던 것은 아마도 그들은 자신들에게 그럴만한 지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지식을 잘못되었고 그들의 실패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났기 때문이라고 평가합니다.

질문자께서 주신 질문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ㅜ.ㅜ 도대체 정말 목회자라고 하는 분도 오류가 있다고 지적할 정도로 성경이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진정한 믿음을 가져야 할 지 막막합니다. ㅜ.ㅜ 도와주세요.”

질문자께서 만나시는 목회자들은 모두 그런 분들만 계신가요?

아무쪼록, 주님의 평안을 빕니다.

감사합니다.